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335화 (335/357)

335화

[그 나물에 그 밥! 방만한 스타를 둔 부모의 폭력!]

[우리 애는 그럴 애가 아니다! 몬스터패런츠 자식의 비뚤어진 애정!]

[묵묵부답은 부전자전? 도경에게 진실을 요구하는 모임 Truth 악플 세례!]

[스타를 둔 공무원 높아진 콧대. 과장급 공무원 폭행?]

스타와 대중의 관계는 어떨 때 보면 참 아이러니한 관계다.

하늘에 떠 오르고 있을 때는 동경과 칭송을 보내는 것이 대중이었지만 하늘에 너무 오랫동안 머무르고 있으면 무의식적으로 스타가 추락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것도 대중이기 때문이다.

그 욕망은 너무나도 강렬해 조그마한 불이라도 붙으면 산불처럼 크게 번지는데 그 거센 불길은 스타의 추락을 보기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렸다.

“와……. 박도경 이쯤되면 불쌍해질 정도인데요? 슬슬 조용해지려고 하니 이번엔 아버지까지 사고를 치시네.”

“뭐, 그런말 있잖냐. 스타를 둔 가족은 오히려 불행해지기에 십상이라고 말이야. 흔한 일이지.”

“그래도 정도가 있지 이건 좀 심한데요?”

기자가 동정할 정도로 도경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스캔들이 터졌음에도 드라마의 인기와 성공이 높아지고 있는만큼 이를 탐탁치 않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도경에 관한 시선은 시기와 질시로 싸늘해지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의 아버지인 박호찬이 폭력사건을 일으키면서 그 불길이 드세지고 있었다.

“보니까 징계로 끝난 일이고 정년을 얼마 안둔 시점에 주먹을 휘두른거 보면 이유가 있을텐데……. 하나같이 너무 악의적인 기사들뿐이네요.”

“그걸 모르는 기자가 있겠냐? 그냥 이슈만 되면 좋은거야. 사연 따위야 알 바 아니지.”

“이런거 보면 회의감 든다니까요. 솔직히 이거 거의 마녀 사냥아니에요? 박도경이 이 정도로 몰아갈 정도로 잘못을 저지른건 아닌데 팬으로서 조금 미안하네요.”

“뭐야? 너 박도경 팬이었어?”

“뭐, 조금요? 노래 자주 듣거든요.”

“아서라. 제일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이다.”

도경의 팬이라던 후배 기자의 말에 선배 기자가 짜게 식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연예부 기자로 입사한지 일년 차밖에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연예부 기자로 연예인에게 동정을 품다니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걱정할 사람을 걱정해야지 이렇게 욕먹고 있어도 시청률 25% 넘긴 애가 박도경이다. 어이가 없었서 괜히 악마의 재능이라 불리는게 아니더라.”

“그건 아는데 대신 이미지에 안좋아졌잖아요. 솔직히 도경이 인기 많았던건 당당하고 가식없는 이미지라서 좋아했던건데 이거 되게 큰 타격이라구요. 게다가 『Truth』라고 이상한 모임까지 만들어졌는데 애들 완전 미친놈들이에요. 조사해 보니까 끝까지 박도경을 괴롭힐 기세던데 이번 박도경 아버지 사건도 애들 때문에 일어난 것 같더라고요.”

진실을 요구한다는 명분 아래에 만들언진 『Truth』.

이들은 도경의 소속사 홈페이지는 물론 도경이 출연하는 드라마나 그의 아버지가 일하는 직장의 사이트에서까지 가서 각종 게시글과 메일을 보내며 테러를 가했는데 그 정도가 심해서 마치 광적인 사이비 단체의 행보를 보는 것 같다며 도경을 걱정하는 후배의 말에 선배 기자의 표정이 찌푸려 졌다.

“야 민병돈이 쓸데없는 걸 조사할 정도로 말이야 시간 많이 남아? 정신 안 차려? 니가 무슨 박진용이야? 소속사 사장도 아니고 잘나가는 연예인 이미지까지 걱정해줘?”

“솔직히 안타깝잖아요. 세계적인 재능을 가진 스타를 밀어주지 못할망정 별것도 아닌 일로 발목잡아 나쁜 놈으로 몰아 놓고 있으니까요.”

“그러게 누가 군대 이야기 그리 섣불리 하래? 뿌린대로 궈둔거다. 공인으로 말조심했어야지.”

“아니 솔직히 선배는 군대안가도 되는데 가라면 갈거에요? 대한민국 남자면 다 아는 사실인데 거기서 그럼 갈 거라고 거짓말해요?”

“너 박도경 팬심이 조금이 아닌데? 이러다 팬심으로 한대 선배 치겠어?”

“어휴. 팬심 없어도 조만간 칠 것 같네요.”

“어어? 요게 좀 능력좋다고 봐줬더니.”

후배의 예상치 못한 반항에 선배 기자가 기막힌 표정을 지었다.

“주짓수 보라 띠입니다. 오실 거면 와보시죠.”

“너 이리와 싸움은 실전이야 임마. 이래 봬도 내가 왕년에 내손동 피바람이라 불린 놈이야.”

삐빅! 삑!

“음?”

“뭡니까? 선배?”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오늘날인가 싶네.”

“네? 무슨 말이에요?”

“박도경이 오늘 기자회견 열었단다.”

서로에게 손을 뻗어 엎치락뒤치락하며 티격태격하는 선후배 기자 사이로 들려오는 신호음. 그 신호음에 두 사람은 본능적으로 행동을 멈추었다. 지금 들려온 신호음은 그들에게 있어 특종이나 사건을 알려오는 비상벨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기자회견이요? 한창 미국에서 드라마를 촬영하느라 바쁠 텐데 무슨 기자회견을 연대요? 좋을 거 하나 없을 텐데……!”

“모르지. 공식적으로 사과해서 논란을 종식하고 싶거나. 아니면…….”

“아니면?”

“화끈하게 은퇴 선언을 할지도?”

“네? 선배! 그걸 말이라고 해요? 은퇴는 무슨 은퇴에요?”

“놀라기는 그냥 농담 한번 한 거야. 그래도 혹시 모르지 않겠냐? 워낙에 성격이 지랄 맞으니까 말이야. 공중파 음악방송도 보이콧 했는데 한국 연예계 은퇴하고 미국에서만 활동할지도 모르지. 그러면 완전 대박 사건인데 차라리 그래줬으면 좋겠다.”

“와……. 이번에는 진짜로 선배님께 처음으로 환멸감 드네요.”

“깨끗한 척하기는……! 너도 짬 먹고 좀 지나 봐라. 나랑 다를 거 같아?”

“…….”

선배 기자의 말에 그의 표정이 침울해지기 시작했다. 회의감이 드는 연예계 기자 생활을 어찌어찌 버티었지만, 선배의 말 따라 자신 또한 시간이 지나면 저렇게 바뀌게 될 거라는 사실은 버티기 힘들었다.

* * *

“후우.”

뻐금뻐금.

서교동 한 카페. 어디서나 볼법한 한 중년남성이 운치 있게 꾸며진 옥상 테라스에서 담배를 태우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님. 담배 너무 많이 피우시는 거 아니세요? 너무 걱정하시지 마시라니까요.”

“아, 한수 씨. 왔어요? 아버님이라 말고 형이라고 부르라니까?”

“하하. 그러면 도경이 때문에 족보가 꼬여서 말이에요. 아쉽지만 안 되겠네요. 그나저나 아직 밥도 안 드셨다면서요? 잠깐 요식거리 만들었는데 괜찮으시면 드세요.”

“허허. 미안하게 잘 먹을게요.”

덩치 큰 남성의 등장에 담배를 빽빽 피던 중년남성이 반가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도경이 일했던 카페 은하수 사장으로 소개받았었는데 나이 차이도 그리 크지 않고 요 근래에 마음이 통해서 거의 형 동생 하는 이가 정한수였기 때문이다.

“요즘 3호점 차려서 바쁠 텐데 여긴 어쩐 일이에요.”

“뭐, 이젠 제가 필요 없던데요? 다들 고맙게도 일을 잘해주더라고요.”

“허허. 그거 잘됐네. 그럼 이번 수익도 기대해도 되는 건가?”

“그럼요.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농담이야.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말아요.”

“아뇨. 정말 잘 되고 있으니 기대할 만할 겁니다. 이게 전부 도경이하고 서 여사님이 가게에 많이 힘 써준 덕분입니다.”

“에이. 그걸로 이렇게까지 수익 내기 쉽나? 주변 카페가 한두 개가 아닌데 말이야. 전부 한수 씨 커피가 맛있으니까 잘 되는 거지.”

“어이쿠. 아버님이 제 얼굴에 금칠 해주시네요.”

“그럼. 요즘 들어 와이프가 의욕 가지고 꽃을 만지는데 젊을 적 모습을 보는 거 같아 보기 좋아. 이게 다 현수 씨 덕분이야.”

“아뇨. 저야말로 어머님께서 만든 이쁜 꽃 덕분에 득을 크게 보고 있는걸요. 계속해서 하는 말이지만 정말 월세를 안 받으셔도 괜찮겠습니까?”

“괜찮대도? 애초에 공동창업이고 우리는 지금 수익에도 충분히 만족하는걸? 지금처럼 잘 운영해주면 왈가왈부할 생각 없어.”

“하하. 열심히 꾸려나가겠습니다.”

“부탁해.”

은하수(별) 카페에서 도경과 인연은 맺었던 정한수는 도경이 내준 건물에서 그의 어머니 서단비 여사의 꽃집과 자신의 카페를 합쳐 은하수 2호점과 3호점을 내었는데 양질의 커피와 이쁜 꽃들의 아이템에 반응이 좋아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아 행복한 나날을 영위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게 도경과 그의 부모님의 배려라는 것을 알기에 정한수는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며 가게를 꾸려가고 있었다.

“그나저나 오늘 도경이 온다면서요?”

“그러게……. 안 와도 된다고 했는데 말을 안 들어. 전화하려고 하니까 비행기에 벌써 탔는지 받지도 않더군. 뭐가 그리 급한지……!”

“도경이 입장에선 아버님이 걱정되는 거겠죠.”

“후우……. 나이 먹고 자식의 발목을 붙잡는 부모라니 정말 부끄러운 일이야. 참아야 했는데 말이야.”

“참긴 뭘 참습니까!? 어느 부모가 자기 앞에서 자식 욕하는 걸 참습니까? 잘하신 겁니다.”

“그래도…….”

“그래도는 무슨 그래도 입니까? 진작에 그런 곳 나왔어야 했습니다.”

“휴우…….”

박호찬의 말에 정한수가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사정을 들어보니 잘못한 것은 박호찬이 아니라 그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 박호찬을 조롱하던 과장에게 있었다. 아들의 악의적인 기사에 괴로워 하는 이에게 위로는 못 할망정 홍보대사 안 해줘서 다행이라며 조롱을 일삼는 상사나 눈치를 주는 주변 인간들은 문제가 있어도 단단히 있는 사람들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도경이 누굽니까?”

한없이 작아 보이는 아버지의 모습에 장한수가 박호찬을 위로하며 힘을 불어넣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박호찬은 좀 더 도경의 힘을 믿어야 했다.

“믿고 거르는 또라이가 도경이입니다. 이깟 일로 발목 잡히겠습니까? 오히려 한국에 돌아와서 다 뒤엎으면 엎었지. 그냥 있을 놈이 아니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분명 단박에 문제 해결할걸요?”

“한수 씨…….”

“네.”

“그래도 그렇지 또라이는 좀…….”

“아…….”

뻘쭘해진 두 중년남성. 하지만 이내 두 사람은 웃음을 터트리며 도경을 기다렸다. 갑갑한 상황 도경의 얼굴을 보면 기운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Rrrr!

그리고 그때 등장하는 반가운 벨소리. 박호찬은 손에 쥐고 있던 담배 꽁투를 튕기며 목을 가다듬고 반가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아들었다.

“어! 아들 도착했어?”

멀리서 날아온 자기 아들을 맞이하는 그 목소리엔 좀전의 주눅 들고 힘없는 음성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장한수는 웃음을 지으면서도 아버지라는 존재는 참 서글픈 존재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고민이 많아도 자식 앞에선 그것을 내색하지 않는 존재가 아버지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좋은 아버지가 되려나 몰라.’

이번에 둘째를 가지게 되는 초보 아빠인 정한수는 그 모습을 보며 왠지 모르게 자신의 두 어깨가 무거워지는 감각을 느끼며 두 부자의 전화통화에 방해가 되지 않게 발걸음을 옮겨 자리에서 비켜준다.

* * *

[그랜드 밀레니엄 호텔]

“…….”

웅성웅성.

갑작스럽게 열린 기자회견으로 서울 유명 호텔은 많은 사람으로 가득 차서 때아닌 몸살을 앓고 있었다. 하나의 단상 위에 얼기설기 하나로 엮어있는 마이크 주변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기자들은 오매불망 그 자리의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와. 이거 2시간 전에 연 기자회견 맞아? 기자들 엄청 많이 들도 왔네.”

“그러게요. 보기만 해도 숨 막히네요.”

“진짜. 우리 또도가 불쌍하다. 저 기레기 새끼들 뭐, 저리 뜯어먹을 게 있다고 몰려오냐? 누가 보면 큰일 저지른 지 알겠네. 도대체 저게 뭔 난리야?”

“그렇죠? 세상엔 정말 골 때리는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니까요.”

“……!”

움찔!

아무런 예고도 없이 2시간 전에 열린 기자회견이라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이 몰려온 기자들의 광경을 문틈으로 엿보고 있던 호텔 직원 두 명이 혀를 내두르고 있을 때. 그들의 뒤로 의문의 음성이 들려왔다.

“헉 또도? 아, 아니 박도경 씨!?”

“또도라니. 제 팬인가 봐요? 저쪽으로 들어가면 되나요?”

“네, 네!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리고……! 응원할게요! 저는 도경 씨 믿어요!”

“하하. 그거 힘 나네요. 그럼 지켜보고 있으세요. 재미난 광경 보여드릴 테니까요.”

저벅저벅.

팬이라는 외치며 응원을 보낸 여성을 보며 도경은 유쾌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장난기 어린 윙크를 날리며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기자회견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팡팡!

촤르르륵!

미친 듯이 터지는 플래시 세례. 너무나 공격적이고 눈 아픈 광경에 눈살을 찌푸리려 만도 한데 도경은 표정 하나 변함없이 느긋하게 걸음을 옮겨 자신의 자리로 가 앉았다.

“…….”

자신을 향해 플래시를 터트리는 수많은 기자를 바라보던 도경은 조용히 그들을 지켜보았다. 말하기에 앞서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라는 무언의 표시였지만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들의 빛의 세례에 도경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마이크를 향해 입을 열었다.

“플래시 좀 그만 터트려 기레기 새끼들아.”

“……!”

팡. 팡…….

나지막하지만 묵직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 듣기에 좋은 목소리였지만 그 내용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잘 못 들었나 싶어 기자들 모두가 거짓말처럼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는 것을 멈추었다.

“좋네요. 질문받도록 하죠.”

“…….”

찬물이 끼얹어진 듯 조용한 정적 속에 도경이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지으며 질문을 받겠다고 말했지만, 충격이 큰 것일까? 기자들은 평소와 달리 조용히 도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질문받는다고 했습니다. 질문 안 하실 겁니까?”

“……!”

웅성!

아무 일 없었다는 것처럼 평온하게 질문받겠다는 도경의 행동에 산전수전 겪은 기자들은 그저 어안이 벙벙하고 말았다. 어느 연예인이 카메라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들에게 저런 폭언을 내뱉을 수 있을까? 지금 도경의 발언을 짚고 따져야 할지, 아니면 도경의 물음대로 질문을 던져야 할지. 그야말로 사상 초유의 사태에 기자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와……. 우리 또도 개 오진다.”

수많은 기자를 말 한마디로 제압하는 그 광경은 누가 봐도 멋있어서 좀 전에 도경과 인사를 나누었던 팬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사고 한번 거하게 칠 생각이구나.”

언제나 예상치 못했던 일을 터트렸던 도경. 이번에도 제대로 한 건 터트릴 게 분명해 보였다.

(다음 화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