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326화 (326/357)

326화

쾅!

“이 정신 나간 여편네 그 나이에 노망이 든 게 분명해! 도대체 이딴 쓰레기를 왜 보낸 거야?”

“하하. 진정하십시오.”

회의실에서 각본가를 향해 분통을 터트리는 맥 클라우드 감독을 보며 각본가 죠니가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지금 이게 진정할 거리야? 도대체 이 해괴망측한(?) 것들은 뭐야?”

“하하 조금 놀라셨죠?”

“조금? 조금이라고? 죠니 지금 이게 조금으로 보여?”

『스페이스 트랙』,『초자연 현상』,『드라큐라와의 인터뷰』,『천둥의 신』,『홈즈』,『마법사 기숙사』,『점프Q』,『왕좌의 테니스』. 모레츠 여사가 국적을 가리지 않고 보낸 수많은 작품의 레퍼런스를 보며 맥 클라우드 감독은 정신적 충격을 받고 말았다.

“지금도 속이 메슥거린다고. 태어나서 이런 건 처음 봐 도대체 그딴 걸 왜 보는 거야?”

“그것도 하나의 장르인데 존중해 주시죠.”

“끔찍한 소리 하는군. 진심으로 그리 얘기하는 거냐 죠니?”

“브로맨스의 일종으로 생각하시면 좀 편하실 겁니다. 감독.”

이상한 꽃 배경 안에서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두 캐릭터의 남성을 떠올리며 맥 클라우드 감독이 역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고 그보다 먼저 그 세계를 목격한 죠니는 그의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차분히 모레츠 여사가 보낸 자료들의 장르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모레츠 여사가 무얼 말하고 싶은지 아시겠습니까?”

“몰라! 알고 싶은지도 알려 주지도 마. 이딴 걸 왜 내가 알아야 해?”

“감독 냉정히 생각해 보십시오. 이거 의외로 저희의 돌파구가 될지도 모릅니다.”

“돌파구?”

동성 간의 미묘한 감정에 포커스를 맞춘 브로맨스 물. 그것은 남자로서는 거북하기 이를 데 부분으로서 보기만 해도 본능적으로 소름 끼치기에 맥 클라우드 감독은 경기를 일으키며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었지만, 왕좌의 길 각본가는 다른 생각을 지니고 있는 듯싶었다.

“『초자연 현상』 이 작품 아시죠? 왜 이게 15년간 CN사에서 14시즌으로 만들어진 것 같습니까? 이미 너덜너덜 설정에 조악하기 이를 데 없는 퀄리티인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건, 팬덤이 튼튼하기 때문이잖아? 이거랑은 상관없어. 게다가 『초자연 현상』이 이런 작품도 아니잖아. 엄연히 멀쩡한 장르의...”

“아뇨. 이러한 요소 때문에 그 드라마가 유지가 되는 겁니다. 이 드라마 팬 미팅 참석비용이 얼마라고 생각하십니까? 자그마치 200만 원에서 300만 원입니다. 미친 액수죠.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모입니다. 그중 남자가 많을 것 같습니까? 여자가 많을 것 같습니까?”

“......”

기이한 초자연적 현상이나 사건을 쫓으며 신화에서나 나오는 괴물들을 다룬 미국판 퇴마록 드라마 『초자연 현상』.

자그마치 15년간 14시즌이나 나온 장수 드라마인 만큼 이 드라마엔 충성심 높은 골수팬들 많았는데 작품의 많은 인기와 골수팬들 대부분이 브로맨스의 열광하는 여성 팬들이라 사실을 죠니는 맥 클라우드 감독에게 알렸다.

“죠니.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거야? 설마 내 작품에 이딴 더러운 걸 집어넣자는 건 아니지? 내가 용납할 거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맥 클라우드 감독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자신의 각본가 죠니를 바라보았다. 연기자 이상으로 각본가 보기로 까다롭게 여기는 만큼 맥 클라우드 감독은 죠니를 믿었는데 그런 그가 이런 의견을 제시해오니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감독. 너무 딱딱하게 굴지 마세요. 노골적으로 섞자는 게 아니라. 알게 모르게 코드(Code)만 집어넣자는 겁니다. 동서양 고금을 통틀어 상상과 욕망을 자극하는 코드는 어느 작품에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작품에는 여성 시청자가 모자라요.”

“안돼! 왕좌의 길은 이미 완성된 훌륭한 작품이야. 그런 조악한 수를 쓰지 않아도 언젠가 시청자들이 모여들 거라고! 지금도 성적 나쁘지 않잖아!”

“나쁘지 않은 성적이지만 800억 제작비치고는 터무니없이 모자랍니다. 그리고 제가 설마 작품을 망치겠습니까? 조금만 기름칠하자는 겁니다. 우정과 충성, 끈끈한 전우애와 동료애, 복잡한 애증까지. 이미 왕좌의 길에는 그런 요소들이 곳곳에 깔려있습니다. 그걸 좀 더 극대화해서 지속성있게 보여주자는 겁니다.”

“아니!? 그게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어? 그거랑 이거랑은 다른 거야!”

“아뇨. 정도의 차이 차이일 뿐 사람을 좋아한다는 감정의 근원은 같습니다.”

“......”

잠깐의 소강상태. 맥 클라우드 감독이 결사코 반대를 했지만, 왕좌의 길의 각본을 맡은 죠니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죠니가 보기엔 왕좌의 길은 여성 시청자들을 끌어드리기엔 작품이 무겁고 너무나 남성향이었다. 그러한 점을 염두에 둬서 하이틴 스타 출신인 잭 스미스나, 스캇 드바로를 영입한 거지만 그 둘로 여성 시청자들을 끌어모으기엔 조금은 모자란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감독을 설득해야 해.’

모레츠 여사가 보낸 레퍼런스 자료들을 처음에 받아보고는 당황했지만, 이내 죠니는 각본가로서 그녀가 전달한 아이디어가 나쁘지 않다고 직감했다.

“감독. 저는 직감했습니다. 모레츠 여사가 전해준 아이디어는 저희에게 딱 맞는 소재라는 걸 말입니다.”

“딱 맞다고? 이게?”

“네. 제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이거야말로 제가 찾던 카드입니다.”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기 무거운 작품이라면 눈을 떼지 못하게, 드라마를 볼 수밖에 없게끔 만들면 된다. 그 방법으로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작품에 원초적인 욕망을 자극하는 장면을 집어넣는 것이었다.

무언가가 부러지고 피가 튀는 액션도 좋고, 성욕을 자극하는 베드씬도 좋다, 심지어 무언가를 맛있게 먹어서 식욕을 자극하는 먹는 장면까지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욕망을 건드리는 요소를 무작정 끌어다 쓰는 것은 위험했다.

자칫 잘못하다 작품이 저속해지고 오히려 재미를 반감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소들을 사용하려면 맥락이 있고 개연성이 있어야 하며 계속 기대하게끔 지속성을 띠어야 했는데 모레츠 여사가 준 자료로부터 죠니는 답을 찾았다.

“감독. 한 번만 믿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감독이 생각하는 그런 저열한 느낌이 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작품성이 망가지는 건 원치 않아요.”

“죠니. 도대체 이런 말도 안 되는 자료에서 뭘 얻었다는 거냐? 나는 이해할 수가 없구나...”

맥 클라우드 감독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보다 한창 어리지만 죠니는 고든 작가에게 인정받을 정도로 각본가로서의 재능과 능력이 특출났으며 자신의 마음에 쏙 들게 왕좌의 길을 각색해놓은 친구였다.

그런 친구가 왜 이런 삿된 것에 목을 매다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자신의 쓴 각본을 믿지 못하는 것일까? 이런 걱정도 되었지만 이내 이어지는 죠니의 대답에 맥 클라우드 감독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감독님이 작품을 만드는 게 일이라면 전 사람들을 사로잡는 이야기를 쓰는 게 일인 놈입니다.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소재를 발견했는데 선입견 때문에 쓰지 않는다면 그건 개똥 같은 각본가라 생각합니다.”

“하...!”

같은 작품에 몸담고 있지만 두 사람 다 보는 관점과 활약하는 부분이 달랐다. 맥 클라우드 감독이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작품의 작품성 집중한다면 각본가인 죠니는 사람들을 사로잡는 이야기에 집중한다. 같은 듯 보이지만 미묘한 선으로 갈려 엄연히 다른 영역의 서 있는 것이었다.

“진심이냐 죠니?”

“네. 작품성에 전혀 해가 되지 않게 하겠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

맥 클라우드 감독은 죠니의 진심을 느끼고는 입을 다물며 생각에 잠기었다. 작품 하나에 수많은 사람이 있고 다양한 의견들이 나온다. 그 안에서 감독은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 취사 선택을 해야 했다.

“좋아. 내일 다른 작가들을 불러놓고 여기서 회의를 열겠어. 거기서 네가 사람들을 설득한다면 허락하지. 어떻게 뭘 하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준비해오는 게 좋을 거야.”

“감독님!”

죠니가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시했다. 단순한 기회를 하나 얻은 것일 뿐이지만 작품에 완고한 고집으로 유명한 맥 클라우드 감독이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양보를 한 것인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실망하게 하지 않겠습니다.”

후다닥.

힘찬 인사와 함께 회의실을 빠져나가는 죠니를 바라보며 맥 클라우드 감독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참나? 브로맨스라고? 고든 작가님이 알면 날 죽일지도 몰라.”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걱정 반 기대 반을 담으며 맥 클라우드 감독은 마저 작업하기 위해 편집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

배우들이 모르는 곳에서 기상천외한 회의가 시작된 얼마 지나지 않아 왕좌의 길 3인방은 자신들이 촬영을 완료했던 씬에서 추가 촬영을 하기 시작했다.

【잭 스미스(Side)】

“감독님 추가촬영이라니 무슨 일입니까? 전에 촬영했던 게 마음에 안 드셨던 거에요?”

“아,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몇 가지 더 샷(Sort)을 좀 더 따오라고 하셔서 말이야. 좀 더 격한 감정연기를 원하시나 봐.”

“으음. 역시 제가 연기가 많이 딸리는 걸까요? 그러니까 이렇게 추가 촬영을...”

최근 도경과 스캇의 결투 씬 이후로 사람들이 자신의 연기력에 대해 논란을 삼는 것을 떠올린 잭이 어두운 표정을 짓자 감독이 잭의 기분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아니야. 잭 그런 생각은 하지 마. 맥 감독님이 말씀하는걸 들었는데 네가 연기가 많이 늘었다고 기대가 많이 된다고 아서가 포텐터트리는 날이 기다려진다고 하셨어.”

“정말요?”

“그럼~. 오늘 추가촬영하고 내일은 너를 위해 새로운 씬도 추가될 예정이야. 그만큼 네게 기대를 걸고 있다는 거 아니겠어?”

“네? 새로운 씬이요?”

“아. 아직 못 들었구나? 각본가가 네가 출연하는 새로운 씬을 쓰고 있다는데 기대 해도 좋을 거야.”

“...!”

갑작스러운 추가 된 씬에 잭이 기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한쪽에서는 뒤집히는 씬 때문에 한 배우가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스캇 드바로(Side)】

“아니 갑자기 잘 찍은 씬을 왜 다 뒤집어요? 맥 감독님이 뭐, 마음에 안 드시는 거 있으시데요?”

“음. 나쁘지는 않았는데 롭 라즐리온이 좀 더 세련되게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것을 원하시더라. 저번 촬영한 씬은 너무 혈기 왕성했대.”

“그래요? 저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눈보라가 치는 추운 배경 속에 상의를 탈의한 채로 복수심을 불태우며 검을 수련하는 롭 라즐리온의 모습이 담긴 씬은 스캇이 만족해했던 장면이었는데 그것을 엎자는 소리에 스캇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모습에 촬영감독은 순간 미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애써 그 표정을 감추고 태연히 그에게 촬영을 위한 물음을 던졌다.

“다시 상의 탈의하고 찍어야 하는데 몸은 그때 그 상태로 유지 중이지?”

“당연하죠. 얼마나 지났다고 오히려 전보다 더 좋아졌을걸요? 이왕 찍는 거 전보다 더 좋게 찍어봐요! 감독님.”

불끈.

“그거 믿음직스럽네. 참, 스캇. 그전에 한 가지 해야 할 게 있다.”

“네? 해야 할 것요?”

“어. 제모 좀 하자.”

“네!?”

“가슴에 털이 많더라고. 메이크업 팀한테 부탁했으니까 가서 왁싱 받고 오면 될 거야. 이왕 받는 거 깔끔히 전신 그럼 다녀오렴.”

“자, 잠깐...! 갑자기 제모라니?”

“뭐, 금방 끝나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갑작스러운 왁싱 제의에 스캇이 당황하지만, 감독은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며 그 자리를 피했다.

‘미안하다. 스캇. 여자들은 털 많은 남자 싫어한다더라...’

재촬영하는 진짜 이유.

진실을 알고 있지만, 분장실에서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는 배우에게 그 이유를 알릴 수 없는 감독은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도경(Side)】

“에스테 장기 이용권? 내가 여배우도 아니고 갑자기 이게 뭐야?”

“요즘 고강도 액션 씬이 많으시지 않았습니까. 피부가 상하신 거 같다고 복지 차원이랍니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이용권. 한눈에 보기에도 비싼 에스테 이용권임을 알 수 있었지만, 도경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줄 거면 비싼 술이나 와인을 주지 에스테 이용권이라니 도경으로선 너무나도 생소하기 그지없는 물건이었다.

“나참, 별걸 다 신경 써주네. 남자 피부도 신경 써주고 말이야. 나한테 필요 없으니까 크리스틴이 가가서 사용해.”

“아, 안됩니다!”

“응? 안돼?”

“아, 아니. 안된다는 게 아니라... 도경 씨 관리 부탁드린다고 제 것도 이미 받았습니다. 이왕 이렇게 되신 거 촬영 끝나고 저랑 같이 다니시죠. 배우의 품목 중에 자기관리도 있지 않습니까.”

“흠. 자기관리라...? 정말 그것뿐이야?”

움찔.

“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어서 촬영하러 가시죠.”

갑작스러운 에스테 이용권과 당황해하는 크리스틴의 모습을 보며 도경은 무언가 이상한 느낌에 미심쩍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음을 던졌지만, 크리스틴은 슬그머니 시선을 돌리며 시치미를 뗄 뿐이었다.

‘배우의 자존심은 지켜줘야지.’

피부라도 신경 써야 하는 배우. 모든 재능을 갖췄지만 한 가지만은 갖추지 못한 자신의 배우를 동정하며 크리스틴은 굳게 자신의 입을 닫으며 걸음을 옮겼다.

(다음 화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