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화
[달빛이 출렁거리고 있어.
맑은 밤. 맑은 호수가 부드럽게 나를 비춰.]
사아악.
“...!”
공기가 변하였다. 아니, 풍경이 바뀌었다는 말이 맞았다.
촉촉한 습기와 흙내음을 품은 호수. 그 호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풀과 나무를 비추고 있는 만월.
서늘하면서도 따스한 공기를 품고 있는 공간 속에 도경이 발을 내디뎠다.
[달이 호수에 조용히 몸을 담가.
호수 표면에 일렁이는 물결이 나를 끌어당겨.]
저벅저벅.
[부드러운 밤. 따스한 달빛. 서늘한 호수.
그 모든 것에 나를 담궈.]
찰랑.
[달빛이 나를 비춰. 눈을 감고 달빛을 느껴봐.
두 손으로 달빛을 떠 올려. Woo-.]
달을 품은 호수 안으로 들어가 두 손으로 달을 떠올렸다. 두 손안으로 차오르는 달빛을 보며 도경은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내 자신의 머리 위에 비추는 만월을 향해 손을 뻗으며 손에 담긴 물을 하늘 높이 뿌렸다.
[나는 바보였어~.
소중한 것이 거기에 있는 줄 몰랐어.
뭐가 되고 싶은지도 몰랐어.
끝을 두려워했어~.
내 일에 대해 아는 게 없었어.]
“...!”
털어 낸 한 움큼의 물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만월의 달빛에 노출된 물방울들은 보석처럼 주변을 반짝였고 떨어지는 물방울들은 호수 표면에 수많은 파문을 만들며 호수에 물결을 만들었다.
반짝반짝.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달빛의 향연. 그런 풍경 속에 녹아든 도경은 자신의 감정을 실어 목소리를 내었다. 듣는 사람이 없음에도 소리 높여 노래를 내 불렀다. 그도 그럴 게 이 노래는 관객이 필요 없는 노래였기 때문이다.
이 노래는...
[Full Moon sways~!]
‘자기 자신을 위한 노래이니까!’
우우웅!
야성적이고 에너제틱하게 멋있게 불렀던 로시난테의 Full Moon과는 전혀 다른 도경표 Full Moon이었다.
잔잔하고 편안한 음색. 하지만 밋밋하지 않았다. 진한 소울과 그루브가 존재하고 있는 노래였기 때문이다.
띠리링~끼릭!
퉁! 퉁! 탁!
[내 순간을 찾아.
소중한 것.
잊어서는 안 돼.
그곳에 있다는 걸.
Ooh~!!! 달이 빛나네.]
파아앗.
“분위기 너무 좋다. 완전 새로운 Full Moon이네. 대단하다.”
“음..! 근데 묘하게 여성스럽지 않아?”
갸웃.
“그치!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거 아니지? 이 노래 듣는데 자꾸 한 여성이 떠오르는 거 있지. 담배 연기 내뿜으면서 달을 구경하는 고혹적인 여성이랄까?”
“뭐야? 그 이미지는 되게 구체적이잖아? 근데 네 말 들어보니까 딱 이긴 하네...”
피식.
도경의 노래를 듣던 사람들은 도경을 보면서 순간 자신이 무엇을 잘못 보았나 생각했다. 도경이 노래 부르는 모습에서 한 여성의 이미지가 자꾸만 투영돼 보였기 때문이다.
감수성이 높거나 예민한 이들일수록 더욱 선명한 이미지를 그려내었고 도경의 노래를 듣던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는 어느새 정체불명의 한 여성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건...! 한나! 한나의 노래다!”
너무나도 다른 Full Moon에 관객들도 놀랐지만 가장 놀란 사람은 바로 웨인이었다.
도경이 Full Moon을 부른다고 했을 때도 놀랬지만 지금 도경의 노래를 듣고 있는 웨인은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까무러치게 놀라고 있었다.
믿을 수 없게도 도경이 지금 부르고 있는 Full Moon은 한나가 자신에게 들려주었던 노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도경이 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거지?”
당연한 의문일 수밖에 없었다. 한나의 노래의 멜로디를 아는 사람은 통화로 직접 부른 자신과 그녀의 프로듀서를 맡은 모건 뿐일 테니까 말이다.
“게다가 더욱 완성도가 높아. 도대체 어떻게...!?”
두근두근.
놀라도 너무 놀라서 이성적으로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미친 듯이 뛰고 있는 심장 때문에 생각이라는 걸 할 수가 없었다.
“혹시...”
“음?”
“삼촌이 모건과 한나에 관해서 이야기해주고 있을 때 말이에요. 그때 삼촌이 했던 말을 듣고 작곡한 거 아닐까요?”
“작곡? 설마 그거 가지고 말이냐?”
“삼촌이 원래 Full Moon의 노래는 그런 게 아니라고 이야기 꺼냈을 때. 도경 씨가 많은 관심을 보였잖아요.”
“그런...”
토마스의 말에 웨인의 머릿속에 좀전의 일을 떠올랐다.
한나의 곡을 형편없게 날조한 모건을 떠올리며 욕했던 자신에게 유독 자세히 묻던 도경을 말이다.
‘그때 잠깐 코드 진행을 말해줬지만 설마 그걸로 한나의 Full Moon을 재현했다고?’
오싹.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뇨. 꼭 불가능한 건 아니죠. 로시난테 버전의 Full Moon이 있잖아요. 그것과 삼촌이 알려준 코드 진행을...”
“멍청한 소리! 그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인지 네가 모르는 거다! 그게 됐으면...!”
“!?”
‘진작에 내가 먼저 했겠지!’
토마스는 나름대로 생각해서 이야기 한 것이지만 그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은 웨인 그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한나의 것을 날조해서 만든 모건의 노래를 듣고 화가 나서 웨인 자신도 오래전에 진작 시도해본 일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짤막한 전화통화로만 들었던 옛기억 속의 노래로는 한나의 Full Moon을 복구시키기 요원한 일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한나에 대한 노래는 희미해져만 가고 모건이 날조해서 만든 Full Moon을 참고하면 도움이 되기보다 오히려 원곡에 대한 이미지가 더욱 헷갈려 길을 잃게 만들어 버린다.
좀 전에 토마스가 말을 꺼낸 것처럼 무슨 수학 공식을 찾듯이 대입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저걸 설명할 길은 토마스가 말한 것밖에 없다.’
두근.
[커다란 마음이 하늘에 떠 있어.
나를 지탱해준 따스한 달.
Full Moon~.]
도경은 그것을 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웨인은 잘 알지만, 지금의 노래를 듣자니 아이러니하게도 토마스가 생각 없이 내뱉은 말 이외에는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도대체가...”
두근.
언제 어디서 작곡을 했는지 모르는 도경의 Full Moon.
한나의 곡을 구현하는 것을 넘어서서 완벽하게 완성 시키고 누가 봐도 그녀의 곡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감성까지 살려서 집어넣었다.
“도경. 네 녀석은 정체가 뭐냐?”
소생(甦生).
그것은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가짜의 밑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곡이 되살아나서 수많은 사람 앞에서 빛을 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도경의 노래이지만 한나의 노래이기도 한 [Full Moon]을 들으며 웨인은 결국 고장이 나버리고 말았다.
“뭔데 다 늙은 노인네를 울리는 거야.”
주르륵.
---
한 노인이 기적을 맛보며 형용 못 할 감정을 느끼고 있을 때. 어느 한가운데선 말 못 할 혼란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었다.
“뭐지 저 노래? 낯설지 않은 느낌인데...?”
“......”
자신들의 노래를 부르는 도경의 노래를 들으면서 리암은 그 노래에 경악하면서도 한편으론 무언가의 익숙한 기시감에 사로잡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고 그 옆에 서 있던 앤디는 설마 하는 심정으로 도경을 바라보며 연신 자신의 두 눈동자를 떨고 있었다.
(앤디 고마워. 역시 호수에서 보는 달이 좋네. 마음이 편안해져.)
‘한나...!’
한나는 달을 유독 좋아하는 여자였다.
어릴 때 사업으로 가세가 기울어 불행해지기 전. 저택에 있는 호수 정원에서 밤 피크닉을 보낸 것이 가족들과 유일한 행복한 추억이라 쓸쓸히 말했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왜 저 녀석이 부르는 노래에서 한나가 떠오르는 거지?’
Full Moon. 사실 웨인조차 모르고 있는 거지만 이 노래 제목과 가사들은 모건이 지은걸로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모두 앤디가 지은 것들이었다.
한나의 죽음 이후의 접한 모건의 수록곡에서 왠지 모르게 그녀가 떠올라 그녀를 연상하며 작사한 곡이었는데 막상 가사들이 거친 이미지를 지닌 앤디와는 맞지 않아 모건이 작사한 것으로 알려진 것이었다.
“내 노래인데...”
중얼.
욱신욱신.
직접 제목을 붙여주고 작사한 것만큼 Full Moon은 명실상부 앤디에게 있어 특별한 노래. 그런데 도경을 보면서 그 생각이 흔들리고 있었다.
“내 노래가 아니야?”
저벅저벅.
“앤디?”
이상하게 끌리던 노래였다. 왜 끌리는지 이유를 몰랐었는데 도경의 노래를 들으면서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Full Moon. 이 노래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건 한나의 노래다...!’
이건 자신의 노래가 아닌 한나 그녀의 노래였다.
자신들의 노래보다 한층 더 자연스러운 코드 진행과 진한 감수성 그리고 그녀 특유의 작곡 스타일이 녹아있는 Full Moon에 강하게 직감이 들었다. 그녀를 아직도 그리워하기에 앤디는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Full Moon은 원래 모건과의 스타일하고는 조금 위화감 있던 곡이었지...!’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직감은 Full Moon은 한나의 것이라 외치고 있었고 앤디의 머릿속에는 지금에서야 이상했던 위화감들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위화감을 풀기 위해선 한 사람이 꼭 필요했다.
“모건...! 모건은 어디로 갔어?”
“아까 밖으로 어디 급하게 나가던데?”
“역시...”
‘무언가 있어!’
갑자기 모건을 찾는 앤디. 동료의 말에 앤디는 표정을 굳히고는 서둘러 대기실 밖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한나의 노래라고 생각되는 Full Moon의 등장. 그리고 급하게 어디론가 나가는 모건의 행동에 앤디의 위화감은 어느새 강한 의아심으로 바뀌었고 서둘러 그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쿵!
“응 뭐지? 앤디녀석 왜 저래?”
“몰라. 저러는 게 하루 이틀인가?”
“......”
표정을 굳히고 대기실 밖으로 나가는 앤디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리암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타다닥!
“크윽! 웨인 이 미친 영감탱이 설마 원곡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이제와서 무슨 생각이지? 이 개자식들은 전화를 왜 안 받아!!! 전화를 받으라고!!!”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지는 표정을 하며 어디론가 빠른 걸음으로 무대로 달려가는 모건.
그는 대기실 밖을 나온 순간부터 어디론가 계속 연락을 취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상대방은 연락을 받지 않고 있는 모양이었다.
띠리리릭. 뚝!
“받았다...!”
[여보세요? 모건 씨? 무슨 일입니까!]
하지만 그의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통했을까? 통화가 되지 않던 상대방이 드디어 모건의 연락을 받았다.
“이 미친 새끼! 전화 안 받고 뭐 하는 거야!?”
[네, 네? 아, 잠시 무대에 한눈을 팔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모건 씨. 이번 신인 어디서 구한 겁니까 정말 대단...]
“시끄러워! 이 멍청한 새끼야! 당장 그 새끼 마이크 볼륨 다 내려!”
[...네!?]
으득!
“당장!”
전화를 받자마자 복도를 쩌렁쩌렁 울릴듯한 욕설. 그리고 이어지는 난데없는 주문에 음향감독은 잠시 멍해지는 기분을 맛보고 있었지만, 그것은 모건이 신경 쓸 바 아니었다.
모건은 1분 1초라도 저 노래가 세상에 공개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머릿속에 없는 까닭이었다.
“볼륨 다 내리고! 그 새끼 무대 아래로 끌어 내려내!!!”
옛 망령을 조우한 것처럼 창백한 안색으로 악을 쓰는 모건의 외침. 그의 외침의 주변에 있는 누군가가 듣고 있다는 것을 모건은 불행히도 눈치채지 못한다.
“...!”
---
띠리링! 띵! 따다다단... 뚝!
술렁술렁!
“뭐야 왜 노래가 안 들려?”
“음향사고야?”
“아...! 씨! 장난까나? 조금 있으면 하이라트 부분인데...!”
돔 안을 가득 채우던 도경의 기타 반주 소리가 끊어지고 말았다. 그에 끓어오르고 있던 관객들의 감정이 이 순간 찬 냉수를 맞은 것처럼 화들짝 식어가고 있었다.
열심히 기타를 쳐올리고 있는 것 같지만 저 멀리 있는 관중들에게는 그 소리가 전달되지 않는다.
‘아아! 잘도 저질러 주셨구만.’
씨이익.
‘내가 부른 노래가 생각보다 너무 똑같았나 보지?’
로시난테와 자신의 자존심을 걸고 노래를 부르고 있던 도경에게 있어 지금 이 순간은 정말 최악의 음향사고가 아닐 수 없는 일. 하지만 도경은 웃었다. 이 음향사고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그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완벽한 타이밍이야!’
저벅저벅.
위기는 곧 기회. 지금 이 순간 도경은 환히 웃었다. 모건은 도경을 무대에서 끌어 내리기 위해 음향사고를 일으켰지만, 그는 알까? 이 극적인 상황은 도경이 내심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 모건 그는 도경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만 것이다.
따라란. 딴 딴!
잘 들리지도 않는 기타를 연주 소리를 이끄는 도경은 여유롭게 무대 맨 앞으로 걸음을 옮겼는데 음향사고에도 침착하게 연주를 키는 도경의 모습에 관중들의 눈에는 놀라움이 서리기 시작했다.
무대를 계속 이어갈 거라는 도경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스윽.
“후우우!”
모두가 보는 앞에서 왼손을 들어 올리는 도경. 그는 온몸의 힘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힘들 것이지만, 헛수고일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도경은 전력으로 부딪히는 것을 선택하였다.
자신이 박살 내든, 박살 나던 전력으로 부딪히는 기회가 있다면 망설임 없이 부딪히는 것이 도경이었기 때문이다.
[Full Moon Sway-!]
파아앗!
“!!!”
무대의 끝은 자신의 손으로 내린다는 도경의 의지. 그의 일념이 모두를 관통하고 도경의 목소리가 하늘 높이 드높여지며 돔안을 울렸다.
‘끝은 내가 낸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