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339화 (339/357)

339화

“제길! 제길! 그 딴따라 새끼! 으아아아―!”

와장창창!

넓지만 밀폐된 공간. 서울 강남의 비싼 술집클럽의 룸에서 한 남자가 발광하며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때려 부수고 있었다.

“야, 용진이 녀석 왜 저러냐?”

“할아버지한테 끌려가서 대판 깨졌단다. 쟤네 가문이 나쁜 짓은 용서해도 무능력한 건 얄짤없잖냐. 이번 사건 때문에 저 녀석 받기로 한 백화점 제 동생에게 넘어가게 생겼다더라.”

“이야. 그거 속이 쓰릴만도 하네. 그러니까 그냥 나처럼 무난하게 공익으로 빠지지. 뭐 면제까지 받겠다고 설레발 치다 저리 피 보나? 크크크.”

“그나저나 주변이 난리도 아니던데? 이번 사건으로 특검까지 떴다고 하던데 몇 명이나 털리려나 몰라.”

그 말에 물건을 부수고 있던 친구를 재밌게 바라보고 있던 남자가 시니컬한 웃음을 지었다.

“털릴 만큼 멍청한 놈이 누가 있겠냐? 그리고 털어보라지? 깽값 물고 집행유예 받으면 끝이야. 난리 나긴 무슨 난리? 너무 오버하는거 아냐?”

“아니. 이번에 분위기가 좀 심상치 않다니까?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묘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하던데?”

“퍽이나. 서로 해 처먹은 돈이 얼마인데 그게 쉬울 것 같아? 그리고 아랫놈들을 뭘 신경써? 끽해야 인터넷에 정의로운 척 싸지르는 글이 전부 단데 뭘 걱정해?”

“그런가……. 에이 그럼 재미없어지는데……!”

“옆집 불구경하고 싶다 이거냐? 쫄보처럼 보여도 알고 보면 네가 제일 성격 진짜 안 좋다니까.”

“왜 너는 저거 재미없어?”

“뭐, 재밌긴 하지. 저 새끼 저렇게 부들거리는 거 어디서 보겠어.”

초중고부터 시작해 어릴 때부터 같이 지냈던 친구 관계이건만 물건을 때려 부수고 있는 자신의 친구를 보며 두 사람은 재밌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 우정이란 강한 자극과 감각을 공유하는 것이지 쓸데없는 감정을 공유하지 않는다. 그것이 부족할 것 없는 재벌 4세들의 우정이었다.

“야, 그나저나 그 소문 들었냐?”

“무슨 소문?”

“요즘 아랍의 젊은 부호가 한국에 돈 뿌리고 다닌다는 소문 말이야.”

“아아. 그거 들었어. 한국의 유명 클럽이란 클럽은 투어하고 다닌다는 녀석 말하는 거지? 듣자 하니 클럽에 투자 겸 자기도 하나 차리고 싶어 한다던데? 근데 그게 왜 요즘 이슈 인 거냐? 우리 아버지도 나한테 그 자식에 관해서 묻던데 반응 보니까 꽤 신경 쓰시는 것 같더라. 이해가 가지 않아.”

“역시 평범한 부호는 아닌가 보네. 너희 아버지도 신경 쓰다니 말이야. 역시 형 말이 맞았나?”

“뭐야? 너 뭐 아는 거 있어? 나 서운하려고 그런다? 아는 것 있으면 털어 봐.”

“뭐, 첫째 형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그 부호 보통 출신이 아니라는 소문이 있대.”

“보통 출신이 아니라면?”

아랍의 어린 부호.

현재 그 존재는 재벌가들에 뜨거운 이슈로 자리 잡아 알게 모르게 그에 대한 소문이 퍼지는 중이었는데 예삿일은 아닌 듯싶다. 그도 그럴 게 이들의 아버지들은 대한민국의 내놓으라는 그룹들의 로얄패밀리 출신들이다. 그들이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뜻. 역시나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는지 놀라운 정보가 자기 친구의 입에서 튀어 나왔다.

“왕족이란다.”

“왕족!? 왕족이 왜 이 먼 곳까지 와서 클럽을 차리려 해? 구라 아냐?”

“그거야 직접 만나지 않는 이상 모르지. 그래도 뭐가 있으니까 그런 소문이 난건 아니겠어?”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데? 듣기로는 한국어도 구사할 줄 안다는데 아랍 왕자가 뭐가 아쉬워서 한국어를 배워서”

“뭐, 아랍에서도 한류가 도나 보지.”

“지랄. 퍽이나 그러겠다. 그래도 무시하긴 좀 그러니까 나중에 좀 알아보긴 해야겠다. 진짜로 왕족이면 한번 만나보고 싶은데?”

“왜? 뭐 가서 만나서 놀아보게?”

“안 될 거 있냐? 노땅들보다는 우리랑 잘 맞을걸? 게다가 클럽이라면 우리 전문 아니냐.”

뭔가 말이 안 되는 정보였지만 사실이라면 무시할 수도 없는 정보였다. 무려 한국어를 구사하는 아랍의 왕족이다. 게다가 한국에 관해 관심을 보이기까지 한다. 생각이 있다면 그와 인연을 맺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옳았다.

“으아아아―! 박도경 개새끼―!”

와장창!

“어휴, 저 병신 아직도 저러고 있냐……. 야! 뭔가 만회할 생각을 해야지. 그렇게 악만 지른다고 뭐가 돼? 그러니까 첩 자식한테 백화점을 빼앗기지.”

“뭐라 그랬냐 김조현? 너 뒤지고 싶어?”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 아직도 제 성질을 못 다스리고 시끄럽게 구는 자신의 친구를 향해 그가 혀를 차며 들으라는 식으로 비아냥거렸다. 그러자 인상을 구기며 반응을 보여오는 친구를 향해 김조현이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아니. 어차피 너희 아버지가 박도경 조지기로 했잖냐. 그만 설치고 이쪽으로 와봐. 재미난 이야기 있으니까. 어쩌면 이번 네가 저지른 일 만회할 수도 있는 이야기니까.”

“재밌는 이야기? 그게 뭔데?”

“야야! 그나저나 여자애들은 언제 오냐? 종업원 불러봐. 이 새끼들 정신상태 빠져서 말이야. 장사하기 싫은가 보네?”

얼마 지나지 않아 엉망진창이 된 룸에 들어오는 종업원 한 명. 종업원은 들어오자마자 뺨따귀를 맞으며 조인트를 까였지만, 그는 익숙한 듯 비굴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보다 어린 청년들의 비위를 맞추는 데 최선을 다하였다.

현실이란 이런 것이었다. 도경이 일으킨 사건은 일반 사람들에게는 큰일이었지만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자라난 이들에게는 그저 사소한 헤프닝일 뿐이었으며 그들의 행동에는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 * *

[산영그룹 재벌 4세 전용진 증거불충분. 징역6월 1년 집행유예.]

[한길교회 신자들 JY엔터테인먼트 농성시위! 우리 조상남 목사님은 죄 없어]

[도경에게 진실을 추구하는 Truth 국민을 기만한 가짜 영웅에게 진실을 촉구하다.]

[스타 언더커버 물의에 대표 사퇴. 반성하는 듯싶지만 이어지는 도경의 추가 의혹설을 제기하다!]

[박도경 왜 남성에게만 지원하는가? 한국여성단체연합 의문을 표하다.]

세상에는 관성의 법칙이라는 물리법칙 있는 것처럼 현실은 무언가 한보 내딘 것처럼 보이지만 정신 차려보면 어느 순간 원래의 제자리로 돌아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대한민국이란 현실은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더 뒤로 후퇴하려는 낯익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고객의 신용도가 높을수록 신속, 정확, 변함없는 서비스로 무죄나 집행유예로 법망을 유유히 빠져나가는 권력자들과 보여주기식 사퇴와 대물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안티와 뭐든지 불편하게 바라보며 딴지를 걸어 노이즈를 일으키는 단체.

도경이 불러일으킨 신선한 바람은 어느샌가 텁텁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로 뒤덮여가고 있었다.

―[히야―! 클라스 오지구요. 사건 일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속절없이 다 풀려나가냐?]

―[하루 이틀이냐? 난 원래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여성단체 돈 거 아니냐? 지원받고 싶으면 너희들도 군대 가라!]

―[레알 제정신들이 아닌 새끼들 많네.]

―[솔까 이거 박도경만 씹 손해 아니냐? 200억 이상 날렸는데 변하는 거 아무것도 없네 ㅋㅋㅋ]

―[이미지는 제대로 챙겼잖아. 솔직히 손해는 아니지. 나중에 몇 배로 걷을 텐데 다른 건 몰라도 연예인 걱정하는 건 아님.]

혹시나 하는 기대. 하지만 항상 그렇듯 변하지 않는 현실에 누군가는 욕설을 내뱉으며 엄한 곳에서 분노를 터트리고 있었고 누군가는 이럴 줄 알았다며 냉소적이면서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변화를 일으키려면 먼저 움직여야 하건만 그 움직임이 너무나 미미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모두가 이런 부조리한 시스템에 익숙해져도 너무 익숙해져 있는 까닭이다.

상과 벌이 불확실한 사회. 정의를 구현하려 했던 사람들의 대우가 어떠했는지. 부정을 저질러도 그들이 가진 것을 추종하며 대우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똑똑히 보고 자라왔는데 누가 정의를 위해 움직이겠는가?

사람들은 정의를 원하지만 정의로운 존재는 아니다. 사람들은 지극히 이성적이고 본능적인 존재이다. 손해를 보는 것을 싫어하며 자신에게 이득이 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부조리는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게 굳어 깨지지 않는 것이었다.

바람은 시원했지만, 단단하기 그지없는 콘크리트는 여전히 사람들의 현실에 무겁게 놓여있었다.

* * *

【배우 전용 트레일러】

촬영 세트장. 배우들이 각자 개인으로서 쉴 수 있는 장소. 그곳에서 도경은 소파에 편안하게 누워 태블릿으로 뜬 글들을 읽다가 이내 옆에 있는 테이블에 손에 놓았다.

툭.

“뭐, 이럴 거라고 생각했지만 말이야. 역시 재미없네.”

드라마 촬영이 바쁜 와중. 도경은 틈틈이 한국 근황의 기사들과 사람들의 반응을 읽으며 쓴 미소를 지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변하고 싶어 하는 욕구는 있지만, 그 욕구를 이룰 힘이 모자란 듯싶었다.

“판을 깨야 하는데 말이야…….”

보통 이런 상황에 냄비근성이다 뭐다 강하게 비판하며 각성을 요구하지만, 도경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길들어진 만큼 사람들의 사고가 너무 굳어져 있어.’

도경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그저 생각하는 사고가 굳어져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특화되어 있지만 그만큼 무언가를 능동적으로 만들어나가고 변화해가려는 사고는 발달하지 않았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사고가 굳어져 있으니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기 쉽고, 기득권은 그 고정관념을 이용해 사람들을 자신의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만든다. 서로가 하나의 공식으로 답을 정해놓고 움직이니 변하는 것이 없었다. 도경은 그런 점이 안타까웠다.

“뭐, 상관없나……?”

안타까운 일이라면서도 도경은 상관없다고 말한다. 자신과 관계없는 일이라 치부하는 것일까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뒤에 이어지는 도경의 말에 그것은 다른 의미로 말하는 것이라 알 수 있었다.

“앞으로 바꿔나가면 되니까.”

벌떡.

무슨 생각을 하는지 더 살펴보고 싶었지만, 잠깐의 휴식은 끝이 났는지 도경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천천히 몸을 풀기 시작한다.

“좋아 가볼까?”

이제는 생각은 그만하고 몸으로 움직일 때. 도경은 트레일러 문을 열고 촬영장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자신의 주변을 짓누르는 무거운 현실. 하지만 도경의 발걸음은 다른 이들과 달리 한없기 경쾌하기만 했다.

* * *

바글바글.

【촬영 세트장】

평소랑 다름없는 왕좌의 길 세트장. 분명 언제나 변함이 없는 풍경인데 스태프들의 분위기가 묘하게 활기가 넘친다.

“허허. 오늘 사람들이 활기들이 넘치는군.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맥?”

“그러게 말이야. 일이 늘어난 게 그렇게 좋은 건가? 스태프들이 저렇게들 일을 좋아하는 줄 몰랐는걸?”

그런 스태프들을 바라보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 남자. 피도 눈물도 없는 철혈의 영주 베르닉 파이크를 연기한 로빈 행크스는 맥 클라우드 감독의 곁에 다가와 너털웃음을 내지었다.

“그런 게 아니잖나. 모두들 지금 촬영을 진심으로 즐거워하고 있다는 거 자네도 모르지 않을 텐데?”

“흥! 다들 제정신이 아닌 거지. 드라마 촬영도 바쁜데 뮤직비디오를 찍을 시간이 어딨는지. 모레츠 여사 정말 마음에 안 들어. 이번 시즌 마치고 계약서에 추가조항 달아서 발언권에 대해서 확실히 선을 그어나야겠어.”

놀라운 말이 맥 클라우드 감독 입에서 흘러나왔다. 뮤직비디오라니? 한창 막바지 드라마 촬영에 바쁜 시기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일까?

“원, 솔직하지 못하기는……. 자네도 이번 촬영 즐거워하고 있지 않나.”

“웃겨 뭔 소리 하는 거야? 아까 내가 했던 말 못 들은 거야? 즐기긴 뭘 즐겨.”

힐끔.

“그 스토리보드 그저께 받은 거 아니었나?”

“크흠……. ”

“하하. 참 자네는 골치 아픈 자존심을 가지고 있다니까.”

“시끄러.”

자신의 말에 맥 클라우드 감독이 부정하지만 로빈은 맥 클라우드 감독이 내뱉는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그가 쥐고 있는 스토리보드 책자가 형광색의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은 상태로 헤질 대로 헤져 누가 보면 몇 달을 들춰본 것 같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의 뮤직비디오 촬영을 정말로 못마땅해했다면 애초에 지금 촬영장에 그가 나타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나저나 대단하지 않은가? 동양인 젊은 청년 하나가 모두를 홀려도 제대로 홀렸어.”

“뭐, 워낙에 넉살이 좋은 녀석이니까.”

“글쎄. 넉살 하나로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낸다면 나도 한번 배워보고 싶군.”

“무리지. 너처럼 범생이 녀석은 절대 안 될걸?”

“허. 그거 상처받는 소리를 하는걸?”

“그 녀석은 천성적인 분위기 메이커야. 저것 봐봐. 오늘 철야로 촬영해야 하는데 다들 신나 하는 녀석들의 모습을 말이야. 설마 뮤비 촬영 지원자가 이리도 많을 줄 누가 알았겠냐?”

도경의 노래와 모레츠 여사의 제안으로 성립된 뮤직비디오 촬영. 원래라면 바쁜 일정에 늘어난 일에 스태프들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해야 하건만 신기한 건 모두의 얼굴에는 즐거움이 가득하다는 거였다.

“뭐, 다들 카일 군의 이번 노래를 들어보고 싶은 거지. 그와 가라오케 주점에 간 이들 모두가 이미 카일 군의 팬 아닌가? 그러니 이리들 많이 모인거고 말이야. 아, 노래 제목이 뭔가? 아직 못 들었는데 말이야.”

로빈 행크스의 기대하는 눈빛에 맥 클라우드 감독이 마지못해 도경의 노래 제목을 알려 주었다.

“Be a man.”

피식.

돌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부딪히는 노래. 그 제목을 말하면서 맥 클라우드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모두들 그 노래를 듣고 놀랄 표정을 지을 것을 생각하니 절로 유쾌해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로빈의 말처럼 맥 클라우드 감독 자신은 이번 촬영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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