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328화 (328/357)

328화

“와아! 드디어 새로운 영주가 등장했구나. 새로운 영주도 분위기 독특하던데 다른 영주들도 궁금하네.”

“호, 호, 호! 호우! 피 튀기는 영지전(Battle Royal)의 시작이다!”

“영주들끼리 슬슬 암투를 벌이는 구나. 영지 전 규모는 얼마 정도 되려나?”

“글쎄 제작비를 많이 들인 듯 보이니까 기대할 만하지 않을까?”

블루문이라는 세력의 등장과 그들의 배후에 자리잡고 있는 드포르 영지의 주인 자하드 프레드릭의 존재는 앞으로 서로 간 본격적인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미 왕좌의 길에 매료되어있던 기존 남성 시청자들은 지금의 스토리에 만족해하며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에 심장을 두근거렸다.

퀄리티 높은 액션씬으로 남성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던 왕좌의 길이다. 그런 드라마에서 펼쳐지는 영지 전은 어떨지 기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좋았어. HBA를 위해 건배. 후르릅! 크으~!”

“닥터페퍼를 참 요란하게도 먹네. 하워드 한 가지 물어봐도 돼? 도대체 왜 닥터페퍼를 맥주병에다 집어넣어서 먹는 거야?”

“셀든. 너처럼 여자 손 하나 잡아본 적 없는 루저는 모르겠지. 이게 쿨하다는 걸.”

“닥터페퍼를 맥주병에 넣어 마시는 게 쿨한거야?”

“무시해. 셀든. 하워드 저 녀석 사실은 맥주를 먹고 싶어하지만 한 잔만 먹으면 곯아떨어지는 알코올 쓰레기라서 저런 식으로 대리만족 하는 거야.”

“풋. 루저는 너였네 하워드.”

“입 닥쳐 셀든! 레너드 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너야말로 셀든 좀 가만히 내버려 둬. 저번 주 데이트에 충분히 상처를 받은 애라고 왜 말을 그렇게 못되게 하는 거야?”

“글쎄. 고장 난 TV를 때리는 거랄까? 일종의 충격요법이지.”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셀든을 놀리려다가 역으로 한방 당한 하워드가 레너드에게 투덜거렸지만, 레너드는 오히려 그에게 셀든을 괴롭히지 말라고 잔소리 들었다. 하지만 하워드는 반성은커녕 뻔뻔하게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셀든 저 녀석 아나긴 배우가 나오는 영상을 찾아보면서 기분 나쁜 웃음 짓더니 이상한 외계어 같은 말을 중얼거리는데 분명 어딘가 하나 고장 났어.”

“이상한 말이 아니라 한국어거든? 아주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문자체제를 가진 언어지.”

“알 게 뭐야? 문제는 네가 사내놈을 보면서 외국어를 배운다는게 문제지. 그게 소름 끼치는 거라고 레너드 넌 어찌 생각해?”

“언어를 파고들 정도로 셀든이 심취했다고? 그거 심각한데? 아주 좋지 못한 현상이야. 셀든 너 안에서 아나긴에 대한 점수가 얼마나 되지?”

“10(Ten).”

“10점 만점에?”

“아니 5점 만점에 10점. 그는 끝내주니까.”

“젠장! 큰일 났군.”

“뭐야? 왜 그렇게 심각한 표정이야? 레너드?”

“셀든이 5점 만점에 10점을 줬다는 건 미친 짓을 벌이기 일보 직전이란 소리거든.”

셀든의 말에 레너드가 장난기를 지우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자신의 룸메이트는 조금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신이 720도 돌아간 친구랄까? 두 바퀴를 돌았으니 이론상으로야 제정신이어야 했지만 멀쩡한 정신이 두 바퀴를 도는데 멀쩡할 리 없었다. 겉으로는 이성적이고 말끔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정신세계를 가진 게 바로 자신의 룸메이트였다.

“셀든 너 설마 또 저번처럼 이상한 짓 벌이고 있는 거 아니지?”

“걱정하지마. 이번에 그냥 배우를 좋아하는 순수한 팬으로서 활동만 할 거니까.”

“진짜지?”

“맹세해.”

“그래… 그럼 됐어.”

셀든의 약속에도 레너드는 미심쩍은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SF 드라마에서 나오는 외계어 클링온어에 심취해서 영어를 구사하는 법을 잊어버리기도 하고 영화에 나온 다스베이더란 캐릭터에 빠져 염력을 쓴다면서 이상한 도구와 약을 만들어 먹다가 응급실에 실려 간 친구였으니 그의 말을 순순히 믿기 힘들었다.

삐익―!

“응? 이건 긴급신호음인데……! 코드 레드!?”

“그거 설마 삐삐야?”

“쉿! 조용히!”

“읍?”

때마침 울려 퍼지는 낯선 신호음. 셀든은 자신의 주머니 속에 삐삐를 꺼내 보더니 심각한 표정을 짓고는 시끄럽다는 듯이 하워드의 입을 자신의 손으로 막았다.

“응급상황이야 하워드! 미안하지만 너랑 놀아줄 시간은 없어. 그럼!”

타다닥.

“…….”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비장한 표정과 이상한 포즈를 잡으며 어디론가 급하게 뛰어가는 셀든. 그런 셀든을 바라보며 하워드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저 자식? 갑자기 왜 저래?”

“모르겠어. 다만…….”

“다만?”

“멀쩡한 일 때문에 저러는 건 아니겠지.”

오랫동안 생활해온 룸메이트의 경험이 외친다. 자신의 친구는

* * *

―【왕의 길(King’s Row)의 마스터님께서 입장하셨습니다.】

『레드 코드 긴급호출 받았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상황보고 부탁드립니다.』

『코드 레드 상황은 I.C 내부오염 입니다.』

『내부오염?』

『이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생긴 왕좌의 길 커뮤니티 팬 사이트. 일명 FKR(Firts King’s Row) 기존의 소설원작 팬들과 드라마를 보고 유입된 신종 팬들의 조합된 구성 인원은 적지만 조직적이고 단단한 멤버쉽을 보여주며 왕좌의 길 초기에 제일 먼저 생성된 팬 사이트인 만큼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빠르게 차근차근 몸집을 부풀리고 있었는데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개설 신청 게시판.

【/】:Slash

『설마… 이거 제가 아는 그 슬래시(/)입니까?』

『네. 안타깝게도…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만 것 같습니다.』

『이번 에피소드에 노출이 많더니 결국 슬래셔(Slasher)들이 반응을 보여왔습니다. 일단 게시판 개설 신청을 막긴 했는데 어찌할까요? 마스터?』

『결국. 그들이 저희 작품을 눈독 들이게 되었군요.』

슬래시(/) 기호 하나에 너무나도 심각해지는 채팅창 안의 분위기가 일반인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작품을 사랑하는 그들에게 있어서는 슬래시는 단순한 기호가 아닌 크나큰 재앙 그 자체였다. 슬래시는 서구권 서브컬쳐안에서는 동성 커플링을 의미하는 하나의 기호로 쓰이기 때문이다.

『슬래셔들은 정말 두렵기 그지없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 반응을 해오다니 말입니다.』

『사실 저희 왕좌의 길이 좀 불안하긴 하지 않았습니까. 배우들이 모두 훈훈한 데다가 연기까지 잘하는데 아서랑 아나긴이 보여주는 브로맨스적 케미가 상당합니다. 게다가 이번에 출연한 롭 라즐리온까지 이거 정말 위험할 수 있겠습니다.』

『맞습니다! 게다가 다들 쓸데없이 몸들이 좋습니다. 특히 이번 에피소드에 부상으로 나온 아나긴의 전신 노출 씬은 타격이 큽니다. 얼마 안 있으면 슬래셔들이 벌떼같이 몰려 들어올 겁니다.』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합니다 마스터!』

슬래셔(Slasher)

작품을 동성 커플링으로 망상하며 감상하고 작품의 명성과 이미지를 난도질한다는 의미에서 [FKR] 운영진들은 그들을 슬래셔라고 불렀는데 FKR운영진들은 이들의 존재를 매우 두려워했다.

단테와 베르킬리우스, 셜록홈즈의 홈즈와 왓슨, 스타트렉의 커크와 스팍까지 시대를 불문하며 태어나는 그들의 존재와 그들이 보이는 화력은 상상 이상의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었는데 불행히도 이번에는 왕좌의 길에서 그들의 존재가 낌새를 보이기 시작했다.

“조치라… 이르지만 대비해서 짜놓은 플랜을 내놓야겠군.”

『조치를 해야죠. 하지만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무턱대고 없애거나 배척하는 조치는 취하지 않을 겁니다.』

『마스터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설마 그들을 받아들인다는 말씀이십니까?』

『진정하세요. 슬래셔들은 바퀴벌레와 같습니다. 없앤다고 박멸할 수 있는 종류의 존재들이 아닙니다. 필요악 안고 가야 하는 존재라 생각합니다.』

『안고 간다는 것은……?』

『어둠은 가까이 두고 다스리는 법이랬습니다. 멀리 버려둬서 번식하게 두는 것보다 한군데 모아서 우리 손의 아래에 통제하에 관리합니다.』

채팅창의 다양한 의견들을 읽으며 셀든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덕질의 힘은 덕질하는 사람만이 아는 법. 그것도 상식을 뛰어넘는 존재들에 대해서는 더욱더 조심히 다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역으로 저희 사이트가 먹힐 수도 있습니다.』

『모니터링 하며 ID를 여러개 파서 주기적인 쁘락치를 두고 분열시킬 겁니다. 품위를 훼손시키거나 선을 넘는 게시글들은 모두 저희 쪽에서 차단할 겁니다.』

『모든 게시글을요? 저희 인력으로는 부족할 텐데…』

『걱정 마십시오. 제가 이미 자동으로 댓글과 비추를 먹이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짜놓았습니다. 몇 번 테스트 후에 모두에게 돌리도록 하겠습니다.』

『마스터!!!』

『저만 믿고 따라오십시오. 마스터로서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타다닥.

“후후후.”

현실에서는 존재감 하나 없는 너드지만 인터넷상에서는 제갈량 뺨치는 지략과 적토마 여포급의 패기를 지닌 마스터다. 모니터 앞에서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눈을 번들거리는 셀든의 모습은 어딘가 섬찟했다.

“또도가 걸어갈 길은 내가 지킨다.”

셀든은 이미 도경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도경이 걸어온 업적, 도경이 미국 진출하게 된 경위까지 전부 다 말이다.

“조금만 기다려. 또도의 위대함을 모두에게 알려 줄 테니……!”

채팅방을 나가고 들어서는 다른 사이트. 그곳에는 도경의 밈(움짤)들로 넘쳐난다. 아직은 비공개 사이트 하지만 때가 되면 풀어 그의 위대함을 몸소 느끼게 할 것이었다.

보통사람이라면 팬 하나가 열일하는구나 생각하겠지만 셀든은 알다시피 보통사람이 아니다. IQ 185에 MIT출신의 너드로 사회성은 결여되어있지만 그렇기에 얼마든지 미친 짓을 저지를 수 있는 괴랄한 존재다.

“그럼, 한글은 어느 정도 뗀 거 같으니 이젠 슬슬 임꺽정 자막부터 만들어 볼까?”

조그마한 방구석 안. 드라마를 틀어놓고 에너지 드링크를 마셔가며 키보드를 바삐 두드리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폐인 그 자체였지만 이런 그의 행동이 나중에는 임꺽정이 미국에 역수입되는 나비효과 결과를 불러일으키며 훗날 도경의 미국진출 성공에 크나큰 이바지를 한 인물 중 한 명으로 셀든이 뽑히게 된다.

* * *

미국에서 방영했던 왕좌의 길 드라마가 한국에서 방영되고 한국 시청자들은 숨죽여가며 연달아 두 편을 왕좌의 길을 이어 본다.

“…….”

3, 4편을 연달아 본 2시간이란 긴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가 드라마가 끝이 나고 광고가 틀어져 나왔지만, 시청자들의 TV채널을 돌리지 않고 그대로 고정하고 있었다.

『30초 후 예고편이 시작됩니다.』

그 이유는 미국에서도 보여주지 않는 왕좌의 길 다음 주 예고편을 보기 위함이었다. 보통은 드라마가 끝나자마자 예고편을 보여줘야 했건만 Jtbn이 간이 부은 것인지. 그들은 대담하게도 예고편을 인질삼아 사람들에게 30초 광고를 억지로 보여주었다.

많은 이들이 그런 Jtbn의 노골적인 행동에 원성어린 비난을 내뱉었지만 웃긴 것은 원성어린 비난을 내뱉는 입과 달리 눈은 광고를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 * *

[왕좌의 길 예고편]

아나긴의 죽음 이후. 윈터플 영지의 분위기와 치안은 급속도로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블루문이라는 레지스탕스 조직의 등장과 함께 카이언인들이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녀석 말대로 정말로 불가능한 거였나?”

영지 내 곳곳에서 거친 싸움이 벌어졌고 예전보다 빈번하게 강도와 살인이 일어났다. 광장에서 왈패와 카이언인들의 싸움을 바라보며 아서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만 이내 한 인물의 파격적인 등장에 그는 그런 생각을 지워버렸다.

서걱!

툭! 데구르르.

“히익!”

붉은 핏줄기와 함께 허공으로 솟구치는 머리통은 바닥을 구르는 소리를 내며 주변의 침묵을 자아냈다.

“아나긴…….”

광장 안 거칠고 과열되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고 그 분위기를 만들어낸 한 사내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이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면서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그의 이름을 조심스럽게 입에 담아 중얼거렸다.

“영지 내의 분란은 즉결처분이다.”

스릉.

“모두들 모르지 않을 텐데?”

전보다 더욱더 날카로운 기세.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악몽의 재림에 사람들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려갔다.

“……!”

욕설이 나오는 30초의 기다림. 하지만 사람들은 단 한 장면으로 보상받았다. 그리고 이러한 악순환은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한국의 시청자들은 예감하고 있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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