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275화 (275/357)

275화

퉁-!

“와아-!”

“이번엔 이지원이다!!!”

분홍빛 조명 아래에서 등장하는 이지원의 모습에 사람들은 소리 질렀다.

적게는 5명 많게는 10명이 넘는 아이돌이 범람하는 시기. 1인 여성 아이돌이란 요상한 타이틀을 달고 데뷔했던 이지원.

많은 숫자의 화려한 멤버들로 구성된 아이돌 사이에 조그마한 체구의 한 소녀는 그리 눈에 띄지 못한 존재였지만, 그녀가 마이크를 잡는 순간 숫자는 그리 별문제가 되지 않음을 아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빙글빙글 시곗바늘이

빙그르르 돌아가 Tic Toc

12시 달빛 아래.]

빠바 빰-!

저음의 부드러운 허스키한 숨소리가 섞인 인트로의 시작. 그리고 시작되는 스윙재즈의 들뜬 멜로디.

이지원은 자신을 에워싸는 백댄서들 사이에 마이크를 들며 무대 중심으로 걸음을 옮긴다.

“와~. 이 노래 오랜만이다.”

“그러게. 이젠 보기 힘든 무대인데 횡재하네.”

“아, 맞다 너 이지원 선배님 팬이었지? 이 노래도 도경 선배님이 만드신 노래야?”

“어. 러블리 선배님들 빼고 데뷔곡들은 전부 도경 선배님이 만든 거야. 대단하지 않냐?”

“와...!”

수많은 관중 사이에 섞여 있던 [JY] 기획사 연습생들은 눈빛을 반짝이며 무대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연습생들은 기획사 안에서 데뷔 조를 맡은 연습생들이었는데 모두들 하나같이 선망을 담은 표정으로 무대를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도 만약 데뷔하면 도경 선배님 곡 받았으면 좋겠다.”

“그러게... 아니, 꼭 받을 수 있을 거야! 회사도 우릴 띄우고 싶으면 도경 선배님 곡을 얻어다 주겠지.”

“그렇겠지?”

“응! 그러니까 열심히 하자.”

연습생들이 선망이 담긴 눈빛으로 무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이유. 데뷔 조의 리더로 보이는 연습생이 자신 동료들의 기운을 북돋우며 무대를 펼치고 있는 이지원을 바라보면서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저런 아티스트들에게 리스펙받는 사람이 우리 도경 선배님이구나...’

앞으로 가요계를 이끌어가는 데 주축. 한류스타로 성공한 가수들이 모두 도경의 노래로 무대를 먼저 시작한다.

바보가 아닌 이상 조금만 머리를 굴려 본다면 저기에서 무대를 가지는 모두가 도경을 향해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이라는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나도 언젠가 꼭...!’

자신이 몸담고 있는 소속사에 도경과도 같은 선배가 있다는 것에 연습생들은 자신들의 안에서 불타오르는 애사심을 느끼고 있었다.

---

[내 손을 잡아 줄 사람.

그런 사람을 찾는 두근거리는 일.

혹시 아니?

너를 발견할지 말이야.]

베시시.

“와아아-!”

“나나-! 나요-!”

‘언제 불러도 얼굴이 화끈해진단 말이야.’

의도하지 않은 킬링 파트라고 해야 할까? 언제나 불러도 쑥스러워 멋쩍어 웃음 짓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심쿵 유발자 국민 여동생 [I] 이지원의 입덕 포인트가 될지는 노래를 부르는 당사자도 예상 못한 일이었다.

[내 마음은 UP UP UP!

심장은 Toc Toc Toc!

동화책 속에 구두를 심은 소녀처럼

모두가 나를 지켜 봐줘요~.]

밝고 경쾌한 리드미컬한 노래 멜로디에 연신 바쁘게 춤을 추면서도 음정 하나 놓치지 않고 흔들림 없이 고음을 내뻗는 이지원의 모습에 사람들은 감탄하고 만다.

분명 4년 전에도 수없이 본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질리지 않았다.

“와, 춤추면서 저리 고음을 저리 편하게 뽑냐? 지금 이거 라이브지?”

“역시! 우리 이지원님은 클라스가 다르다.”

“직접 보니까 진짜 뜬 이유를 알겠네. 목소리 너무 좋다.”

“아, 오랜만이다! 이 노래 진짜 엄청 불렀었는데!”

중저음의 부드러운 허스키한 보이스와 고음대의 섬세하게 올라가는 깔끔한 고음의 향연. 가사를 읽어 내뱉는 과하지 않은 특유의 숨소리가 모두의 귀를 매료시켰다.

[시곗바늘이 돌아가는 걸 신경 쓰지 마.

마음을 모두 모아 용기로 만들어.

구두를 신고 UP 템포로 걸어 봐.]

‘정말 노래를 잘 만들었다니까.’

「구두」 - [I]

아이돌이 범람하는 시기에 한 신인 소녀를 주목받게 만들어 준 노래. 노래를 부르는 이지원은 언제나 이 노래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나랑 잘 맞아.’

스윙 재즈에 팝이 가미된 것 같으면서도 절정 부분에서는 가요 같은 부분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장르가 딱 분류하기 모호한 노래.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 노래는 이지원의 성향에 딱 들어맞았다.

[생각하는 찰나. 거짓말을 못 하는 순간.

12시가 정각. 0에서 1로 넘어가는 시간.

구두의 굽을 두 번 부딪혀. 주문을 외워 봐.

엡페, 펩페, 칵케, 힐로, 홀로, 헬로!]

노래를 부르며 리드미컬하게 춤을 추고 구두를 튕기며 주문을 외면 자신이 가는 길이 명확해졌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자신이 어떤 모험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두근거리는 모험을 떠나.

반짝이는 마음을 앉고~]

구두를 신고 어디든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미래를 알려주는 노래.

그녀는 그렇게 [I] 이지원이 되었다.

[감사합니다.]

와아아-!

[하하하. 이 노래 오랜만이죠. 어때요? 아직 듣기 괜찮죠?]

“네-!”

춤추며 노래를 부른 덕에 연신 흘러내리고 있는 땀을 닦으며 너털웃음 짓는 이지원은 자신에게 연신 호응하는 관객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4년 전의 노래임에도 자신의 최근에 부른 노래에 비교해서 호응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럴 줄 알았어요.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기똥 찬 노래니까요. 보고 있어요? 도경 오빠? 다들 오빠가 만든 노랠 이렇게 좋아해 주네요.]

하하하!

살짝 토라진 표정을 지어 보이며 원망 어린 시선으로 자신의 눈과 앞에 있는 카메라를 두 손가락으로 번갈아 가며 가리키는 이지원의 모습에 사람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노래와 달리 털털한 성격인 게 이지원의 성격인 것을 알기에 사람들의 두 눈엔 하트가 달려 좋아 어쩔 줄 모른다.

[데뷔한 지 4년인데 언제까지 여러분이 제 데뷔곡을 좋아하게 만들 수 없죠. 안 그래요. 여러분?]

“네-!”

[뭐라구요? 잘 안 들려요. 좀 더 소리 크게!]

“네-!!!”

[좋아요! 그럼 신곡 가겠습니다!]

“...!!?”

[어...? 반응이 생각한 반응이 아닌데? 신곡 부르지 말아요?]

“아니요-!!!”

[하하하!]

사람들의 호응을 능숙하게 이끌어내는 이지원. 그녀의 모습이 어느 누군가와 많이 겹쳐 보였다. 그 누군가를 말한다면 이지원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덕분에 긴장이 풀렸네요.]

털썩.

[사실 이 곡을 여기서 할까 말까 고민했었거든요.]

끼리릭.

스태프가 마련해준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원형의 의자에 앉아 이지원은 관객과 소통을 하면서도 손은 분주하게 다음 노래를 부르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띠리링.

[3일 전에 작곡해서 멜로디만 완성한 노래지만 꼭 여기서 한번 불러보고 싶었어요.]

스탠드 마이크에 커스터마이징한 연분홍빛 마이크를 꽂고, 미리 준비해온 증폭되지 않은 기타를 어깨에 걸쳐 맨 이지원은 기타 줄을 가볍게 퉁기며 소리를 들으며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다들 제 노래 들을 준비 되셨나요?]

“네-!”

[네! 그럼 가볼게요.]

씨익.

띠리링-!.

스르륵.

이지원의 신호에 하늘 아래의 조명은 그녀를 향해 초점을 좁히고 그녀의 뒤로는 미리 준비해 둔 연분홍빛의 은은한 조명의 역광이 그녀의 뒤를 받쳤다.

“......”

손가락에 느껴지는 딱딱한 기타 현. 조명의 열기. 자신을 향해 숨죽이고 있는 관중들을 시선. 그 모든 것을 느끼는 가운데 이지원은 자신의 기타를 툭툭 치며 차분하게 호흡을 고르며 감정을 잡기 시작했다.

“후-.”

톡톡!

[추억이 떠오른다. 내 머리에 갑자기 말도 없이.]

무반주로 훅 들어오는 이지원의 허스키한 숨소리가 섞인 무반주 아카펠라의 도입부가 펼쳐지고 사람들이 놀랄 새도 없이 그녀는 현을 부드럽게 튕기며 노래를 본격적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띠리링!

[젖어버리겠네~.]

처음부터 아슬아슬한 완급조절의 도입부. 하지만 한 소절에 불과한 노랫소리가 한 곡의 정체성을 잡아 주었다.

[추억이 내린다

바보처럼 눈물이 나.

목표로 잡은 길. 아직 멀기만 한데

반의반도 못 왔는데 갑자기 감기 걸린 것 같아

복받쳐 오르는 Memories.]

아련함이 섞여 있는 따스함. 듣기만 해도 기분 좋게 촉촉하게 스며드는 목소리가 모두가 숨죽이는 가운데 울려 퍼졌다.

“...!”

통기타 하나. 목소리 하나. 딱 그 두 가지였다. 그런데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운 무대를 펼치고 있는 이지원 이었다.

[Oh~ Memories Oh~ Memories

추억이 넘치는구나~.

Oh~ Memories Oh~ Memories

추억은 비눗방울처럼~.]

눈을 감으며 고개를 좌우로 살랑살랑 흔드는 이지원은 정말로 추억에 잠기었다. 데뷔한 지 4년. 아직 젊은 나이임에는 분명했지만, 그녀가 가수로서 지내오며 쌓아온 세월과 경험은 절대 짧은 것이 아니었다.

‘특별함을 갖기 위해 쭉 달려왔던 시간들...!’

자신에게 특별함이 없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시작되었던 여행의 나날이었다. 그건 그야말로 끝이 보이지 않는 지독한 여행이나 다름없었다.

다양한 작곡가와 다양한 가수들과 교류를 가지며 수많은 앨범을 작업을 가졌고 그것도 모자라 무대를 위해서 연기와 퍼포먼스까지도 배우고 힘썼다.

[지난 여름날 햇살 아래 짜증 내고

가을의 쓸쓸함에 울적했던 예전의 나를 본다면

참 좋을 것 같아.]

‘하지만 그건 불안에 발버둥 친 행동이었지.’

처음에는 가수 이지원을 완성하기 위한 행보였지만 나중에는 기약 없음의 불안함을 달래기 위한 발버둥이 되어 버렸다.

연습하고 노력하면 할수록 자신의 한계를 맞이하게 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Oh~ Memories. Oh~ Memories.

모든 게 추억일 뿐야~.

Oh~ Memories. Oh~ Memories.

모든 게 추억일 뿐인 걸까?]

사실 그렇게 힘들게 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대중에게 인기를 얻었고 실력을 인정받으며 성공을 거두었으니 굳이 자신을 그렇게 높은 기준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는 건 어찌 보면 미련한 짓이기도 했지만, 이지원은 포기할 수 없었다.

‘난 욕심쟁이니까.’

왜 이렇게 집착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노래가 좋았고 노래를 잘 부르고 싶었다. 목소리 하나로, 진심 하나로 사람을 웃고 울리고 노래로 모든 것을 말하는 가수가 되고 싶었다.

노래가 그 사람이고 그 사람이 노래 자체가 되는 자유로움. 그것이 그녀가 얻고 싶어서 하는 특별함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다가가면 멀어지고 익숙해질수록, 능숙해질수록, 매달릴수록 헝클어지고 보이지 않았다.

[야속하게 내쳐버린 상처 주던 이야기를 떠올려

그 안에 내가 있어.

후회로 젖은 발로 달려가. 안아줘요.]

(쉽게 얻는 것은 빠르게 잃고 힘들게 얻는 것은 오래 가는 법이지.)

(네...!?)

(네가 음악을 사랑하는 이상 음악은 반드시 너에게 보답을 내려다 줄 거다.)

평범함을 특별함으로 만들려는 나날.

지쳐가고 있을 시기에 기라성같은 대선배와 우연히 앨범협업의 기회를 가졌던 이지원. 그녀는 작업을 마치고 무뚝뚝함의 극치인 선배에게 예상치 못한 위로 아닌 위로를 들었다.

희한한 일이었다. 모르는 조언인 것도 아니었고 그렇게 수십 수백 번 그렇게 자신이 다독일 때는 와닿지 않던 그 조언이 작업할 때도 몇 마디 이야기 나누지 못한 선배님의 말은 가슴에 닿았으니 말이다.

그 이후로 이지원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고 괴로워하지 않았다.

[복받쳐 오르는 Memories.

등을 토닥이며 털어줘-!]

‘어차피 나는 음악을 사랑하니까.’

사랑은 먼저 한 놈이 손해다.

자신의 마음을 몰라줘서 서운하고 원망스럽고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진심으로 반해버렸는걸 말이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걸어봐야 했다.

바로 지금의 이지원처럼 말이다.

[Oh~ Memories-!]

기타 멜로디를 밟고 힘차게 뛰어오르는 이지원의 노랫소리.

그녀의 요령 없는 서툰 구애의 목소리가 드높이 운동장을 울리 운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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