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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283화 (283/357)

283화

“흐어엉~!”

자신이 재능이 없음에 좌절하지 하지 않고 확고한 신념을 지니며 거친 사회생활로 거치며 커리어우먼으로 거듭난 크리스틴. 그런 그녀가 지금 어린아이처럼 목 놓아 울고 있었다.

「언니에게 미안하지만, 저한테 필요한 사람은 그 사람이에요.」

제시 진 스톤(21)

애리조나의 출신의 주홍빛 도는 붉은색 머리가 잘 어울리는 미소녀.

뭘 해도 사랑스러운 매력과 연기에 들어서면 피부에 예릴 것 같은 집중력과 신들린 연기력은 단숨에 사람들의 시선을 잡는다.

크리스틴이 그토록 꿈꿔왔던 재능의 보유자가 바로 그녀였다. 그렇기에 크리스틴은 울 수밖에 없었다.

“어이어이. 이제는 울기까지 하는 거야? 가지가지 하는군. 그깟 계집애가 뭐라고 이리도 추하게 구는 거야?”

“당신은 몰라. 모른다고! 그 아이에게 건 내꿈을...! 흐아앙!”

황당한 시선으로 보는 슈가 베인더에 더욱더 서러움이 몰려오는 그녀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고 제시라는 인재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저런 인물에게 자신의 꿈이 좌절되었다고 생각하니 분하다 분하다 못해 눈물이 났다.

“저런...!”

“그 크리스틴이 애처럼 울다니 이거 진짜야?”

“정말로 분했나 본데?”

“그래도 애처럼 우는 건 진짜 아니지...”

수군수군

미국은 끊임없는 기회주의와 경쟁 사회.

그런 곳에서 자신의 전쟁터인 일터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무능력을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특히나 사소한 실수인 한 끗 차로 정점과 나락의 폭이 큰 미국이라면 더욱 말이다. 그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도 크리스틴은 울음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다시 한번 묻지만 정말로 유능한 인재가 맞습니까?”

힐끔.

“끄응. 이건 인정해야겠군요. 제가 아무래도 크리스틴을 잘못 본 듯싶습니다.”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리고 있는 크리스틴을 가리키는 조나단의 말에 크리스틴을 추천하려던 SMI 중년인 임원은 얼굴을 붉히며 그에게 사과를 건네었다.

‘이렇게 창피할 수가...!’

빠득.

신용은 생명. 그것도 조나단처럼 다방면에 굵직한 인맥을 지닌 사람에게 저런 창피한 모습을 보여주다니 그로서도 체면을 많이 구기는 일이었다. 아마도 조나단과 도경이 가는 순간 크리스틴에게 닥칠 장래는 밝지 않음이 분명했다.

쿡!

“저 여자 재밌지 않아요?”

“네?”

“사람 하나에 저렇게 엉엉 울다니 그 사람에게 진심이었다는 거잖아요.”

씨익

“......”

도경의 예상치 못한 평가에 두 사람 다 조금 황당한 표정으로 도경을 바라보았다. 자신들의 눈에는 감정적이고 프로페셔널 하지 못한 에이전트일 뿐인데 도경은 고평가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심입니까?”

“진심이다 마다요. 자! 그럼 그걸로 된 거로 알고...”

“자, 잠깐 도경 씨 조금 더 생각을 해보는 게!”

끼익~ 쿵!

조나단은 반대하고 싶었다. 저리 감정적이어서 도경을 감당할 수 없다. 여겼기 때문이다.

미래의 자신을 위해서라도 도경의 섣부른 선택을 만류해야 했지만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가는 그를 보자니 이미 늦은 듯싶었다.

“정말... 멋 대로라니까.”

“하하. 재밌는 청년이군요.”

“그렇게 재밌어 보이면 직접 에이전트를 해주시는 게 어떻습니까? 혹 떼러 왔는데 혹을 붙인 기분이군요.”

찌릿.

“크흠~. 저는 이젠 사무직이 편합니다.”

“젠장!”

조나단의 분통 어린 소리가 사무실을 채우고 있을 때. 도경은 아직도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리는 발견하고는 걸음을 성큼성큼 옮겼다.

뚜벅뚜벅.

주변의 구경거리가 되어있는 그녀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기고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도경을 향해 모이기 시작했다.

크리스틴과 같은 검은 머리카락 색을 지닌 동양인인 도경이 그녀에게 다가가서 그런 것일까? 왠지 모르겠지만 묘하게 그 둘에게 시선이 갔다.

“어이!”

퉁명스러운 어조. 고개를 숙여 우는 크리스틴에게 다가선 도경 내뱉은 첫 한마디는 ‘어이’라는 짧은 한국어였다. 모두들 도경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지만, 크리스틴만큼은 그 말의 뜻을 알아들었다.

“한국어...? 당신 혹시 한국 사람?”

“그래. 한국 사람이지.”

피식.

“그나저나 너 내 에어전트 하지 않을래?”

“에?”

갑자기 자신의 앞에 나타나 한국말을 내뱉은 의문의 사내. 그것도 다짜고짜 자신의 에이전트를 하라는 말에 크리스틴은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리며 도경을 바라보았다.

“아...”

자신감에 가득한 목소리와 다르게 조금 수수한 외모의 인상을 지닌 동양인 사내.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인 이상한 생김새 속에서도 그 안에서 반짝반짝 생기있는 빛을 품은 눈빛과 여유롭게 진하게 미소를 피어 올리는 도경의 모습에 크리스틴은 순간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 그나저나 당신 지금 뭐라고?”

“내 에이전트가 돼달라 말했어. 지금 내가 유능한 에이전트가 찾고 있어서 말이야. 어때 생각 있어?”

스윽.

“.....”

자신에게서 손을 내미는 도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크리스틴은 침묵했다. 이 갑자기 나타난 사내 등장도 정체불명이지만 자신의 에이전트가 될 것을 권유하는 것은 더욱더 영문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쿡. 이건 또 뭐야? 우리 팅커벨에게 백마 탄 왕자라도 생긴 거야?”

툭.

“당신...”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한 불청객이 두 사람 사이를 끼어들었다.

주저앉은 크리스틴에게 손을 내뻗은 도경을 향해 다가와 그의 어깨에 어깨동무하며 크리스틴에게 비웃음을 내보이는 슈가 베인더의 등장이었다.

“어이 동양인. 백마 탄 왕자가 되고 싶으면 번지수가 틀리지 않았어? 당나귀를 아니라 진짜 백마를 타야지. 하하하! 필요하면 말만 하라고 내가 아는 백마들 몇 개 정도는 빌려줄 수 있어.”

하하하.

갑자기 나타나 자신만의 승자의 시간을 빼앗는 불청객인 도경이 마음이 안 든 슈가 베인더는 도경을 향해 인종차별적인 언사를 내뱉으며 이죽거렸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얄밉고 비열해 보였지만 주변에선 그를 만류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오히려 주변에서는 웃음을 보태며 슈가 베인더의 질 나쁜 농담이 정당화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있었는데 그러한 분위기에 도경이 인상을 찌푸렸다.

“백마 같은 소리 하고 앉아있네. 너 같이 냄새나는 돼지 새끼가 어떻게 백마를 타냐? 돼지나 신나게 타고 있겠지. 귀 썩을 거 같으니 닥쳐줄래? 삼류 새끼야.”

“뭐라고? 사, 삼류?”

“그리고 뒈지고 싶냐? 어디다 더러운 손을 올려?”

탁.

자신의 어깨에 올려진 무거운 팔을 거칠게 튕긴 도경은 황당해하는 슈가 베인더를 식은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능력 좋다고 들었는데 이거 순 포주 새끼 아니야?”

중얼.

“포주라고?”

“그럼 아니야?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있는데 너는 딱 봐도 남의 능력에 기대어 사는 기둥서방 같은 느낌이거든.”

‘타인의 능력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는 놈들처럼 말이야.’

다년간의 경험에 눈빛만 보아도 안다. 탐욕에 물들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눈을 말이다. 등급을 재고 가치를 평가하며 어떻게든 이용하려는 작자들의 눈빛을 슈가 베인더가 하고 있었다.

“이익! 너 이 새끼 네가 뭔데 그딴 소리를 지껄여!”

덥석.

생각지도 못한 화력을 지닌 폭언에 슈가 베인더는 눈깔이 돌아가고 말았다. 사실 도경이 말했던 ‘포주’라는 단어는 그의 역린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거쳐 간 고객들 중 헤어질 때 그들이 내뱉었던 욕설이 그와 같았기 때문이다. 그들이야 서로 이득을 본 비즈니스 관계이기에 그런 말을 들어도 슈가 베인더는 그저 비웃음 지으며 너는 좋은 창녀였다고 조롱했지만 도경은 생판 남 아닌가? 그 차이가 슈가 베인더를 흥분케 만들었다.

“쿡. 보니까 스스로 자각하는 모양인데?”

“건방진 동양인 놈. 얼굴에 반창고 하나 더 추가하고 싶은 모양이지?”

“어이. 이봐 나 여기 고객이라고? 여기는 고객을 이렇게 다루나 보지? 거참 프로페셔널 하지 못한데?”

흠칫.

두리번.

“윽...!”

도경의 말에 뒤늦게 자신이 흥분한 것을 자각한 슈가 베인더는 아차 싶은 표정을 지으며 서둘러 표정 관리 하였다. 자신답지 않은 현상에 그는 조금 당황했지만 이내 그 원인이 어디서 기여 하는지 찾을 수 있었다.

‘그래. 모든 게 저 기분 나쁜 눈빛 때문이야.’

바퀴벌레 보듯 더러운 것을 보는듯한 저 눈빛.

없던 열등감도 절로 생겨나는 그 눈빛과 무엇보다 자신을 같잖게 여기는 도경의 태도에 자신의 존재가 보잘것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열이 받았다.

“제기랄. 동양인 연놈들끼리 들러붙어서 열 받게 만드는군. 팅커벨에 백마 탄 왕자라... 쿡! 동화놀음이라도 할 생각이냐? 질리다 못해 유치해서 어울려 주지 못하겠군. 어디 한번 잘들 해보라고.”

“어이. 그거 아냐?”

“음?”

도경과 크리스틴을 향해 어깨를 으쓱이며 여유를 가장한 조롱을 하며 뒤돌아서려는 슈가 베인더의 발걸음을 도경이 붙잡았다.

“모두가 어릴 적에 동화책을 읽으며 꿈을 키우는 시절이 있다는 걸 말이야. 하지만 그 꿈을 지키는 녀석은 별로 없지.”

“그래서 그게 뭐 어떻다는 거지?”

“그러니까 현실 타령하면서 남의 꿈을 비웃지 말라는 거다. 꿈을 이룰 능력도, 생각도 못 삼류주제에 뭔데 잘난 척하는 시선으로 사람을 내려보냐?”

“흥! 그럼 너는 얼마나 대단하길래 나에게 설교를 하는지 모르겠군.”

“이 몸이야 대단하지. 앞으로 전설이 될 몸이시거든”

“미친놈...!”

알고 보니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 이상은 시간 낭비라는 생각에 슈가 베인더는 비릿한 미소를 도경에게 지어 보이며 걸음을 옮겨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그런 슈가 베인더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도경 또한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역시 저런 놈들이 있어야 도전 욕구가 생긴다니까. 나중에 어떤 표정을 지을지 기대돼.”

정복할 욕구가 생긴다고 할까? 대세로서 손쉬운 길보다는 역시 도전하고 쓰러트리는 대상이 있어야 힘이 나는 도경이었다.

“......”

슈가 베인더를 보며 입맛을 다시는 도경.

그런 도경을 보며 크리스틴의 표정은 더욱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이 정체불명의 사내 등장에 머릿속이 혼란스럽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알까? 지금 그녀를 그토록 서럽게 했던 제시라는 소녀가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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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님이 말씀하시는 바를 알아들었습니다.”

상황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좀 전과 달리 원래의 신색을 회복한 크리스틴은 말끔한 모습으로 자신의 상사를 통해서 들은 말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미국에 음반을 내며 데뷔하고 싶다는 거죠?”

“너무 많이 축약한 거 아니야? 전미 투어 콘서트하고 빌보드 1위”

“네네. 그것도 포함해서 말이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응?”

도경의 태연한 목소리에 크리스틴은 자신의 기분이 저조해지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만난 지 30분째 되지 않았지만, 자신의 앞에 있는 사내가 어떤 인물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지금 저랑 장난하십니까?”

“왜? 뭐가 이상해?”

“앨범 하나 달랑 가져와서 레이블 계약과 전미 투어 콘서트 자리를 따달라는 게 말이 됩니까?”

바로 대책이 없는 인물이라고 말이다.

앞서 슈가 베인더 앞에서 꿈을 가진 자를 비웃지 말라는 말을 해주었을 때는 솔직히 조금은 감동했었다. 하지만 그 인물의 실체는 초등학생이 장래 희망을 지닌 철부지란 사실을 알자마자 그녀의 기분은 한없이 곤두박질칠 수밖에 없었다.

레이블 계약이야 그렇다고 달랑 앨범 하나 준비해 와서 빌보드 1위를 노리는 것과 전미 투어 콘서트 무대 위에 서는 것을 태연하게 요구하는 터무니 없는 클라이언트는 도경이 처음이었다.

“팅커벨이 아니라 위치였어? 너무 쌀쌀맞은 거 아니야?”

도경의 농에 그녀의 인내심이 결국 끊기고 말았다.

“거절하겠습니다.”

쿵!

“...이유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고객과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제시간을 낭비할 수 없거든요.”

“하하. 그 정도 능력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그리고 내 짐작이지만 그 이유뿐만이 아니지?”

“네. 사실 저는 뮤지션은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닙니다.”

“그래?”

“네.”

‘변덕스럽고 하루만 사는 방탕한 존재들...!’

사실 크리스틴은 뮤지션을 좋아하지 않았다.

에이전트로 일하면서 조금 떴다 하는 뮤지션을 겪어본 그녀는 뮤지션이란 존재에 학을 뗀 지 오래였다. 자기애와 변덕의 결정체가 그들이었고 무대 위와 무대의 아래의 온도 차를 견디지 못하는 성미 때문에 향락에 젖어 빠르게 소모되어가고 망가져 가는 뮤지션의 속성을 그녀는 좋아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배우는 관록을 쌓지만, 뮤지션은 점점 퇴물이 되어간다.」

크리스틴은 유통기한이 짧은 재능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소소하더라도 끝까지 빛을 잃지 않는 재능을 원했다. 그것을 고려하면 자신의 앞에 있는 도경은 자신이 원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정말 듣던 대로 배우님을 좋아하는 에어전트 님이시네.”

뜨금.

“그건...”

“아아. 뭐, 뮤지션을 무시하는 거냐고 뭐라 하는 게 아니야. 그저 당신의 올곧은 고집이 재밌어서 말이야.”

자신의 속마음을 알았을까? 크리스틴은 갑작스럽게 정곡을 찔러오는 도경의 말에 뜨끔 한 표정을 지었고 도경은 그저 재밌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신기했기 때문이다. 듣자 하니 좋은 대학교 나와 능력도 좋고 머리도 좋으면서 이렇게 배우에게 맹목적이라니 이걸 올곧다고 해야 할지 바보같이 고집이 세고 고지식하다고 해야 할지 헷갈릴 정도였다.

어하여간 분명한 것은 이 크리스틴이란 여자는 주변에서 쉬이 볼 수 없는 재미난 캐릭터가 확실했다.

‘이런 유형이라면 믿고 같이 일할 수 있지.’

전에는 홀로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매니저가 없는 것을 선호했지만 이제는 그래서는 안 되었다. 지금부터 벌일 일들은 도경 홀로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그에게는 함께하며 믿을 수 있는 동료가 필요했다. 그것을 위해선 이 크리스틴이란 여성이 필요하다고 도경은 직감했다.

“그나저나 그거 알아? 나 연기 엄청 잘한다?”

“하?”

“연기대상.”

“...?”

너무나 뜬금없이 자신을 자랑하는 도경의 말에 크리스틴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도경은 철판을 깐 듯 태연하게 자기 자랑을 이어나갔다.

“나 말이야 우리나라에서 연기대상 수상자야.”

“...!”

유치하지만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한 남자의 자기 자랑에 크리스틴의 두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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