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333화 (333/357)

333화

[쫓고 쫓기는 추격전 끝에 벌이는 사투! 호평 일색 드라마 액션의 왕좌!]

[복수인가? 자유를 위한 투쟁인가? 블루문 분열! 카이언인 갈등!]

[달빛 속에서 드러난 문신의 충격적인 대반전! 아나긴과 레이나 그리고 롭 라즐리온 이들의 관계는?]

[멈추지 않는 고공행진! 시청률 550만 돌파! 시즌2 제작 확정!]

[동양인의 편견을 깬 배우 카일. 혜성처럼 나타난 이 신인의 정체를 파헤치다!]

[뜨거운 호응을 업은 왕좌의 길. 갑작스러운 시나리오 변경예고! 13편에서 10편으로 수정! 맥 클라우드 감독 마지막 피날레 기대 해도 좋다 자신감 밝혀.]

└[미친 왜 잘나가는데 에피소드를 줄여버린 거야? 이해가 가지 않네. 앞으로 두 편이면 끝이라고?]

└[그러게 제작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나? 갑자기 무슨 일이지?]

└[문제가 있는 것 같지 않음. 배우들 SNS에 보니까 분위기 나쁘지 않던데 정말로 작품을 위한 결정일 듯. 총괄제작자가 맥 클라우드 감독이잖아. 장인 혼 발휘는 듯.]

└[에피소드가 줄었다는 건 촬영했던 걸 뒤집었다는 건데 대단하네. 그만큼 자신 있다는 건가?]

└[피날레 어떨지 궁금하다. 이번 편 마지막 반전 소름이었는데 어떻게 풀지 완전 궁금하더라.]

└[ㅇㅈ! 레이나가 스파이인건 예상했었는데 아나긴하고 같은 혈족인 건 상상도 못 했음. 게다가 롭 라즐리온까지 도대체 어떤 관계일지 궁금하더라. 형제자매인가? 아니면 친척?]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일걸. 난 원작소설 읽었는데 롭 라즈릴온 배역을 스캇 드바로로 캐스팅한 게 신의 한수라고 생각한다.]

└[뭔 말이야? 아나긴이 아니라 롭 라즐리온이 신의 한수라고?]

└[저거 진짜 레알임. 스포 하고 싶은데 참는다.]

└[어휴 스포충들! 지금 니들이 한 것도 지금 충분히 스포거든?]

└[악! 뭔데? ]

시간은 흘러 왕좌의 길이 내용 중반을 넘어 후반을 넘어가고 있는 시점. 다행히도 미국에서는 도경에게 벌어지는 스캔들 따위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듯 보였다. 드라마에 대한 호평 일색 기사와 그와 비례해서 도경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는 기사들과 댓글들이 그것을 증명해 보였다.

“반응들이 정말 뜨겁네요. 하긴 이번 에피소드가 정말 충격적이었죠. 설마 레이나가 스파이였고 롭 라즐리온하고 아나긴이 같은 혈족일 줄 상상도 못 했을 겁니다. 보름달 밑에서 드러나는 문신이라니……! 고든 작가님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설정들을 상상했을까요?”

기사를 읽은 크리스틴은 상기된 얼굴로 도경을 향해 열렬한 칭찬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왕좌의 길은 수십 년 전에 나온 작품이었지만 왜 아직도 명작이라고 불리는지 알 수 있는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느릿하게 흘러가던 전개가 정신을 차려보니 막을 수 없는 묵직한 격류로 변해있어 그 끝이 어디로 갈 것인지 눈을 뗄 수가 없었는데 지금 방영하고 있는 왕좌의 길이 딱 그 지점이었다.

“크리스틴 네 반응을 보니 이번에도 반응이 좋은가 보네.”

“좋냐고요? 도경 씨. 지금 상황은 단순히 그런 말로 표현할 게 아니에요. 이번 에피소드 마지막 장면은 원래 없었던 신을 재촬영해서 추가한 거라면서요? 이게 뭘 의미하는지 모르겠어요? 드라마에서 아나긴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지고 있다는 겁니다. 한 마디로 도경 씨에게 끝내주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하하. 끝내주다니. 크리스틴이 네 입에서 그런 말이 튀어나올 줄이야.”

“그만큼 대단하다는 거예요.”

크리스틴은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도경을 바라보았다. 이번 에피소드는 충격적인 내용도 내용이지만 도경이 마지막 신을 장식하는 장면에서 왕좌의 길 제작진이 도경을 제대로 밀어줄 생각이라는 것을 크리스틴은 확신할 수 있었다.

잭 스미스가 연기하는 아서 파이크에 초점을 맞췄던 왕좌의 길이 어느 순간부터 도경이 연기하는 아나긴을 심도 있게 다루면서 떡밥을 만들어 놓더니 이제는 본격적으로 다른 노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려 하는 조짐을 이번 마지막 신으로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낸 지 모르는 걸까?’

힐끔.

이는 크리스틴에게 있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드라마가 심상치 않은 성공과 시청률을 기록하는 와중에 하이틴 스타 출신의 잭 스미스란 백인 주연을 내버려 두고 신인 출신의 동양인 배우인 도경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무덤덤 해하지 말고 좀 더 기뻐하세요. 도경 씨는 지금 동양인 배우로서 정말 대단한 일을 이루어낸 겁니다.”

“그 정도까지야. 너무 거창해 크리스틴.”

“…….”

도경의 심드렁한 반응에 크리스틴이 조용히 입을 다물며 그를 지켜보았다. 새로 받은 대본을 읽느라 그런가 싶었지만, 대본에 집중하는 모습치고는 어수선한 느낌이 어딘가 마음이 딴 데로 가 있는 듯싶었다.

‘즐거워 보이지 않아.’

자신이 출연한 드라마가 600만이라는 높은 시청률 구간을 도달하려는 즐거운 상황이다. 게다가 왕좌의 길이 한국에서도 크게 흥한 덕분에 HBA에서는 이미 드라마 제작비를 거의 다 회수했다는 소문까지 도는 상태. 이런 성공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킨 당사자가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으니 크리스틴으로서는 쉬이 넘어가기가 힘들었다.

“아직도 군 문제가 마음에 걸리는 건가요?”

“마음에 걸린다기보다는 짜증이 솟구쳐.”

“도경 씨…….”

“……?”

현재 도경이 저조해 보이는 이유는 딱 하나밖에 없었다. 미국에서 오르고 있는 인기와 성공에 반비례해서 한국에선 나빠지고 있는 도경의 이미지가 문제였다. 하지만 크리스틴은 도경이 그런 상황을 담대하게 넘어가길 바랬다.

“너무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도경 씨 소속사에서도 그 문제에 대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도경 씨가 지닌 능력이라면 별로 대수롭지 않은 문젭니다. 지금은 과열이 돼서 그렇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수그러들 거고 오해가 풀릴 겁니다.”

크리스틴이 봤을 때. 도경의 문제는 그가 이뤄낸 성공에 비해서 보잘것없는 문제였다. 오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언젠가 밝혀지기 마련이고 도경이 보여주는 행보들과 결과물들은 사람들의 부정적인 인식을 되돌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오해가 풀릴 거라……. 그것참 맘 편한 소리네.”

피식.

하지만 그런 그녀의 대답이 마음에 안 들었을까? 도경은 어딘가 삐딱한 미소를 지으며 대본을 읽고 있던 시선을 떼고 크리스틴을 바라보며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럼 한 가지 물어보자.”

“네? 뭐죠?”

“크리스틴 네가 길을 지나가는데 엄한 놈이 갑자기 네게 나쁜 년이라 외치며 따귀를 때리고 지나가. 그걸 본 주변에선 네가 나쁜 짓을 해서 맞은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넌 오해를 사. 때리고 지나간 새끼는 그걸 멀리서 바라보면서 비웃고 말이야. 그럼 기분이 어떨 거 같아? 너는 그 상황에 어떻게 할 거지?”

“…당연히 화나겠죠. 그리고 저라면 화를 내며 무슨 짓이냐 따지면서 경찰에게 신고 할 겁니다.”

“왜?”

“네? 왜라뇨. 그거야 상대가 잘못된 행동을 했으니 당연히 해야할 일 아닙니까.”

크리스틴의 즉답에 도경은 의아하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에게 다시 물음을 던졌다.

“그럴까? 솔직히 말해서 너무 급작스럽게 맞아서 아프지도 않았고, 오해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풀릴 일인데? 오히려 경찰을 부르면 잘잘못을 따지고 해명하느라 시간만 빼앗기고 피곤할 텐데 그냥 신경 쓰지 않고 지나가는 게 이득 아니야?”

“그건…….”

꾸벅.

“제가 생각이 짧았군요. 사과드리겠습니다. 도경 씨.”

“괜찮아. 크리스틴 그런 말을 하는 건 너뿐만이 아니고 이해는 하니까.”

“…….”

“참 웃기지? 모두가 하나같이 나보고 참고 넘기라고 해.”

도경의 말에 크리스틴은 반문하려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깨닫고는 이내 고개를 숙여 그에게 사과를 건네었다. 위로한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행동이 사실은 남의 일이라고 무신경하게 대답한 것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얄궂은 건 그 말대로 내가 참고 넘어가야 한다는 거야. 난 전혀 그러고 싶지 않은데 말이야.”

꾸기깆.

“……!”

도경의 손에 쥐어져 있던 대본에 조금씩 주름이 잡히기 시작한다. 마치 도경의 구겨진 심정을 대변하는듯한 대본을 바라보며 크리스틴은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도경은 기분이 저조한 것이 아니었다. 무덤덤한 표정 아래에 분노를 감추고 있을 뿐이었던 것이었다.

* * *

툭!

크리스틴을 밖으로 보내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 도경은 구겨진 대본을 테이블 위로 던지며 결국 짜증이 가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거 너무 기분이 더럽잖아. 생각 이상으로 참기 힘들어.”

까리하게 한정판인 리미티트 에디션 조던 운동화를 신고 나왔는데 누군가가 뱉은 가래침이 운동화에 투척 당한 느낌이랄까? 당장에라도 살풀이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참고 넘어가야 하는 상황에 도경은 속으로 화를 삭일 뿐이었다.

“이 내가 액받이로 쓰인다니…….”

액받이. 회초리를 대신해서 맞는 시동처럼 남을 대신해 액땜하는 존재로 도경이 지금 처한 상황이 딱 그 짝이었다.

‘권력자들이 하는 짓거리는 저쪽이나 이쪽이나 기막히게 똑같군.’

김강운에게 전해 들은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어느 날. 브로커를 삼촌으로 둔 인물이 주변 지인들에게 군대를 빠졌다고 떠벌리다가 병무청에 신고를 당해 잡혔는데 군 면제를 받게 해준 이 삼촌이란 브로커를 조사하다 보니 곤혹스러운 사실이 발견되었다.

병무청의 고위 간부와 정·재계 3세들이 얽히고설킨 조직적인 병역 비리 커넥션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기자정신이 투철한 한 열혈기자가 단독으로 기사를 때리며 세상에 정의로운 불길을 지폈는데 골 때리는 것은 그 불길이 정·재계 3세들이 아닌 도경에 불똥이 튀었다는 것이다.

“정의로운 불길을 지폈던 열혈기자는 갑작스러운 해외 도피행. 기사는 증발하고 덤으로 터트려주는 스타의 스캔들까지. 아주 센스 넘치는 깔끔한 일 처리 방식이야…….”

으드득.

지금의 이 기분이라면 뭐든지 들이박을 수 있었지만, 그들을 들이박는 순간 잃을 것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을 알기에 도경은 참아야 했다. 금전적인 손해나, 이미지의 손실을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공무원인 아버지, 신곡 발표를 앞둔 동생이 속한 드림걸즈부터 시작해 그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과 그가 몸담고 있는 회사까지. 도경이 걱정하는 것은 그 자신이 아닌 그의 주변이었다.

“아, 진짜 짜증 나서 돌아버리겠다.”

애초에 지킬 것 없는 홀몸으로 목숨을 판 돈 삼아 이세계에 원 없이 설치며 자유롭게 살았던 도경에게 지금의 상황은 너무나도 갑갑해서 앓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주고 있었다.

힘없는 서러움을 못 겪어 본 것도 아니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미 한번 들이박았던 감각의 맛을 아는 자에겐 그것은 아무런 인내심을 주지 못했다.

『들이 박는다』 or 『참는다』

들이박을까? 말까? 오로지 이 두 가지 생각으로 갈팡질팡하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 도경의 머릿속의 실시간 상황이었다. 그야말로 지랄 맞기 그지없는 성격.

Rrrrr!

“소희?”

속에서 자꾸만 일어나는 유혹을 어떻게든 참아내고 있던 도경에게 마침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압수당한 스마트폰을 대신해 촌스러운 폴더폰 액정에는 그의 동생의 이름이 떠올라 있었다.

“얘가 무슨 일이지?”

그 세상에는 본능적으로 느끼는 확신 어린 예감이란 감각이 있었다. 낌새가 없음에도 어느 순간 배우자가 바람 피운다는 확신을 하기도 하고, 그냥 전화를 받기도 전에 무언가 일이 있구나 싶고, 사고가 당하기 전에 평온한 불안감 같은 감각들이 그런 것들이었다.

지금의 걸려오는 전화를 바라보며 도경은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 전화를 받는 순간 고민과 갈등이 모두 해결될 것이라는 느낌을 말이다.

“여보세요?”

나긋하고 느긋한 목소리. 자신의 동생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아 이야기를 듣는 도경의 기색은 너무나도 평온해 보여 이 모습을 보는 그 누구도 미래에 일어날 일은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이 전화 한 통에 한국이 뒤집힐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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