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304화 (304/357)

304화

#67 추격전 끝에 당도한 개울가가 있는 숲속(오후)

“...미개한 야만인들. 감히 베르닉 영주님에게 이를 드러내다니. 골백번 죽어 마땅하다.”

푸우욱.

“크윽!”

대여섯 명의 남자들이 싸늘한 시체로 쓰러져 있다.

그 자리에 살아있는 생존자는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헐떡이는 남자와 초연하게 그의 복부에 칼을 쑤셔 놓고 있는 검은 털의 망토를 두르고 있는 한 남자뿐이었다.

“흑기사...! 너를 저주한다! 너는 죽어서도 저주받을 것이다...!”

“웃기는 소리군. 저주받은 것은 너희 ‘카이언인’들이 아닌가.”

“크흑! 네 녀석-!”

버둥버둥

“너희들은 마물이다.”

“우린 사람이다!”

“아니.”

어스랜드 북부지역 파이크 가문이 위치한 『윈터플』.

혹독한 추위, 설산과 굶주리고 흉포한 짐승이 가득한 척박한 대지. 파이크 가문이 이곳에 유배당해 오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짐승들과 함께 어울려 다녔을 야만족들 「카이언인」.

“너희들은 사람이 아니야.”

푸욱!

“크아아!”

자신을 사람이라고 처절하게 외치는 사내의 복부에 흑기사라 불린 이는 자신의 검 손잡이를 힘주어 천천히 밀어내며 발밑의 놓여있는 사내에게 고통을 선사했다.

“짐승의 것처럼 찢어지는 동공이 그것을 알려주고...”

푸우욱!

“흥분하면 푸른 빛을 담은 불길한 눈동자가 그것을 보여주며...”

“끄으으...”

“부모의 생김새와 피부를 닮지 않은 아이들이 너희들이 저주받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뚜둑!

“꺽...!”

부르르.

자신의 발밑에 놓여있는 사내의 전부를 부정하며 칼을 천천히 쑤셔 놓는 흑기사. 그는 애통하다는 듯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사내의 푸른 빛을 머금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강조한다.

“그러니...”

“...”

“너희는 사람이 아니다.”

흑기사의 마지막 말을 마지막으로 푸른 빛을 머금고 있던 눈이 빛을 잃는다.

피를 흘리며 절명한 사내의 얼굴의 표정은 너무나도 지독하게 절망한 표정이었다. 죽음의 끝에서 마음이 꺾여버린 것이다. 자신들은 사람이 아니라 선언하는 흑기사의 두텁고 굳은 신념이 서린 그 말에 말이다.

“지독하구나! 흑기사 아나긴.”

“...!”

“마지막조차도 우리에게 안식을 주지 않으려 하니 말이다.”

우르르.

분노에 찬 목소리. 갑작스러운 불청객에 흑기사 아나긴은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힐끔.

“나를 끌어내기 위한 함정이었나?”

“그래. 카이언의 『악몽』. 아나긴 네 녀석을 위한 함정이다. 악몽은 오늘로 끝이다.”

“주제넘은 짓을...”

어느새 자신을 중심으로 포위한 푸른 눈동자를 지닌 사람들을 보며 흑기사 아나긴은 이 자리가 모두 자신을 위한 함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영지의 소영주를 향한 어설픈 습격과 도망. 그리고 추격전의 끝에 수십 명의 인원이 미리 매복하고 자리에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했다.

‘30명 남짓이라... 조금은 힘들겠군.’

혹독한 추위의 북부에서 생존했던 야만인 만큼 카이언인들은 한명 한명이 너덧 명의 장정의 힘을 지닌 천생의 전사들. 뛰어난 무력을 지닌 아나긴이라 할지라도 홀로 그들을 상대하는 것은 버거운 것은 사실이다.

“아나긴. 너는 우리가 사람이 아니라 했지.”

스릉.

흑기사 아나긴을 포위한 카이언들 사이에 리더로 보이는 중년인이 좀 전에 아나긴 그가 내뱉었던 말을 꺼내 들었다.

“그래. 네 녀석이 원하는 대로 해주마. 너희 남자들은 죽여서 피를 마실 것이고 여자는 겁탈하여 비명 지르게 할 것이다. 너희가 그토록 혐오하던 우리의 씨를 널리 퍼트릴 것이고 너희의 씨앗을 말려 죽일 것이다...!”

화르륵!

자신의 동지의 마지막 안식을 망가트린 지독한 독설과 잔인한 말을 내뱉은 흑기사를 보는 그의 두 눈이 푸른 귀화로 타올랐다.

“이젠 우리가 너희의 악몽이 될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마물이 되어 주겠다! 그러니 공포에 떨며 죽어라! 아나긴!!!”

철컥철컥!

“흑기사에게 공포를! 죽음을!”

[흑기사에게 공포를! 죽음을!!!]

타다다닥!

어스랜드 북부에 놓여있는 윈터플 영지.

파이크 가(家)에 핍박받았던 한 카이언들의 분노의 외침이 하늘에 울려 퍼지고 수십 명의 카이언인들 자신들의 두 눈동자를 푸르게 물들이며 자신들의 악몽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악몽이 될 거라고?”

까득.

지독한 분노와 살의를 내뿜으며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카이언인들을 향해 아나긴이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너희들은 예전부터 내게 있어 악몽 그 자체였다. 혐오스럽고 더러운 것들아!”

“뭣!?”

아나긴의 얼굴이 일그러트리며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악몽을 노려보았다.

선두에서 아나긴을 향해 달려가던 카이언인 중 한 명이 아나긴의 얼굴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화르르!

아나긴 그의 두 눈동자에 푸른 귀화가 피어오르고 있는 까닭이다.

자신들보다 더욱 더 짙고 푸르게 빛나고 있는 푸른 눈동자. 믿고 싶지 않지만 아나긴 그는 자신들과 같은 동족이었다.

콰직!

자신을 보며 경악하는 남자를 보며 아나긴은 얼굴을 더욱 일그러트린다. 그자가 자신의 무엇을 보고 그리 경악스러운 표정을 짓는지 예상했기 때문이다.

꾸욱.

휘이익-!

서걱!

푸슈슈슉-!

분노에 몸을 맡긴 아나긴은 단숨에 적의 품에 파고들어 그의 목을 향해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하늘 높이 떠오르는 머리통과 붉은 핏줄기가 허공에 솟구쳐 오른다.

철퍽~!

슥.

아나긴은 자신의 얼굴을 향해 쏟아지는 붉은 피를 피하지 않고 맞이했다.

저들과 같이 푸른 눈동자를 조금이라도 감추기 위해서, 자신과 저들이 같은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더러운 변절자 새끼!”

“죽여! 죽여버려!”

“으아아아!”

흑기사 아나긴이 자신들과 같은 카이언인 이라는 것에 경악도 잠시.

여태껏 자신들을 혐오스럽고 더러운 것으로 대하며 학대했던 아나긴의 행동들을 떠올린 카이언인들은 알 수 없는 배반감에 솟구쳐 오르는 분노에 몸을 맡기며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무기를 쥐고 그를 향해 휘둘렀다.

“나는 윈터플 영지의 파이크 가(家)의 흑기사...!”

그들의 배신감과 분노. 그것을 바라본 아나긴은 더욱더 푸른 눈동자를 빛내며 그들을 향해 외쳤다.

“흑기사! 아나긴이다!”

파이크 가(家)의 흑기사 카이언인과 자유를 꿈꾸는 카이언인. 같은 하늘 절대로 양립할 수 없는 두 존재가 서로 뒤엉키며 서로의 악몽이 되어간다.

---

“......”

회의실 방안은 어느새 적막한 고요로 가득 차 있었다. 두 배우의 열연을 지켜보느라 숨 쉬는 것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대... 대단해...!!!’

부르르.

맥 클라우드 감독은 속으로 밀려오는 환희와 소름에 몸을 떨고 있었다.

‘저건 아나긴 그 자체다.’

소름 끼칠정도로 완벽했다.

냉철하고 비정한 심성은 물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깊은 혐오감과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콤플렉스를 모두 완벽히 표현해내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중얼.

왕좌의 길은 판타지이면서 대서사시의 이야기를 담은 장르이다.

허구를 현실로 만드는 리얼리티가 필요로 하며 또한 현실에 없는 판타지를 충족하는 비현실적인 요소를 동시에 요구하는데 놀라운 것은 도경은 그러한 것을 모두 조건을 충족시켰다는 것이다.

흑기사 「아나긴」

그의 절도있는 몸가짐은 사람의 눈길을 끄는 고고함이 존재했고, 무미건조하며 고저가 없음에도 그가 내뱉은 목소리는 듣는 사람을 위축시키는 묵직한 무게감이 있었다.

현실 속에서 쉽게 보기 힘든 그 허구의 시대만의 특별함이 도경의 연기에 녹아들어 있었는데 그중 제일 압권인 것은 바로 그의 눈빛이었다.

‘아나긴의 감정이 모두 눈에 들어가 있어!’

비정하고 냉철한 아나긴을 연기하기 위해 도경은 최소한의 얼굴 근육으로만 아나긴의 표정을 표현했건만 그 누구보다 아나긴의 감정표현이 풍부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도경의 눈빛 연기는 인세의 것이 아니었다.

‘분명해...’

맥 클라우드 감독은 여러 눈빛을 조우했지만, 저런 생동감 있고 리얼리티한 눈빛은 단언컨대 도경이 처음이었다. 보통 이러한 사실적인 눈빛 연기는 배우가 직접 경험해보고 체화해야 나올 수 있는 눈빛 연기인데 여기서 의문점은 도경이 연기하는 아나긴은 허구 속의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저 녀석은 눈에는 다른 무언가가 녹아 있다.”

두근.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것.

현실과 동떨어진 배경 속에서 전혀 다른 시각과 가치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도경의 두 눈은 사람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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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끼 뭐야? 뭐냐고!?’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속으로 가장 경악하고 비명을 지르고 있는 사람은 도경과 함께 연기를 펼치고 있는 스캇이었다.

“후우 후우-!”

“...!”

움찔!

‘빌어먹을...’

미세하게 위아래로 움직임을 보이는 도경의 어깨와 거칠지만 조용하게 숨을 가다듬는 그를 보면서 스캇은 움찔거렸다.

‘이건 연기야. 진정하자. 진정해 이건 연기라고...!’

전신의 솜털이 전부 솟구치는 감각에 숨이 막혀온다. 자신도 모르게 거칠어지는 호흡을 느끼며 스캇은 속으로 자신을 재촉하듯 다독였다.

‘연기를 이어나가야 한다고!’

#67의 연기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카이언들의 함정에 빠져 자신의 비밀을 드러내며 치열한 사투를 벌인 아나긴은 놀라운 무력으로 모두를 쓰러트리고 간신히 살아남는데 이 씬의 절정 부분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었다.

“으...!”

콩닥콩닥!

그런데 지금 문제가 일어났다. 연기를 펼쳐야 할 스캇의 상태가 조금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도경은 연기를 들어갈 준비를 하는데 먼저 대사를 내뱉어야 할 스캇이 대사를 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빌어먹을! 입을 열란 말이다! 스캇!’

적막이 길어질수록 스캇이 받는 부담감은 상상을 초월했는데 스캇은 자신을 향해 욕을 내뱉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입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

부들부들.

자신의 인지 부조화의 상황에 스캇이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고 있을 때. 도경은 숨을 고르면서 옆에 있는 스캇을 지켜보고 알 수 없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아직. 아직이야. 좀 더 뜸을 들어야 해.’

사실 스캇의 상황은 도경이 의도한 행동이었다.

스캇은 알지 못하지만 #67 극적인 상황을 맞이하기 위해서 도경은 연기에 끌어올렸던 살의를 스캇을 향해 내보내어 그를 옴짝달싹 못 하게 하고있는 중이었다.

‘미안하지만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네가 좌초한 거다.’

카메라가 있고 편집과 씬이 나뉘어 있는 상황에서는 이러한 행위는 불필요한 행위였지만 지금같이 배우라는 상대가 있고 한 번에 연기를 이어나가야 하는 상황에선 이렇게 타이밍을 조절하는 것이 도경의 입장에선 옳았다.

‘지금!’

“후우-!”

적절한 타이밍이 도달했다고 느끼는 순간.

도경은 스캇을 짓누르고 있던 살의를 풀고 자신이 고르고 있던 호흡 소리에 미세한 변화를 주었다. 정말로 미세한 변화였지만 그 변화를 알아차린 스캇은 자신도 모르게 움직이며 대사를 쳤다.

“아, 아나긴 부단장님...?”

움찔

그렇게 속으로 골백번 외쳤던 대사가 입으로 터져 나오자 스캇은 연기를 했다는 것도 잊고 당혹스러우면서도 놀라움이 가득한 표정을 자신도 모르게 짓고 말았는데 다행히도 그의 표정은 지금 연기하는 씬에 너무나 부합한 표정이었다.

수십 명의 처참한 시체들이 놓여있는 풍경을 본다면 그 누구든지 그런 표정을 지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목소리는... 클라드냐?”

자신의 등 뒤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아나긴은 고개만을 돌려 자신의 부하를 맞이했다.

“네... 그렇습니다.”

뒤늦게 현장에 나타난 부하기사의 이름은 클라드 섀넌.

파이크 가(家) 기사단의 귀여움을 차지하는 막내로서 모두가 무서워하는 아나긴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유독 잘 따르던 인물로 놀랍게도 그 흑기사 아나긴이 마음을 연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아나긴을 무서워하지 않고 순수하게 동경과 존경으로 호감을 드러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소영주님은?”

“괜찮으십니다. 다행히 그때 잘 반응하셔서 가벼운 생채기만 입었을 뿐입니다.”

“그래. 그거 다행이군.”

아, 아니! 그것보다 아나긴 님이야말로 괜찮으신겁니까..!”

타다닥.

“호들갑 떨지 마라”

피식.

놀랍게도 아나긴이 미소를 지었다.

조그마한 미소였지만 항상 굳은 표정을 짓고 있던 아나긴이 미소를 지으며 따스한 눈빛을 띠자 그의 인상이 180도 바뀌어 있었는데 자신을 위해 제일 먼저 이곳으로 달려온 클라드가 그만큼 속으로 기꺼운 것이였다.

“나는 괜찮다. 걱정해 줘서 고맙구나. 클라드.”

“아...!”

“음?”

“누, 눈이..!”

“...!”

우뚝.

하지만 아나긴은 그래서는 안 됐다.

평소처럼 단단하게 마음의 빗장을 굳게 닫고 있었으면 됐으련만 안타깝게도 클라드에게 열었던 마음이 그의 크나큰 실수로 이어지고 말았다.

“아아...!”

스르륵.

클라드를 향한 아나긴의 미소가 굳어져 버렸다.

피 칠갑한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쥐며 고개를 떨군 아나긴은 한탄하고 말았다.

“왜? 너란 말이냐. 클라드...”

스윽.

그리고 이내 얼굴에 손을 떼고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아...”

“미안하구나. 클라드...!”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싸늘하게 그리고 그 누구보다 비정하고 살벌하게 아나긴은 클라드를 바라보며 비틀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를 용서하지 말아라.”

씰룩.

쿵!

좀 전과 다른 의미가 담긴 마지막 미소가 도경의 입가에 지어지자 현장에서 도경의 연기를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충격을 받고 말았다.

숨 막히는 소름 끼치는 연기력도 연기력이지만 그가 내놓은 아나긴에 충격을 받고 만 것이다.

“누, 눈물?”

화들짝.

‘아나긴이 눈물을 보인다고?!’

원작의 책에서도 드라마 각본 그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은 아나긴의 등장. 그런 새로운 아나긴에게 맥 클라우드 감독은 두 눈은 휘둥그레진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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