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298화 (298/357)

298화

“……!”

Full Moon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기 의식.

거슬러 올라가는 의식의 흐름 속에 몸을 맡겼던 앤디는 자신의 과거 기억들과 감정들을 하나둘씩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이끌림 같은 것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앤디는 절대 과거를 되돌아 볼리 없었을 것이었다.

(형. 이 빌어먹을 곳에 벗어나자. 이곳엔 희망이 없어. 난 저런 패배자가 되지 않을 거야.)

술에 취해 미친 듯이 주먹을 휘두르던 아버지 밑에서 앤디는 결심했다.

자신의 인생은 저런 패배자처럼 살지 않기로 말이다. 개똥도 필요할 땐 약이 된다고 하더니 형제가 세상을 나가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술에 취해 주먹을 휘두르는 인간말종 덕분이었다.

(우리는 락스타가 되는 거야. 그래서 부자가 될 테야!)

형제가 부자가 되고 인생의 승리자가 되는 방법으로 택한 것은 락스타가 되는 것이었다.

주먹을 휘두르는 부모 밑에서 가난하게 자라나 교육하나 제대로 받아본 적 없는 두 형제가 부자가 되는 방법으로는 그것 말고는 생각 못 했기 때문이다.

온갖 궂은일을 하며 모은 1500달러와 낡은 기타 하나.

무작정 세상으로 나온 형제에게는 배고프고 녹록지 않은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형제는 음악 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앤디는 매일 밤 클럽에서 모든 것을 불태우는 것처럼 미친 듯이 노래 불렀고 리암은 주먹구구식이지만 작곡을 배워 나가며 동생을 최대한 서포트했다.

그 두 형제의 간절함을 알았을까? 클럽을 전전하던 형제에게 어느 날 명함 한 장과 함께 새로운 인연이 찾아왔다.

(자신의 로시난테 될 생각이 없냐니. 정말 이상한 양반이었어.)

(애, 앤디.)

(응?)

(저 사람 유명한 레이블 대표래!)

(진짜!?)

형제의 노래가 마음에 든다며 다가온 웨인. 그는 형제에게 기회를 주었고 당연히 형제는 그 기회를 붙잡았다. 그것이 돈키호테와 로시난테의 탄생이었다.

(형 재미있는 여자를 만났어.)

돈키호테에 계약을 하게 된 앤디는 한나 블레어라는 여성 뮤지션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독특한 여성이었다. 나른한 분위기를 풍기며 느리느릿 맹한 구석을 지니고 있었지만 노래할 때는 순수한 뮤지션으로서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내는 괴짜였기 때문이다. 앤디는 그런 괴짜에게 어느 순간부터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다.

(한나!)

(후후. 앤디. 언제나 기운 넘치는구나.)

(그러는 넌 언제나 맹하네.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는 거야?)

(걱정해 주는 거야? 앤디 상냥한데?)

(뭐라는 거야. 헛 소리 하고 앉아있어.)

(후후후.)

뮤지션으로서 인정한 덕분일까? 아니면 그녀가 지닌 무공해 같은 나른한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거친 기질에 특유의 까칠함으로 무장되어 있던 앤디는 툴툴거리면서도 한나의 주변을 서성이며 따랐고 한나는 그런 앤디를 귀여워 해주었다.

「어미 새와 새끼 새」와 같은 관계랄까? 상반되는 성격과 분위기를 지닌 둘이었지만 한나와 앤디는 잘 어울려 다녔다.

음악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심심할 때쯤이면 합을 맞춰 같이 노래를 부르며 서로의 가치관과 세계에 영향을 주었다.

『담배 냄새와 달달한 탈취제 냄새가 나는 연습실.』

『회사 옥상정원에서 나눠 먹던 샌드위치와 햄버거.』

『늙은 고양이가 머무르고 있는 조용한 카페.』

『조용히 흐르는 연못이 있던 공원의 산책길.』

레이블과 계약하면서 화려한 락스타의 삶을 걸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예상과 달리 변변치 않은 소소한 일상의 연속이었지만 앤디는 그 시간이 그렇게 좋았다.

배는 조금 고프지만 평화롭고 따스한 일상. 한나와의 시간은 앤디를 행복하게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시간은 그리 길게 유지되지 못했다.

무리한 사업으로 악화한 돈키호테의 재정 상황. 그리고 그 시기에 앨범을 실패한 한나가 부담감에 약물을 손대면서 모든 것이 망가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한나는 당신 때문에 죽은 거야!)

(…….)

(왜! 왜 그녀를 버리려고 한 거야!? 이곳이 한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당신이 잘 알고 있잖아!)

급작스러운 한나의 자살.

자신의 동경이자 짝사랑의 죽음에 앤디는 웨인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한나를 무리하게 재활센터로 보내려고 했던 웨인의 행동이 그녀를 자살로 몰아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앤디는 웨인을 향해 저주 어린 독설을 내뱉으며 모건과 함께 돈키호테를 저버리는 선택을 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그렇게 그 자신이 원하던 락스타가 되는 꿈을 이루었다. 하지만 앤디는 기쁘지 않았다.

‘아파.’

욱신욱신.

꿈을 이루었지만, 오히려 아플 뿐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립고 아팠던 기억이 지금에 와서도 괴롭혔기 때문이다. 전혀 메꿔지지 않던 상실감과 허무함 속에 힘겨워했던 가운데 지금에 와서는 자신의 멍청함까지 깨달아 이젠 욕마저 튀어나온다.

(노래 엄청 좋잖아요. 모건! 진작에 이 노래 내놓지 그랬어요. 제목이 미정이라고요? 내가 제목 붙여도 돼요?)

‘아프다고 한나!’

욱신.

‘왜 그런거야?’

한나와 그렇게 노래를 부르고도 그녀의 노래를 못 알아본 자신의 멍청함에 죄책감을 느끼는 한편 앤디는 미심쩍은 모건을 보며 진실을 알기 위해 사립탐정을 고용해 남몰래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건이 어째서 자신도 모르고 있던 한나의 노래를 지니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 노래를 한나가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곡을 세상에 내놓았는지 알아야 했다. 하지만 앤디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자신의 행동을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하고 말았다.

(한나가… 모건의 애인이라고? 거짓말하지 마!)

쿵!

(킬킬킬! 거짓말은 무슨. 야심한 밤 약을 구매할 때마다 속옷 차림의 그 녀석이 옆에 있었으니 확실하다고. 하긴 네 말대로 애인은 아닐지도 모르겠어. 남녀 관계가 꼭 애인 사이만 있는 것은 아니잖아? 그 여자 맹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몸매 하나는 끝내줬는……!)

(그런……! 닥쳐……! 닥쳐!!! 한나를 더럽히지 마!)

퍼억!

과거 한나에게 약을 판매했던 딜러가 저질스러운 손짓과 함께 악취를 풍기며 내뱉던 더러운 진실.

모건과 한나가 남몰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음을 알아버린 앤디는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도대체 왜……?’

쩌저저적.

자신의 안에 있던 소중한 것이 더럽혀지는 감각이었다.

한나와 함께했던 특별한 순간. 서로가 통했다고 믿었던 유대감이 전부 거짓이었다는 믿고 싶지 않은 진실이 그를 어둠의 구렁텅이로 내몰았다.

(당시에 내가 모건을 팼던 건 그 녀석이 약을 했기 때문이다. 맹한 구석이 있던 한나가 어디서 약을 구했는지 뒤늦게 깨달았지. 녀석은 한나와 앨범을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했지만 그건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왜… 왜……! 그때 말하지 않은 거야?)

(그다음 날 한나가 죽었다. 나 또한 제정신은 아니었고 너희들은 그 일로 나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렸지. 모건과 함께 날 비난하며 회사를 떠나려 한 너희들에게 내가 진실을 말한다 해도 그 당시에 믿었을까? 입을 다무는 게 최선이었다. 그게… 너희들을 위한 내 유일한 방법이었다.)

(뭐? 유일한 방법?)

(모건 그 녀석이 쓰레기지만 재정난에 시달리는 돈키호테를 떠나 새로운 메이저 레이블로 회사로 가는 모건은 너희들에게 있어 마지막 구원 줄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말이다.)

(……!)

툭.

믿고 싶지 않아, 확인하고 싶지 않아. 미루고 미루었던 나머지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순간. 앤디는 자신의 안에서 무언가 끊어진 것을 느꼈다.

‘부질없어. 모든 것이 거짓투성이이야.’

한나에 대한 애정과 유대감, 모건에 받은 기회와 우정, 웨인을 향한 미움과 증오. 자신을 이루고 있던 기반의 모든 것들이 거짓임을 깨달은 앤디는 스스로를 향해서 자조적으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화려한 락스타로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받으며 떠받들어지지만, 사실은 자신에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비참할 수밖에 없었다.

‘그 작자와 다를바가 없었어.’

앤디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평생을 함께하길 약속한 사랑도 질색하며 떠나버린 남자. 술친구 이외에는 제대로 된 친구 하나 없는 구제 불능인 인간쓰레기. 혈육인 자신들에게마저도 버림받은 자신의 아버지를 말이다.

‘패배자. 나는… 패배자였어.’

피식.

그같이 살지 않기 위해서 집을 뛰쳐나왔건만 얄궂게도 그렇게도 혐오하던 아버지와 비슷하다는 사실은 앤디를 절망케 했다. 그런데 문제는 앤디가 그 절망을 이겨낼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젠 지쳤어……!’

결국, 앤디는 주저앉아 버렸다. 무대를 오르기 전 치워야 할 게 한두 개가 아니라 투덜거렸지만 사실 그는 한계였던 것이다. 미워할 대상이 없는데 누구를 미워하기도, 명분이 서지 않는 복수를 하기도, 미안하다고 사과하기도 할 기력이 전혀 나지 않았다.

‘이번 투어를 마지막으로 은퇴…….’

-거, 더럽게 궁시렁 궁시렁 거리네!

움찔.

-패배자? 지쳤어? 뭐 그래서 어쩌라고?

“……!”

복잡한 과거와 감정을 정리해 나가는 앤디의 머릿속으로 하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는 분명 도경의 음성이었다. 노래를 부르고 있어 들릴 리 없는 음성 말이다. 하지만 그의 음성은 너무나도 선명하게 앤디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딴 거 내가 알바 아냐.

웅웅웅!

울컥.

‘네까짓 게……!’

-네 녀석이 뭘 안다고 지껄여!?

너무나도 퉁명스럽고 자신과 상관없다는 듯한 목소리에 앤디가 자신도 모르게 울컥하여 그에게 말을 걸었다. 분명 닿지 않을 목소리였지만 놀랍게도 앤디의 목소리는 도경에게 닿았다.

-알고 싶지도 않고 알바 아니라고! 그러니까! 그만 찡찡거리고 닥치고 노래나 불러!

-이……! 개 같은 새끼가!

감각을 넘어선 무의식과 의식 사이의 경계.

그 경계 사이에서 두 사람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감각도, 시간도, 공간도, 물리적인 장벽을 넘어선 초월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경이로운 일이었건만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들은 안타깝게도 저속한 욕설이 태반이었다.

“우와……!”

* * *

[내 순간을 찾아.

소중한 것. 잊어서는 안 돼.]

[Ahaaa~!]

[Ohooo~!]

[달이 빛나네―!]

감각만이 남은 노래. 도경과 앤디 두 사람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사람들은 잡아 먹힌다는 감각이 무엇인지 오늘 깨달았다.

“미친……! 둘 다 변태들이네. 합을 어떻게 저리 맞추냐?”

“미쳤다! 앤디가 저렇게 노래를 부른다고?”

“앤디도 그렇지만 저 동양인도 만만치 않다. 앤디와 부르는데 틈을 안 주네.”

“햐……! 가슴을 후벼파네 후벼 파! 으아아. 소름……!”

가슴을 헤집고 심장을 잡아 제 마음대로 조물딱 거리는 노래였다.

자신들의 소울만을 중시하고 듣는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는 그야말로 건방지고 이기적인 노래였지만 그 누구도 두 사람의 노래에 불평을 드러내거나 거북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두 눈을 감고 서로의 노랫소리를 의지하며 노래를 부르는 두 사람의 노랫소리에는 거부할 수 없는 마성의 마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젠장! 마음에 안 들어! 도대체 너는 뭔데?! 왜 갑자기 나타나서 설치는 건데? 낄 때 끼라고!

-끼든 말든 내 마음이지. 찌질한 새끼야.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두 사람이 부르는 노랫소리에 감탄하며 소름 돋고 있는 중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사정은 두 사람의 안중에도 없는 일이었다. 서로를 향해 이를 드러내며 치고받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닥치고 노래하면 안 되냐?

묵직한 의지가 담긴 스트레이트에 앤디는 말문이 막히고 만다.

말이 통해야 대화를 하지 그저 일방적으로 자기 할 말만 하며 몰아치는 녀석하고 무슨 대화를 한단 말인가?

-그래. 너 사연이 많은 놈이야.

-고독하고 불쌍한 놈 맞아.

-지친 것도 알아 괴로운 것도 알아.

-근데 그래서 어쩌라고?

이 정도 일방통행이면 거의 미친놈이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이유도 알 수 없는 미친놈 말이다.

이쯤 되면 이야기를 나누려는 게 바보같이 느껴져 이야기를 관두고 싶기도 했지만 앤디는 그럴 수 없었다.

-어차피 너 노래부를 거잖아.

-뭐!? 네가 뭔데 그걸 정해?

울컥.

-내가 지쳤다고 했지! 다 관두고 싶다고 했지! 근데 내가 노래할지 안 할지 네가 어떻게 알고 그리 지껄이는 거야!?

무시하고 싶지만, 이상하게 속을 뒤집어 놓는 말들 때문에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다.

무시 못 할 미친놈. 그것이 바로 도경이었던 것이다.

-지랄. 그럼 죽겠다고? 자살이라도 할 생각이냐?

-뭐, 자살!? 이, 미친 새끼야! 헛소리도 작작해라 내가 자살 따위를……!

-뒤지겠다는 거잖아!

-……!?

-노래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놈이 노래 안 하면 뒤지겠다는 얘기 아니냐?

-……!

-안 그래? 노래 안 하면 너 뭐할 건데?

-그건…

도경의 물음에 앤디는 어이없을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거기서 자살할 거라는 이야기가 왜 나온단 말인가? 순간 한나가 생각난 앤디는 흥분해서 도경을 향해 온갖 욕설을 퍼부어주려고 했지만 이내 도경의 말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지금 네가 나랑 부르고 있는 노래는 뭔데?

씨익.

“아……!”

‘이 새끼는 미친놈이 아니였어……!’

도경의 마지막 물음. 그 물에 앤디는 화들짝 정신을 되찾으며 감았던 두 눈을 뜨며 옆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바라보며 웃음 짓는 눈동자. 도경의 그 모습을 보면서 앤디는 자신이 큰 착각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자식은… 악마야!’

-노래해!

악마(Devil)

음표를 낙인으로 새긴 악마였다. 너는 음악 앞에 도망갈 수 없다며 끊임없이 노래할 것을 종용하는 악마. 그것이 앤디의 눈으로 바라본 도경의 진짜 모습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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