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화
『글로벌 스타 박도경 씨가 어제자 기자회견장에서 정·재계 전반 고위층 인사들의 병역 비리와 그와 연관된 불법조직을 폭로하였습니다. 이 조직과 연관된 인사들은 충격적이기 그지없었는데요. 밝혀진 사람으로만 야당의 대표 김민철 의원, 병무청 민진상 차장, 미르 물산의 손자 차승기, CU철강 전무 한진용. 한길교회 조상남, 산영그룹 재벌4세 전용진, 스타 언더커버 서수연 대표 등등… 정·재계 뿐만 아니라 언론과 종교의 인사까지 연관된 이번 대형 비리 커넥션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낳고 있습니다.』
도경이 홀로 쏘아 올린 작은 공. 아니, 은유적인 표현일 뿐 대형폭탄이나 다름없는 폭로는 공중파 케이블 할 것 없이 온갖 뉴스에 기재되며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었다.
[책임을 지고 책임을 묻다! 책임을 저버린 기자들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
[박도경 2년간의 자발적 대체복무! 『MOM:남자 중의 남자』 유쾌한 이름의 재단으로 청년들을 지원하다!]
[전무후무 폭로! 책임은 내가 아니라 그들이 져야 한다! 권력 따위 무섭지 않아! 도경 권력자와 언론을 향한 일침!]
[박도경을 저격한 재벌 4세들의 방만한 파티의 최후! 건드려도 잘못 건드렸다.]
[가는 사람만 가는 군대 언제까지 용납될 것인가?]
[병역부터 시작해 수년간 이어진 고위인사들의 끈끈한 카르텔. 음모설이나 다름없던 언론조작까지 스스럼없이 하는 그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 배후에는 사이비 종교가?]
└『하루아침에 나라가 뒤집혔네요. 박도경이 폭로한 자료 봤는데 보셨음요? 병역비리도 문제지만 얘네 카르텔이 저지르는 일은 미쳤다고밖에 말 못 하겠네요.』
└『진짜 할 말 없죠. 알게 모르게 알고 있었지만 짜고 치는 고스톱판 직접 눈으로 보니까 너무 더러움.』
└『그나저나 진짜 대단한 것 같음. 이걸 어떻게 폭로할 생각을 했지? 나였으면 쫄아서 그냥 입 닫았을 텐데…….』
└『인정. 솔직히 그게 정상이지. 리스트에 있는 정치가랑 재벌 새끼들 한둘이냐? 보기만 해도 후덜덜하더라.』
└『하지만 우리 도경횽은 그러지 않죠. ㅋㅋㅋㅋ 오히려 다음에도 건드리면 가만 안 둔다고 으름장 놓는데 진짜 패기 그 자체였음요! 싹 다 뒤집어 버리는 MOM회장 패기왕 갓도경.!』
└『MOM 맨 오브 맨 이라니 ㅋㅋㅋㅋ 진심 돌았음. 박도경 머릿속 한번 뜯어서 보고 싶다.』
└『진짜 이 새끼 인생이 영화주인공임. 재산 200억 가까이 되던데 그걸 책임진다고 다 쏟아붓네. 물욕이 없는 건가? 솔까 박도경 걔 정도 능력이면 입 싹 닫아도 인생엔 별 지장 없는 일 아님? 시간 지나면 이미지도 금방 회복할 텐데 그걸 안 참고 질러버리네.』
└『확실히 제정신은 아님. 기자회견 후에 스타그램 글 뭐라고 올렸는지 알음? 존나 카리스마 있어 임 ㅋㅋㅋ』
└『악! 미친놈. ㅋㅋㅋㅋ 거기서 그 드립을 칠 줄 상상도 못 했다. 진짜 똘끼 독보적인 듯. 존나 카리스마 있다니 상상해버렸어.』
└『가오, 곤조, 똘끼의 삼위일체 도경이 형. ㅠㅠ 한결같아서 리스펙 한다.』
기자회견장에서 고위층 인사의 비리를 터트렸던 도경의 행보는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화끈하다 못해 폭발적이었다. 유머, 시사, 연예인 등등 카테고리를 가리지 않고 커뮤니티 사이트 게시판은 도경에 대한 글로 도배되고 있었는데 그 내용들이 전부 칭송과 감탄뿐이어서 숫제 현대판 히어로를 보는 듯했다.
[도경 군의 용기에 지지를 보냅니다.]-성한길 의원
[힘든 선택. 하지만 그 누구보다 멋진 선택을 한 스타]-칼럼니스트 장현
[같은 언론 기자로서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는 변화해야 할 때이다]-진현일보 방은영 기자
[픽션은 현실을 이기지 못하지만, 박도경은 현실을 이겨냈다.]-감독 조창현
[연예계 역사상 이만큼 유쾌하고 용기 있는 결단은 본 적 있었는가? 가능하다면 그와 술 한잔하며 이야기 나누고 싶다.]-배우 유성우
[인생은 항상 올바르게 살 수 없다. 하지만 책임을 다하며 살 수 있다.]-소설가 이창선
[선배로서 부끄럽고 후배지만 한사람으로서 존경스럽다.]-가수 윤현진
커뮤니티 사이트뿐만이 아니었다. 각종 유명인 SNS에서도 도경에 대해서 한 마디씩 보태며 지지를 보내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그것은 사회적인 반향까지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재벌들과 고위 인사층들의 부정과 비리를 알면서도 그들의 힘 때문에 암묵적으로 쉬쉬했던 갑갑한 현실 속에 굴하지 않고 책임을 다하며 당당히 맞서는 도경의 모습이 사람들에게 많은 감명을 주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떻게 웃을 수 있는 거지?’
21세기 자본주의 시대. 그것도 돈이면 다 된다는 가치관을 강하게 지닌 한국에서 200억에 가까운 재산과 2년간 벌어들일 수익 전부를 내놓겠다는 도경의 행동은 놀라운 것이었지만 그것보다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도경 특유의 장난기 서린 웃음이었다.
분명 큰 결정이고 힘들었던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결연하거나 진중한 표정보다는 걱정 없다는 웃음을 짓는 도경의 모습은 너무나도 강렬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웃음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일까? 사람들은 너무나 궁금하면서도 그 웃음에 자신들도 모르게 생각한다.
‘나도 저렇게 웃고 싶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 성공하고 싶다, 행복해지고자 하는 감정이나 욕구가 아닌 그저 저런 미소를 짓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돈이 없어도 비굴하지 않고 주변의 시선에 주눅 들지 않는 강인한 사람. 그리고 시원한 웃음 지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금수저와 흙수저, 인싸와 아싸, 갑과 을. 많은 것을 계급으로 나누며 많은 것을 포기하는 현실 속에 지친 사람들에게 강인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일게 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대단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도경이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바람. 시대의 아이콘(Icon).
한 시대의 격변기 속에 사람들 마음을 달래주며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 영향을 미치는 존재. 도경은 지금 그러한 존재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 * *
[JY엔터테인먼트]
“영웅이 된 소감이 어때? 보고도 믿기지 않네.”
“익숙해서 뭐, 소감을 남길 게 없네요.”
“아, 그러세요.”
“하하하. 진짜인데…….”
하룻밤 사이에 사회적인 영웅으로 등극한 도경을 향해 박진용이 징하다는 눈빛으로 물음을 던졌지만, 도경에게서 나오는 대답은 언제나 엉뚱하기 그지없어 그는 한숨을 내 뱉었다.
“정말 너 때문에 수명이 팍팍 줄어드는 것 같다. 어떻게 회사랑 말도 없이 그런 대형사고를 칠 수가 있어? 기자회견을 열어준 내가 뭐가 되니? 회사 임원들이 나한테 전화가 얼마나 왔는지 알아?”
병역 스캔들과 가족 문제까지. 너무나 갑갑한 상황 속에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기 위해서 기자회견을 하고 싶다고 말한 건 줄 알았건만 설마 이런 대형사고를 치기 위해서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도경의 기자회견을 실시간으로 보면서 얼마나 놀랐던지 심장이 멎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말했으면 허락했을 거예요?”
“그건……. 당연히 안되지.”
“거봐요!”
“어휴……. 이렇게 소속사 말 안 듣는 연예인은 너밖에 없을 거다.”
“그리고 저처럼 난 놈도 없죠. 이번 일도 다들 좋아들 하죠?”
스타 개인의 일이라도 공론화를 할 때는 회사와 임원들의 이야기를 나누며 내려진 방침을 따라야 하건만 도경은 그 순서가 정반대. 당연히 소속사에선 좋아할 리 없지만, 이번만큼은 조금 달랐다.
“그래. 아주 좋아하더라. 이미지도 챙기고 이번에 너 열심히 부려먹을 수 있다고 말이야. 이젠 네가 거절했던 협찬이나 광고는 거절 못 해. 소극장도 접고 어쩌면 행사도 뛸지도 몰라. 괜찮겠냐?”
“어쩔 수 없잖아요. 돈 많이 벌어 집어넣어야 사람들에게 생색낼 수 있으니까 말이에요. 못해도 300억은 부어야 하지 않겠어요? 개처럼 일하겠습니다!”
“참 멘탈이 미쳐서 튼튼하다고 해야 할지……. 그나저나 300억이라 너무 쉽게도 이야기하는 거 아니냐?”
“왜요? 못할 거 같아요?”
“글쎄. 그 돈을 벌려면 네가 우리 회사 매출을 못 해도 600억은 내야 하는데 가능하겠냐?”
“까짓것 한번 해보죠. 못할 게 뭐 있어요? 저 몰라요?”
“뭐, 계획은 있고?”
“뭐, 미친 듯이 일하면 되겠죠. 안 그래도 회사에서 저를 잘 굴려줄 생각이잖아요? 한 번 제대로 뽑아 봐요.”
“말을 해도……! 누가 보면 악덕 회사인 줄 알겠다.”
“왜요? 돈 싫어요?”
“누가 싫대? 너 각오해라.”
피식.
‘저 상태라면 회사와 트러블 생길 일은 없겠군.’
돈(Money).
이번에 도경이 사고를 쳐도 회사에서 반기는 이유는 다름 아닌 돈 때문이었다.
도경은 이번에 돈을 아주 많이 벌어야 했다. 지금 200억 가까이 기부했는데 2년 동안의 수익이 그 액수에 못 미친다면 사람들이 어찌 보겠는가?
도경의 성격상 그러한 상황은 절대 용납할 리 없었고 회사 임원들은 그런 도경의 처지를 기회 삼아 회사의 이익 창출을 힘쓸 생각이었는데 이러한 점을 잘 인지하고 협력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도경을 보며 박진용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많은 일을 하면 트러블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도경의 태도를 보아하니 그런 일은 없을 듯싶었다.
“정말 터무니없다니까. 걱정이다. 너 때문에 회사의 다른 애들이 너 보고 배울까 봐 말이야.”
“이게 배운다고 할 수 있는 거면 밀어줘요. 그 녀석도 저처럼 의외로 거물이 될지도?”
“어림도 없지. 폭탄은 너 하나로도 충분하다.”
“하하하.”
도경의 말에 박진용이 코웃음 쳤다. 심장 건강에 안 좋은 녀석은 저 한 녀석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드라마 촬영 곧 끝나지?”
“네. 재촬영하긴 했지만 금방 끝날 거 같아요. 이젠 마지막 에피소드밖에 남지 않았거든요.”
“그렇군. 기자회견 내자마자 이곳으로 달려온 걸 보니 다음 앨범 준비할 생각이지?”
힐끔.
“준비라 뭐, 그렇죠……?”
“음? 뭐 문제라도 있어? 대답이 왜 그래?”
“준비는 개뿔……! 이미 다 끝났거든요? 다음 앨범.”
“뭐?”
도경이 있는 곳은 회사에 있는 녹음실 스튜디오. 테이블 위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는 에너지 드링크들과 바닥에 담요를 끌어안고 새우잠을 자고 있는 회사 소속 작곡가 철수. 아니, 로이드를 바라보며 박진용은 둘이 여기서 철야로 다음 앨범을 제작했을 거라 예상했지만 곧 예상을 뛰어넘는 이야기에 경악성을 질렀다.
“대표님. 저 자식 진짜 사람도 아니라니까요.”
부스스.
바닥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한탄하는 철수를 향해 도경이 반가운 아침 인사를 건네었다.
“철수형 일어났어요? 고생했을 텐데 좀 더 더 자지.”
“철수라 부르지 말랬지? 그리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말지? 그렇게 신경 써줄 거였으면 나가서 이야기하던가 참 내…….”
“아하하. 뭐, 잘됐지 않아요. 모닝콜이라고 생각해요. 오늘 스케줄 있다고 했잖아요? 오늘 하루는 좀 힘들겠네요.”
“그게 누구 때문인데 이 악마같은 새끼야.”
“…….”
두 사람의 티격태격 거리는 대화에도 박진용 사장은 끼지 못하고 있었다. 좀 전 철수가 말했던 이야기를 곱씹느라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철수야. 지금 그게 무슨 소리니?”
“아니, 대표님. 로이드라고 부르라구요. 대표님이 자꾸 철수라 하니까 이 녀석도 그렇고 다른 애들도 다 철수라고 부르잖아요…….”
“그게 지금 문제니? 어떻게 된 건지 설명부터 해봐. 정말로 앨범 제작이 끝났다고?”
“문제라니……. 회사에서 확 나가버릴까 보다.”
짜게 식은 눈으로 박진용 대표를 바라보던 김철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키홀더에 붙어있는 USB를 꺼내 컴퓨터에 꽂기 시작한다.
“설명하기도 귀찮고 그냥 들어 봐요.”
딸칵. 딸칵.
수많은 폴더 중 하나의 폴더를 펼쳐 음원 파일을 실행하는 철수. 그와 동시에 녹음실 스튜디오를 가들 울려 독특한 비트에 박진용 사장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기 시작했다.
Hiphop:(Kyle)
예상치 못한 비트에 생각지도 못한 장르선택. 하지만 그 독특한 사운드와 멜로디에 박진용 사장은 자연스레 고개를 까닥이며 도경의 새 앨범을 제일 먼저 즐기기 시작한다.
* * *
LA. HBA 스튜디오 편집실.
부우웅. 부우웅.
“음? 록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아, 감독. 카일한테 이상한 메일을 받았는데 감독하고 이야기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한날한시 같은 시각 작업실에서 벌어지는 모종의 사건. 다음 스텝을 위한 도경의 준비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