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화
[소란스러운 마음. 지금 나에게 있는 것이
의미 없어 보여 끊임없이 방황해.
바람 속을 어슬렁어슬렁.
고독한 눈. 외로움을 떠올려.]
...!
사람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노랫소리. 유한 인상과 똑 닮은 김우진의 중성적인 보이스는 편안하면서도 투명한 것이 특징이었는데 서정적인 가사를 읽어내리는 그의 목소리는 사람의 귀를 사로잡는 매력이 있었다.
“엄살은 저리 잘하면서...!”
자신의 히트곡 「졸업」을 부르고 있는 김우진을 바라보는 이지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음 무대가 힘들어지겠다며 앓는 소리를 했던 모습과 달리 전의 무대의 여파를 순식간에 잠식시킨 김우진의 저력에 혀가 절로 내저 졌다.
“저 오빠도 진짜 보통내기인 사람이 아닌데 항상 건실한 겉모습에 속게 된다니까.”
피식.
은하수 멤버 중에 김우진의 존재감은 그리 강하지는 않지만, 무대 위에 서 있을 때는 고고함이라고 해야 할까. 독특한 존재감을 내뿜는 가수로서 변모해 있었다.
김우진.
K스타에서 J-Pop으로 도경과의 듀엣으로 대호평을 받으며 일본에서 화자가 된 매니저 출신의 가수.
K스타 이후. 우진은 3사 대형기획사 중 하나인 [LSM]에게 스카웃 제의를 받게 되고 이수민 회장의 제의 때문에 한국이 아닌 일본에 먼저 데뷔를 하는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었는데 사실 화자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일본에서 먼저 진출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위험성 짙은 선택이나 다름없었다.
그 당시 20대 후반에 29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데뷔하는 김우진으로서는 데뷔가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나 다름없었던 도박이었지만 김우진은 훌륭히도 그 도박에 승리를 거머쥐었다.
「희망을 전하는 가수」 Jin(仁)
도경에게 받은 곡 「지지 말아요」를 훌륭하게 히트시키며 성공적인 데뷔를 한 김우진은 틈틈이 작곡 공부를 이어가며 누구나 공감하고 응원할 수 있는 소재로 만든 「졸업」, 「30세의 지도」, 「My Friend」, 「마음」 등 많은 곡을 발표하며 많은 사랑을 받으며 일본의 「오리콘의 왕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사실 본인과 기획사에서 김우진의 소탈한 이미지를 위해 티를 내지 않아서 그렇지 3년 동안 김우진이 벌어들인 수입은 지금의 도경이 못지않았다.
[착하게 성실하게 따위는 어림없었어.
밤에 골목에 소리 지르며 돌아다녔어.
계속 발버둥 치고 반항했어.
조금이라도 자유롭고 싶었다.]
“언제 들어도 정말 신기해. 밝지 않은 스타일의 노래인데 전혀 어둡게 느껴지지 않는단 말이야.”
어두운 가사. 엑센트를 넣어가며 외치듯이 강하게 노래 부르는 김우진을 보며 이지원은 김우진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싸움 속에서
대체 무엇을 바랬던 걸까?
진절나지만 버티는 이유는 뭘까?]
김우진의 물음이 담긴 노래들은 항상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어 벅차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공감(共感).
힘들었던 시절이 많아서일까? 김우진은 사람들의 약함과 힘듦을 잘 이해하여 많은 사람을 공감시킬 줄 아는 노래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힘듦을 감싸 안으며 정면으로 마주하며 나아가려는 것이 김우진이 가진 노래였다.
[힘듦 속의 졸업을 한다면 무엇을 알까?
몇 번의 졸업을 해야 나 자신에게 도달할 수 있나?
언제쯤 벗어나 자유로 향할까?
워 오오오~]
“와아! 괜히 일본에서 왕자라고 불리는 게 아니구나.”
“김우진 노래 엄청 잘 불렀구나.”
“그걸 이제 알았냐? 오늘 콘서트 진짜 대박이네. 무료로 이런 공연을 보다니 죄책감이 들 정도다.”
새하얀 스포트라이트와 푸른 조명이 섞인 가운데에서 열창하는 김우진. 너무나도 깨끗한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감탄했다.
맑고 깨끗한 그의 오라는 김우진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노래와 김우진의 그런 오라가 한데 섞이자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김우진이라는 가수를 만들어낸다.
씨익.
‘오늘 컨디션이 좋은걸?’
평소에 달리 쉽게 도달하는 하이한 텐션. 김우진은 그것을 느끼며 웃음 지었다.
‘녀석이 보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걸까?’
수많은 관중이 조여주는 긴장감. 그리고 카메라 너머로 자신을 보고 있을 도경의 존재를 자각하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세포에 자극이 가해지는 느낌.
김우진이 변태 같은 성향이나 그런 쪽의 취향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이 절대 아니다. 다만 지금 서 있는 무대가 그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무대여서 그런 것이었다.
(형은 잘하고 있어요.)
‘기뻤지.’
좀 전 대기실에서 자신에게 해주었던 도경의 말. 실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엄청나게 기뻤다.
자신보다 어린 동생이지만 가수로서 자신에게 큰 존재로 자리 잡고 있는 도경이 자신에게 잘해주고 있다고 인정해 주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것뿐인데 말이야...!’
김우진은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일본에서 왕자님이다 뭐다 하지만 스스로가 보기에 자신은 그저 운이 좋은 사람일 뿐이었다.
꿈에 대한 미련과 변덕으로 K스타에 출연하고 도경을 우연히 만나 듀엣을 하게 되면서 사람들에 눈에 들어 운 좋게 LSM과 계약했다. 그것도 모자라 도경에게 곡을 받아 일본에 성공하기까지 했는데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했다기보다는 그저 자신은 운이 좋았다는 감각이 강한 김우진이었다.
띠리리링~.
스르륵.
“후우.”
「졸업」의 1절이 끝나는 반주 김우진은 눈을 살포시 감으며 도경의 첫 만남을 떠올리며 미소짓는 동시에 숨을 고르며 감정을 남몰래 끌어모았다. 아직, 자신의 중요한 무대는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과 도경을 위한 무대. 다른 건 몰라도 자신이 전하고 싶은 감정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딴딴. 따라라 딴.
“...!”
“뭐지!? 반주가 바뀌었는데?”
“어레인지 했나 본데? 아, 이 노래는 그거네-!”
“뭔데?”
“My friend!”
딴딴딴딴!
졸업의 1절이 끝나고 간주가 이어지는 가운데 자연스레 다른 노래로 전환되어 넘어가는 김우진의 노래에 사람들은 웅성거렸지만 이내 김우진의 다음 노래에 이내 환호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노래방에서 10대 20대 청춘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김우진의 히트곡 중 하나인 [My Friend]의 반주가 울려 퍼져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대를 생각하기만 해도.
나는 강해질 수 있어.
멈추지 말고 쭉 달려줘-!]
와아아!
첫 도입부부터 힘차게 쭉쭉 뻗어가는 김우진의 노랫소리. 이 노래가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한 곡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불안으로 가득 차 있더라도
곧게 자신의 길을 달려가
지금도 눈부셔.
꾸밈없는 그대가 좋아요.
언제나 소년인 채로 빛나고 있는 눈동자.
영원한 내 친구 My Friend~.]
시원하게 내뱉는 노랫소리. 김우진이 전하는 청량감에 사람들은 하나둘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한다.
[네가 옆에 있으면 솔직해질 수 있어.
별들의 퍼레이드. 언제나 웃고 있는 MY Friend]
‘고마워!’
힘차게 자신의 길을 달려가는 자신의 친구 옆에서 응원하며 자신도 달려간다는 내용이 담긴 노래.
사실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이 노래는 도경을 떠올리며 만든 김우진의 노래였다.
김우진이 작곡한 노래 중에 [My Friend]가 가장 긍정적인 기운으로 가득 찬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모티브로 삼은 소재가 도경이었으니 노래도 평소와 같은 텐션일 리가 없는 것이다.
[솔직하게 자신의 길을 믿는 너.
언제나 빛나고 있지.
그와 같이 스쳐 지나는 바람이 되고 싶어.]
‘힘낼게!’
누가 봐도 도경을 표현하는 노래.
기운을 북돋아 주는 이 노래는 많은 사람에게 힘을 주었지만 이 노래에 가장 힘을 얻는 존재는 아이러니하게도 노래를 만들고 부르고 있는 당사자인 김우진이었다.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도경을 떠올리는 까닭이다.
‘네 덕분에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어!’
‘네 덕분에 나는 멈추지 않고 나아갈 수 있어!’
‘네 덕분에 나는 변하지 않을 수 있었어.’
자신의 강점이 무엇인지 알려준 것도 도경이었고 작곡을 배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생각을 한 것도 바로 도경의 영향 때문이었다.
크나큰 성공. 자만하거나 변하지 않고 항상 앞을 올곧게 나아갈 수 있었던 것 또한 그의 존재 덕분이었다는 것은 말해서 입만 아프다.
[든든한 My Friend.
언제나 지켜볼 테니까 계속 달려가 줘~.]
‘나도 변하지 않고 달려갈 테야.’
무적과도 같은 자신의 스타.
변하지 않고 영원할 것 같은 이상향. 그를 떠올리며 노래 부르는 김우진의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보인다.
[계속해서 달려가 줘-.]
와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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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라는 것은 참 희한하다. 3-4분 남짓한 짧은 시간에 많은 것들을 안겨다 주니까 말이다.
말로 풀면 수 시간 그것도 오해 없지 제대로 전달될까 하는 사람의 감정과 마음을 올곧게 싣고 부딪혀 들어온다.
“정말 낯부끄러운 사람이라니까. 잘도 저런 노랠...!”
긁적긁적.
김우진의 노래를 듣던 도경은 낯부끄러움에 코를 긁적거리며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김우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은하수 멤버들 중에 제일 진지하고 진솔하다고 해야 할까? 평소 조용하다가 순간 저렇게 예고 없이 훅 들어올 때가 있는데 천하의 도경이라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저것도 재주지.’
고마움, 동경, 응원, 열정. 한 노래에 자신을 향해 올곧게 보내는 그의 마음에 도경은 혀를 내둘렀다.
“그래도...”
씨익.
“나쁘지 않은 기분이야.”
자신을 향해 맹목적으로 보내는 고마움의 메시지.
조금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김우진의 올곧은 마음에 도경은 힘을 얻었는데 그 감각이 썩 나쁘지 않았다.
보통 상대방에게 힘을 내게 해주던 입장에서 반대로 이렇게 응원을 받아보니 새로운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우진이 형. 고마운 노래 잘 들었습니다.”
중얼.
김우진이 들었으면 기뻐했을 말을 들릴락 말락 속삭인 도경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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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저리 깨끗하지?”
포텐을 터트리고 있는 김우진을 바라보는 이지원은 자신도 모르게 박수를 치면서도 무언가 마음이 안 드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저렇게 못 하겠지?’
남자임에도 노래를 부를 때. 여성인 자신보다 맑고 깨끗한 오라를 발산하는 김우진의 타고난 재능이 부러운 시선을 보내었다.
“타고남이란 정말 불공평해.”
타고난 것은 따라 할 수도 따라갈 수도 없다. 그리고 그것은 시간을 뛰어넘고 노력을 뛰어넘는다. 어렸을 때부터 영재 교육을 받으며 연습생 생활 시작해서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그녀로서는 그것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박도경이 그러했고 성준과 김우진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생각지도 못한 하린이란 소녀에게서도 그 타고남을 목격했다.
“절대로...”
사람들이 지닌 타고남을 목격할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솟아오르는 초조한 마음. 예전에는 이 마음에 갈팡질팡하며 휘둘렸지만, 다행히도 이제는 익숙하게 자신의 마음을 다독일 줄 알게 되었다.
“지지 않을 거야.”
다독이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존버’ 하기로 이지원은 결심했기 때문이다. 버티고 버티면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결실을 볼 때까지 기다리겠노라.
뚜벅뚜벅.
그런 오기와 근성으로 가득한 인물이 지금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주기 위해 무대 위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