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화
“호우! 설마 네가 이 앨범 노래들을 부른 거였어? 대단한데? 정말 환상적인 앨범이더군. 설마 근래에 이 정도의 컨트리를 들을 줄은 생각 못 했는데 반전이야. 그나저나 어디서 한판 하고 온 거야? 얼굴 꼴이 말이 아니군.”
“하하. 아닙니다. 콘서트 하다 삐끗해서 계단을 굴렀”
“응? 그래? 생각보다 부실한가 보군. 고기! 고기를 먹으라고 요즘 뮤지션 녀석들은 스타일이다 뭐다 해서 옛날과 달리 풍채가 없어서 마음에 안 들어!”
“하하하. 저 그렇게 부실하지 않은데...”
“그러고 보니 배가 고프군. 그쪽들은 식사했나?”
“네? 아직 안 했습니다.”
“그렇다면 가지!”
벌떡..
의식의 흐름대로랄까? 돈키호테 레이블 사의 사장은 갑자기 앨범 이야기를 하다 말고 고기 이야기를 하다가 허기짐을 느꼈는지 자신의 배에 손을 올리며 도경 일행에게 식사했는지 물었고 도경의 대답을 듣더니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
“내가 한 끼 사도록 하지. 여기 근방에 맛있는 스테이크 집이 있어서 말이야.”
“사장님. 아티스트분들 당황하시는 거 안 보여요? 앨범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무슨 스테이크 타령이에요?”
“시끄럽다 토마스. 다들 먹고 살자 하는 짓 아니냐. 그쪽들은 어떤가?”
“네. 뭐 저야 공짜 밥을 사양할 이유는 없죠. 크리스틴도 괜찮지?”
“계획일정에 지장 없습니다.”
돈키호테 레이블사의 사장은 자리에 벌떡 일어나 외투를 챙기며 당장에 나갈 채비를 하는 것을 보며 도경과 크리스틴이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도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봐. 저쪽도 괜찮다고 하잖냐. 그나저나 빼지 않고 시원시원하게 대답하는 게 마음에 드는군. 내 옆에 있는 쪼다 같은 조카 놈하고 달라. 하하하!”
“하... 삼촌! 아니, 사장님 제발 체통 좀 여기는 직장이라고요 공사 구분 좀 해주세요...!”
“흥! 예전 조그마할 때 내 등에 업히고 쉬나 지린 놈이 어서 잘난 척이냐? 마누라처럼 잔소리하기는...!”
“언제 적 이야기를 하세요? 그렇게 그러니까 큰어머니가 가출하셨죠.”
“뭐야! 임마!? 가출이 아니라 친척 집에 놀러 간 거야. 너같이 꼬맹이가 어른들의 사랑을 알겠어?”
“어른의 사랑은 개뿔. 전에 술 마시고 밖에 나가서 휴대폰 붙잡고 돌아오라고 우시는 거 다 들었거든요?”
“크흠! 큼큼! 농담이 많이 늘었구나! 토마스. 그리고 직장에선 공사 구분해야지?”
소근.
“도경 씨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리 믿음직해 보이지 않는데 지금이라도...”
“아냐. 오히려 나와 같은 과여서 마음에 들어. ”
“네 그게 무슨...?”
나이 차 많이 나는 두 삼촌과 조카의 대화를 듣고 있던 크리스틴은 자신이 괜히 도경을 이곳에 데려왔나 싶어 눈치를 보며 도경에게 이곳을 나갈까 권유했지만, 도경은 고개를 저었다. 그도 그럴 게 여기 사장의 성격이 상상 이상으로 재밌었기 때문이다.
장소 시대착오적인 카우보이 복장을 한 것답게 구세대적인 유형의 사람이었다. 거침없이 말을 내뱉고 충동적으로 보일 만큼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낸다.
요즘에는 먹히지 않는 타입이었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도경의 호감을 샀다.
“딱 봐도 빠꾸 없는 스타일이시잖아. 나도 마찬가지거든.”
씨익.
“.....”
빠구 없는 인생 스타일.
돈키호테 레이블 회사의 사장에게 자신과 같은 유형 냄새를 맡은 도경은 웃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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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t&Salt]
철퍽철퍽!
“하하! 많이들 먹으라고 내가 쏘는 거니까 말이야.”
웨인 더글라스 존슨(68)
애써 나온 스테이크 고기에 핫소스를 듬뿍 뿌리며 호탕한 웃음을 짓고 있는 노인. 그는 스테이크를 보며 군침을 돋우고 있었고 도경 또한 먹음직스러운 스테이크를 보며 내심 유쾌한 기분을 느끼며 감사 인사를 올렸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존슨 씨.”
“편하게 이름으로 웨인라 부르게. 도경. 잘 모르지만 이렇게 부르는 거 맞지?”
“하하. 맞습니다. 웨인 씨.”
처음부터 자신을 편하게 이름을 부르는 웨인을 보며 도경은 웃음 지었다. 이 노인 생각보다 그래도 신경 써주고 있지 않은가? 겉으로 보면 마초 성향에 백인우월주의로 차별하기 좋아하는 백인 노인처럼 보이는데 말이다.
“그럼 일단 식사부터 하세나. 비즈니스는 이야기는 그 이후에 이야기하도록 하지. 밥은 맛있게 먹어야 하니까 말이야.”
“옳은 말씀이십니다. 밥 먹을 때 골치 아픈 이야기를 꺼내는 것만큼 밥맛 떨어지는 것도 없죠.”
“하하하! 뭘 좀 아는군. 마음에 들어.”
그렇게 이른 저녁 식사는 시작되었고 도경과 크리스틴 스히소 웨인과 토마스 이렇게 네 사람은 서로의 간단한 신상을 물어보면서 이야기들을 나누며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시작하였다.
달그락.
“휴우- 잘 먹었구먼. 언제나 먹어도 맛있단 말이야. 어떤가 식사 마음에 들었나?”
“맛있네요. 다른 건 몰라도 고기 하나가 죽여주네요.”
“후후후”
스슥.
‘재밌는 녀석이야. 다른 건 몰라도라...!’
‘다른 건’ 몰라도 고기 하나는 죽여준다는 도경의 대답에 웨인이 너털웃음을 내뱉으면서 휴지를 집어 들고는 입가를 닦으며 도경을 바라보았다.
‘입에 발린 말을 잘 하지 않는 녀석이라는 건가?’
보통 얻어먹는 처지에선 엔간하면 아무 생각 없이 맛있다고 할 텐데 ‘다른 건 몰라도’란 말을 붙이면서 고기가 맛있다고 대답을 했다.
“정확하게 짚었네. 도경. 자네 말대로 고기 이외에는 그저 그런 가게지. 하지만 말이야.”
싱글.
스테이크를 먹으러 자신이 데려온 미트 앤 솔트는 사실 그렇게 훌륭한 가게는 아니다.
오래된 간판처럼 낡은 가게 인테리어. 특별할 것 없는 메뉴 구성 그리고 스테이크에 중요한 소스 또한 어디서 먹어본 친숙한 맛이다. 도경의 말처럼 고기 이외에는 그 무엇하나 특별할 것이 없는 곳이 바로 여기였다.
“그런 덕분에 여기 고기 맛이 더욱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지.”
“확실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네요.”
“그렇지?”
웨인의 말에 도경이 조용히 생각에 잠기다 고개를 끄덕였다. 웨인의 말대로 고기 맛을 더욱 특별하게 느낄 수 있는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기인했기 때문이다.
“난 말이지. 음악도 이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 특히 자네가 가져온 앨범의 컨트리 장르의 음악은 더욱더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사장님?”
“하아-. 너부터 잘랐어야 하는건데...!”
그 말에 한참 디저트를 먹고 있던 토마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의 삼촌이자 사장인 웨인을 향해 그 말의 의미를 물었고 그런 자신 조카의 모습에 웨인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멍청한 조카야 귀 씻고 잘 들어라. 컨트리 장르란 음악은 말이다. 이미 전부 맛이 다 똑같다는 말이다.”
“네?”
“정형화된 코드 진행, 비슷한 컨셉의 가사 소재. 연주 악기까지 거기서 거기라는 거다. 컨트리 노래 5곡만 들어도 차이가 뭐가 뭔지 모를걸? 그리고 그게 컨트리 팝 성향의 음악들이 가지는 특징이자 한계라는 거지. 쉽게 말해 뻔한 장르의 노래라는 거다.”
“아... 그 말이었군요. 그나저나 뻔하다니 너무 비약이 심하신 말 아닌가요? 많은 뮤지션들이 컨트리를 즐겨 부르고 많은 변화를 시도하는데 말이에요.”
“그건 알지만 워낙에 삽질들을 많이 해서 말이야.”
“사, 삽질이요?”
자신 조카의 말에 웨인은 쓴웃음 지으며 자신의 목에 걸려있는 냅킨을 갑갑하다는 듯 잡아채 벗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요즘 애들은 뻔한 걸 못 견뎌서 제멋대로 뜯어고치고 의기양양하게 잘난 척하는데 말이야. 웃기지 말라고 해-. 스테이크는 스테이크여야 가치가 있는 거라고? 이도 저도 아닌 요상한 음식을 내놓고 잘난 척이라니 웃음밖에 안 나와.”
쿵.
“음... 그런데 그 말대로라면...!”
조금은 분통을 터트리는 웨인의 모습에 토마스는 곰곰이 생각에 잠기다 이내 그의 말에서 맹점을 찾아 짚어 내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크나큰 오류가 있었기 때문이다.
“변화할 필요가 없다는 건데 그럼 답습밖에 안 되지 않나요. 사장님 말대로라면 음악 장르에 발전이 없는 거 같은데요?”
“응? 갑자기 왜 그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 거냐?”
“틀린 말은 아니라 생각하는데요? 아! 평소처럼 불리해지면 말 바꾸기 없기요.”
씨익.
다른 건 몰라도 음악 하나만큼은 진지한 웨인인 것을 알기에 토마스는 그의 맹점을 짚어 낸 것에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맨날 음악적인 소양으로 소박을 맞던 그였기에 오랜만에 잡아낸 삼촌의 맹점은 즐겁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뭐냐? 그 반항적인 태도와 눈빛은?”
“아아. 멍청한 놈이라서 그런가 본데요~?”
발끈.
“이 녀석이...!”
“다른 겁니다.”
“응?”
좀 전 자신이 멍청하다는 말을 듣고 앙심을 품고 기어오르는 자신의 건방진 조카를 보며 발끈한 웨인은 자신의 앞에 있는 맥주병에 시선을 던지며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갑자기 들려오는 도경의 목소리에 뻗던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웨인 씨가 말씀하신 거와 토마스 씨가 말한 건 다른 겁니다. 토마스 씨가 말하는 건 스테이크를 만들 거면 그 핵심인 죽여주는 고기가 되라는 겁니다. 아무리 요란스럽게 조리 해봤자 스테이크의 핵심은 이 고기이니까요.”
“엥? 그게...”
툭툭.
“그리고 그 죽여주는 고기가 되면 그 후에는 토마스 씨가 말하는 변화와 발전을 시도하면 됩니다. 그 고기의 맛을 살리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도입하게 됨으로써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변화와 발전을 말이죠. 요약하면...”
도경은 자신의 접시를 툭툭 건드리면서 미소를 지으면서 웨인이 말하는 스테이크론의 핵심을 입에 담았다.
“되도 안 되는 싸구려 고기로 뭘 해봐야 이상한 것밖에 안 만들어진다는 소리입니다.”
“......”
‘이 남자... 삼촌하고 같은 과인가?’
도경의 말에 토마스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이 동양인 남자에게서 왠지 모르게 자신의 삼촌과 비슷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남들이 들으면 눈살을 찌푸릴 삼촌의 스테이크 타령을 받아주고 이해하는 것도 그렇고 자신과 비슷한 연배임에도 불구하고 삼촌에게서 간혹가다 엿보는 음악적인 관록 같은 것이 도경에게서 느껴졌다.
풋!
“푸하하하!”
탕탕.
‘오랜만에 진짜로 마음에 드는 놈이군.’
말문이 막힌 자신의 조카를 바라보며 웨인이 큰 웃음을 터트렸다. 예상치 못하게 한 방 먹은 토마스의 모습도 유쾌했지만, 무엇보다도 도경의 내놓은 대답이 그의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해주는 것도, 자신의 스테이크론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도경의 음악 가치관은 그를 기쁘게 만들어 주었다.
“이러면 기대치가 너무 높아지는데 말이야. 곤란해 실망할까 봐 무서울 정도야.”
“실망할까 봐 무서워? 그 말씀은?”
“도경.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나는 네 앨범이 좋다. 지금이라도 당장 계약을 맺고 싶을 정도로 말이야.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 제대로 확인하고 싶은 게 있다”
“뭡니까?”
“네 녀석이 죽여주는 고기인지 지금 이 자리에서 확인하고 싶어. 마침 이곳 마스터에게 놀고 있는 기타가 있는데 말이야. 내 이름을 대면 빌려줄 거야. 어때? 한 곡 뽑아 줄 수 있겠나?”
“잠시만요! 지금 그 말씀은 도경 씨 보고 여기서 노래를 부르라는 소리입니까?”
끄덕.
“그래. 그 말대로야 아가씨.”
웨인의 갑작스러운 말에 크리스틴이 안색을 굳히고 말았다. 계약을 앞두기 전 아티스트의 실력을 확인하고 싶은 레이블사의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지금의 이 방법이 절대로 잘못되었다. 고기 연기가 가득한 스테이크 집에서 노래를 불러 달라니 도경을 아티스트라 생각한다면 실례도 이런 실례가 없었다.
“웨인 씨. 그게 얼마나 실례인지 아십니까?”
“그래요. 삼촌 이건 좀 아니잖아요. 실력 확인이라면 회사에서도...!”
“넌 끼어들지 말고 가만히 있어. 이곳이어야 해. 이건 내 진심이다.”
“삼촌...!”
자신의 행동에 크리스틴은 화를 내고 있었고 토마스는 난감해하고 있었지만 웨인은 그 둘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집중하고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바로 자신의 눈앞에 있는 도경이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저렇다는데 도경 너는 어떻게 생각하나?”
“망해서 영세한 회사치고는 너무 까다롭게 구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대답은 No?”
“......”
어느새 웨인과 도경의 입가엔 미소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서로의 시선을 마주하고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을 지니고 있는지 날카롭게 탐색하고 있었다.
피식.
“아뇨. 한 곡 뽑아보도록 하죠.”
“도경 씨!”
“괜찮아.”
도경의 예상치 못한 대답에 크리스틴은 놀라서 그의 이름을 크게 불렀고 그녀의 살벌한 분위기에 안절부절못하던 토마스는 이제는 식은땀까지 흘리고 있었다.
“웨인 씨에게 공짜로 한 끼 얻어먹었겠다. 밥값을 치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피식.
‘뭐, 밥값치고는 너무 비싸겠지만 말이야.
기타를 빌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 도경은 자신을 향해 뜨거운 눈길을 보내는 웨인을 보며 진한 미소를 피어 올리면서도 엉뚱한 생각에 빠져있었다.
’그나저나 이런 스토리도 재밌는데? 미국 진출을 위한 첫 노래 스테이지가 스테이크 집이라니 말이야. 나중에 이건 좋은 이야기가 될 거야.’
참 어떻게 보면 정상적인 사고회로가 아니었다.
미국행의 첫 노래를 부르는 장소가 구운 고기로 지글거리는 소리로 가득한 스테이크 집인데도 불구하고 재미난 이야깃거리가 생겼다고 좋아하다니 말이다. 정말로 어떻게 되먹은 신경인지 그야말로 불가사의하기 그지없었다.
「도경(Kyle)」 & 「Don Quixote」
도경과 돈키호테. 돈키호테와 도경.
빠구 없는 두 무대뽀의 만남. 먼 미래에 서로의 약자를 따서 킹덤(KD) 레전드라 불리는 그 둘의 이야기는 그렇게 낡은 스테이크 집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