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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265화 (265/357)

265화

“후우~. 오늘은 꽤나 달렸어.”

오랜만에 연 소극장 공연을 마친 도경은 무대에 앉아 텅 빈 객석을 바라보며 여운에 잠겼다.

좀 전까지 땀과 뜨거운 열기를 머금었던 자리는 이제는 사람이 머물고 갔다는 흔적들과 묘한 미열같은 여운 이외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

너무나도 다른 전과 후의 갭 차이에 도경은 공허함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쓸쓸해 하거나, 울적한 감정으로 자신을 물들이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허함이 가져다주는 감각을 즐기며 여러 가지 생각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평소와는 분명 다른 반응이었지.”

여러 생각을 떠올리는 와중에 도경이 제일 관심이 있던 것은 역시나 오늘 극장을 찾아왔던 사람들에 대한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게 평소와는 달라도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전에도 뜨거운 반응을 보였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도경이 보인 액션에 대해 일어나는 당연한 반응들이었지 사소한 동작 하나에도 소리 지르며 과하게 호응하는 반응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좋아하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다고 해야 할까? 사람들이 도경을 대하는 태도나 보이는 반응들이 평소랑 달리 확연하게 달랐다.

“아마도 TOP.10 Projet 하고 Again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일 텐데... 생각보다 너무 빠르단 말이야.”

[TOP.10 Project], [Again].

현상의 원인을 유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TOP.10 Project]에서 아이들을 대하는 도경의 인간적인 매력. 그리고 [Again]에서 주인공으로 열연하는 도경의 모습에 사람들이 도경을 대하는 태도가 바뀐 것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도경이란 존재는 사람들에게 잘나가는 존재였지만 급이 높은 느낌은 아니었다.

언제나 평범하지 않은 길을 걸으며 화제를 이끌고 다재다능함으로 사람들을 감탄케 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조금 가벼운 느낌이 드는 인상을 지니는 아이러니함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고급스러운 느낌이 나지 않는 것이다. 연예인이란 존재는 대중들에게 브랜드 가치를 지닌 소모성 상품. 그런데 도경이란 상품은 자신이 어떤 브랜드인지 확실하게 선을 긋지 않아 모호한 상태였다.

생각해보면 그랬다.

처음 예능에서 이름을 알려도 생각 외로 예능 출연을 하지 않았고, 첫 앨범을 냈는데 음방 활동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연기대상을 받을 정도로 연기로 떴지만 역시나 수많은 차기작을 고사하며 연기활동을 하지 않았다.

성공해서 기껏해서 얻은 추진력을 애먼 곳에 사용하는 그야말로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0)의 상황의 연속.

도경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미지 소모만 실컷 하고 반짝하고 사라졌을 비효율적인 행보.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듯싶었다.

[TOP.10 Project]와 [Again].

음악을 공통분모로 두고 있는 예능과 영화 이 두 가지 매체가 시너지 효과를 내며 도경의 진정한 가치를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다.

수십억의 이익을 포기하고도 아이들의 꿈을 응원하는 인격적인 면모와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팝스타인 리아 그라테와 어깨를 나란히 열연을 펼치며 영화를 찍은 도경의 모습은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도경의 존재감을 재인식하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탑스타]

누구나 원하지만 아무나 갈 수 없는 위치. 상상하지 못할 스케일과 결과물을 이루어낸 도경은 그 자리를 향해 빠르게 나아가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조금 서둘러야겠지?”

자기 주변으로부터 빠르게 변해가고 있는 분위기를 감지한 도경. 그 흐름 속에 자신이 앞으로 나아갈 곳을 떠올리며 도경은 무대 아래로 내려가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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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리아 이 기사 좀 읽어보렴. 이거 사실이니?”

“응? 뭔데요 삼촌? 무슨 안 좋은 기사라도 났어요?”

호화로운 대저택. 그곳에 마련된 수영장에 워터해먹을 띄어놓고 그 위에 누워서 햇볕을 내리쬐며 일광욕을 즐기고 있던 리아는 자신을 찾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니. 그런 건 아니다만 다만 물어볼 게 있어서 말이야.”

“물어볼 거요?”

“콘서트를 연다고 하던데...”

“네? 콘서트요 누구 콘서트요?”

“후우. 역시나 군. 일단 이거 읽어보렴.”

스윽.

니엘이 건넨 흰색의 태블릿 패드를 받아 올린 리아는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으며 하나의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34일이 만든 기적 Again.

소리소문없이 냈던 하나의 독립영화 젊은이들의 풋풋한 도전이라고만 여겨져 왔던 이 영화가 한국 영화계에 결국 일을 내버리고 말았다. 시작은 미미했으나 각종 입소문과 가수와 아이돌들의 잇따른 홍보에 힘입어 개봉한 지 13일 만에 300만을 돌파하였기 때문이다.

독립영화로서는 처음 있는 역주행 돌풍에 모두가 놀람을 금치 못하며 업계 관계자들은 최정훈이란 신인 감독을 주목하며 그에 관한 이야기로 시간을 나누기 바쁘다.

그도 그럴 게 임꺽정으로 연기대상을 받은 박도경과 미국 10,20 세대들의 사랑을 받는 팝스타 리아 그라테의 캐스팅을 성사시키고 34일 10억이란 제작비로 놀라운 결과물을 만들어낸 신인 감독의 존재는 그야말로 상식이란 상식을 파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00만 돌파 벌어들인 수익 대략 310억! 제작비의 30배의 수입을 낸 초대박 신화에 모두가 부러움을 드러내며 한국 독립영화 역사 사상 수백억을 벌어들이는 독립영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기적의 영화라니! 굿! 기사 타이틀이 정말 마음에 드네요.”

씨익.

몸은 미국에 있지만, 한국에서 이 [Again]이 대박이 났단 것은 진작에 도경과 최정훈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던 사실. 애초에 리아는 영화에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TOP.10 Project]에 출연하러 한국에 갔을 때 영화를 봤었고 좋은 결과 또한 얻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뜰 줄 생각도 못 했지만 말이야.’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칭찬 일색의 기사가 실릴 정도로 초대박을 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제작비 수십 배의 수익을 낸 영화라니 이러한 결과는 할리우드에서 쉬이 보기 힘든 현상이다. 게다가 아직 상영일은 한참이나 남아 있고 미국에 개봉할 것까지 생각하면 더욱더 벌어들인 것이 분명한 상황. 영화의 주연으로 출연한 배우로서는 매우 뿌듯하고 기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삼촌 여기에 뭐가 문제 될 게 있다는 거예요? 아무런 문제도 안 보이는데요?”

“이런, 리아 글은 끝까지 다 읽어보렴. 칭찬만 골라 읽지 말고 말이다. 그건 나쁜 버릇이란다.”

“칫. 잔소리하기에요? 제 선견지명에 칭찬을 못 해줄망정 너무해요. 삼촌.”

“그저 우정 출연으로 얻어걸린 주제에 너무 잘난 척하는구나 리아. 잔말 말고 기사나 마저 다 읽으렴.”

“대체 뭐가 있다고... 응?”

정곡을 찌르는 니엘의 말에 리아는 입술을 삐죽이며 다시 시선을 돌려 기사를 읽던 와중 눈에 띄는 기사를 발견했다.

[Again의 역주행의 붐을 낳고 있는 것 중 제일 큰 기여도를 차지하는 건 영화에 나오는 노래임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아직까지 음원으로 나오지 않는 Again의 노래를 다시 듣고 싶어서 녹음기를 들고 영화관을 찾아가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을 정도니 말이다. 영화속에 나오는 노래는...(중략)]

‘하긴 끝내주긴 했지. [Pain],[Again] 그 노래들에 안 넘어갈 사람은 없을 거야.’

신인감독 최정훈 다음으로 영화 속 나오는 노래를 다루며 극찬하고 있는 칼럼 기사에 리아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현장에서의 존재감도 뛰어났지만, 최정훈의 손길을 탄 영화 속 스크린을 가득 채워가며 노래를 부르는 도경의 모습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도입부를 여는 [Pain]은 방황하며 낙오한 삶에 대한 비참함을 표현했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Again]은 떨면서도 서툴지만, 용기를 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명과 암. 해와 달처럼 부정과 긍정을 담아 노래는 헤어나올 수 없는 마력이 있었다.

헤벌쭉.

“헤헤헤. 나는 그런 기똥 찬 노래를 아무 때나 듣고 있는데 말이야. 정말 안타까운 일이야. 음원 공개하려면 아직 2주 정도 남았는데 말이야.”

같이 음원 작업을 한 만큼 도경의 노래를 지니며 원할 때마다 듣고 있었던 리아는 도경의 노래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헤벌쭉 미소 지었다.

“리아! 읽고 싶은 것만 읽지 말랬지? 제대로 읽어.”

“자동번역이라 문맥이 이상해서 읽기 힘들단 말이에요. 대체 뭐가... 아!?”

들떠도 너무 들떠 있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자신만의 우월의식에 빠져 인중을 길게 늘어트리고 있는 리아를 보다 못한 니엘은 참지 못하고 그녀를 다그쳤고 자꾸만 자신을 다그치는 삼촌이 조금은 야속하게 느낀 신경질적으로 기사를 빠르게 읽기 시작했고 이내 신음성을 흘리고 말았다.

[(중략)... 관람한 영화표만 있으면 콘서트에 입장 가능하다고 하니 그야말로 최고의 이벤트 아니겠는가? 덕분에 Again을 관람한 사람들 모두는 이제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달성하는 것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영화 속에서 보던 배우들을 그리고 그 열망하던 노래들을 라이브로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얻기 위해서 말이다!]

“헐...!”

도경의 천만 관객 공약.

무료로 잠실경기장을 빌려 3일간 콘서트를 개최하겠다는 그 통 큰 공약에 대한 정보가 적힌 칼럼 기사를 읽은 리아는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드디어 읽은 모양이로구나.”

“응...”

“그래. 기사에는 리아 너도 허락한 일이라던데 그게 사실이니? 조나단과 나와 상의도 없이 말이야.”

“그게... 헤헤헤.”

스윽.

삼촌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리아는 비스듬히 워터 해먹에 드러눕고 있던 몸을 일으키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구두로 말한 것뿐이지만 매니저인 니엘삼촌과 에이전트인 조나단과 아무런 상의 없이 일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에 약속을 한 것에는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에이~! 삼촌 그냥 술자리에서 분위기 타서 나온 이야기야. 왜 그런 이야기 나올 수 있잖아.”

“그래? 분위기에 그런 이야기를 꺼낼 수 있지. 게다가 천만인데 그게 쉬운 일이겠어? 오천만 인구 중에 천만이란 관객 수는 말이 안 되니까 말이야.”

“응. 응 내말이...! 삼촌도 이해하지?”

“그래 이해는 하지. 하지만 넘어갈 수는 없지 않겠니 리아?”

“윽!”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넘어갈 수는 없었다.

[IF].

만약에란 말은 그 누구나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의 리아는 만약이란 말을 꺼내며 미래를 약속하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게 현재 그녀는 지금 한창 바쁜 시즌이었다. 새 앨범에 대한 작업, 광고, 시사회, 패션위크, 자선 파티 등등 몇 달간은 몸 하나가 부족할 만큼 풀 스케줄로 일정이 잡혀져 있는 까닭이다.

그것을 본인이 모르지 않을 텐데도 도경과 그런 이야기를 나눈 것은 명백히 리아의 실수였다.

“조나단이 좀 있으면 올 거니까. 한 소리 들을 준비해라.”

“윽! 삼촌 천만이라고? 그게 쉽게 될 리는 없는데 조나단을 부르는 건 좀...!”

“리아야. 한국 사람들은 미국을 선망의 시선으로 본단다.”

“응?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삼촌? 그 이야기가 갑자기 왜 나와?”

“미국에 Again이 개봉하는 날이 모레라고 들었다. 개봉하면 네 팬들이 제일 먼저 영화를 보러 갈 테지. 그리고 한국에서 영화를 본 사람들의 반응을 봐선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우리나라에서도 좋은 반응들을 얻겠지.”

“뭐, 그렇지 않을까? 그런데 삼촌 그래서 뭐? 어차피 공약을 내건 천만이란 숫자는 오로지 한국관객이라는 전제조건이라 우리나라와는 별 상관이...”

“리아. 나는 숫자 따위를 말하는 게 아니란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파급효과지. 한국인이 동경하는 미국에서 [Again]이 좋은 성적을 거두면 한국 사람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 거 같니?”

“아...!”

“그래 이제 알겠니?”

니엘의 의미심장한 말의 의미를 뒤늦게 알아챈 리아는 입을 멍하니 벌리고 말았다. 자신의 삼촌이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예고하고 싶은지 명확하게 감을 잡았기 때문이다.

“천만? 그런 건 그들이 지닌 특수성으로 금방 찍을 거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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