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323화 (323/357)

323화

[To be continue...]

“Shit! 아나긴이 죽는 거야?”

검은색 화면에 떠 있는 금색의 자막을 바라보며 왕좌의 길 드라마를 보고 있던 시청자들은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내뱉었다.

스캇 드바로가 연기하는 롭 라즐리온이라는 새로운 캐릭터 등장과 마지막에 가슴에 칼에 찔려 고개를 떨구던 아나긴의 모습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리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진정해 셀든. 설마 죽겠어? 보니까 비중 있는 주연 같던데 어떻게든 살겠지.”

“아니. 가슴에 칼이 푹하고 찔렸잖아. 저게 어떻게 살아? 저 동양인 제작진한테 작가한테 밑 보인 거 아니야? 저대로 리타이어 되는 거 아니야?”

“그럴지도. 맥 클라우드 감독 성격 괴팍하기로 엄청 유명하니까 말이야.”

“아, 안돼!”

같이 드라마를 보던 잭의 말에 그 친구는 대답을 쉽게 하지 못했다. 사실 드라마가 방영 중에 캐릭터가 갑자기 죽거나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는 일은 그리 낯설지 않은 일이었다.

출연 배우가 제작진과의 마찰을 빚는다거나, 사건이나 사고를 일으키는 경우 가차 없이 그 배우를 없애버리거나 교체하는 것이 미국 드라마에선 비일비재했기 때문이었다.

“에이. 그래도 아니겠지. 깔아 놓은 장면들이 그리 많았는데 그렇게 쉽게 죽이겠어? 너무 걱정하지마 셀든.”

“그, 그렇겠지?”

“참 내, 그 동양인이 배우가 그리 좋냐?”

“동양인 배우가 아니라. 카일이란 이름으로 불러라! 멋있는 스타라고 존중 좀 해주지 하워드?”

“쯧. 완전 푹 빠져 버렸네. 누가 보면 네가 그 동양인 열성 팬인 줄 알겠다. 사실은 안 지 일주일 채밖에 되지 않았으면서 말이야.”

“얼마나 알게 되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거든? 정말로 중요한 건 덕질할 가치가 있냐 없냐일 뿐.”

『오타쿠』, 『매니아』, 『너드』같이 무언가에 빠지고 집착하는 성향이 강한 이들이 열성 팬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상상 이상으로 빠르다. 생각보다 높은 지능과, 사회 부적응적인 성격으로 남아도는 시간, 무언가에 집착하는 성향은 덕질하는 데 있어 최적화된 재능들이었기 때문이다.

“너희들도 카일에게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할거야.”

특히 매니악한 요소를 지니고 있으면 있을수록 그 재능들은 빠르게 발휘되는데 도경이 보여주는 결과물과 그가 일으킨 사건과 행보는 그것을 충족하는데 충분했다.

“미친 놈. 아주 맛이 간 소리 하고 있네. 여자한테 그렇게 좀 열 좀 올려봐.”

“뭐라고? 드라마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여자 얘기가 왜 나와?”

“징그러우니까 그러지. 여자도 아니고 남자 새끼를 그렇게 빠냐. 너 혹시?”

“하하하. 하워드. 셀든 좀 그만 괴롭혀. 솔직히 아나긴 멋있긴 하잖아. 동양인이 저렇게 카리스마있게 연기하는 건 솔직히 나도 처음 보는 거 같아.”

“뭐, 그렇긴 하지. 누가 보면 주인공인지 알겠던데? 이러다 잭 스미스 찌그레기 되는 거 아닌지 몰라?”

“아직은 초반이니까 모르지. 그나저나 이번 에피소드는 어떻게 봤어?”

“최고였어. 저번 에피소드에 나왔던 일대다 액션도 좋았지만, 이번 일대일 액션 씬은 개인적으로 최고였어. 캐릭터들의 개성의 차이를 둔 전투씬 봤어? 액션 감독에게 상을 주고 싶은 심정이야.”

씨익.

이번 에피소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세 명의 너드. 그들은 각자의 취향에 집중해서 얻은 재미를 서로 공유하기 시작했다. 일반인들과는 대화를 못 하지만 같은 카테고리에 속한 이들에게는 그 누구보다 이야기를 많이 말하는 이들이 그들의 종특이었다.

“난 그것보다 아나긴이 처한 상황이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해. 윈터플 영지에서 카이언인은 백인에게 지배당했던 흑인의 사회상이 투영됐다고 생각해. 아나긴은 흑인이지만 백인의 편에서 흑인을 박해하는 입장인 거지.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해.”

“레너드. 무슨 드라마를 보는 역사학 공부하냐? 가볍게 머리를 비우고 보라고. 판타지 특유의 피튀기는 액션이 전해주는 원초적인 감각을 맛보라고. 그런 식으로 머리 아프게 보기에는 이 드라마는 아까운 드라마라고?”

“하워드. 네가 액션 광인 건 알지만 이번만큼은 그 말에 동의할 수 없군. 왕좌의 길에서 액션은 부수적인 거라고. 이 작품이 얼마나 많은 걸 시사하는지 모르겠어? 피부와 생김새가 다른 자식을 낳는 카이언인의 설정과 동양인을 주연으로 쓴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이 작품의 재미는 디테일한 작품성 때문이야.”

“액션이 부수적이라고? 오, 레너드 어떻게 그런 무지한 말을?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이 담긴 액션이 어떻게 부수적일 수 있어? 액션이야말로 진리라고 그 이외에 나머지는 다 그럴듯한 상황 연출인 거고 말이야. 머리 굴려 가며 골치 아프게 볼 거면 그냥 역사책을 보지 드라마를 왜 보겠어? 왕좌의 길이 재밌는 건 기사들이 벌이는 긴박감 넘치는 액션 때문이야.”

“웃기시네. 그럼 칼싸움만 1시간 내내 보게 하면 돼지? 스토리텔링이 왜 있겠어? 작품이 작품인 이유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라고 친구.”

“액션에 무지한 소리 하고 있네. 너는 섹스할 때 피스톤 질만 한다고 그게 섹스라 생각해? 그런 게 진짜 액션일 리 없잖아. 오케스트라처럼 모든 것을 고조시킨 완벽한 상황 속에 다이너마이트처럼 터트려 주는 게 진짜 액션이라고.”

“쯧...! 대가리 빈 액션광 새끼란 무슨 말을 하겠냐.”

“흥! 나도 허세 부리기 좋아하는 진지충 같은 너랑 이야기하고 싶지 않네.”

갑자기 의기투합하며 왕좌의 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두 너드가 의견의 차이로 언성을 높이며 말다툼을 벌이다. 냉전 상태에 돌입했다. 좀 전에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어디로 가고 순식간에 철천지원수처럼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모습은 쉬이 이해하기 힘들었다. 같은 작품을 재밌게 봤으면 된 거지 이렇게까지 싸움을 벌일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쯧쯧쯧. 어리석기는 너희 둘 다 틀렸어.”

“뭐?”

“뭐야? 러셀?”

그런 두 사람의 냉전에 조금 전부터 말없이 조용히 있던 한 명의 친구가 혀를 차면서 두 사람이 틀렸다고 후반 진입을 해왔다. 사실 왕좌의 길 코멘트를 남기느라 참여하지 않았던 것이지 그 또한 할 말이 많았던 것이었다.

“왕좌의 길 작품의 묘미는 방대한 세계관과 그 안에 살아 숨 쉬는 캐릭터라고 액션이니 작품이니 캐릭터가 매력 없으면 무슨 소용이야? 안 그래?”

“하아. 이런 찐다들하고 내가 무슨 작품을 논하겠어.”

“러셀 주제에 잘난 척하지마! 그리고 레너드 너 지금 우리보고 찐다라고 했냐? 찐다라고 너 이번 학기 학점 얼마나 받았어?”

냉전은 깨지고 다시 새로운 전쟁이 발발했다.

자신들을 애호하는 취향이 확고한 너드(nerd)들이란 이런 족속들이었다. 자기들끼리 의기투합하다가 별것도 아닌 것에 철천지원수처럼 언성을 높이고 화를 내며 싸우는 정신없는 녀석들이었다.

드라마 하나로 이렇게 싸우는 그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쿨하지 못한 얼뜨기들 그 자체였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왕좌의 길은 재미있는 작품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그 누구보다 절조와 지조를 지키며 엔간한 것에 반응하지 않는 그들이 이만큼 열성을 토해낸다는 것은 그만큼 왕좌의 길이 재미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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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치 않은 이야기 서사가 담긴 작품 ‘왕좌의 길’]

[인종 간의 끝나지 않는 악순환이 담겨 있는 곳. ‘그래야만 하는 곳’ 윈터플 영지의 모습은 미국 내의 자화상이 담겨있어.]

[악몽의 흑기사 아나긴과 복수의 화신 롭 라즐리온의 3분간의 숨 막히는 대결.]

[방대한 세계관이 놓치지 않은 리얼리티와 디테일. 그리고 흥미로운 소재 카이언인.]

[매주 목요일 밤 10시에 주목해야 하는 작품...]

취향이 확고한 까다로운 너드들의 반응을 끌어낸 왕좌의 길은 너드들과 종이 한 장 차이로 비슷한 저널리스트들에게도 뜨거운 반응을 끌어내었다.

각종 드라마를 다루는 웹 매거진에서 일하는 저널리스트들이 왕좌의 길을 눈여겨 보며 그에 관한 기사들을 쓰기 시작했다.

왕좌의 길 [SNS]

┗[스캇 드바로 포스 지렸다. 야성적인 매력이 이번에 포텐 제대로 터지더라.]

┗[잭 스미스 이대로 괜찮냐? 왕좌의 길. 진 주인공인 아서 파이크보다 주변 캐릭터 존재감이 너무 센데?]

┗[괜찮지 않을까? 연기를 못하는 것도 아니고 극 초반이라 후반에 존재감이 나올 듯.]

┗[그나저나 아나긴 함정에 빠져서 제대로 당했네요. 화살에 맞고 의식을 잃고 아서도 습격받는 것 같던데 어떻게 될지 너무 궁금함.]

┗[원작 읽었는데 스포해 드려요?]

┗[하면 집 찾아가서 죽일 거임. 스포는 8대죄악중 하나임.]

┗[ㅋㅋㅋ 8대 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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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n]

부조실(Control Room)

방송국 안에서 방송을 실시간으로 내보내는 것을 확인하며 모든 것을 조정할 수 있는 장소. 그곳에서 구석진 자리에 자리를 지키고 있던 방송직원 중 하나가 미국 내에서 방영한 왕좌의 길에 대한 반응을 살피며 소리 나지 않게 휘파람 불었다.

“이야 현지 반응들 괜찮은데요? 다음 화도 기대해봐도 될 것 같아요.”

“그래? 다행이다. 하긴 그 드라마 기막히게 잘빠지게 만들었더라. 퀄리티가 무슨 영화 수준이던데 처음 영상 받았을 때는 영화를 잘못 받은 줄 알았다니까.”

“저도요. 아, 이런 건 이곳에서 보는 게 아니라 집에서 치맥 뜯으면서 봐야 제맛인데 아쉽다니까요.”

미국에서는 목요일 10시, 한국에서는 금요일 11시.

한국과 미국의 13시간의 시차를 두고 각자의 왕좌의 길이 방영되고 있을 때. 참을성 없는 Jtbn 방송직원이 한국에서 다음 주에 방송할 에피소드의 반응을 미국 내 현지 반응을 통해 미리 확인하며 자신의 선배와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쉿! 다들 조용히 안 해? 국장님 드라마 보시는 데 방해되잖아.”

“죄송합니다...! 쯧.”

“거, 참 까탈스럽네요. 방해는 황 PD님이 더할 거 같은데 말이에요.”

“누가 아니래냐? 여기까지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도끼 눈을 뜨며 잡담을 나누던 방송직원을 꾸짖는 PD를 향해 두 사람이 대답하지만 이내 짜게 식은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몰래 흉을 보기 시작했다. 국장과 CP 주변을 똥파리처럼 맴도는 그 선배 PD의 행태는 자신들보다 드라마를 보는 데 방해되면 더 됐지 못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국장님하고 김철순 CP님까지 여기 와서 드라마를 보다니. 그 박도경이 대단하긴 한가 보네요. 한시도 눈을 안 떼고 드라마를 보고 있네요.”

“듣기로는 HBA와 계약할 때 꽤 출혈이 큰 조건으로 계약했다고 하더라구 그만큼 거는 기대가 크다는 거겠지.”

“다 좋은데 매 편마다 보러 오지는 않겠죠? 너무 숨 막히는데...!”

“설마. 오늘 첫 방만 오시는 거겠지. 그런 끔찍한 소리는 하지 마라.”

왕좌의 길 1편이 끝났음에도 긴장을 풀지 않고 연속으로 이어지는 2편을 바라보는 국장의 모습은 비장하기 이를 데 없어 부조실 분위기가 묘한 긴장감에 무겁기 그지없었다.

그런 분위기를 모르지 않을 국장이었지만 그는 망부석처럼 왕좌의 길 드라마를 지켜볼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게 무리해서 계약을 맺은 드라마인데 막상 긁어서 꽝이 나온다면 그 손해와 책임은 막중하기 때문이다.

[To be continue...]

1, 2편 연속 방영한 2시간의 길었던 드라마가 드디어 끝을 알려오고 그 순간 모두가 숨을 죽이고 국장을 향해 시선을 보내었다. 국장인 그가 애써 내뱉지 않은 말이 나올 타이밍이 지금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청률.”

크흠!

“드라마 시청률은 얼마나 나왔나?”

긴장감에 약간은 떨리는 목소리. 기이한 열기가 담긴 눈빛으로 Jtbn 국장은 자신의 옆에 있는 CP를 바라보며 왕좌의 길 시청률을 물었다.

“그게...”

꿀꺽.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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