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화
[Again. 미국을 시작으로 해외개봉 시동을 걸다!]
[상영관 수는 상관없다.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빠르게 보여주는 걸 택한 최정훈 감독.]
[해외 평론가들 잇따른 호평! 노래를 부르는 박도경은 누구?]
[Again이 가진 음악의 힘! 세계를 홀리기 시작하다!]
[Pain, Again인 나란히 빌보드 차트에 입성!]
[Again 노래 각종 커버 버전 쏟아져 나와!]
한국에서 역주행의 끝판왕을 이루어내고 있는 Again은 관객 수 500만을 찍었을 시점에 미국에 개봉을 시작하며 다른 나라에서도 상영하기 시작했다.
보통이라면 한국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시간을 들여 마케팅하고 해외 상영관의 많은 확보에 힘을 쓸 테지만 최정훈과 도경은 그리 하지 않았다.
되면 되는대로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개봉을 하겠다는 그 둘의 뜻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한 것처럼 외국에서도 그냥 영화를 내놓고 싶다.’
한국에서도 마케팅이나 홍보를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게도 영화는 많은 사랑을 얻었는데 인제 와서 돈을 더 벌겠다고 태도를 바꾸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며 입장표명을 내놓는 도경과 최정훈에 사람들은 다시 한번 감탄하는 계기가 되며 두 사람에게 칭찬과 찬사를 이어간다.
그런 인터뷰 기사와 댓글을 읽고 있는 최정훈은 결국 울상 지었다.
“사실은 귀찮아서 그런 거라고 밝히면 사람들은 믿어줄까?”
“하하하. 뭘 굳이 그런 피곤한 짓을 하려고 해요?”
“아니...”
사실은 그저 일을 크게 벌리고 싶지 않아서 귀찮아서 그냥 한국에서 했던 것처럼 영화를 내던 거였는데 설마 이 이야기가 이렇게 주목을 받을 줄은 예상 못 한 최정훈은 시큰거리는 위통을 느끼고 있었다.
“위가 아프단 말이야. 너무 과대평가 받고 있다고. 한국의 영화계의 미래를 책임질 신성이라니 말이 되냐? 제정신으로 못 버티겠다고.”
“하하하! 익숙해 져요. 성공했으면 그 정도의 책임은 져야죠.”
“으... 그래도 적당이라는 게 있잖아.”
하루아침에 천지가 개벽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라는 것을 현재 진행형으로 몸으로 겪고 있는 최정훈은 도경의 웃음에 복잡한 마음을 느꼈다.
“진짜 이러다가 천만 찍으면 난리 난다고... 천만만큼은...! ”
“형 포기해요. 찍는다니까요.”
“너는 말 하지 마. 가볍게 천만을 입에 담지 말라고 이젠 네가 무슨 말 할 때마다 무섭다고!”
“참나. 오버하기는 남자가 간이 그렇게 좁쌀만 해서 쓰겠어요?”
“네가 내 입장 돼봐! 이렇게 부담 주면 다음 작품은 어떻게 만드냐고?”
“하긴 조금 힘들긴 하겠네요. 힘내세요. 형!”
“조금? 애써 위로해주는 척하지 말지?”
“하하하!”
도경이 천만 공약을 걸었을 때는 그저 웃었다. 영화에 자신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천만이란 관객 수는 말도 안 되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도경이 한 말은 그저 파이팅이나 다지자는 의미에서 한 건 줄 알았다.
‘정말 장난이 아닌데 말이야...’
도경의 파이팅 넘치는 기운 덕분일까? 흥행성적이 나쁘지 않다는 소리에 처음에는 단순히 기뻤다. 하지만 3일 만에 관객 수가 50만을 돌파하고 일주일에 100만을 돌파. 그리고 가속이 붙었는지 2주쯤 돼서 그 3배인 300만을 돌파하면서 최정훈의 단순히 기뻐할 수가 없었다.
보통은 최정훈이 많이 기뻐할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당사자로서 직접 이 일을 겪고 있는 최정훈은 속마음은 아이러니하게도 기쁨보다는 두려움과 부담으로 가득했다.
‘그렇잖아 880만이라니 이게 말이 돼?’
두근!
욱신욱신!
880만. 이대로의 기세라면 도경의 말대로 천만은 찍을 것이 분명한 상황. 보통이라면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자신의 예상보다 커져 버린 기쁨의 규모 덕분에 최정훈은 부담이 가져다주는 압박감에 위통에도 시달려야 했다.
“천지가 개벽했다는 게 이런 거구나...”
가족도 친구들도 회사 동료들도 쏟아지는 축하와 영화계에 자신을 향해 보내는 수많은 러브콜. 게다가 자신을 앞다투어 영화계의 성공신화를 이룬 신성으로 다루는 언론까지. 과열되다 못해 폭발하고 있는 자신의 주변 상황에 최정훈은 그저 울상 짓는다.
힐끔.
“그나저나 도경이 너는 괜찮냐?”
“응 뭐가요?”
“주변에 다가오는 사람들 말이야. 나는 회사 전화 받는 것도 이젠 무섭다.”
“아... 그거요? 뭐, 저도 난리는 아니죠.”
큰 성공은 주변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말이 있었다.
한국은 물론 해외까지 좋은 평가와 인기를 얻고 있는 [Again]. 연예계 기자들은 [Again]의 성공과 더불어 최정훈과 도경의 벌어들일 수입에 자연스레 초점을 맞추며 떠들기 시작했고 그 결과 두 사람은 뜨거운 홍역에 시달리고 있었다.
“처음 보는 친척들부터 친가 외가 지금 제대로 시달리고 있는데 난리도 제대로 터졌죠. 덕분에 가족들 전부 번호 바꿨어요.”
“역시나...! 음, 그래도 나는 조금 나은 건가? 내 백수 생활 때문에 친척들하고 부모님들하고 사이가 안 좋아서 그런 거는 아직 없던데. 뭐, 부모님한테 눈치를 주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말이야.”
“그래요? 그럼 저보다 확실히 낫네요. 남보다 친인척이 훨씬 심하다니까요.”
“응?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도경의 질색하는 표정에 최정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뭔가 있나 싶어 물었다.
“돈 문제 때문이죠. 이게 진짜 골 때려요. [TOP.10 Project] 있죠?”
“응. 그게 왜?”
“그 애들한테 돈을 그렇게 쓰면서 우리는 아깝냐면서 따지는데 진짜 짜증이 나 죽는지 알았다니까요?”
“헐... 정말로?”
“정말이고 말고요. 돈 몇 푼 주는 게 아까우냐고 소리 지르던데 정말 웃기죠. 언제부터 2억이 몇 푼 됐는지 알 수 없으니까요. 덕분에 아버지랑 친가랑 한바탕 했어요.”
“미친...”
현재 도경과 최정훈이 겪고 있는 돈 문제의 발단은 하나의 기사로부터 시작되었다.
[천(千)의 신화 Again!
천만 관객을 달려가는 거둬들일 이익만 최소 천억 원! 해외 상영과 VOD, 음원 수입까지 고려하면 그 배의 성공이 예상돼. 한국 천만 관객 영화 중에 최고로 성공한 영화로 될 것인지 모두가 기대하다.]
천만 관객. 그리고 천억 원.
그야말로 자극적인 라임이 아닐 수 없었는데 문제는 [Again]을 다루는 기자들이 전부 이 천억 원에 목매달며 기사를 내보냈다는 것이었다. 10억이란 적은 제작비로 1000억을 벌어들인 스토리는 그 누가 보아도 재미난 소재였기 때문이다.
“하! 천의 신화는 개뿔 다들 미친 거야...!”
욱신.
“안 그래? 내가 최고로 성공한 영화감독이라니 미친 거지...”
욱신욱신.
“형 괜찮아? 설마 맥주 한 병에 지금 취한 거야?”
“그래 취했다. 아니 취해야 해. 이 미쳐버린 상황에 맨정신으로 있으면 안 돼. 마시자 도경아!”
달깍. 치이익!
“어, 어...?”
한국에서 최고의 성공을 해버린 감독 중 하나가 되어버린 이 상황에 결국 최정훈은 정신을 놓아버리기 결심했다.
그저 영화감독이란 꿈을 이루고 싶어 영화 하나를 만들었을 뿐인데 이 찌부러질 것 같은 부담감이라니 최정훈으로선 벗어나기 위해선 이 방법밖에 없는 듯싶었다.
꿀꺽! 꿀꺽! 꿀꺽!
“형! 아직 애들 오지도 않았다고 먼저 달리면 어떻게?”
도경과 최정훈이 있는 곳은 달빛이 비쳐 운치가 있는 한 옥상정원. 도경은 최정훈이 폭주할 조짐이 보이자 그의 행동을 만류하기 시작했다.
[Again]의 흥행을 자축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가 최정훈의 폭주로 파티를 시작하기도 전에 끝나버리게 생겼기 때문이다.
“뭐, 어때? 애들 오면 또 달리면 되는 거지 안 그... 윽!”
“...형?”
그답지 않게 도경의 만류에 코웃음 치던 최정훈. 하지만 최정훈은 도경의 말을 진작에 들어야 했다.
맥주 한 병에 취기가 도는 컨디션 상태와 압박감 속에 욱신거리는 위통. 그리고 무너지는 멘탈에 쏟아부은 알콜.
이 모든 게 한데 어우러져 최정훈의 육신은 솔직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우욱! 도경아 화장실 어디야...!?”
“저쪽.”
“다녀올게!”
타다닥!
“우웨웨웩!”
“저 형도 참 가지가지 한다니까. 영화 만들 때만큼만 단호하게 마음먹으면 될 것을...”
황급히 화장실로 들어가 무언가를 열심히 쏟아붓는 소리에 도경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웃음 지었다. 사람이 영상 만드는 거 이외에는 저렇게 물렁물렁할 수가 있나 싶어서였다. 하지만 도경은 최정훈의 저런 순진한 면이 싫지는 않았다.
“그래도 성공했다고 재수 없게 구는 것보단 십만 배 나으니까 말이야. 안 그러냐?”
“인사도 없이 갑자기 뭔 소리야?”
터벅터벅.
“그냥 궁금해서 말이야.”
“뭐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최정훈이 있는 곳을 보며 미소 짓던 도경이 옥상정원 입구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려 환히 웃으며 물었다.
“너도 최고가 되면 부담감에 토하려나?”
“그럴 리 없잖아. 그 순간 신나게 날뛰면 날뛰었지. 토하다니 어불성설이야. 형.”
“그렇지?”
“당연한지. 형과 약속을 지키는 순간인데 미친 듯이 신날걸?”
씨익.
“하하하!”
영문모를 자신의 물음에 단호하게 대답하는 남성의 음성에 도경은 더욱더 진한 미소를 짓는다. 그야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암울함과 자조 섞인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던 그 쪼그마했던 녀석이 이제는 강한 의지가 담긴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저런 건방진 말을 하다니 너무나 유쾌한 도경이었다.
“오랜만이다. 성준아.”
휙휙!
“그러게. 방송에서 본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달이 다 되어가네.”
도경은 반가움을 담아 미소지으며 손을 흔들며 성준을 맞이했고 성준도 가볍게 오른손을 흔들며 인사를 올리며 자신이 사 온 선물을 건네며 도경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그나저나 정훈이 형. 아니지, 우리의 주인공 정훈 감독님은 어디에 있어?”
“화장실. 지금 토하고 중. 그리고 정훈이 형한테 감독님 소리라 하지 마라. 아마 너한테도 감독님이라 소리 들으면 한 번 더 토할걸?”
“뭐? 토해!? 정훈이 형 어디 몸 안 좋아? 아까 토한다는 게 정훈이 형 이야기하는 거였구나...!”
“자자 그런 자잘한 건 신경 쓰지 말고 한잔해.”
“아니, 자잘한 거라니...! 보니까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괜찮은 거야?”
“괜찮아. 행복에 겨워 토하는 거니까. 자 건배!”
“참 나...”
팅!
성준은 뒤늦게 들려오는 구토 소리를 발견하고는 화장실을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도경은 신경 쓰지 말라며 성준에게 맥주병을 건네었고 그 병을 받아들인 성준은 어이가 없어서 하면서도 자연스레 도경과 짠을 하며 맥주를 들이켜기 시작했다.
꿀꺽꿀꺽.
푸하!
“휴! 시원하다.”
“...”
물끄러미.
최정훈의 걱정도 잠시. 아이스박스 얼음에 담겨있던 찬 맥주가 주는 시원한 맛에 만족하며 미소짓는 성준. 그리고 그런 성준을 바라보며 도경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성준아. 부럽지 않냐?”
“응? 뭐가?”
“정훈이 형 말이야. 저렇게 행복에 겨워 토하는데 부럽지 않아?”
“뭔 소리야? 토하는 게 왜 부러워?”
“뭔 소리긴...”
“하, 뭐야? 또 이상한 짓 하려고 그러는 거지. 맥주병에 뭐 탔어? 나 요즘 운동 배워 호락호락 안 당할 거...”
갑자기 뜬금없는 물음과 화제 전환. 따라갈 수 없는 이상한 소리를 하는 도경을 두고 성준은 즉각적으로 방어적인 태세를 취하였다. 워낙에 당한 게 많았기에 보이는 반응이었지만 이내 도경의 이어지는 말에 모든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너 내 노래에 피쳐링 해라.”
“뭐...? 피쳐링?”
씨익.
“그래. 어때?”
너무나 놀란 제안에 성준은 우스꽝스러운 자세 그대로 굳어 있었고 그런 성준을 바라보며 도경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더 맥주병을 성준에게 들이밀었다.
“내가 한번 너도 제대로 토하게 해줄게.”
“....!”
옥상정원 달빛 아래에서 맥주병을 들며 도경은 성준에게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기 시작한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