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화
“너냐? 그런 건방진 오디션 영상을 보낸 게?”
“...?”
피식.
심드렁한 묘한 노기가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의실을 들어서자 들은 난데없는 첫 마디에 크리스틴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그 옆에 서 있던 도경은 상반되게 재밌다는 미소를 지었다.
『HBA』 드라마 제작소.
현재 도경과 크리스틴 두 사람이 방문한 장소의 이름이었다.
그저께 저녁. HBA 제작소에서 갑작스레 전화가 와서 잡힌 일정에 도경과 크리스틴은 오디션을 보러 이 장소에 온 것인데 회의실을 살펴보니 분위기가 여간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감독. 설마 지금 저 애송이를 보라고 날 불렀습니까?”
“닥쳐. 모든 게 다 네가 허접한 탓에 벌어진 일이니까.”
“하, 뭐라고? 이 양반아 좀 그만 좀 해! 스케줄 취소하고 비행기 타고 온 사람한테 도대체 뭐 하자는 겁니까!?”
“그래요. 감독. 제대로 이유를 알려주시죠. 보니까 오디션 현장 같은데 저희가 왜 이곳에 있는지 말씀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감독으로서 예민하신 건 알겠지만 다음 주에 저희 대본 리딩인거 아시잖아요. 이건 아닙니다.”
“시끄러워 그걸 나도 몰라? 너희들에게도 중요한 일이니까 불렀을 거라고 왜 생각을 못 해? ”
“아, 진짜 말을 말아야지.”
“후우.”
흰 셔츠와 갈색 바지. 그리고 그의 어깨에 걸려있는 멜빵. 거기다 빵모자와 손에 들린 파이프 담배를 뻑뻑 피우는 털보 중년인을 향해 양옆에 있던 두 남자가 서로 인상을 찌푸리며 언성을 높이고 있는 까닭이었다.
“생각보다 활기찬 분위기네.”
“이게 활기찬 분위기입니까? 살벌한 분위기지. 그나저나 이게 무슨 상황인지...”
소근
“뭐가?”
“왜 저 사람들이 도경 씨 오디션을 보러온 장소에 있는 건지 상황파악이 안 되어서 말입니다.”
“응? 무슨 말이야? 뭐, 저기 있는 사람들. 뭐 좀 있는 사람들?”
“좀이라뇨. 감독입니다만...!”
“아, 그래?”
“하... 됐습니다.”
빵모자를 쓰고 있는 털보 중년인은 괴짜 감독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맥 클라우드」 감독이었고 그 양옆에 자리 앉고 있는 훤칠한 두 남자는 이번 왕좌의 길에 주역을 맡을 배우들이었는데 지금 도경을 보니 지금 자신이 무슨 상황에 부닥쳐있는지 모르는 듯싶었다.
힐끔.
‘감독이 꼼꼼해도 그렇다고 쳐. 그런데 왜 주연을 맡은 저 두 사람까지 오디션 현장인 이 자리에 있는 거지?’
동화책 속에 등장하는 왕자님처럼 미청년 특유의 해맑은 분위기를 지닌 「잭 스미스」. 그와 상반된 마초적인 마력을 풍기는 짐승남 스타일의 미남 「스캇 드바로」.
두 명 다 하이틴 스타 출신으로 최근에 배우로서 입지를 바쁘게 다지고 있는 남배우들인데 이번 왕좌의 길을 이끌어갈 중요한 주연 역할을 맡은 두 명이 지금 이 오디션을 볼 자리에 왔는지 크리스틴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경이 보는 오디션은 기껏해야 조연. 임팩트는 있지만 메인 줄거리에는 영향이 없는 배역이라 저 둘이 이 자리에 올 이유는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물끄러미.
“햄최몇... 저 사람 햄버거 몇 개나 먹을라나...?”
중얼.
“네?”
“아. 저 사람 말이야. 햄버거 최대 몇 개나 먹을 수 있을까?”
“아니. 갑자기 그게 무슨 황당한 말이에요?”
“풉! 아니 내가 좀 전에 차에서 여기 오다가 재밌는 개드립을 발견했는데 저 사람을 보니까 떠올라서 말이야.”
“도경 씨 제정신이에요? 감독을 보고 지금 그런 저질스러운 생각을...”
“아니. 저 사람 햄버거 분명 좋아할걸? 저 배 보면 모르겠어?”
“쉿! 쉬쉿!! 도경 씨..!! 목소리 좀 낮춰요! 미쳤어요!!?”
속닥!
감독 맥 클라우드가 다혈질에 괴팍한 성격으로 유명한 것을 익히 알고 있는 크리스틴은 도경의 행동에 경악하게 반응하며 그에게 주의를 시키기 시작했다.
상황이 뭐가 어찌 되고 있는지 모르지만, 일단은 도경을 무사히 오디션을 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크리스틴은 서둘러 맥 클라우드 감독에 대한 정보를 전해주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에게는 그런 시간은 주어지지 않을 듯싶었다.
“감독님! 두 배우도 다들 그만 하세요! 이게 무슨 추태입니까!? 그리고 오디션 지원자는 멀뚱히 서 있을 겁니까? 얼른 앞 중앙으로 나오세요. 에이전트 관계자분은 저쪽에 앉으시고요.”
자신들의 감독과 배우가 설전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 창피했던지 그나마 그 자리에서 발언권을 가지고 있던 스태프 중 한 명이 주의를 환기하기 위해 도경과 크리스틴을 향해 서둘러 오디션을 볼 것을 종용했다.
“네. 실례했습니다. 도경 씨...! 쓸데없는 말 말고 얌전히 오디션만 보시는 겁니다. 알겠죠?”
“크리스틴. 뭔가 자기 배우 응원치고는 이상하지 않아?”
“잔말 말고 얼른 가세요”
“참내... 투어콘서트 때는 오지도 않았으면서 너무하네.”
“그거는...”
“됐네요. 뭐 서로 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분발할 테니 거기서 잘 지켜보고 있어.”
피식.
“...!”
포커페이스를 유지하지만, 무언가 간절하고 긴장된 눈빛을 띠고 있는 크리스틴을 발견하며 도경은 그녀에게 장난치려던 자신의 행동을 멈추었다.
‘그렇게 배우가 좋을까? 에이전트라면서 아직 멀었어. 자신의 속내를 숨기지 못하고 드러내다니 말이야.’
누가 보면 자신이 아닌 크리스틴이 오디션을 보나 싶을 지경이었다. 도경은 지금, 이 순간 크리스틴이 자신에게 배우로서 첫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곤란하네. 벌써부터 불이 붙겠는걸?”
할짝.
이득을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이 배우로서의 자질을 재능을 선보이길 바라는 순수한 열망이 도경을 자극했다. 기대하는 관객이 있으면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것.
터벅터벅.
“안녕하십니까.”
그것은 도경의 본능이자 의무였기에 그는 자신의 입술을 핥으며 의욕을 돋우며 당당히 앞으로 나서서 모두를 향한 인사를 건넸다.
“이번 [왕좌의 길]에 지원한 박도경이라 합니다. 카일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도경이 중앙 앞으로 나오자 설전을 벌이던 감독과 두 배우는 서로들을 노려보는 행동을 멈추고 도경을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사람의 시선을 끄는 도경의 언행과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독특한 분위기가 그들을 잡아당겼다.
‘뭐지?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그렇다면 신인이라는 건데 태도가 특이하네? 전혀 쫄지를 않아.’
‘뭐야 저 건방진 자식은? 좀 재수 없는데?’
“저 녀석이군. 그 영상을 보낸 자식이.”
감독과 두 배우. 세 사람이 도경을 보며 그의 첫인상을 평가하고 있을 때. 맥 클라우드 감독은 짜게 식은 눈으로 찌푸리면서 그를 향해 턱을 까닥이며 물었다.
까닥.
“그래. 네가 그 건방진 영상을 보낸 애송이냐?”
맥 클라우드의 삐딱하고 공격적인 첫인사.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예의 없는 인사였지만 모두는 그냥 그러려니 넘어간다. 맥 클라우드. 그는 뭐라 해도 왕좌의 길의 수장이자 실력 하나는 초일류로 유명한 감독이었니 말이다.
“음... 건방진 건 맞는데 애송이는 아니지 않지 않나?”
까닥.
“!!!!?”
하지만 이내 모두는 경악할 수밖에 없는 사태를 목격하게 된다. 맥 클라우드 감독에게 지지 않고 맞받아치는... 아니, 한술 더 떠서 건방지게 턱 튕기며 인사를 건네는 정신 나간 동양인 배우의 행동에 말이다.
“하! 이것 봐라. 건방진 게 아니라 미친 거였네. 너 내가 누군지 모르냐?”
파르르!
“감독 아니야? 내가 보고 싶어서 이 자리 온 감독 말이야.”
“......”
당당하다 못해 도발적인 언사를 맥 클라우드의 두 눈을 바라보며 내뱉은 도경의 태도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어때 지금도 내가 애송이로 보여?”
‘도경 씨-!!!!!’
끝이 날 줄 모르는 광역 도발. 그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고 있던 크리스틴의 입이 턱하고 벌어지고 말았다. 그저 지금 자신이 본 게 제발 거짓말이길 바랄 뿐이었다.
‘미쳤어... 맥 클라우드 감독에 저런 말을 내뱉다니 안 돼...! 배우로 첫 스타트는커녕 배우 인생이 끝나버릴 거야...’
자기 어필이라고 보기에는 도경의 행동은 선을 넘어서 버렸다. 저 행동은 무모함이자 만용이었고 어리석음의 극치였다. 맥 클라우드가 이 업계에서 어떤 영향력을 가졌는지 안다면 저런 행동은 절대 벌이지 못한다.
‘내 실수야. 도경에게 저 사람이 누군지 어떻게든 알려줘야 했는데...!’
창백하게 질린 크리스틴. 그녀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경은 그저 맥 클라우드의 눈빛을 담담히 마주하며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너...”
숨 막히는 침묵 속 울려 퍼지는 맥 클라우드 목소리.
모두가 신경을 곤두세우며 맥 클라우드에게 이목을 집중했다. 심지어 좀 전에 그와 설전을 벌였던 두 배우조차 눈치를 살피고 있었는데 모두가 앞으로 터질 불호령을 대비하기 시작했다.
기분 안 좋으면 명 배우일지라도 면전에다가도 독설을 내뱉기일 수인 인간이다. 그런데 동양인. 그것도 오디션을 보러온 무명의 배우에게 저런 소리를 들었으니 그가 절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배짱 좋네. 마음에 든다.”
씨익
“!!!!”
사람들은 다시 한번 놀라고 말았다. 맥 클라우드가 불호령이 아닌 웃음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신에게 모욕을 준 동양인 배우를 향해서 말이다.
“자기소개 따위 필요 없어. 일단 연기부터 보도록 하자.”
휘익-!
툭.
모두가 상황을 못 따라가고 있을 때. 맥 클라우드 감독은 자신의 책상 위에 있던 책자를 집어 도경을 향해 포물선을 그려 던져 주었고 도경은 가볍게 그 책자를 받아들였다.
“이건?”
“네가 원하는 대본.”
“헤에- 이게 말이지.”
맥 클라우드의 말에 도경이 진한 미소를 피어 올리더니 검은색 투박한 책자를 들어 올려 거기에 큼지막하게 적힌 흰색 로고를 쓰다듬으며 그 옆에 작게 적혀진 글씨를 천천히 읽어 내렸다.
“아나긴...!”
[King’s Row]
불꽃을 담은 얼음 『아나긴』.
그 이름을 읽는 순간 도경의 눈빛이 겁잡을수 없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도박과도 같은 무리수로 붙잡은 배역의 대본이 자신의 손에 쥐어진 것이다. 이 책자를 손에 쥔 이상 도경은 이것을 가져야만 했다.
“뭘 하면 됩니까?”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보여줘야 이 배역이 자신의 것이 될지 도경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맥 클라우드에게 물었다.
“...1시간 시간을 주지. 아무 분량을 외워와도 상관없어. 네가 보여주고 싶은 아나긴을 내 앞에 가져와.”
“1시간...”
숨기지 않는 탐욕심에 맥 클라우드는 여유롭게 보이던 미소를 지우고는 자신의 조건을 도경에게 제시한다.
1시간. 터무니없는 짧은 시간이다.
처음 보는 대본에다가 보기에도 꽤 두꺼운 대본 책자다. 그 안에서 아나긴을 잘 보여줄 연기를 선보일 파트를 선정해야 하고 대사를 외우며 어떻게 연기를 펼쳐야 할지 생각해야 한다.
“그 정도면 충분해.”
번뜩.
기필코 해낸다는 필사의 각오.
그의 기세에 몇몇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따라갈 수 없지만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모두 침묵을 지키며 맥 클라우와 도경의 사이를 번갈아 볼 뿐이었다.
---
쾅!
“감독! 뭐라고 다시 말해 봐. 지금 나를 까고 저 녀석에게 아나긴을 줄 생각이라고?”
“그래 이 빌어먹을 놈아. 그리고 시끄러우니까 목소리 낮춰라.”
“씨발! 이게 조용히 목소리 낼 일이야?! 어느 배우가 자기 역할을 빼앗으려는 걸 가만히 지켜 보고 앉아 있어?”
“감독님 이건 스캇의 말이 맞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아나긴의 역할은 스캇이 맡기로 계약되어 있지 않습니까?”
1시간이라는 잠깐의 소강상태.
오디션장을 벗어난 맥 클라우드 감독과 두 배우는 복도에서 언성을 높이며 갈등을 빚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맥 클라우드의 단독행동에 배우들에게 항의를 받고 있다는 것이 더욱 올바른 설명일 것이다.
“아직 정해진 게 아니다. 오디션을 보고 결정한다고 말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계약은 끝난 배역을 오디션을 본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내가 뭐 당신 기분 상하게 했어? 도대체 왜 그러는데? 정말로 그런 애송이에게 아나긴의 배역을 넘겨줄 생각이야? 날 짜른다고? 지금 예산도 빠듯하면서 위약금은 어쩔건데!? 미쳤어!?”
“시끄러워! 나도 고민을 많이 하고 내린 결정이다! 내가 말했잖냐 모든 게 네 녀석 탓이라고! 아나긴을 애매하게 연기한 너를 탓해!”
“뭐야!?”
덥썩!
맥 클라우드의 말에 결국 스캇 드바로는 터지고 말았다. 배우의 자존심을 짓밟는 그의 말에 참지 못하고 감독인 그의 멱살을 붙잡고 만 것이다. 이는 분명 말려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 어떤 누구라도 스캇의 행동을 말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감독! 말이 심합니다! 사과하세요.”
항상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젠틀하게 매너를 지켰던 잭 스미스조차 표정을 굳히고 이번에는 맥 클라우드를 다그쳤으니 말 다 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아나긴이 이번 작품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감독이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스캇과 저는 이미 미리 대본 리딩까지 맞췄고요. 그런데 지금 그걸 뒤집는겠다는 겁니까? 그것도 처음 보는 녀석을 위해서요?”
“그래서라고!”
“하!?”
탁!
자신의 멱살을 잡은 스캇의 손을 뿌리치며 맥 클라우드는 인상을 찌푸리며 외쳤다.
“이 작품이 뜨려면 아나긴이 필요해. 스캇 너의 연기는 나쁘지 않지만 뭔가 아쉽단 말이다. 그게 날 미치도록 불안하게 만들어.”
“감독 지금 그거 진심이야?”
“그래...”
“감독. 그럼 물어볼게.”
“물어라.”
괴로운 결정을 내렸다는 듯이 외치는 그 말에 스캇의 표정이 굳었다. 차라리 단순한 히스테릭이나 변덕이면 화를 내겠는데 진지하게 말하는 그 모습에 마냥 화를 낼 수 없었다. 이쯤 되니 그에게 꼭 물어봐야 할 말이 스캇에게 생겼버렸다.
“지금 감독 말은 나는 못 하는데 그 녀석은 할 수 있다는 거지? 당신이 원하는 아나긴의 연기를 말이야.”
“모르지.”
“장난...!”
“다만... 다만! 뭔가 있는 것은 확실해. 그러니까 너희들을 부른 거고 말이다. 절대 너희들을 무시하고 벌인 일이 아니야.”
“그게...”
맥 클라우드가 성격은 괴팍하지만, 작품에 대한 혼은 거의 광적이다 못한 장인정신을 지니고 있는 명 감독이다. 그렇기에 두 배우는 무작정 화를 낼 수 없었다.
‘그 녀석에게 무언가 있어. 일반인이 가지지 못한 무언가가...!’
[아나긴.]
[내 이름은 아나긴 라즐리온!]
[너희들의 주인이자 너희들의 미래. 그리고...]
꿀꺽.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눈을 뗄 수 없는 그 특별한 반짝임을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눈빛을 떠올리며 맥 클라우드 감독은 침을 깊게 꿀꺽 삼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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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경 씨! 이게 무슨 일이죠? 아나긴 배역의 오디션이라니! 도대체 무슨 일 입니까? 무슨 일을 저지른 거에..”
소란은 작품에 출연한 배우와 감독에게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이 일을 일으킨 주범인 도경과 그를 관리하는 에이전트인 크리스틴 또한 시끌벅적해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는데 도경은 그저 조용히 자신의 손에 쥐어진 대본을 읽을 뿐이었다.
“크리스틴. 시끄러워. 지금 대본 읽는 거 안 보여?”
“네? 아...”
크리스틴은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무언가 알고 있을 도경을 향해 사태의 연유를 물었지만, 안타깝게도 도경은 그런 그녀의 궁금증을 풀어줄 생각이 없었다.
“조용히... 숨죽이고 조용히...”
스윽.
“입 다물어.”
오싹!
대본을 집중해 읽다가 그녀를 향해 천천히 그리고 무감각하게 고개를 돌린 도경을 보며 크리스틴은 도경의 말처럼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수, 숨을 못 쉬겠어...!’
고요하고 싸늘한 도경의 눈빛. 그 두 눈동자에 서려 있는 한기에 크리스틴은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두려움과 공포.
크리스틴이 도경에게서 느낀 것은 두려움과 공포였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