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화
따다단...
[감질맛 나지? 괜찮아. 이제 시작이니까.]
둥둥!
기타를 북처럼 치며 다음 노래로 넘어가는 도경.
어김없이 깜빡이 켜지 않고 다른 노래로 순식간에 전환하는 그의 노래방식은 봐도 봐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또 다른 머리가 낮게 걸려요
아이의 목숨을 천천히 빼앗고 폭력이 엄청난 침묵을 만들어요.
그들은 울고 있어요.]-「Zombie」
[당신을 더 강하게 하지. 싸움을 하게 하고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하지.]-「Stronger」
[당신을 위해 수류탄을 붙잡겠어요. 당신을 위해 기차에도 뛰어들겠어요]-「Grenade」
[난 인간일 뿐이에요. 난 부서지고 망가져요]-「Human」
“......”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정신 사나워서가 아니라 도경이 펼치는 메들 리가 신기하고 감탄스러워서다. 5분 사이에 나온 곡이 무려 14곡이었다.
짧은 시간 안에 끝없이 나오는 도경의 메들리 향연에 사람들은 홀리는 데 충분했다. 무엇이 튀어나올 줄 모르는 두근거림. 그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도경의 노래는 메들리로 끝을 맞이하지 않았다.
[다 끝나면 날 깨워줘요. 좀비. 내가 더 현명해지고 나이 들면
지금까지 나 자신을 깨달아요. 좀비! 좀비! 좀비!] - 「Zombie」&「Stronger」 매쉬업.ver
짧은 순간의 하이라이트만 들었던 감질맛 나는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마지막 매쉬업.
메들리를 끝내고 두 노래를 자신의 매쉬업 버전으로 묶어내 포텐을 터트리며 끝을 향해 달려가는 도경의 노래에 사람들은 카타르시스를 맛보았다.
[좀비! 좀비! 좀비!]
“좀비. 좀비. 좀비...!”
속일 수 없는 반응들이 하나둘 목격되기 시작한다.
야유를 불렀던 사람이 어색하지만, 도경의 노래에 호응하며 몸을 움직이거나 남몰래 그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경이란 지독한 바이러스가 관객들을 하나둘씩 감염시키고 있었다. 그것도 강렬하고 빠르게 말이다.
[당신의 머리에서~!]
‘이제 두 번 남았지. 다음 건 뭐 부르지?’
사실 도경의 첫 번째 노래는 사전에 계획된 노래가 아닌 즉흥으로 부른 노래였다.
도경이 오프닝 무대 위에서 부를 수 있도록 약속받은 횟수는 단 3번. 이미 한 번의 총알을 써버린 도경의 머릿속은 자신에게 남은 장전된 두 발의의 총알로 자신을 건드렸던 녀석들을 어떻게 잡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어떻게 조져야 엿을 제대로 먹일까?’
‘이곳에 있는 모두가 엿 먹일 방법이 필요해...! 뭐가 있을까?’
쓰레기 같은 캠핑차로 엿먹인 로시난테와 웨인을 엿 먹일 수단으로 자신을 이용하려는 모건. 그리고 자신을 비웃었던 MC-G와 플로리다 관객까지 제대로 되갚아 줄 생각이었다.
누르면 누를수록 당하면 당할수록 그 이상으로 되갚아 주는 존재가 바로 도경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의 도경은 아주 무섭다.
바퀴벌레가 생존을 위해 순간의 IQ가 200이 넘는 것처럼 남을 엿 먹이기 위해서 몰두하는 도경의 머리는 비상하기 이를 데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그게 있었네.’
결국. 모든 것을 한큐에 잡을 아이디어가 도경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고 도경은 망설임 없이 그 계획의 탄창에 자신의 남은 총알들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툭. 툭.
끼리릭~!
철컥!
“뒤졌다고 복창해라.”
씨익.
맹렬하게 회전하는 실린더의 감촉을 느끼며 미소를 피어 올리는 도경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음산하기 이를 데 없었다.
“...!?”
---
“와 아아! 삼촌! 아니, 사장님 저거 봐요! 진짜 미친 거 아니에요? 도경 씨가 완전히 뒤집어 놨어요!”
“그래... 그래! 보고 있다!”
부르르.
‘관객과의 기 싸움에서 이겨버렸어! 보고도 믿기지 않아! 정말 미친 녀석이라고밖에...! 마지막에 말도 안 되는 경주마를 얻고 말았어.’
비웃음과 야유를 당하는 분위기 속에 무대를 가진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웨인은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짜릿하기 그지없었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서지며 피를 튀기는 UFC를 봐도 이만큼 짜릿하지 않을 것이다. 동양인 뮤지션 하나가 수만 명을 상대로 싸움을 걸어 기를 꺾어놓다니 소름이 절로 돋는다.
[다들 조금은 얌전해진 거 같은데? 아직 두 무대 남았는데 아직 괜찮지? 플로리다 스피릿!]
“푸하하하!”
멈출지 모르는 도경의 도발. 그런 도경을 보면 이제는 유쾌해지기 그지없었다. 플로리다 스피릿이라 외치는 그의 행동은 이제는 프로레슬러가 일부러 연출하는 기믹으로 느껴질 정도로 독특하게 다가왔다.
그것을 웨인만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이번에는 야유보다 관객석에서 피식거리는 웃음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짬밥이 수십 년인 웨인은 그것을 놓칠 리 없다.
지금의 이 분위기의 흐름은 도경의 중심으로 긍정적인 에너치로 흘러넘치고 있었다. 웨인은 두 손을 자신의 입가에 대고 힘주어 외쳤다.
“휘우~!! 도경 잘한다 다 뒤집어 벼려라!!!!”
뒤집으리라. 저 무대 위에서 눈빛을 반짝이고 있는 도경을 보며 웨인은 그리 확신했다.
---
“저 새끼 뭐야!? 뭔데 내 무대에 멋대로 날뛰어?”
쾅!
“......”
모든 것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앤디가 치밀어 오르는 욕지기를 내뱉으면서 손에 쥐고 있던 물통을 벽에다가 거칠게 던졌다.
앤디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상처 입은 맹수처럼 말이다. 앤디의 눈에 무대 위에 웃음 지으며 관객들과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도경이 보였다.
저벅.
“저 동양인 뭐지? 실력이 보통이 아니야... 아니, 실력이 뿐만이 아니라 존재감이...”
사람 좋던 포지션에 있던 리암조차도 도경을 보면서 표정이 굳어지고 말았다. 사실 이런 그림을 예상하지는 못했다. 관객들의 과열되는 분위기 그런 관객을 제압하는 신입의 등장을 말이다.
‘조연으로서의 선을 완전히 넘어섰어.’
선을 넘어서 버렸다. 오프닝 무대의 용도는 앞으로 있을 공연의 주인을 위해 분위기를 띄우는 것. 그런데 저 동양인 관객들에게 싸움을 걸더니 결국은 이겨버리고 자신의 존재감으로 관객들을 물들이고 있었다. 이건 그야말로 곤란한 일이었다.
조연은 주역보다 눈에 띄어 튀어선 안 된다. 그런 조연을 주역으로선 절대 원하지 않고 말이다. 자신의 팬이 다른 놈에게 한눈을 파는 것을 좋아할 뮤지션은 그 누가 있는가?
도움을 주고 싶었던 거였지 자신들의 무대를 빼앗기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함에 리암은 알 수 없는 갑갑함에 한숨을 내뱉었다.
“하... 치프...!”
‘이거는 조금 곤란해요.’
무대 위에서 환히 빛나고 있는 도경을 보는 리암의 눈가에서 복잡한 감정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웨인 이 영감탱이...!”
까득.
퉷!
리암과 앤디 두 형제가 서로 복잡한 감정으로 가슴이 들끓고 있을 때. 그들의 옆에 있는 한 흑인 또한 말 못 할 감정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디서 골 때리는 물건 하나 주워왔네. 영감탱이.”
입에 물고 있던 시가를 땅바닥에 뱉은 모건은 비릿한 웃음을 짓고 말았다. 속 안에서 치밀어 오르는 쓰라린 감각을 억누르기 위해서라도 웃음을 지어야 했다.
무대 위에서 웃음 짓고 있는 도경을 보면서 스테이크 집에 있던 일이 떠올랐다.
(싸구려 주제에 누굴 넘봐?)
“건방진 대다가...”
싸구려랬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동료를 배신하고 도둑질한 놈은 재활용도 되지 않는 쓰레기라는 폭언까지 들었다. 근래에 받았던 충격을 다 합해도 그 당시에 받았던 충격에 비하면 조족지혈일 것이다.
(신인으로서의 최고의 대우? 웃기고 앉아 있어. 너희 레이블이 가진 비싼 장난감들을 모두 가져와도 나한테 쨉도 안 돼. 알아?)
“그저 미친놈인 줄 알았는데 말이야.”
설마 했던 거절. 그리고 미친놈 아닐까 싶은 말들을 자신에게 내뱉는 도경 때문에 모건은 자신의 머리가 하얘지는 감각을 맛보았다. 자리를 떠나는 도경과 웨인 일행을 잡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알고 보니 사람을 돌게도 만드는 놈이었어.”
쯧.
좋든 싫든 사람을 돌게 만드는 존재였다. 죽여버리게 자신을 열 받게 만드는 녀석인데 소유욕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성공의 여부를 떠나서 저 동양인이 진짜배기의 원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 한 무대였지만 14곡의 메들리로 엮인 한 노래를 통해서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배짱과 퍼포먼스, 가창력, 기타 주법, 폭넓은 스펙트럼을 지닌 목소리까지. 모든 게 뮤지션으로서 이상적이었다. 프로듀서를 한다면 모를 수가 없었다.
“미쳐버리겠군.”
중얼.
개인으로서 도경에게 품고 있는 증오와 적개심 그리고 프로듀서로서 소유하고 싶다는 소유욕. 두 상반된 감정이 모건을 괴롭히고 있었는데 그런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기도 전에 모건은 당황하고 말았다.
[로시난테의 Full Moon을 불러보겠어.]
“뭐?”
“하?”
“...!”
‘Full Moon’
7년 전 돈키호테 관계자들이 모두가 놀라움에 가득한 음성을 내뱉을 수밖에 없는 도경의 발언이 돔 안을 울렸다.
---
10분 전.
『너희들은 지금 전설을 보고 있는 거야.』
『투어가 끝나면 내 이름이 빌보드차트 1위를 차지할 거야.』
『1년 안에 스타덤에 오르겠어.』
『21세기의 아메리칸의 드림은 주역은 내가 되어주겠어.』
첫 무대를 마친 도경은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관객들을 향해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며 아슬아슬한 수위를 오가는 발언들을 내뱉었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이미 첫 번째 무대에서 도경의 실력을 인정한 관중들은 도경을 배짱 좋고 자신감 넘치는 뮤지션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도경이 툭툭 내뱉는 도발적인 허풍들은 그저 캐릭터 컨셉에서 오는 농담으로 여기며 웃음 지었다.
『그러기 위해선 로시난테에서 당신들을 빼앗을 생각이야.』
“...!”
발끈!
하지만 이내 마냥 웃을 수 없는 도경의 발언이 돔 안에 가득 차 있는 관중들을 덮쳤다.
그야말로 대담하기 그지없는 발언이었다. 오프닝의 무대를 장식해야 하는 무명의 신인가수가 공연의 주인인 로시난테의 팬을 빼앗겠다고 선언했으니 말이다.
덕분에 콘서트 장안은 분위기는 단숨에 후끈해지기 시작했다. 팬에게도 등급이 있듯이 로시난테에 열광하는 광팬들이 도경의 발언에 발끈하고 들고 일어섰기 때문이다.
“배짱 좋잖아? 한번 해봐라!”
“건방진 녀석 네까짓 동양인이 로시난테를 무시해!?”
“너 같은 건 로시난테의 발끝에도 못 따라온다!!”
부우우(Boooo)-!
첫 번째 무대로 야유를 잠식시키고 좋았던 분위기가 다시 한번 엎어지고 전보다 더욱 살벌한 야유가 관중석에서 터져 나왔다.
사실 도경의 첫 번째 무대는 임시처방이었다. 실력이 좋은 것을 인정받았지만 동양인에다가 건방진 무명의 뮤지션인 도경에게 반감을 품은 사람들은 적지 않게 존재했었는데 로시난테를 아래로 보는 도경의 발언에 그들의 반감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온 것이다.
[Okay! Okay! 그럼 한번 해보자고. 로시난테가 위인지. 내가 위인지 한번 붙어보도록 하자고.]
끼리릭!
씨익.
[다들 로시난테의 Full Moon 알지? 지금 바로 내가 Full Moon을 불러보도록 하겠어. 그 노래를 듣고 당신들이 판단해.]
“...!!?”
거센 야유에도 도경은 당황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관중들의 거센 반응을 반기며 기타 현을 조율하고 있었다. 그렇다. 모든 것은 다음 무대를 위한 도경이 계획하고 의도한 연출이었다.
순탄하게 노래를 부르며 실력을 인정받고 훈훈하게 로시난테를 응원하며 무대를 내려온다?
‘그건 너무 재미없지.’
그런 것은 도경이 아니었다.
자신을 홍보하기 위해서, 인지도를 얻기 위해서 마음에도 들지 않는 녀석들을 응원하며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으며 쇼하기엔 도경이란 존재는 성격이 너무 더럽다.
[난 말이야. 진심일 때 가장 무서운 사람이야. 왜 그런지 알아?]
“...?”
노래할 준비를 마친 도경은 몸을 풀고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관중들을 눈에 담으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진심으로 노래를 부를 때 목숨을 걸거든.]
“...!?”
우우웅.
무대라는 것은 하나의 전장.
자신의 모든 가치를 증명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전장이다. 그곳에서 도경은 역전의 용사나 마찬가지. 목숨을 건다는 그의 말은 묵직한 무게감을 담으며 주변의 공기를 뒤바꾸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닥치고 내 노래를 들어.]
씨익.
역전의 용사가 검집에서 칼을 뽑아 들며 땅을 힘껏 박차며 달려나간다.
그 앞에는 수만 명의 적이 놓여 있건만 용사의 눈에는 두려움이나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환히 웃음 짓는다.
용사가 보고 있는 것은 승리. 자신이 쟁취할 찬란한 미래를 보며 그는 웃고 있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