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화
첫 촬영을 시작으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역시 미국이라고 할까? 근무 환경에 관한 근로 계약이 엄격한 만큼 촬영 현장은 공장처럼 철저하게 효율 위주로 돌아갔다. 얼핏 들으면 촬영현장이 빡빡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의외로 촬영현장은 배우들에게 여유롭게 돌아갔다.
“흐아암~.”
부르르.
촬영장 야외 테라스 벤치에 앉아 촬영장에 제공되는 샌드위치를 으적으적 씹어 먹으며 입이 쩍 벌어지게 하품을 하는 도경을 보자니 이를 알 수 있었다.
“긴장감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군. 너무 풀어진 거 아니냐?”
“어, 맥 감독님?”
햇볕을 쬐며 한량 백수처럼 팔자 좋게 앉아있는 도경의 뒤로 들려오는 걸걸한 목소리. 도경은 고개를 돌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랜만에 뵙네요.”
“그런가?”
“첫 촬영. 이후 지금 처음 보는 건데 오랜만이죠. 드라마 잘 촬영되고 있는 거 맞아요?”
“누구한테 하는 소리냐? 걱정할 걸 걱정해라.”
“뭐, 상황을 알 수 없으니 그렇다는 거죠.”
도경이 미국 드라마를 촬영하면서 느꼈던 가장 신기해했던 점은 작품을 촬영하면서 제작자. 즉 프로듀서이자 메인 감독의 직함을 맡은 맥 클라우드 감독을 현장에서 보는 일은 드문 일이라는 것이었다.
드라마 전반 감독과 작가가 일일이 현장을 따라다니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에피소드마다 따로 수많은 작가와 연출자 감독들이 달라붙어 드라마를 공동작업을 만드는 시스템 덕분이었다.
“이곳 시스템이니까. 익숙해지라고.”
“지금 제 모습 안 보여요? 적응하다 못해 여유를 만끽하는 중입니다.”
“정신 나간 녀석.”
두 팔을 벌리며 햇빛을 받아들이는 도경을 보며 맥 클라우드 감독이 헛웃음 지었다.
“나야말로 네가 촬영 잘하는지 의심스럽구나.”
“제 소문 못 들었어요? 퍼펙트 맨? 앞으로 P맨으로 불러주세요.”
“그거 너가 밀어 붙이는 거라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냐? 듣는 내가 낯 뜨거워지더라.”
“왜요? 멋있지 않아요?”
“왜? 아주 슈퍼맨이라고 하지?”
“그건 저작권에 걸리잖아요.”
“퍼펙트맨은 그럼 없을 것 같냐? P맨 이라니... 유치하다 못해서 끔찍한 센스야. 초등학생도 그렇게는 안 짓는다고? 당장 그만둬.”
촬영을 마칠 때마다 자신을 퍼펙트맨이라 지칭하는 도경의 괴짜 행동은 스태프들 사이에 많이 화자 되고 있었다. 한시라도 관심을 끌지 못하면 무슨 병에 걸린 것인 걸까? 맥 클라우드 감독이 도경을 향해 한심하다는 눈빛을 보내었다.
“아, 오랜만에 보는데 무슨 잔소리에요. 이게 다 이미지 메이킹이니까 내버려 둬요. 미국에선 이런 게 먹히잖아요.”
“너 도대체 우리나라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거냐?”
“겸손보단 자기PR이 능력이 중요한 나라 아니에요? 인터넷에 떠도는 글인데 미국에선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박수받을 수 있다는 글도 있다고요.”
“뭐, 그런 지저분한 글이 있어? 그딴 이상한 글 읽지 마라.”
도경의 말에 맥 클라우드 감독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뭐 정상적인 대답이 안 나오리라는 것은 예상했지만 이렇게 노골적인 대답을 들을 줄은 생각 못 했다.
“왜요? 나름대로 일리 있는 말 아니에요?”
“빌어먹을 놈아. 너는 똥 싸는 거 가지고 박수받을래?”
농담인 것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맥 클라우드 감독의 얼굴에 짜증 어린 기색이 서렸다. 도경 때문이 아닌 그 말을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짜증이었다.
‘쓰레기들 천지지.’
세상에서 제일 화려한 만큼 제정신이 아닌 곳이 이 바닥이었다. 유명세와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저지르는 미친놈들 많았고 인터넷의 발달과 SNS의 등장은 그런 놈들을 무분별하게 인기스타로 만들어 주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과시한다. 돈과 외제차는 물론 수많은 명품과 다양한 방법의 섹스 어필들을 통해 자신들이 성공한 화려한 삶을 전시하고 셀럽이 되어 다시 한번 몸값을 부풀 린다.
“도경. 넌 비싼 쓰레기 되지 마라.”
“비싼 쓰레기요?”
“몸값만 불리는 쓸모없는 것들 말이야.”
그것들은 비싼 거품이 잔뜩 낀 쓰레기였다. 안의 내용물은 볼 것도 없는데 쓸데없는 미사여구와 가치를 부여해 흰 도화지. 점 하나 찍고 수십억 받는 그림처럼 맥 클라우드 감독이 보기엔 그들은 그런 개똥 같은 존재였다.
“나는 그런 거 보고 싶어서 헤프닝을 벌여서 너를 도운 게 아니다. 알지?”
지그시.
“...감독.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예요?”
맥 클라우드 감독의 말에 도경이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었다. 무언의 압박감 같은 게 느껴졌다. 도경은 맥 클라우드 감독이 무언가 자신에게 원하는 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퍼펙트 맨이니, P맨이니 뭐니 우스꽝스러운 짓 때려치우고 제대로 보여보라는 거다.”
“갑자기 왜 그래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냐?”
“하실 말씀 있으시면 하세요.”
“그래. 그럼 물어보마.”
맥 클라우드 감독의 말에 도경이 입을 다물었다. 그것을 본 맥 클라우드 감독이 성난 눈빛으로 도경을 바라보았다.
“요즘 연기 그거 일부러 그러는 거냐?”
“그거 말씀하고 싶었던 거였어요?”
“그래. 그거 의도했던 아니던 당장 그만둬라.”
도경의 연기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굳이 따지자면 훌륭하다는 쪽이 옳았다. 안정적이고 준수한 연기를 펼쳤다. 그런데 딱 그 정도였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최고는 아니었다. 심장이 뛰고 몸에 전율이 도는 그런 연기가 아니었다.
“도경. 난 네가 그런 이상한 수작이나 부리는 걸 보고 싶었던 게 아니야. 가슴이 뜨거워지고 손에 땀이 쥐어지는 연기를 보고 싶었던 거란 말이다.”
맥 클라우드 감독은 실망스러운 눈빛을 지었다. 처음에 도경을 보았을 때는 정말 정신 나간 녀석이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도경이 펼치는 연기를 보고 나선 이 녀석은 진짜라 생각했었다.
작품에 대한 부담감과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렸던 자신이 이 녀석과 함께 일한다면 무언가 일을 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했었다. 한데 기막히게도 지금 그런 느낌이 도경에게서 싹 사라져 버렸다.
“그런 밋밋한 연기로 대체 뭘 하자는 거야? 고든 작가님하고 한 약속 잊은거야?”
“맥 클라우드 감독...!”
급작스럽게 뜨거워지는 맥 클라우드 감독의 열변에 도경이 그를 말 없이 바라보았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도 눈치채지 못했던 자신의 이상징후를 그 누구보다 빠르게 포착한 통찰력도 통찰력이지만 감독으로서의 뜨거움에 새삼스레 놀라고 말았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계산적이고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미국인이 이렇게 속내를 드러내고 뜨거운 모습을 내보일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만큼 작품에 대한 맥 클라우드 감독의 열의는 진짜였다.
“그걸로는 로빈 그 건방진 자식의 콧대를 눌러줄 수 없단 말이다!”
“...네? 행크스 씨는 왜요?”
“글쎄 그놈이...!”
골치가 아프다는 표정을 지은 맥 클라우드 감독은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뒷머리를 긁적이며 그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도경을 찾아온 이유는 로빈 행크스가 벌인 일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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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좌의 길 E2 #54 파이크 성 지하 감옥.(밤)」
베르닉 파이크 영주의 명령으로 지하 감옥에 불려 나온 아나긴. 감옥 안 철창 안에는 두려움에 떠는 어린아이들을 있었다. 아이들의 몸에 찍힌 문신을 보며 아나긴은 깨닫는다. 아이들은 베르닉 파이크 영주에게 역심을 품고 자신의 칼에 죽음을 맞이한 반동자들의 아이들이라는 것을.
아나긴: ......
베르닉 영주의 뜻을 이해한 아나긴은 망설였다. 아이들 사이에 자신을 따르고 있던 소녀 또한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나긴의 망설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는 영주의 검. 영주님의 뜻을 불복하는 것은 그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나긴은 철창의 문을 열고 감옥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소녀: 기사님...!
아나긴: 용서해라.
떨리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소녀를 향해 사과하며 아나긴은 조용히 검집에서 칼을 뽑아 든다.
F.O(Fade-out)
무언가를 베는 소리와 함께 울음소리와 비명이 울려 퍼진다.
「왕좌의 길 E2 #54.」
베르닉 파이크 영주의 잔인한 명령에 자신을 따르던 소녀를 향해 검을 겨누는 아나긴의 비정한 상황이 담겨있는 시나리오를 읽던 중년인은 웃음 지었다.
“좋은 씬 이야.”
베르닉 파이크 영주와 아나긴의 관계가 얼마나 수직적이고 잔인한 것인지, 자신을 따르던 소녀를 향해 칼을 망설이지 않고 휘두르는 아나긴이 얼마나 비정한 인물인지 잘 드러나 있는 장면이었다.
‘이건 그럭저럭으로 넘기면 안 되지.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기대되는군.’
큰 스토리 줄기에는 그리 큰 영향을 미치는 장면은 아니었지만, 캐릭터가 가지는 정체성과 감정에는 쉬이 넘길 수 없는 씬이었다.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를 위해서라면 배우로서는 어떻게든 살려야 하는 이 바로 이곳이었기에 도경이 아나긴을 어찌 연기할지 기대되었다.
“로빈. 지금 웃음이 나와? 맥 클라우드 감독이 못 마땅해하는 얼굴 못 봤어?”
혼자서 웃음 짓고 있는 중년인의 정체는 로빈 행크스. 그런 로빈의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매니저 닉은 한숨을 내뱉으며 투덜거렸다.
“뭐가 문제라도? 난 배우로서 더 나은 작품을 위해 의견을 내놓았을 뿐이야. 게다가 조그마한 신 아닌가. 조금 바뀐다고 별로 걱정할 거 없어.”
“맥 클라우드 감독 성격 몰라? 자기 작품을 남이 터치하는 걸 죽을 만큼 싫어하는 위인이야. 아무리 너라도 이를 갈고 있을걸?”
강한 히스테리를 부리는 만큼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맥 클라우드 감독은 자신이 인정한 각본가 이외에 다른 사람이 자기 작품을 터치하는 것을 죽을 만큼 싫어했다. 그것은 배우라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로빈은 그 일을 스스럼없이 저지르고 말았다.
“괜찮아. 다른 각본가들은 좋다고 해줬잖나.”
“나는 맥 클라우드 감독을 이야기하는 거야. 그 양반 뒤끝 장난 아니라고? 솔직히 그렇게까지 해서 시나리오 수정을 요구할 필요가 있었어?”
“말했잖나. 작품을 위해서라고 말이야.”
“좀 전에 네가 말하지 않았어. 자그마한 씬이라고. 그것도 네가 출연하는 씬이 아니라 그 카일이란 녀석이 출현하는 씬이란 말이야.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맥 클라우드 감독에게 시나리오를 수정을 요구한 로빈의 행동을 닉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출연하는 씬도 아니고 도경이 출현하는 씬을 수정하기를 요구하는 행동은 평소의 그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신경 쓰여서 말이야.”
“뭐?”
“깔짝깔짝 스쳐 지나가기만 하는 게 너무 감질나서 말이야. 은근 사람을 달아오게 만들더라고.”
“너...?”
로빈의 대답을 들은 닉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하니 이 도로 그 동양인 배우를 신경 쓸 줄은 생각을 못 했기 때문이다.
“뭐, 아쉬운 사람이 먼저 움직여야지 뭐 어쩌겠나.”
“...!”
본격적인 촬영을 시작했지만, 도경과 제대로 연기를 펼치고 겨뤄볼 씬이 없어 아쉬웠던 로빈은 결국 스스로가 움직이는 선택을 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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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들 준비해 주세요~!”
수많은 씬 중에 변경된 하나의 씬. 도경과 로빈이 부딪히는 날은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다.
“Acition!”
탁!
[왕좌의 길 E2 #57]
촬영할 에피소드의 신 넘버가 적혀있는 검은색의 슬레이트가 슬레이트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와 동시에 한 청년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장난기가 담겨있었던 표정이 사라지고, 반짝이던 눈빛은 어두움을 담으며 느슨해진 몸은 절도를 담아 앞을 향해 묵직한 걸음을 옮긴다.
저벅, 저벅.
어두운 감옥 안에서 횃불에 의지한 채. 걸음을 옮기는 사내는 어딘가 음울하면서도 날이 서 있는 느낌이었는데 어딘가 위험한 느낌이라 눈을 뗄 수가 없다.
걸음을 옮길수록 어두운 배경에 녹아드는 사내를 보며 맥 클라우드 감독은 감탄사를 내뱉는다.
“그래. 저거지. 저런 걸 원했어.”
중얼.
순식간에 자신의 모습을 지우고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여 특별한 존재로 탈바꿈하는 순간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는 건 언제봐도 전율이 돋았다. 연기라는 게 그런 것이겠지만 도경은 그 정도가 심하게 느껴졌다.
‘그나저나. 정말로 연기의 텐션을 의도적으로 조절하는 거였군.’
젊고 재능이 넘치는 존재들이 순식간에 평범해지는 경우를 많이 봤던 탓에 혹시나 했던 기우가 있었는데 다행히도 맥 클라우드 감독의 그런 걱정은 단순한 기우로서 그쳤다.
단순한 걸음걸이였지만 지금껏 촬영하면서 보여왔던 연기와는 질적으로 다른 연기를 도경이 펼치고 있다는 것을 맥 클라우드 감독은 알 수 있었다.
눈빛, 호흡, 미세한 몸짓을 조절하며 수많은 신호를 통해 전달해오는 도경의 정보가 카메라를 통해 느껴졌기 때문이다.
‘정말 괴상한 녀석이야.’
저만한 연기가 가능하면서 일부러 내보이지 않을 수 있다니 맥 클라우드 감독은 도경을 향해 혀를 내둘렀다.
가지고 있는 것을 내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그것도 한 씬, 한 컷에 목을 매다는 신인 배우의 입장에선 더욱이 그러할진대 도경은 자신의 전부를 보이지 않는다는 이해하기 힘든 선택을 택하였다.
‘뭘 보여주고 싶은 거냐?’
알면 알수록 해괴망측한 존재에 맥 클라우드 감독의 시선은 카메라를 따라 단단하게 고정되었다.
자신의 배우가 무슨 의도를 지니고 있고 무엇을 원하는지 감독으로서 파악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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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크 성 내부(지하 감옥)』
“영주님이 보내서 왔다.”
“기다렸습니다. 들어 오시죠.”
끼이익!
“....”
어두운 복도를 걸어 도착한 지하 감옥의 입구. 그곳을 지키고 있던 한 명의 꼽추 노인이 아나긴을 확인하고는 예를 올리며 굳게 닫혀있던 철창문을 열어 그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말 없이 어디론가 걸음을 옮기던 둘. 꼽추 노인은 이내 걸음을 멈춰 서더니 손가락으로 어느 한 방향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저는 여기까지입니다. 제가 가리킨 방으로 가시면 됩니다.”
“그곳에서 내가 뭘 하면 되지?”
꼽추 노인의 말에 아나긴은 고개를 돌려 굳게 닫힌 철문을 발견하더니 꼽추 노인에게 자신이 무엇을 할지 물었다.
이곳에 오라는 언질만 들었지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저 방에 들어서신다면 자연스레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럼 소인은 이만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꾸벅.
“...”
“클클클.”
가면 알게 될 거라는 영문을 알 수 없는 꼽추 노인의 말도 걸렸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향해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면서 사라지는 그 행동이 마음에 걸렸다.
‘꺼림칙한 느낌이 들어...’
두근두근.
꼽추 노인이 가리킨 철문과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무언가 알 수 없는 불길한 느낌에 아나긴의 안색이 알게 모르게 굳어져 갔다.
철컥! 끼이익~.
얼마 지나지 않아 굳게 닫혀있는 철문에 도착한 아나긴은 걸음을 멈추고 조심스레 철문을 열며 긴장된 시선으로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아이들?”
‘여기에 웬 아이들이? 아니, 저 아이는...!’
철문을 열자 방 안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들을 발견한 아나긴은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낯이 익은 소녀를 발견하고는 석고상처럼 얼어붙었다.
“늦었구나. 아나긴.”
“...!”
오싹!
알 수 없는 불길한 느낌에 조용히 뛰고 있던 아나긴의 심장이 아예 얼어붙고 말았다. 예상치 못한 인물이 어둠 속에서 등장하며 그를 맞이한 까닭이었다.
“많이 기다렸다.”
“...영주님.”
베르닉 파이크.
자신의 주인이자 생살여탈권을 지닌 인물의 등장에 아나긴의 안색은 어느새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