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화
띠리링~!
둥둥둥.
띵.
도경과 앤디 갑작스러운 듀엣.
시작은 잔잔하고 조용한 로시난테의 합주 소리로부터 시작되었다.
도경과 앤디를 바라보며 치는 리암의 기타 소리. 그리고 그 위에 조심스레 소리를 얹는 남은 멤버의 키보드와 첼로의 선율은 한데 뒤엉켜 Full Moon의 몽환적인 멜로디를 구현해 나갔다.
‘좋은데?’
씨익.
그 멜로디를 듣던 도경은 웃음 짓고 말았다.
자신이 기타를 홀로 켜 올렸던 것과 달리 로시난테가 내는 완성도 높은 Full Moon의 멜로디에 자연스레 지어지는 미소였다.
어설프게 접근해서 급조해 만든 소리가 아니라 곡의 정서를 이해고 장점을 찾아내어 만든 것이 도경을 기분 좋게 했다.
‘이 정도면 단순히 장난질을 치려고 만든 자리가 아니라는 건데...’
힐끔.
도경은 이 자리가 서로의 기량을 순수히 드러내는 자리라는 것을 확신하는 한편.
자신의 옆에서 마이크를 붙잡으며 눈을 지그시 감으며 멜로디와 함께 호흡을 조절 있는 앤디를 보며 그가 이미 자신보다 먼저 Full Moon의 녹아 들어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용히 타오르는 유형이네. 의왼데?’
주홍빛에 노랗고 화려하게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아닌 어둠 속에서 조용하게 정갈하게 들끓고 있는 푸른 불꽃. 그것이 앤디에게서 느낀 도경의 이미지였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랐다. 외향적이고 강해 보이는 앤디가 사실은 내성적이고 예민한 성격의 전형적인 외강내유의 인물이라는 것을 도경은 그에게서 느껴지는 파동으로 알 수 있었다.
“후읍.”
띠링~!
도경이 앤디라는 뮤지션에 대해서 알아가는 와중.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던 앤디가 마지막 호흡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두 눈을 뜨며 입을 열며 숨을 뱉어내었다.
[달빛이 출렁거리고 있어.]
관중들은 평소보다 더욱 노래에 집중하는 앤디의 모습에 눈을 빼앗기다가 이내 귀를 사로잡는 목소리에 감탄했다. 보통 스트레이트로 지르는 노랫소리와 달리 차분한 음색으로 분위기를 자아내는 앤디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특별한 느낌을 지니고 있었다.
투명하고 차가움이 서려 있는 눈송이. 하지만 그 눈은 금방 녹아 사라질 것 같아. 왠지 모를 서글픔을 품고 있는 음색이었다.
[맑은 밤.
맑은 호수가
부드럽게 나를 비춰.]
찌리릿.
‘오...!’
진짜배기였다. 한 소절만 들었으면 충분하다.
무엇을 생각하는지도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도 아직은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앤디의 노래는 진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보이는 것과 달리 서정적인 음색을 품은 그 목소리에 개인적으로 감탄하는 도경이었다.
[달이 호수에 조용히 몸을 담가.
호수 표면에 일렁이는 물결이 나를 끌어당겨.]
스륵.
“?”
눈처럼 소리 없이 내려 스며드는 앤디의 노랫소리에 모두가 감탄하고 있을 때. 도경은 고개를 까닥이며 자신에게 무언의 신호를 보내는 앤디를 발견했다.
『다음 파트는 네가 불러.』
‘벌써 나에게 다음 파트를 넘긴다고...?’
자신에게 다음 파트를 건네려는 도경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일러도 너무 일렀다. 좀 더 자기가 노래를 불러도 되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빠르게 순서를 넘기는 앤디의 저의가 궁금했다.
‘왜?’
뮤지션이라는 존재는 곡에 깊이 빠질수록 다른 이에게 파트를 쉬이 넘기고 싶지 않으려고 족속이다.
부르는 노래를 자신의 느낌대로, 자신이 원하는 심상으로 채우고 싶은 본능을 지닌 까닭인데 앤디는 지금 그런 욕망을 억누르고 도경에게 노래 파트를 양보하고 있었다.
‘이 녀석 설마...’
꿈틀.
‘내 기량을 파악해 보겠다는 건가?’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앤디의 시선에서 도경은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읽었다.
『어때 할 수 있겠어?』
그것은 Full Moon으로 들어오라는 초대장이자 하나의 물음이었다.
도경이 좀 전에 자신이 불렀던 노래의 감성을 따라올 수 있는지. 그리고 그가 지닌 기량과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 노래를 부르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고 파트를 내준 것이었다.
‘쓸데없는 짓을... 뭐, 그래도 나쁘지 않나.’
씨익.
도경으로선 자신을 믿지 못하는 듯한 앤디의 물음에 기분이 상할 만하지만, 도경은 의외로 앤디 그의 행동이 나쁘지 않다고 여기고 있었다.
‘진지하다 이거냐?’
앤디의 진지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신을 위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Full Moon을 위한 것이었기에 마음에 들었다.
‘그럼 부응해 주도록 해볼까?’
자신과 웨인을 엿 먹이려고 낡은 캠핑차를 준 좀생이치고는 의외의 모습에 마음이 살짝 열리는 것을 느낀 도경은 앤디의 행동에 잠깐 어울려 주기로 결정 내렸다.
무엇을 노리는지 몰라도 일단은 진지하게 노래에 임했으니 자신 또한 그에 상응하는 것을 보여주기로 한 것이었다.
[부드러운 밤.
따스한 달빛.
서늘한 호수.]
...!
노래에는 노래로.
관중들은 다시 한번 감탄하고 말았다. 에릴 것 같은 감정선을 품었던 앤디의 목소리를 깔끔하게 지워버리는 도경의 시원한 목소리에 그리고 앤디와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는 노랫소리에 놀라고 만 것이다.
[그 모든 것에 나를 담궈.]
사라락.
자유로움 바람.
앤디의 노랫소리가 소리 없이 내려 녹아 스며드는 눈송이라면 도경에게는 모든 것을 감싸 안으 스쳐 지나가는 자유로운 바람이었다.
머리카락과 코끝을 간질이는 바람은 앞에 있는 눈송이에게 묻는다.
『어때 마음에 들어?』
‘...!’
『어울려 줄 테니. 한번 놀아 보자고』
찡긋.
도경의 전해오는 의지에 앤디는 놀란 눈빛을 띠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때와는 또 다르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녀석인가?’
천천히 조율하며 노래를 만들어 가려 했는데 도경의 노랫소리를 들으니 그럴 필요가 없을 거 같았다. 자신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웃음 지으며 눈빛을 반짝이는 도경을 보자니 확신할 수 있었다.
‘변화를 반기는 뮤지션...’
도경이 보이는 기질 속에서 그는 수많은 준비 속에 변화 없이 준비한 노래를 꺼내는 범생이 타입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다.
[달빛이 나를 비춰~!]-앤디
[눈을 감고 달빛을 느껴봐~.]-도경
와-!
앤디는 마지막으로 확인해보자 심정으로 도경의 노래 소절이 끝나자마자 예고도 없이 바로 치고 들어와서 노래를 불렀고 도경은 기다렸다는 듯이 앤디의 다음 소절을 가로채어 노래를 불렀다.
찰나의 순간. 짧은 가사 파트 부분을 즉흥으로 서로가 쪼개서 노래 부르는 두 사람의 수준 높은 합에 관중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상반되는 매력을 지닌 두 목소리가 교차하는 순간 알 수 없는 전율을 느낀 까닭이다.
힐끔.
[두 손으로 달빛을 떠 올려.]
[Wooo-]
와아아.
흘끔.
“.....”
그리고 이어지는 두 남자의 하모니에 사람들은 즐거움이 담긴 환호성을 내뱉었다. 그런 관중들의 반응 속에 앤디는 자신의 옆에 있는 도경을 바라보다 이내 시선을 돌리고 고개를 들어 올려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짜증나.’
날이 좋지 않은지 흐릿한 구름 뒤에 모습을 감추고 있는 달을 보며 앤디는 마치 자신의 흐릿하고 혼탁한 기분을 보는 듯했다.
‘왜 저 녀석을 보면 한나가 떠오르는 걸까?’
좀 전에 관중들의 바라보며 은은한 미소를 띠는 도경의 모습을 보면서 앤디는 순간 한나를 떠올리고 말았다. 이상하게도 노래하는 도경을 보면 한나가 겹쳐 보이는 앤디였다.
한나의 Full Moon을 제일 먼저 불렀던 존재라 그런 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일까? 무엇이 답인지 알 수 없었지만, 속이 울렁거렸다.
욱신욱신.
‘짜증나!’
애써 눌러두었던 어두운 감정들이 속 안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갑자기 앞에 나타난 웨인, 새로운 로시난테라고 등장한 건방진 동양인, 한나의 Full Moon과 모건의 비밀. 하나같이 짜증 나고 골치 아픈 일투성이였다.
‘하나같이 다 짜증 난단 말이야-!’
울컥!
앤디의 가슴속에 오갈 데 없는 분노가 솟구치더니 감정이 격해지고 말았다.
외강내유형인 앤디의 감정 기복 문제가 지금 발병하고 말았다. 노래에 몰입하며 한껏 글어 올렸던 집중력이 빠르게 흩어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대로 노래를 한다면 필시 망쳐버리고 말 것이 자명한 사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앤디는 서둘러 마음을 추슬러 보려고 했지만 격양된 감정은 그의 마음대로 가라앉지 않았다.
“크윽.”
꾸욱.
[Full Moon sways~!]
“!?”
흐린 달을 보며 한순간 들었던 잡념에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는 자신의 상태에 앤디가 힘들어하고 있던 순간. 선명한 노랫소리가 그의 귓가를 강타했다.
[내 순간을 찾아~]
까닥.
“소...!”
자신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는 도경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노래를 부름과 동시에 과장되게 고개를 까닥이며 자신의 입가에 있던 마이크를 떼는 도경의 모습에 앤디는 서둘러 마이크를 들어 올리고는 도경이 건넨 파트의 노래를 이어 부르기 시작했다.
[소중한 것.
잊어서는 안 돼.]
우우-!
『괜찮아. 당황하지 마.』
[그곳에 있다는 걸 말이야.]
우~!
『좀 더 집중해. 그리고...』
탁탁.
자신의 노랫소리에 맞춰 발을 튕기며 허밍을 넣어주는 도경의 리드에 앤디는 안정을 되찾아 나갔다. 덕분에 관중들을 감탄케 했던 앤디의 음색은 원래대로 되돌아온 지 오래였지만 도경은 앤디를 리드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Ooh. Ooh~!]
『솔직하게 드러내는 거야.』
‘...무엇을?’
몸짓, 눈빛, 표정에서 전해오는 도경의 정보가 끊임없이 앤디를 향해 쏟아졌다.
끊임없는 정보의 자극에 앤디의 감각은 날카로워지고 덕분에 앤디는 도경의 의지를 읽고 물을 수 있게 되었다.
말하지 않아도 의사소통이 되는 감각. 그것은 정말로 신기한 영역의 감각이 아닐 수 없었다.
『네가 말하고 싶은 진짜 감정들!』
[달이 빛나네-!]
앤디의 물음에 도경은 마지막 대답이 담긴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
우우웅!
그것은 빛이었다. 모든 감각을 사로잡는 강렬한 한 줄기의 빛.
앤디의 의식은 그 빛줄기에 사로잡혀 점멸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깊은 심층 속 어디론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스르륵.
구름이 움직인다.
달을 가리고 있던 흐릿한 구름들이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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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