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화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순환의 구조가 여기 있었다.
[Pain, Again 빌보드 차트 20위권 입성 세계로 뻗어 나가는 Again.]
[Again]의 주제곡들은 해외에 알려지는 기염을 터트렸고 영화는 자연스레 미국에서 홍보가 되는 선순환을 겪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리아의 팬들이 있었고 미국에서 Again은 대박은 아니지만 호평을 받으며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고 이는 또다시 한국에서 알려져 [Again]의 인기를 높였다.
[미친 이게 말이 되냐? 그 누구도 못 한 걸 한국의 신인 감독이 하네!]
┗[이미 한국에서는 천만 관객 찍었음. 제작비 10억인데 순수익이 얼마야? ㅎㄷㄷ 하다.]
┗[잭팟 터진 거지 해외에서도 평타 치고 있다는데 한국에서 번 것보다 더 벌지 않았을까?]
┗[에이 그건 아닌 듯. 생각보다 해외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영화 많이 안 봄.]
┗[장난? 땅덩어리가 우리나라의 수십 배인데 영화 보는 빈도수는 적어도 상영관하고 사람 수가 있는데 어마무시할걸?]
┗[그 많은 상영관 수를 확보를 많이 못 했잖아요. 그렇게까지 어마무시한 수입은 아닐 듯요.]
┗[이분 말씀 맞음. 미국 현지인 친구한테 물어보니까. 상영관 수가 적어서 영화 보기 힘들다고는 함. 대신 VOD로 나오면 보고 싶어 하는 사람 많다고 하네요.]
┗[그러고 보니 VOD가 있었구나! 그쪽은 VOD 시장이 크니까... 와...! 대체 얼마를 버는 거야?]
평타라는 어감에 별로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그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미국 영화계에 한국영화가 평타를 치는 작품은 손에 꼽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제작비 10억 원 영화가 평타를 쳤다는 것은 그야말로 초대박이라고 말이나 다름없었다
[세계에 활약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한국영화 Again!]
미국. 열강에 대해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큰 한국인에게 [Again]은 자랑스러운 한국영화인 것이리라. 도를 넘은 수많은 수식어와 부담스러운 선전 문구가 [Again]에게 붙기 시작했고 이러한 상황 속에 한구석에는 예상치 못한 촌극이 펼쳐지고 있었다.
탕!
“아니, 이젠 내리고 싶다고요.”
“감독님! 왜 그러십니까? 한 달만 더 연장해서 상영합시다. 잘하면 한국의 박스오피스 최고 스코어 기록을 깰 수...”
“그러니까 그게 싫다고요!”
“......”
털썩!
“감독님! 살려 주십쇼!”
“뭐, 뭐하시는 거예요?”
털썩!
“이대로 영화 간판 내리면 저 모가지입니다. 1300만을 넘겼습니다. 이 기세면 1위 스코어의 달성도 꿈이 아닌데 이대로 간판을 내리다니 말이 됩니까? 차라리 절 죽이십시오. 자식같이 소중한 작품 아닙니까? 절대 그런 독단적인 결정을 내리시면 안 됩니다. 영화와 같이 출연했던 배우님들을 생각하십시오. 감독님!”
“이익...!”
‘이 사람들도 제정신이 아니야. 지금 내가 죽게 생겼는데 지금 그게 문제야? 애초에 영화를 생각했다면 그런 선전 문구들로 영화를 홍보하지 말았어야지! 얼마나 내가 부담스러운지 생각했다면 말이야.’
하라고도 안 했는데 자신들의 사비를 털어 부담스럽기 짝이 없는 자극적인 선전 문구로 [Again]을 홍보하며 더욱더 일을 크게 벌렸던 자신의 배급사를 향해 최정훈은 질린 표정을 지으면서도 이를 갈았다.
‘1300만이면 배급 수수료가 못해도 110억 원 정도는 할 텐데 정말 만족을 모르는구나.’
빠득.
말은 영화를 위해서라고 해도 사실은 욕심이라는 것을 이제는 모르지 않는 최정훈이었다.
자신의 영화를 국뽕에 물들이고 있는 행동에선 그들이 영화를 생각하자는 말과는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 행동이었으니 말이다.
“이젠 더이상 두고 볼 수 없어요. 여기서 끝입니다. 정해진 날짜대로 간판 내려주세요.”
“감독님!”
“영화를 생각하긴 개뿔...! 이대로는 스코어를 찍게 되면”
이미 과분한 사랑을 얻었다. 하지만 자신이 낸 이 영화가 한국 박스오피스 1위를 찍는 것은 그로서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었다.
‘이대로 1위를 찍으면 평생 Again 그늘에서 못 벗어난다.’
외국의 한 감독이 있었다.
반전의 식스 센스라고 불리며 관객들에게 평생을 반전만 갈구 당하며 첫 작품의 그늘에서 못 벗어나는 감독이 말이다. 최정훈은 절대로 그런 감독이 되고 싶지 않았다.
[박도경 아니었으면 못 뜰 영화]
[국뽕 영화인 한철 영화]
[Again 그렇게 대단한 수준은 아닌데...]
[뉴욕배경에 미국인 배우. 영어 쓰는 한국인. 이게 한국적인 영화?]
[다음 영화 보면 견적 나오겠죠.]
지금도 사실 아슬한 수준이었다. 언론과 배급사에서 [Again]을 국뽕으로 물들이고 호들갑을 떨고 나서부터 부정적인 여론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긴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돈 잘 벌었다. 나 잘났다고 계속 어필하면 듣는 처지에서는 짜증이 나고 피곤해지기 마련이다. 이를 잘 아는 최정훈은 한시라도 서둘러 영화를 내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감독님 이대로는 포기 못 합니다. 도경 씨와 라이 씨에게 연락할 겁니다! 그 두 분도 영화에 투자한 투자자 아닙니까? 투자자들의 수익을 손해를 보게 하는 감독은 이 세상에 없는 법입니다.”
“하세요. 이미 이야기 끝났으니까.”
“네!? 그런...!”
“착각하지 마시죠. [Again]은 제 작품이고 이 작품의 감독은 접니다.”
쿵!
“감독님! 감독님!!!”
문을 닫고 나서는 최정훈은 뒤에서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를 코웃음 쳤다.
“흥! 저쪽도 똑같았어...! 뭐? 도경이랑 리아에게 전화한다고? 진짜 얼탱이가 없다니까. 얼마나 나를 호구로 봤으면 그런 말을 하지?”
빠득.
“정말 빡치는 일 투성이야...!”
크나큰 성공. 하루아침에 바뀐 삶의 무게에 짓눌리던 나날.
최정훈은 변하고 말았다. 아니, 변할 수밖에 없었다. 안팎으로 그를 건드리는 주변 사람들 때문에 말이다.
[인맥 발로 성공한 운 좋은 애송이. 반짝 뜨고 사라질 것이다.]
[듣기로는 실세는 박도경이다. 최정훈은 한 것 없다. 그저 단순히 카메라 감독.]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작품이 아무런 작품성 없는 [Again]이 된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왜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지?’
그저 자신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는 오래된 꿈을 용기 내서 이뤘을 뿐인데 자신을 깎아내리는 사람들의 비판은 최정훈을 힘들게 만들었다. 자신이 생각했던 영화감독은 이런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짜증 나. 내가 영화 잘 만들었다고 나댄 것도 아니고 [Again] 가지고 잘난 척 한 것도 없어. 그냥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만든 것 뿐이라고...’
만들고 싶었던 영화가 있었다. 그리고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최정훈이 생각하는 영화감독은 딱 거기까지였다. 자신이 최고라고 나설 생각도 나라를 대표하는 감독이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억울했다. 가만히 있는 사람을 왜 건드린단 말인가?
“그리고 그 꼰대 새끼들!”
빠드득.
그저께 우연히 영화행사에 참여해 기성 감독들과 만날 수 있었던 회식 자리. 그 자리를 떠올리며 최정훈은 이를 갈았다. 그곳이야말로 자신을 깎아낸 소리의 근원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때의 한 철이네. 자만하지 말고 분발하게나.)
(나도 박도경만 있었으면 대박 쳤을 텐데 말이야 허허 부러워!)
(배우에게 의존하는 감독은 좋지 않다네. 참, 그나저나 박도경 연락처를 알려줄 수 있나?)
“뚫린 입이라고 엄청 씨불었지...”
격식 있는 말들과 함께 조언한다면서 웃으면서 건네는 비수 품은 말들을 떠올리면 아직도 피가 거꾸로 솟는다.
기성세대라고 자신에 대한 존중 없이 하고 싶은 말들을 맘껏 지껄이면서 훈수를 두려는 감독들의 행태가 최정훈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훌륭한 인격을 가진 감독님들도 많았지만, 세상은 참 희한하게도 멀쩡한 사람들은 조용히 뒤에 물러나 있고 멀쩡하지 못한 사람들이 시끄럽게 굴며 존재감을 과시하며 주류라는 포지션에 놓여 있었다.
최정훈이 이를 가는 감독들은 모두 그런 유형의 감독들이었다.
‘너희들 말대로 되지 않을 거다. 나도 자존심이 있지. Again도 만들었는데 다른 영화 못 만들겠어?’
모든 작품을 고사하던 도경을 설득하고 캐스팅한 것도 자신이었고, 34일 말도 안 되는 짧은 제작 기간 동안 낯선 나라인 미국에서 영화를 촬영하고 완성시킨 것 또한 자신이다. 그것도 각본, 콘티, 카메라, 현지 로케이션, 연출과 편집까지 모두 자신 혼자서 모두 해냈다.
그야말로 1인 제작의 끝판왕을 찍었던 것이 최정훈이었다. 그건 기성세대의 감독이라도 절대 무시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었다.
“다음에 두고 봅시다. 찍소리도 못하게 해줄 테니까...!”
저벅저벅.
끼익.
걸음을 옮겨 건물 밖으로 나온 최정훈은 걸음을 멈추고 나왔던 배급사 건물에 걸려있는 자신의 영화 [Again]의 대형 포스터를 말없이 한참 동안을 바라보았다.
“......”
원래 자신이 만든 오리지널 포스터가 아닌 도경과 리아의 얼굴이 크게 자리잡고 있는 배급사가 마음대로 만든 영화 포스터. 그것을 바라보는 최정훈은 혀가 까끌까끌해지는 감각을 느끼었지만, 그런 자신의 영화 포스터에 시선을 떼지 않았다.
“다음에는 이런 결과를 맞이하지 않을게.”
상상도 못 할 성공을 거뒀지만, 기쁨보다는 입맛이 쓴 성공.
다음에는 이런 찝찝한 결과를 맞이하지 않겠다고 기약하는 최정훈은 복잡한 눈빛을 띠며 [Again]의 포스터에 등을 돌려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Again]!
제목 그대로 다시 한번 시작될 새로운 여정.
그렇다. 최정훈이란 감독의 시작은 이제부터였다. 그가 어떤 영화를 만들어 가고 어떤 족적을 남길지는 미래의 즐거움으로 남겨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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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불공평하다. 그건 나라는 완벽한 존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선택받은 주인공이 있다면 바로 나 아닐까?]
[완벽한 나란 존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이다.]
[아무래도 한국은 나한테 좁지?]
[사실 나는 또라이가 아니다. 또라이인 척을 하는 거다. 완벽한 나를 보고 너희들이 숨 막혀 할까 봐. 나 자신에게 내는 흠집공정일 뿐.]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인생의 낭비는 SNS라고 잔소리를 하는데 너희들에게 물을게. 너희들은 똥싸는 것을 낭비라 생각해?]
한 명의 감독이 다음을 기약하고 미래를 마주하고 있을 때. 한 명의 아티스트는 현재에 엄청난 똥들을 싸지르고 있었다.
똥을 싸고 있는 장본인은 다름 아닌 도경. 그런데 요즘 들어 도경이 매우 이상했다. 아니, 평소에도 평범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맹렬하게 더욱더 이상해 지고 있었다.
[이 정도면 넘사벽급 또라이 아니냐?]
┗[ㅇㅈ 스스로가 똥 싸고 있는 걸 알고 있어. ㅋㅋㅋㅋㅋ]
┗[이거 웃을 일이 아님. 똥 싸고 있는 것을 인식하면서 글을 쓰다니 이거 소름인 거야.]
┗[나는 이제 도경이 누구인지 모르겠어. 천재인지...! 미친놈인지...! 헷갈리기 시작해.]
┗[ㅇㅇ 원래 천재는 미친놈과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하잖아요. 글 간간히 보면 고차원적인 위트가 있음]
┗[개소리 ㄴㄴ 이래서 유명해지면 똥 싸도 박수친다는 소리가 나온 건가? 그냥 또라이임.]
┗[ㅋㅋㅋㅋ 난 둘다 상관없어. 개 꿀잼이니까. 울적하면 날이면 도경 스타그램부터 봄.]
┗[이거 ㅇㅈ. 정주행 해봐요. 효과 있음!]
[박도경 중2설], [흑역사의 실시간], [SNS 반면교사], [폭발하는 허세룡]
이 사태에 도경의 새로운 칭호들을 빠르게 습득하고 있었는데 웃긴 것은 그와 동시에 도경의 스타그램의 팔로우하는 사람의 숫자가 늘고 있다는 거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원래부터 기행을 일삼았던 도경의 스타그램에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도경에게 손쉽게 적응해 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멀쩡한 방법으로 팔로우 수를 늘리려는 사람들에게는 손해 보는 느낌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오늘...!
[D-8(귀)]
“...?”
도경의 스타그램에는 의미불명의 글귀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