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화
[HBA 전략본부 실]
“첫 방송에 13%라. 정말 예상치 못한 성적이군요. 인구 비율을 따졌을 때 4,500만 명이 드라마를 시청한 수치인데 한국은 케이블 방송이 인기가 많나요?”
“최근에 인기를 끌고 있는 흐름은 있지만, 아직 까지는 공중파보다는 못하는 실정입니다. 이번 일이 이례적인 일인 겁니다. 케이블 첫 방송 드라마 중 왕좌의 길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하니까요.”
“그렇단 정말 의외의 복병이 아닐 수 없군요. 이만한 결과를 내다니 카일 그 친구 브랜드 파워가 대단하군요. 정말 예상외에요.”
“그렇습니다. 저도 이 정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후후후. 이제는 그 동양인 친구가 복덩이처럼 느껴질 정도군요.”
기대보다는 우려를 샀던 동양인 주연의 배우가 설마 다른 나라의 시장을 뚫는 돌파구가 될 줄 아무도 예상 못 했으리라. 예상도 못 한 곳에서 돈을 발견한 기분이 바로 이런 것일까? 생각지도 못한 행운을 누리는 기분이었다.
“참, 특이한 나라에요. 이런 조그마한 나라에서 이만한 화력을 보여오다니 말이죠.”
드라마를 방영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수많은 움짤과 코멘트들을 생성해 내는 한국의 상황을 보며 모레츠 여사는 웃음 지으며 말했다.
“맞습니다. 듣기는 했지만 정말로 독특하기 그지없더군요. 실시간으로 반응들이 빠르게 일더니 주변에 즉각적으로 퍼지는데 왜 영화 관계자들이 한국 시장을 왜 눈여겨보는지 이번에 알겠더군요. 이번 왕좌의 길이 좋은 성적을 걷는다면 한국은 우리에게 좋은 시장이 되어줄 겁니다.”
한국은 미국에 비하면 조그마한 나라지만 음악, 영화, 드라마, 게임 같은 수준 높은 콘텐츠들을 많이 배출하며 수준 놓은 문화생활을 향유하고 있는 나라였다. 게다가 정보를 습득하고 트렌드에 민감한 감각을 가진 만큼 운과 타이밍이 맞아떨어지면 어마무시한 화력을 선보였는데 HBA 전략본부팀은 이러한 현상을 지켜보며 향후의 계획들을 준비하는 중 있었다.
“좋은 시장이라. 듣기 좋은 소리이지만 우선은 국내에서의 성공이 우선인 거 아시죠? 이번 에피소드 반응은 어떤가요?”
조금은 들뜬 분위기에 모레츠 여사가 애써 우려를 표하며 브레이크 걸었다. 한국에서의 동시 방영은 성공했지만 그렇다고 아직은 마음을 놓을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네. 저희도 유념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에피소드 작품 반응은 이번에도 호평입니다. 시청률도 소폭 상승해 400만을 돌파했으니 이대로만 유지한다면 다음 시즌은 무리 없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좋군요. 그래도 긴장 풀지 않고 시청률과 시청자 데이터 분석에 힘써주세요. 이번 시즌에서 얻은 데이터를 다음 시즌 제작에 반영해야 하니까요. 잘 부탁드리죠.”
“네. 맡겨주십시오. 다만 한가지 ”
“뭔가요?”
“조금은 휴식을 취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네?”
단순히 시청률이 기록되어있는 그래프를 원하는 것이 아닌 직원들의 분석과 해석이 담겨있는 데이터를 요구하는 모레츠 여사에 전략본부팀 팀장은 힘이 담긴 대답을 하면서도 조심스레 모레츠 여사에게 휴식을 권하였다.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모레츠 여사님의 꼴이 말이 아닙니다. 이번에 한국에 직접 가셔서 계약 따내고 미국에 오자마자 철야로 일을 계속하셨지 않습니까. 그러다 몸이 못 버팁니다.”
“...그렇네요. 좀 휴식을 취해야겠어요.”
후우~.
휴식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엄습해 오는 피곤함에 모레츠 여사는 쓰고 있던 안경을 벗으며 안경 무게에 짓눌려 있던 콧대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한숨을 내뱉었다.
“정말 드라마는 살 떨리는 종목이에요. 아무리 뭘 해도 마음을 놓을 수 없어요.”
“하하. 모레츠 여사가 생각했던 거랑 많이 다르죠?”
“그래요. 이건 정말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주식 같아요.”
드라마는 종목은 한치의 답도 보이지 않는 주식과도 같은 종목이다. 그것도 한없이 불안정한 종목이랄까? 잘나가도 고꾸라지고, 고꾸라지다가도 잘나간다. 수많은 데이터를 모아 예상을 해보려 해도 너무나 쉽게 그 예상을 빗나가는 종목이다 보니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 능글맞은 놈들이 회장님을 부추기지만 않았으면 이 일을 맡지 않았을 텐데 정말 짜증 나는 일이에요.”
“사내정치라는 겁니까?”
“뭐, 그런 거죠. 사실 왕좌의 길은 회장님이 주도하에서 기획했고 임원들은 반대한 입장이었으니까요. 막말로 임원 모두가 왕좌의 길을 손대고 싶지 않아 했어요. 책임과 부담이 너무 컸으니 말이죠.”
처음에는 티저영상을 잘못 내보낸 일을 정리하기 위해 왔던 것이 어느 순간 왕좌의 길 드라마 마케팅과 유통을 맡으며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된 모레츠 여사였다. 그 이면에는 그녀를 신뢰해서 일을 맡긴 것보단 부담스럽고 위험한 일을 그녀에게 떠넘기기 위함인 것임을 예상해 볼 수 있었다.
“그거 씁쓸한 이야기군요. 드라마 제작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서운해할 겁니다.”
“어쩔 수 없어요. 누가 솔직히 누가 손대고 싶어 하겠어요? 1000억원을 투자한 드라마가 망하고 곧바로 800억을 투자한 블록버스터 드라마를 맡는 거는 누구나 피하고 싶을걸요?”
“제가 이 방송국에 들어오기 전에 방영했던 『생존자』 말씀이시죠? 그 드라마 때문에 방송국이 난리가 아니었다고 들었었습니다. 대대적인 물갈이가 있었다고...”
“맞아요. 자리를 내놓은 임원만 2명이나 되죠. 그리고 이번에는 제가 될 수도 있는 판이죠. 800억 투자비를 흑자로 전환하려면 아직 이 시청률은 많이 모자라니까요.”
톡톡.
경이로운 제작비를 입에 담으며 책상을 검지로 두드리는 모레츠 여사의 말에 팀장은 입을 다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800억을 투자한 드라마인데 400만이면 아직 많이 모자라겠죠. 사실 400만도 나쁜 성적이 아닌데 참 골치 아프군요.”
“골치 아프죠.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투자비를 회수하는 것으로만 만족할 수 없는 게 이번 드라마니까요. 본전치기만 한다면 사실상 실패나 다름없죠. 그 이상의 성적이 필요해요.”
“대박과 쪽박만 있지. 중박은 없다는 겁니까?”
“정확해요.”
끄덕.
사실 유로 케이블 채널에서 400만이면 절대 나쁘지 않은 시청률이다. 보통 드라마라면 지금 바로 후속 시즌을 제작할지 결정되기도 하는데 왕좌의 길은 워낙에 많은 제작비가 쓰이다 보니 좋은 호응을 얻고 있음에도 아직까지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 현재 상황이었다.
“큰 수익이 나려면 못해도 이번 시즌 피날레가 650만 이상은 되어야 할 겁니다. 이것도 한국이 지금 같은 시청률을 계속해서 보여온다는 가정하에 잡은 목표 지점이죠.”
“650만이라. 험난한 산이군요...”
“험난하죠. 하지만 오르지 않으면 곤란해요. 가능성을 못 보여준다면 다음 시즌의 제작되더라도 제작비가 삭감한 채로 만들어져 드라마 질이 떨어질 테니까요.”
현재 400만대로 올라선 왕좌의 길 시청률을 생각하면 650만이라는 숫자는 노력한다면 닿을 것 같은 숫자이지만 실상은 마의 벽이나 다름없었다.
보통 시청률은 첫 에피소드(프리미어)와 마지막을 장식하는 (피날레)에피소드가 가장 높은데 대부분 드라마는 프리미어 시청률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게 현실임을 반영하면 350만대의 시청률로 시작을 한 왕좌의 길은 650만이라는 시청률에 가는 것은 매회 에피소드가 엔간한 대박을 터트리지 않고는 절대로 불가능한 시청률이었기 때문이다.
“모레츠 여사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 시청률이 가능하다 보십니까?”
“아마 힘들겠죠.”
“네? 아니, 곤란하다고 하셨지 않으셨습니까?”
“곤란한 건 사실이지만 힘든 걸 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뻔뻔하지는 않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에게 시간이 모자라더군요.”
“모자란다는 말씀은?”
높은 시청률을 오르지 못하면 곤란하다고 말했던 모레츠 여사의 예상치 못한 대답에 전략본부팀 팀장은 황당한 표정을 지어졌지만,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생각하는 듯이 이유를 말했다.
“작품성과 완성도는 좋지만 1시즌의 13개의 에피소드로는 시청률을 올리기 너무 모자라 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그리고 작품의 색이 진해서 취향을 타는 호불호 또 한 만만치 않고 말이죠. 작품성은 인정받겠지만 그 이외의 것들은 어떨지 모르는 게 우리의 드라마죠.”
왕좌의 길의 시나리오를 읽어본 모레츠 여사는 이 작품이 초반부터 재미를 주는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여러 캐릭터의 플롯과 서사가 담겨있는 만큼 작품이 포텐이 터지려면 시간이 필요한 작품이었다.
모레츠 여사의 말에 전략본부팀 팀장의 표정이 조금은 어두워졌다. 그 또한 드라마를 보면서 나름 그런 생각을 가지긴 했었지만, 배우들의 뛰어난 열연과 감탄이 나오는 액션으로 남자들의 마초를 자극하는 왕좌의 길 특유의 분위기에 그래도 나름대로 그런 핸디캡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모레츠 여사의 말을 들어보니 너무 낙관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럼 모레츠 여사는 부정적인 결과를 생각하고 계시는 겁니까?”
“글쎄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니죠.”
“계획이라도 있으십니까?”
무거운 심정을 담아 물었던 그 물음에 모레츠 여사가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으며 궁금증을 자아냈다.
“한 가지 있긴 한데 맥 클라우드 감독이 제 생각을 받아들여 줄지는 모르겠네요.”
“그게 무슨?”
“후후. 헨리 씨. 저보고 휴식하고 하지 않았나요? 피곤하군요. 대화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궁금하게 만들고 이러시기입니까? 너무하십니다. 모레츠 여사.”
그의 원성 어린 소리에도 모레츠 여사는 미소를 지으며 서랍장에서 자신의 전용 안대를 꺼내어 얼굴에 쓰며 의자를 눕히고 눕기 시작한다.
“저는 이만 눈을 붙일 테니 나가보도록 하세요.”
“으으...”
명백한 축객령. 전략본부팀 팀장 헨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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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좌의 길 스튜디오(편집실)]
똑똑.
“저기 맥 감독님.”
“왜? 바쁜 거 안 보여? 중요한 거 아니면 편집하는 도중에 들어오지 말랬잖아.”
“모레츠 여사님이 레퍼런스 자료를 각본가님에게 보내셨는데 한 번 확인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각본가님도 감독님을 찾습니다.”
“모레츠 여사가 각본가에게 레퍼런스 자료를 보냈다고?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두텁고 낡은 헤드셋을 벗어던진 맥 클라우드 감독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레퍼런스 자료란 작품 제작을 위한 참고문헌 같은 것. 그것을 보냈다는 것은 모레츠 여사가 왕좌의 길 제작에 무언가 의견을 제시했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는데 맥 클라우드 감독으로서는 심기 불편한 일이기 그지없었다.
맥 클라우드 감독은 제작을, 모레츠 여사는 유통과 마케팅을, 서로가 담당하는 영역이 명확하게 나누어져 있는데 지금 모레츠 여사의 행동은 맥 클라우드 감독의 영역에 침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게... 제가 말하는 것보단 일단 자료부터 먼저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뭔데? 도대체 뭐길래 말을 못 해?”
“각본가님은 제3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계시니 가보시면 됩니다. 그럼 저는 다음 일정이 있어 나가보겠습니다...!”
“어이!”
후다닥.
“참내 뭐길래 저리 도망치듯 빠져나가?”
그의 불편한 심기를 감지한 보조 어시스턴트가 레퍼런스 자료가 담긴 태블릿을 서둘러 그에게 전하며 도망치듯 편집실 밖으로 빠져나가고 태블릿을 건네받은 맥 클라우드 감독은 이내 그가 황당한 표정을 짓다가 얼마 지나지 보조 어시스턴트가 왜 황급히 편집실 밖으로 빠져나왔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여편네가 노망들었나!?”
붉게 물든 얼굴로 편집실 안에서 비명을 지르는 맥 클라우드 감독.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그가 보고 자료에는 남자로서 보기 힘든 금단의 영역이 담겨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