251화
“어허 도경 씨 이러지 말라니까? 잘 생각해봐! 자그마치 12억이야 12억! PPL하고 광고까지 곁들이면 배로 벌 수 있다고? 4화분만 방송의 분량을 늘리면 앉아서 벌어들이는 돈이잖아. 응? 그런데 대체 하지 않는 이유가 뭐야? 젊은 사람이 그리 욕심이 없어 쓰겠냐고?”
“말했잖아요. 별로 내키지 않는다고 말이에요...”
“내키지 않는다니. 아니, 도경 씨 그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세상에 누가 돈 버는 걸 내키지 않아 해? 앉아서 자그마치 수십억을 버는 기회라고? 그걸 지금 나 보고 믿으라는 거야? 도경 씨 뭐, 우리한테 기분 나쁜 거 있어?”
차승룡 국장의 물음에 도경이 고개를 젓다 이내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아뇨. 뭐... 에이! 그럼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돈이야 데뷔한 애들로 충분히 뽑을 수 있는 거고 굳이 청정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최고라고 칭찬받고 있는 TOP.10 Project를 광고나 PPL따위로 망치고 싶지않은 게 [TOP.10 Projet] 대표인 제 개인적인 생각이에요.”
“뭐야? 듣기가 조금 그런데? 우리가 [TOP.10 Project]를 망친다는 건가?”
“그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꼭 틀린 건 아니죠. 원래 분량에 4화나 분량을 늘리고 광고와 PPL을 욱여넣으면 질이 안 떨어지는 프로그램이 있나요?”
“이봐 도경 씨. 드라마나 영화면 모르겠는데 예능이잖아. 예능만큼 광고와 PPL연출이 자연스러운 장르가 있는 줄 알아? 요즘 시대가 어느 때인데 그렇게 깨끗한 프로그램을 고집하려고 그래? 광고나 PPL같은 건 시청자들도 다 이해한다니까? 시청률도 그리 큰 여파가 없을거고 말이야. 도대체 뭐가 문제가 되겠어?”
갑갑하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며 말하는 차승룡 국장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제가 문제인가 보네요. 국장님.”
“뭐?”
“돈 몇 푼 벌자고 제가 기획하고 맡은 프로그램 질을 떨어트릴 마음이 들지 않네요.”
씨익!
“익...!”
‘뭐, 이딴 새끼가 다 있어?’
PD도 아니고 명색이 국장이다. 그것도 음악 방송의 대표 채널인 Nnet의 국장 자리를 맡고 있는 자신에게 딴따라 하나가 돈은 벌 만큼 버니까 귀찮게 하지 말라니. 차승룡 국장은 현재 도경을 향해 육두문자를 내뱉고 싶었지만, 필사적인 인내력을 발휘하여 꾹 참아가며 도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 성격대로 들이박을까? 아니야...! 첫 음방 때부터 PD도 들이받는 앞뒤 안 가리는 또라이인데 국장이라고 막 나가지 못하겠어? 건드리다간 죽도 밥도 안되는 수 있다.’
빠득.
8화짜리 [TOP.10 Project]를 12화로 연장 방송, 12억의 출연료, PPL과 광고, 시즌 2제작 제안 모든 것들을 거부하는 도경의 행동에 차승룡 국장은 기가 차오르는 심경을 감출 수가 없었다.
막말로 평소 다른 이들에게 하던 대로 음악 방송의 채널권을 가지고 협박하며 도경을 쥐잡듯이 잡고 싶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 걸려있는 사안도 사안이고 이미 전적이 화려한 도경에게 손대기엔 위험도가 높았다.
협박도 먹히는 애한테나 하는 거지. 저런 밑도 끝도 없는 녀석한테는 쓰는 것이 아닌 것을 아는 까닭이다.
‘진짜 내 방송 생활 중 별별 놈을 다 겪어봤지만 이런 놈은 처음이다.’
기획사 사장도 국장인 자신을 어려워하며 조심하는데 이 새파란 어린놈은 자신에게 입을 열 때 눈치를 보거나 망설임이 없었다. 그 태도를 보면 저놈의 간은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는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을 정도로 차승룡 국장에게 있어 도경의 존재는 돌연변이 같았다.
‘그나저나 프로그램을 위해서라고? 정말로 그런 걸까? 그런 것 치고는 태도가 좀 이상한데 말이야...? 설마?’
차승룡 국장은 자신의 앞에 있는 도경을 관찰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프로그램을 위해서라고 자신의 제안을 고사하고 있지만, 의자에서 등대고 앉아 능글맞게 웃음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도경의 태도를 보자니 자신의 프로그램을 지키겠다는 특유의 비장함을 도경에게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돈이 아니라 다른 걸 원하는 건가?”
“하하! 맞아요. 역시 국장님. 척하면 척이시군요.”
“허허.”
‘젠장! 저 어린놈에게 제대로 놀아났어.’
제대로 놀아났다는 생각에 차승룡은 아차 싶었다. 상대도 자신에게 원하는 게 있는데 자신만 패를 일찍 드러내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어버린 이상 차승룡 국장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도경을 밀고 당기기가 힘들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경이 자신이 제시한 조건을 단박에 거부할 거라고 예상 못 해서 곧바로 조바심을 드러내버린 차승룡 국장의 패착이었다.
“그래 딱 까놓고 얘기해 보는 것도 좋겠지. 도대체 뭘 원하는 거야? 솔직히 우리 쪽에서 제시한 조건이 말도 안 되는 후하다는 건 잘 알고 있지? 도경 씨.”
처음부터 확실히 나가기 위해 최고의 대우를 보장했다. 편당 1억 원의 출연료와 5:5라는 광고와 PPL의 수입분배는 정말로 말이 안 되는 대우였다. 그것을 모르지 않을 터인데 무언가 원하는 게 있다니 그게 뭔지 쉽게 짐작이 가질 않았다.
“말이 안 되는 건 제 프로그램 시청률이죠. 솔직히 까놓고 얘기해서 숟가락 얹으려는 거 아닙니까? 국장님이 조금 전에 말한 말도 안 되는 조건을 제시하면서까지 말입니다.”
“크흠...!”
도경의 촌철살인에 입을 다무는 류승룡 국장. 그는 도경이 자신의 위치를 알아도 너무 잘 아는구나 싶었다. 아니,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보다 그것을 알고 망설임 없이 이용하려 들려는 점이 놀라웠다.
‘연예계 경력이 1년 갓 지난 녀석이 뭐가 이리 벌써부터 이렇게 영악해?’
“그래 한번 이야기 들어보자고. 뭘 원하는지 말이야.”
차승룡 국장은 도경이 무엇을 원하는지 순순히 듣기로 결정했다.
보통 신인 때의 연예인은 세상 물정이 어두워서 다루기 쉬운데 자신의 앞에 있는 도경은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하 제가 요구하는 건 별거 아니에요. 어떤 것들이냐면...”
“...!”
차승룡 국장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도경은 자신이 준비해온 것들을 이야기하기를 시작했고 국장은 도경이 요구하는 조건을 듣고 얼굴을 붉히며 경을 쳤다.
“안돼! 해도 해도 정도가 있지. 너무 과한 요구야.”
“흐음. 프로그램 질을 떨어트린 대신 피해자인 아이들을 챙겨달라는 건데 그게 어려워요?”
“데뷔 무대에 MV 홍보에 뭐, 예능 출연까지? 지금 우리를 호구를 보는 거야?”
듣자 하니 이건 거의 칼만 안 들었지 날강도나 다름없는 요구였기 때문이다.
편당 1억 원의 출연료는 제시 조건은 그대로 유지하고 연장은 4화가 아닌 2화만으로 해서 10화까지로 선을 그었고 [TOP.10 Project]에 들어갈 광고와 PPL은 도경이 직접 본인이 선택하고 연출한다고 한다.
‘이 새끼야말로 더한 놈이었어. 확실하게 그 애들을 띄울 생각이구나!’
그것만 하더라도 Nnet쪽에선 많이 양보하는 것인데 방송이 끝난 이후에도 [TOP.10 Project]우승자 아이들의 음악 방송 데뷔 무대 준비와 MV 홍보. 예능 출연까지 거기서 하나같이 비싼 조건들을 요구하는 도경을 보면서 차승룡 국장은 도경이란 놈이 얼마나 지독한 놈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하긴 2년간 활동해서 벌어들이는 수익의 지분이 30%라고 했지...!’
차승룡 국장은 도경이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TOP.10 Project]을 통해 데뷔하는 아이들을 제대로 띄워 2년 동안 확실하게 돈을 벌어들일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우리가 무슨 엔터테인먼트사야? 그리고 무엇보다 TOP.10 Project 애들을 우리가 왜 신경 써야 하지? 개들 띄워도 우리한테는 돈 한 푼도 되지 않는데 말이야. 예능 방송하나에 2년 동안 애들을 책임지라니 그건 아니지. 안 그래 도경 씨?”
“5% 때 드리도록 할게요.”
“10%.”
척하면 척! 도경의 말의 의미를 알아들은 차승룡 국장이 미소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원하는 것을 확실히 알았으니 다시 한번 제대로 밀고
“참! 그리고 데뷔하면 아이들의 책임질 엔터테인먼트도 있어야 하잖아! CG&J에서 엔터테인먼트 사업도 손 뻗고 있는데 그 아이들 우리에게 맡기는 게 어때? 20%에 싸게 하도록 내가 힘 좀 써보도록 하지.”
“너무 욕심 많으시네요. 그건 저의 [JY] 기획사와 그리고 연습생들 기획사에서 맡을 생각이니 너무 앞서나가는 생각인 듯싶네요.”
“사공이 많으면 엄한 데로 가는 거 몰라? 썩어도 준치라고 대기업 엔터테인먼트에서 맡아주면 훨씬 빠르고 편하게 성공할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아이들 독점해서 자기 쪽 계열사의 일거리로만 스케줄 잡아 이득을 뽑을 생각인 거 모를 거 같아요? 분명 아이들 이미지 소모는 생각도 안 하고 2년 동안 단물만 빨고 버릴 게 빤히 보입니다. 국장님.”
“크흠. 거, 까칠하긴...! 그래. 그 문제는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고 그럼 10%에 하는 건가?”
구렁이가 담 넘어가듯 수익 지분을 10%로 확정 짓는 차승룡 국장의 말에 도경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10%가 별거 아닌듯한 수치로 보여도 앞으로 활동하며 수백억을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돌의 수익의 10%는 어마무시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쯧.
‘진짜 이렇게 기세를 잡고 시작해도 이 정도니 징하다 징해.’
그것을 말 한마디로 날로 먹으려 드는 차승룡 국장을 보며 도경은 혀를 차며 고개를 단호하게 저어가며 택도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또 왜 그렇게 됩니까? 5%로 만족하세요. 그것만 해도 최소 못해도 20억은 훌쩍 넘을 텐데 그 정도면 아이들 일 년 동안 푸시 해주데에 충분한 액수 아닙니까.”
“글쎄? 투자한 만큼 뽑는다고 애매한 5%보단 10%가 낫지 않나 생각이 드는데 말이야. 아! 엔터테인먼트를 맡긴다면 5%로 합쳐 20%로 분배로 힘써보지. 25%에서 20%로 깎아줄 순 이”
“갑자기 5%로도 주기 싫네요.”
끊임없이 딜을 제시하는 차승룡 국장을 보며 도경이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투덜거렸는데 차승룡 국장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도경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잘 생각해봐. 도경 씨. 케이블 방송에서 뜨고 데뷔한 사람치고 지상파 방송 출연이 쉬운 줄 알아? 그쪽 국장과 PD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배척한단 말이지. 그럴 바에 차라리 이쪽에서 확실하게 케어받는 게 좋다고.”
“그건 제 쪽에서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마세요.”
“정말 이럴 건가? 멘토다 뭐다. 하면서 아이들의 미래에 그깟 돈 몇 푼 투자하는 게 그리 아깝나?”
도경의 완강한 반대에 결국 차승룡 국장이 빈정이 상한 표정을 드러내며 도경을 향해 도발적인 언사를 날렸고 도경은 그 말에 미간을 찌푸리며 차승룡 국장을 바라보았다.
꿈틀.
“아이들을 위해 수익 분배를 지키는 겁니다만.”
“흐음. 자기 수익 지분을 지키려는 게 어째서 아이들을 위한 게 되지?”
“알 거 없습니다.”
“뭐, 남자 중의 남자라던 박도경도 돈 앞엔 별거 없었구만. 5%는... 아무래도 안 될 것 같군. 조금 모자란다는 게 내 생각이야. 뭐, 오늘 서로가 서로에게 확.실.하.게 원하는 게 존재하고 그게 무엇인지 밝혀졌으니까 조금 서로들 시간을 가지며 생각을 정리해 봤으면 좋겠군. 어떻게 생각해 도경 씨?”
“......”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까. 연장 방송과 광고와 PPL에 대한 [TOP.10 Project]에 대한 문제는 해결 되었다. 서두를 필요 없어. 시간을 번 후 임원들하고 플랜을 차분하게 짜 놓기만 하면 된다.’
씨익.
갑과 을의 위치에서 이제는 50대 50으로 서로 대등한 위치로 저울추가 맞춰졌다는 생각에 차승룡 국장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도경을 바라보았고 최승룡 국장의 의도가 느껴지는 마지막 말에 도경은 한숨을 내쉬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요? 그럼 할 순 없죠. 국장님 말대로 생각 좀 해봐야 할 듯싶네요. 리아랑 약속도 취소해야겠다. 갑자기 의욕이 안 나네...! 쯧!”
“응? 리아?”
“네. 리아요. 국장님도 아시죠? 리아 그라테. 사실 오늘 걔가 잠시 한국에 놀러 왔다고 하던데 지금 계약 건 마치고 리아 보려고 했거든요. 겸사겸사 우리 방송 출연해 줄 수 있냐고 물어보려고도 했고요. 아~! 그런데 안 되겠네요. 오늘 진지하게 [생각]도 해봐야 하고 기분도 영 꿀꿀한 게... 걔를 설득할 자신이 안 생기네요.”
“뭐...!?”
“에휴. 걔라면 홍보만 잘하면 시청률 [25%] 넘기는 건 거뜬 할 텐데 말이에요. 참 아쉽게 됐네요.”
도경의 말을 듣고 있던 차승룡 국장의 얼굴이 핼쑥하게 바뀌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도경은 자신의 폰을 꺼내며 영어로 문자를 작성하며 어디론가 보내려고 하고 있었다. 그런 도경을 바라본 차승룡 국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도경에게 손을 뻗어 그가 하려는 행동을 제지 시켰다.
어떻게든 도경이 저 문자를 보내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직감이 그의 몸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우당탕!
덥석!
“자, 자...! 잠깐만! STOP! 도경 씨 당장 그 손 멈춰! 아니! 사람이 왜 이렇게 급해?”
‘이거 잘만 하면...!’
도경의 손을 덥석 잡은 그의 머릿속엔 [시청률 25%]란 수치와 초특급 게스트 [리아 그라테]란 존재만이 가득 자리잡고 있었다.
씨익.
‘됐어. 먹이를 물었어. 그럼 제대로 판을 깔아보도록 할까?’
차승룡 국장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 도경.
도경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도경이 무언가 크게 한탕을 칠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