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340화 (340/357)

340화

쿠울―.

이틀간의 철야로 촬영한 뮤직비디오가 끝이 나고 모두와 함께 뒤풀이를 보냈던 도경은 현재 집에도 가지 않고 자신의 트레일러 안에서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Rrrrr!

“으음…….”

꿈틀꿈틀.

“으……. 여보세요?”

시끄러운 전화벨 소리. 술병과 함께 퍼져있는 도경은 뒤척이다가 자신의 스마트폰을 힘겹게 들어 올려 전화를 받는다.

『박도경 씨 되십니까?』

“누구……?”

『산영그룹 법무팀의 변호사 전찬수라고 합니다.』

“…이른 시간에 뭡니까? 그리고 내 전화번호 어떻게 알았죠?”

낯선 목소리에 도경은 힘겹게 눈을 뜨며 스마트폰 액정에 떠 있는 등록되지 않는 번호와 지금 시간을 확인하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쪽 시간으로 9시로 알고 있는데 이른 시간은 아니죠. 전화번호야 저희쯤 되면 쉽게 알 수 있답니다.』

“하……. 그러세요.”

얼핏 정중해 보이는 태도지만 실상은 무례하기 그지없는 언행. 오만함이 섞여 있는 목소리는 도경의 신경을 긁어 짜증을 유발했다.

“용건이 뭡니까?”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기자회견에 터트린 자료. 출처가 누굽니까?』

“알아서 뭐 하시려고? 뭐…….”

변호사의 물음에 도경이 누운 몸을 일으켜 냉장고를 향해 걸어가 생수를 하나 꺼내 마시기 시작했다.

“보복이라도 하시게?”

『도경 씨……. 이번에 당신이 일으킨 일로 저희 산영 그룹이 얼마나 곤혹을 치룬지 아십니까? 그 덕분에 저희 회장님이 심기가 매우 불편하십니다. 그러니 얌전히 대접해주시는 게 좋을 겁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삐딱이는 도경의 태도에 변호사가 목소리를 나지막이 내리깔며 위압적인 태도를 드러냈지만, 도경에게는 아무런 위협이 되질 못 했다. 애초에 저런 위협이 먹힐만한 인물이었다면 기자회견에서 그런 사건을 저지르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까고 앉아있네. 당신네 노인네가 심기가 불편한지 내가 알 바야?”

『노, 노인네? 당신 지금 제정신입니까? 산영그룹의 주인이신 회장님을 모욕하신 겁니까?』

“당신한테나 하늘 같은 주인이고 회장이지 나한테는 자식 농사 잘못 지은 노인네일 뿐이야. 당신들에게 알려줄 정보 따위 없어. 뭐, 정 알고 싶다면 그 잘난 회장님 내 앞에 보내던가 말이야. 그러면 감격에 마지않아 알려줄지도 모르겠네.”

『…….』

도경의 말에 변호사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자신들은 무려 산영그룹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재벌가 중 세 손가락에 꽂히는 그룹이며 도경이 노인네라고 칭했던 사람은 순 재산만 자그마치 24조 원으로 전 세계 부호 순위 35위를 차지하는 거인이다.

‘스타라고 떠받아지더니 제 분수를 모르는구나.’

아무리 글로벌 스타라 떠받들어지지만 결국 태생은 딴따라에 불과한 녀석이 주제도 모르고 설치고 있었다.

『미쳤다는 말 밖에 안 나오는군요……. 감당되시겠습니까? 회장님에게 지금의 대화 그대로 보고가 갈 텐데 말입니다.』

“마음대로 무서울 것 하나 없어.”

『후후. 박도경 씨? 딴따라가 건방진 것도 정도가 있습니다. 한국에 들어오신다면 부디 몸조심하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재미난 일들이 생겨날지 모르니까요.』

“그거 좋네. 재미난 일은 얼마든지 환영이지 어디 한번 놀아보자고.”

『후회하실 겁니다.』

“그건 아마 당신 회장님이 할걸? 당신 회장이 고혈압이 없기를 빌어.”

『……?』

뚝.

협박이나 다름없는 변호사의 장담에도 도경은 그저 비웃을 뿐이었다. 싸움이 벌어진다면 손해는 자신이 아니라 그쪽이 본다. 그도 그럴 게 잃을 것 없는 놈과 잃을 게 많은 놈의 싸움은 항상 가진 게 많은 놈이 손해를 보니까 말이다.

“거참. 아침부터 모닝콜 한 번 고약하네.”

마지막 말과 함께 일방적인 통화 종료. 도경은 손에 쥔 스마트폰을 소파 위에 던져놓고 굳은 몸을 풀기 시작했다.

“성격들 참 급해……!”

뚜둑.

여기저기서 몸에서 비명이 울려 퍼지지만 도경은 개의치 않고 몸을 풀어간다. 이 불쾌한 하모니 다음에 시원함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그리고 이건 지금 도경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된다.

“여기저기서 놀아달라고 보채는 꼴이라니.”

뚝!

기자회견 후. 도경을 찾는 윗분들이 한둘이 아니다. 대부분은 소속사에서 차단 중이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독자적으로 찾아오는 능력 있는 분들 때문에 도경의 기분은 지금의 몸 상태처럼 한없이 찌뿌드드했다.

“한 대 맞아 봐야 정신 차리지.”

거대한 그룹에 속한 이들은 항상 홀로 다니는 개인을 무시한다. 개인의 힘은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지 못하며 언제나 자신들의 뜻대로 찍어 누를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알아야 했다. 지금 그들이 건드리려는 도경이란 인물은 권력자들의 행동에 이골이 나 있는 전적을 가진 인물이라는 것을 말이다.

“촬영까지 앞으로 3일.”

3일이면 왕좌의 길 드라마의 모든 촬영이 끝난다. 그리고 그날 도경은 다시 한번 한국에 갈 예정이었다. 기부재단 건의 일도, 기자회견에 벌인 일 때문에 밀려 들어오는 법적 공방에 관한 일도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세상사 시원하게 싸지른다고 해서 전부 끝 나는 게 아니었다. 싸지른 것을 흔적이 남지 않게 잘 닦아서 깨끗하게 뒤처리해야 하는 귀찮은 일도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래 봬도 찝찝한 건 못 참는 성격이지.’

뚜둑.

“아.”

시원한 감각에 감탄사를 내뱉으며 도경은 활짝 기지개를 피며 트레일러 밖을 나선다.

* * *

쿵쿵쿵쿵!

와아―!

누군가에게는 다음날을 위한 휴식을 취해야 할 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하루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밤이기도 하다. 수많은 남녀가 뒤섞여 귀가 멎을 만큼 큰 음악 소리에 속에 자신들의 시간을 열정적으로 불태운다.

이곳은 【버닝 플라워:BF】.

꽃 같은 청춘을 불태우라는 의미의 이름으로 지어진 이 클럽으로 최근에 강남에서 새로 떠오르는 핫 플레이스로 많은 청춘들이 클럽의 이름의 걸 맞게 자신들의 젊음을 불태우고 있었다.

“어때? 이곳이 내가 운영하는 클럽이야.”

“좋네요. 한국에서 셀럽 연예인으로 유명한 승한 씨가 차린 클럽다워요. 본 곳 중에 가장 ”

“마음에 들어서 다행이네. 그리고 셀럽은 무슨 너에 비하면 난 그냥 일반인이지. 그나저나 씨는 빼라도? 아무리 들어도 승한 씨는 너무 딱딱하게 들려”

“괜찮습니까? 한국에서는 경칭이 중요하다 들었습니다만?”

“에이. 우리처럼 친해질 사이엔 그렇게 격식 안 차려도 돼. 그리고 앞으로 자주 볼 비즈니스 파트너잖아? 경칭은 생략하는 게 서로에게 좋다고.”

“그것도 그렇네.”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툭 치는 그 행동에 갈색의 피부색과 안경을 낀 외국인이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지었다.

“그럼 앞으로 말 편하게 하도록 할게. 승한이 형.”

“와! 지금 형이라고 부른 거야?”

“한국에선 나보다 나이 많으면 형이라고 부르는 거 아니었어?”

“아니 맞는데……. 카심 너한테 형이라고 들으니까 너무 감격스러운데? 하하! 왕족한테 형 소리를 듣다니 정말 최근까지 상상도 못 한 일이야.”

“너무 오버하는 걸?”

“오버가 아니야! 내 인생 중 오늘처럼 기쁜 날은 없을 거야. 자, 한잔하자. 카심. 도원결의를 맺어야지.”

“도원결의?”

“형제로서 우정을 다진다는 뜻이야. 자, 한잔해. 앞으로 잘 부탁한다 동생아.”

이승한은 기쁜 표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앞으로 자신과 우정을 다질 아랍의 형제와 잔을 마주치며 이내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이게 꿈이냐 생시냐? 왕족을 친구로 두게 된다니 말이야.’

카심 빈 자이드 알 나인(20).

올해 20살. 눈이 깊어 보이는 것 외에는 다소 평범한 인상의 젊은 외국인 청년. 하지만 그의 이름의 뜻을 헤아려 보면 절대 평범치 않은 존재였다.

아부다비 왕가 알 나인 가문의 『자이드』의 아들 카심 알 나인. 복잡해 보이는 배경설명이었지만 쉽게 말해 돈이 썩어 넘치는 왕족 가문에 세계에서 부자로 뽑히는 돈 많은 아버지를 둔 아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왕가의 재산만 추정되기로 1000조. 그리고 그의 아버지인 자이드의 개인 재산은 38조인 슈퍼부자의 유일한 외동아들이 바로 카심이었다.

그런 카심과 인연을 맺고 형이라는 소리를 들었으니 이승한의 입꼬리가 찢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

“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놀라운 일 같아.”

“뭐가?”

“한류라는 게 설마 아랍의 왕족인 너에게까지 닿았다는 게 말이야. 한국어를 유창히 내뱉으면서 네가 나를 찾아왔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말도 못 한다.”

“그 정도인가?”

“생각해봐. 갑자기 한국에 온 아랍 왕족이 나를 찾는다는데 안 놀래? 게다가 같이 사업을 하고 싶다고 찾아오는데 처음에는 네가 사기꾼인 줄 알았다니까.”

어느 날 갑자기 회사로 자신을 찾아와 사업할 동업자를 찾는다던 카심은 정말로 갑작스럽기 그지없었다. 처음에는 사기꾼이 아닐까? 그의 신분을 의심도 하였지만, 그의 여권과 대사관를 통해 진짜라는 확인을 받고 난 후. 그 의심은 싹 사라졌다.

“사기꾼이라…….”

“야야. 형이 농담한 걸 알지? 그걸 또 진담으로 들으면 안 된다?”

“알아. 그냥 생소한 단어라 읊어봤어.”

“하긴 사기라는 게 돈 없는 거지들이나 치는 짓이니까 너한테 생소할 수 있겠다.”

사기꾼이라는 단어에 묘한 표정을 짓는 카심을 보며 혹시나 기분이 상했을까. 이한승은 서둘러 그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그나저나 왜 클럽이야? 너 정도면 더 큰 사업을 할 수 있잖아.”

“클럽이 한국에서 인싸들의 장소 아닌가요? 고위층과 인맥 다지기도 좋고 연예인도 많이 볼 수 있는 장소니까.”

“하하하! 인싸란 단어는 어디서 배웠어? 진짜 한국어 유창하네. 그런데 카심 네가 뭘 좀 아는구나. 맞아 클럽만큼 인싸되기 좋은 곳이 없지. 나 봐라. 그룹 안에서 제일 인지도 딸렸던 아이돌이 이제는 제일 핫한 연예인이 되어서 멤버들을 이끌고 나가잖냐.”

인싸라는 단어를 내뱉는 카심에 이승한은 유쾌한 웃음을 터트리면서 자기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았다.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대형 아이돌 BSG. 거기서 항상 멤버들에 비해서 모자란 인지도를 가졌던 이승한은 이를 악물고 보란 듯이 모든 것을 역전해 나가며 성공을 쟁취하였다.

외식업, 패션의류, 클럽 등 각종 사업을 성공시키며 대기만성형으로 성공한 연예인으로 이제는 각종 예능에서 활약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맺고 있었고 멤버들을 데리고 소속사를 나와 엔터테인먼트까지 차릴 정도로 거대한 스케일과 사업수환을 보여주며 모두에게 성공의 아이콘으로 동경과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나를 찾아온 걸 후회하지 않을 거야.”

“믿음직하네.”

“하하하. 당연하지. 다른 건 몰라도 클럽과 파티하면 내가 대한민국에서 최고일 걸? 그럼 이젠 지하에 슬슬 내려 가볼까? 지금쯤이면 파티 분위기가 알맞게 무르익었을 텐데 이번 파티의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내야지. 너 보고 싶어서 온 애들이 한둘이 아니다. 대한민국에 난다긴다하는 녀석들이 다 모였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승현은 카심을 향해 자신감 있게 손을 내밀었다. 카심에게 한국의 클럽문화를 체험시켜주는 근근이 자신의 끈들을 총동원해 이번 파티를 기획했는데 이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쓴 돈만 15억이 넘었고 난다긴다하는 재벌들과 연예인들을 한곳에 모아놓았다.

‘이 녀석만 잡으면 더욱더 위로 간다. 더이상 아무도 날 무시 못 해!’

“역시……!”

이승현은 오늘 기점으로 카심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라 강하게 확신하며 자신은 더욱더 위로 올라갈 것이라 믿었다. 그만큼 대한민국에 유례없는 파티였으며 이 이상으로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는 자리는 없기 때문이었다.

“형을 고른 게 정답인 거 같네.”

피식.

“그럼! 내가 누군데! 오늘 네가 좋아하는 연예인도 왔을지도 모르니까 기대하라고 하하!”

“없을걸요?”

중얼.

“응……? 뭐라고 했어?”

“아아. 별거 아니고 그냥 혼잣말이야. 그럼 내려가자 형.”

“어, 어. 그래 가자.”

순간 쓸데없는 말을 뱉었다고 생각하며 카심은 자신의 안경을 치켜세우며 이승현을 끌고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하며 웃음 지었다.

‘그 사람은 의외로 깔끔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말이야.’

자신의 은인이자 영웅. 그를 떠올리며 카심은 지하에 열린 파티. 파티를 넘어선 주지육림을 바라보며 아랍어로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너희들은 큰일난 거지.”

쿵쿵!

“뭐라고? 했어? 카심?”

“끝내준다고 했어요!”

“하하하! 거봐 마음에 들 거라 했잖아.”

사업을 위해 영어, 중국어, 일본어, 불어까지 능통한 이승현이었지만 불행히도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파묻히는 아랍어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렇게 두 남자는 광란의 밤을 보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승현은 그날의 기점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다. 대한민국에서 그 누구보다 유명해지는 계기를 말이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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