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화
“자, 그럼 촬영 시작합시다-!”
맥 클라우드 감독이 배우들에게 마지막 유의사항을 내리며 마지막 점검의 끝마침을 알리고 왕좌의 길 배우들은 각자 자신들의 배역의 티저를 촬영하기 위해 각자의 자리로 나섰다.
“눈빛들이 좋군.”
끄덕.
“이번 드라마는 기대해도 괜찮겠어.”
걸음을 옮기는 배우들 모두 각자 나름의 각오가 되어있는지 진지한 눈빛으로 자리를 떠나는데 그런 배우들을 뒷모습을 바라본 로빈 행크스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레 이번 드라마의 성패를 점쳤다.
“휘유~. 로빈 행크스의 보장이라니 이 드라마 계탔네?”
“후후. 닉 지금 오는 건가?”
“아아. 스케줄 조정하는데 생각보다 애를 먹었어. 여기 PD들 말이야. 너무할 정도로 깐깐해. 로빈 너 정도의 배우를 모셔왔으면 조금은 편의를 봐줄 만도 하는데 말이야. 너무 FM이야. 덕분에 올해는 좀 빡빡하질 텐데 괜찮겠어?”
“난 괜찮네. 그들도 자기네들 할 일을 하는 거 아닌가? 여기 세트장을 보면 알잖나. 제작진들이 이 드라마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말이야.”
“뭐, 그렇게는 보이네. 삥땅 치지 않고 돈을 제대로 썼어.”
닉은 투덜거리면서도 세트장을 둘러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하였다.
촬영현장과 세트장만큼 제작진들의 태도와 상태들을 솔직하게 드러나는 곳이 없는데 로빈의 전속 에이전트이자 매니저로서 수많은 작품을 함께하며 높아진 닉의 눈높이로도 왕좌의 길의 세트장은 그야말로 수준이 높았다.
“하하하. 삥땅 치지 않았다니 같이 나이 먹는 처지인데 말 좀 곱게 하세나.”
“뭐래? 우리 아직 한창이거든? 로빈 요즘 너무 뒷방만이 노인네처럼 말하는데 그러지 마라. 아직 배우로서는 너 한창이라고? 원한다면 로맨틱 코미디 작품도 물어와 줄 수 있다고? 상대역 여배우는 쭉쭉빵빵한 20대고 말이야. 어때 생각 있어?”
“말 좀 되는 소리를 해라. 내일모레면 나 예순이다. 닉 너도 정신 차리고 제수씨랑 재혼해라. 어째 요즘 들어 주변에 혼자 사는 놈들이 이리 많은지 모르겠다니까.”
“왜 그러겠어? 결혼은 남자의 무덤이니까 그러지. 모두들 자유와 로망을 누리려는 모험가가 되기 위한 삶을 택했을 뿐이야.”
“모험가들 태반이 병들거나 객사한다지? 맥 클라우드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어째 나이들을 거꾸로 먹으려는 놈들이 이리 많은 건지 요즘 세상이 많이 이상해졌어.”
“돈 있으면 솔직히 나쁘지 않다고? 로빈 너도 뒷방만이 늙은이 흉내 그만하고 그 모임에 참가하는 게 어때?”
“그럴 일은 없을 거다. 행복한 가정을 둔 사람에게 그게 할 말이냐?”
“후후. 두고 보자고 어찌 될지 말이야.”
뒤늦게 이혼하고 나서 방탕하게 자유를 누비는 자신의 철부지 불알친구를 보며 로빈은 혀를 내둘렀지만, 닉은 신경 쓰지 않았다.
로빈과 함께 걸음을 옮기면서 일정이 담겨있는 스케줄러를 미간을 찌푸리며 검토하고 있었는데 그는 문득 자신이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잊어버렸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탄성을 내뱉으며 옆에 있던 로빈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음을 건넸다.
“참! 그 녀석은 어땠어?”
“음?”
“그 카일이란 녀석 말이야.”
“아아. 그 청년 말인가?”
“그래.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이는 녀석 말이야. 어땠어? 역시 예상한 대로 괴짜였어?”
닉은 흥미진진한 눈빛을 띠며 도경에 관해서 물었다.
그도 그럴 게 미국 연예계 종사자들 사이에서 꽤나 궁금증을 자아내는 인물이 바로 도경이였기 때문이다.
리아 그라테 썸남으로 주목을 받고 영화까지 함께 촬영하며 나쁘지 않은 성적과 평가를 거두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컨트리로 이루어진 첫 앨범으로 빌보드 차트의 상위권을 차지한 정체불명의 동양인 카일.
“글세... 되게 평범?”
“뭐? 그럴 리가 그 스티븐의 죽빵을 갈겼던 미친놈이라고? 평범할 리가 없잖아?”
“스티븐? 그 스티븐 롱 말하는 거야?”
닉의 말에 로빈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미국 최악의 악동인 스티븐 롱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혼자서 멀쩡히 돌아다니는 동양인의 존재가 놀라울 따름이었기 때문이다.
“미쳤군... 그런데 어떻게 저리 멀쩡하지? 스티븐 그 녀석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을 텐데?.”
“모르지. 아, 근데 뭐 터무니없는 소문들이 나돌긴 하더라.”
“소문? 무슨 소문?”
“요즘 스티븐이 아무 활동 없이 조용하잖아? 그게 사실은 카일 그 녀석에게 복수하려다가 스티븐이 역으로 털려서 그런 거래.”
“말도 안 되는 소문이군. 스티븐 그 녀석이 보통 녀석이야? 사건 사고를 친 숫자만큼 가더들을 데리고 다니는 녀석인데 그게 사실이면 정말로 보고 싶군.”
“그게 말이야...”
“응?”
아무런 기반이 없는 동양인이 미국의 악동을 어떻게 털어버린다는 말인가? 그야말로 어이없는 소문에 로빈은 너털웃음을 터트렸지만 이내 그는 더욱 황당한 이야기를 듣고 말았다.
“그 가더들이 다 털렸다더라. 그것도 카일 그 녀석 한 명한테 말이야.”
“뭐?”
“칼부림을 일으켰다나 뭐라나? 하하. 황당하지?”
“총도 아니고 칼? B급 영화도 아니고 동양인이란 이유로 그런 소문이 붙은 것 같은데 정말 편협하기 짝이 없군.”
“왜 재밌잖아. 오히려 신비스럽고 좋지 않아? 악을 타도하는 동양의 사무라이! 쿨 하잖아!?”
“그만해둬 닉. 사무라이라니... 카일이란 청년은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이라고 그 말을 들으면 분명 기분 나빠할걸? 그리고 그 청년은 그런 폭력적인 타입이 아니야.”
나잇값도 못하고 칼을 휘두르는 시늉을 하는 닉을 향해 로빈이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말했다.
자신이 본 청년은 배짱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생각 없이 주먹을 휘두를 단세포 생물의 분류는 아니었다.
“헤에? 그래? 그럼 어떤 유형인 듯 보였어? 로빈 네가 사람 보는 눈은 끝내주잖아. 소문으로는 그 동양인 되게 화끈한 성격 같은데?”
“글세...? 생각보다는 평범한 인상의 청년이었지. 특별하게 특출나는 점도 보이지도 않았고 그 나이 때의 성공한 연예인들처럼 거들먹거리거나 특별하다고 유별 떠는 성격도 아닌 듯싶더군. 소문처럼 야심가도 다혈질의 기질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담백하더군.”
“뭐야? 아시아인 특유의 실력 좋은 성실한 샌님 스타일인 거야? 쳇! 그럼 실망인데? 재미없어지잖아.”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
“응? 평범하다며?”
“예전보다 감이 무뎌졌군. 생각해보게 닉.”
조금은 실망한 표정을 지닌 닉.
나이가 들면 둔감해져 더욱 큰 자극을 원하게 된다고 하더니 닉이 딱 그런 유형이었는데 로빈은 그를 바라보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자기 조국을 떠나 미국에서 연예계 활동을 하는 청년이야. 평범하게 보인다는 게 뭐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젠장 또 뜬구름 잡는 화법이냐? 로빈 말장난 그만하고 말할 게 있으면 얼른 말해. 역시 뭔가 굉장한 무언가가 있는 거지?”
“있지.”
“뭔데? 어서 말해 봐!”
근래 들어 쿵푸 영화와 홍콩 느와르에 푹 빠져있던 닉은 무언가의 기대감을 비추며 로빈을 재촉했다. 아마도 자신이 봤던 영화 속 아시안 스타의 매력과 신비를 도경에게 고대하는 것이 분명했다.
“욕심이 없는 점.”
“뭐라고?”
“그 청년 욕심이 없는 맑은 눈을 지니고 있었어. 어때 대단하지 않은가?”
“뭐, 그런 개똥 같은...! 지금 장난해? 이 업계에서 욕심 없는 게 장점이냐? 단점이지! 로빈 친구로서 경고하는 건데 너 불교 경전 그만 좀 읽어! 점점 수도승 같은 이야기나 하고 앉아있고 말이야. 요즘 네가 이상해지는 거 같아 불안하다고.”
“하하. 닉 자네와 달리 어른으로서 성숙해지고 있는 거니 걱정 안 해도 되네.”
“젠장! 그래서 그 카일이란 녀석이 대단하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그건...!”
“그건?”
“보면 알 거네.”
“야-!”
“하하하.”
자신을 향해 울려 퍼지는 닉의 곡소리에 로빈은 간만에 유쾌한 웃음을 지으며 좀 전에 한 청년과 나눴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보시면 압니다.』
물음에 답한 짧고 군더더기 없는 대답이 떠올랐다.
자신을 마주하며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리 대답하는 것도 놀라웠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청년의 눈에는 그 어떤 동요나 감정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그 청년은 어떤 연기를 보여줄까?”
평온과 여유로움이 가득한 맑은 두 눈동자.
그 맑은 눈동자에 다양한 감정들이 어찌 담길지 로빈은 자신도 모르게 기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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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장:숲속]
거물에게 인상 깊은 각인을 남겼던 도경. 그는 현재에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상 깊은 모습을 남기고 있는 중이었다.
“다시-! 동작이 아직 가벼워요. 좀 더 묵직하게 부탁드립니다! 한 번 더 다시 맞춰보도록 하겠습니다.”
“감독님 저 동양인 정체가 대체 뭡니까? 정말 가수 출신 맞아요? 아시아에서 온 액션배우 출신은 아니고요?”
“묻지 마라. 나도 저 자식이 뭐 하는 놈인지 이젠 모르겠다.”
“......”
험상궂은 남자들 사이로 열심히 칼을 휘두르며 동작을 취하며 그들을 진두지휘하는 도경의 모습은 그야말로 자연스러우면서도 이질적이기 그지없어 맥 클라우드 감독과 보조 조연출 감독은 혀를 내두르며 이 요상한 광경을 그저 멍하니 지켜볼 뿐이었다.
“감독님 이거 좀 곤란하지 않아요? 얼떨결에 새로운 합을 짜긴 했는데 이거 난이도가 높은데요? 연습시간도 충분치 않고 좀 더 동작을 간편하게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러기엔 시간이 모자라. 이런, 너무 기분 내버렸나 봐. 카일 군 좋은 합을 쫘줘서 고맙긴 한데 이거 생각해보니까 곤란하다. 숙지할 시간도 모자라고 합이 안 맞으면 부상을 입을 수 있어.”
“괜찮습니다. 제 운동신경 좋은 거 보셨잖습니까.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래도 이건 좀...”
“감독님! 못하면 모르겠는데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할 거면 제대로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런 합을 짤 기회가 흔치 않으신 거 아시죠?”
“음...”
맥 클라우드 감독과 보조감독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넋을 놓고 있을 때.
액션 장면을 전문으로 맡는 마샬아츠 스턴트맨들은 도경과 함께 모여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하더니 이내는 마지막 결정을 앞두고 고민에 빠져있었다.
“허. 어려 보이는데 똑 부러지는걸.”
“그러게 말이야. 생각지도 못하게 재밌는 일이 되었는데? 다들 어떻게 생각해?”
“개인적으로 나는 새로 바뀐 액션씬이 좋다고 생각해. 게다가 저 배우 운동신경이면 가능할걸? 아까 손발 맞춰 봤는데 진짜 반응 장난 아니더라.”
“음... 그래도 실전에선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문제잖아. 게다가 티저 촬영인데 무리해서 촬영할 필요는 없고 말이야. 그걸 아니까 감독도 고민하고 있는 거겠지.”
“쩝, 그것도 그러네. 그래도 아깝긴 하다. 지금 만든 대로 하면 되게 멋있는 그림 나올 것 같은데 말이야.”
“그것보다 저 배우 정체가 궁금하지 않아? 아무리 운동신경이 좋다고 해도 아까건 진짜 말이 안 되는 거잖아.”
“맞아! 진짜 보면서도 믿기지 않더라.”
모두가 감독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을 때. 스턴트맨들은 도경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어째 그들의 모습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상기되어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가 자신이 원하던 물건을 바라보는듯한 모습이었는데 그 모습을 토대로 추측건대 도경이 무언가 저지른 것이 분명한 듯싶었다.
‘도대체 이 배우는 뭘까?’
콩닥콩닥.
무술감독이자 스턴트 팀을 맡은 지미 버틀러는 갑자기 나타난 불가사의한 배우의 존재에 매우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평범한 인상. 서양인보다 어리숙한 앳된 모습에 도경이 자신들이 가져온 동작을 잘 소화해 낼 수 있을까 처음에는 미심쩍어했지만, 그런 생각은 30분 채 되지 않아 박살 나고 말았다.
자신들이 이틀 밤을 밤새워서 준비해온 동작을 한 번에 모조리 습득하고 완벽하게 합까지 맞추는 괴물 같은 능력을 목격한 순간의 온몸을 올라오는 전율은 분명 평생을 가더라도 잊지 못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모두가 저리 상기되어 있는 거겠지.’
힐끔.
자신을 향해 기대하며 무언가를 갈구하는 자신들의 팀원들을 보며 지미 감독은 더욱더 고심에 빠졌다. 뭐에 홀린 것처럼 도경과 함께 새로운 합을 짰지만, 지금의 상태로 급조해서 만든 난도 높은 새로운 합을 촬영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감독으로서 생각해 봐야 했다.
부상과 사고가 일어나는 액션씬. 훌륭한 그림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팀원들과 배우의 안전을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이 무술 감독인 그가 지켜야 할 첫 번째 소양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원래 하던 대로 하는 게...”
“그건 안됩니다.”
“음? 카일 군?”
더 나은 그림을 만들고 싶은 이상과 현실적인 리스크 사이에서 고심하다가 이내 안전을 택하는 지미 감독의 결정을 도경이 중간에 단호히 막아 나섰다.
“지미 감독님은 지금 이 티저 촬영이 워밍업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저에겐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촬영입니다. 한 번 더 생각해주십시오.”
“...!”
왕좌의 길 드라마에서 활약할 주연 캐릭터들을 각각 소개하는 티저 촬영.
그중에서 치열하게 난투를 벌이는 액션씬을 찍는 배우는 현재 도경밖에 없었다. 보통이라면 첫 촬영부터 자신만 빡센 촬영장면을 찍는다고 부담을 갖거나 투덜거릴 수 있지만, 도경은 그것을 오히려 기회로 보고 있었다.
‘맨 처음부터 강력한 임팩트를 남길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지!’
국민 대배우로 인정받는 『로빈 행크스』, 차세대 하이틴 스타로 떠오르는 『잭 스미스』와 『스캇 드바로』 그리고 그 이외에도 쟁쟁한 주연 배우들 사이에서 묻히지 않기 위해선 지금은 안전보다 도전을 택해야 할 때라고 도경은 생각하고 있었다.
‘드라마에 영향력을 펼치기 위해선 지분을 미리 확보해 둬야 해.’
미국이란 나라는 결과 위주의 냉혹한 정서가 깔린 나라.
처음부터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아야 권한을 행사할 수 있고 그 권한을 얻어야 도경이 개인이 아닌 드라마 전체의 성공을 위해 영향력을 펼치며 활약할 수 있었다.
자신이 아닌 드라마의 미래를 위한 전략적인 판단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도경의 생각과 달리 지미 감독은 도경이 의욕이 너무 앞선 나머지 그가 과욕을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워밍업이라...! 카일군 그건 좀 듣기 그렇군. 이 합은 우리도 공들여 준비해 온 거야. 의욕은 좋지만, 과욕은 곤란해. 특히나 이런 액션씬은 더욱더 말이야. 우리도 난도 높은 합을 짜지 못해서 지금의 합을 가져온 게 아니야. 여기서 급조한 합으로 카일군이나 우리 팀이 부상을 입으면 얼마나 난감할지 생각은 안 하나? 앞으로 받아야 할 훈련은 물론 촬영에 전체적인 지장이 올 수 있는 부분이란 말이야! 그런데도 그렇게 욕심을 부리고 싶나?”
워밍업이라는 말에 지미 감독의 도경에 대한 호감은 어느새 거북함과 노함으로 바뀌었다.
지미 감독이 준비해온 합은 배우를 생각하고 첫 촬영단계를 생각해서 섬세히 짜온 합이었다. 그런데 배우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해 워밍업으로 치부하는 것에 기분이 썩 좋지 않은 것이었다.
“지미 감독님이 짜온 합을 폄하 할 의도로 말한 게 아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꾸벅.
“그래. 알았으면 됐네. 나도 배우들이 첫 촬영을 앞두고 의욕이 과다하게 들어가는 걸 이해... 응?”
“하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스으윽.
“어, 어!?”
하지만 지미 감독의 불쾌했던 기분은 오래 가지 않았다. 노한 자신을 향해 도경이 순순히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말을 사과해왔기 때문이다. 그런 도경을 보면서 지미 감독은 배우로서의 처지를 이해한다며 도경과의 지금의 트러블을 좋게 마무리하려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잠깐! 카일 군. 지금 뭐 하는 건가?”
“부탁드리는 겁니다.”
“아, 아니. 이렇게 막무가내인 부탁이 어디 있나? 사람들이 보잖나! 그만둬!”
지미 감독은 경악하고 모두가 놀란 눈으로 도경을 바라보았다.
무명에 가깝게 커리어가 짧더라도 명색이 주연 역할에 발탁된 배우다. 그런데 그런 배우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체면 불구하고 고개를 90도 가까이 숙이며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부탁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모두가 도경의 행동에 수군거리고 있을 때. 한 노인은 알 수 없다는 눈빛을 띠며 도경을 지켜 보고 있었다.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거지?”
그 노인의 정체는 호언장담한 도경의 연기를 지켜보러 온 왕좌의 길 원작자인 고든 작가.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고든 작가는 아무 말 없이 깊숙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도경을 바라보면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