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341화 (341/357)

341화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다. 앨범, 콘서트, 드라마, 스캔들까지 미국에서 쉼 없이 달려왔던 도경에게 있어 오늘은 하나의 마침점을 찍는 날이기 때문이다.

【Episode:Finale】

그렇다. 많은 사람의 화제를 낳으며 열기를 몰아 왔던 왕좌의 길 드라마가 드디어 마지막 에피소드를 보이는 날이 다가온 것이다.

[왕좌의 길 숨 막히는 마지막을 선사하다!]

[스토리, 비주얼, 음악 모든 것을 다 잡았다. 다음 시즌은 무엇을 붙잡을 것인가!?]

[비장하고 강인하며 애절하다. 고통스럽지만 나아가야 한다.]

[피날레 시청률 790만! 마지막까지 명실상부 명품 드라마 등극! HBA 함박웃음 짓다.]

└『아 현기증 난다. 790만 후덜덜하네. 개 포텐 터트렸나 본데 내용 개 궁금하다. 자료 떴던데 볼까? 봐버려?』

└『영못알 선발대입니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데도 정신 차려보니 바지 지렸습니다.』

└『미친 새끼 ㅋㅋㅋ 영못알이 그걸 못 참고 봐 버리면 어쩜. 꾹 참아야지. 그런데 그 심정 이해는 함. 기다리는 게 이렇게 힘들었냐?』

└『이거 끝나면 무슨 재미로 사냐? 10화면 너무 짧다 ㅠㅠ』

└『제대로 된 선발대입니다. 영어 못하면 기다렸다 제대로 보세요. 도경이 형 개 간지임.』

시차 때문에 미국에서 먼저 방영한 왕좌의 길에 대한 반응은 실시간으로 한국에 전해진 상태. 덕분에 한국의 시청자들은 금요일 하루를 몸을 달아오르는 상태로 드라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라마로 웬 오버야 생각할 수 있겠지만, 비지상파 채널로 무려 35%를 달성한 드라마는 그저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었다.

왕좌의 길은 현재 나이가 어린 초등학생도 꼭 시청할 만큼 신드롬을 일으키는 상황이었으며 한국에서 10편의 짧은 에피소드와 생소한 장르인 판타지로도 이리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새로운 역사를 쓴 드라마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드라마의 중심에서 활약하고 있는 도경이란 존재였다. 사람들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고 있었지만, 그들이 진정 보고 있는 것은 현실에서 도경이 그려나가고 있는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브랜드평판 드라마 배우 1위!】

【올해 최고의 스타 1위!】

【2018년 도전과 성공의 아이콘 1위!】

【자식이 닮았으면 하는 연예인 1위!】

【형으로 삼고 싶은 연예인 1위】

악재인 스캔들을 극복하고 드라마 속에서 활약하며 미국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도경이 거둬들인 결과는 그야말로 어마무시했다. 온갖 브랜드 가치에서 1위로 등극하며 대중들에게 압도적인 지지와 인기를 얻고 있었는데 그런 도경을 보며 업계 관계자 몇몇은 도경을 향해 대한민국 연예계와 대중을 책임지는 국민 엔터테이너 라는 호칭까지 만들어 쓰고 있으니 도경의 위상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알 수 있었다.

“이쯤 되면 무서워질 지경인데.”

절레절레.

도경에 관한 글들을 읽던 박진용은 혀를 내두르며 도경의 독특한 인기를 확인하였다. 연예계에서 수십 년을 종사했지만, 대중에게 이 정도까지 절대적인 신뢰와 호감을 받는 스타는 처음 보았다.

드르륵.

“뭐 봐요?”

“아, 도경아.”

“아아. 이거 나도 봤는데 되게 웃기던데. 내가 나중에 가서는 남성부 차릴 거라나?”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 박진용이 고개를 돌리자 한국에 언제 돌아왔는지 신수가 훤칠한 도경이 눈에 들어왔다.

툭툭.

“어때? 진짜 확 차려버릴까요?”

태블릿 위로 자신이 남성부를 차릴 거라는 유머 글을 읽은 도경은 재밌다는 듯 웃음 지으며 우스갯소리로 너스레를 떨었지만, 박진용은 그런 도경의 농담에 웃을 수 없었다. 도경의 농담이 이제는 농담으로 들리지 않아서였다.

“헛소리하지마 임마. 이상한 바람 들지 말고 본업에 충실해.”

“농담인데 뭐 이리 정색해요?”

“농담으로 안 들리니 문제지. 주변에서 자꾸 부추기는데 네가 휘말릴까 봐 정말 걱정이다.”

청바지에 검은색 후드티를 푹 눌러쓰고 있는 꾸밈없는 모습으로 미소를 머금고 있는 도경을 바라보며 박진용 대표가 한숨 아닌 한숨을 내쉬었다. 스타가 대중들에게 인기와 지지를 받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동시에 그만큼 원치 않는 요구들과 기대를 받게 되는데 지금의 도경이 그런 상황이었다.

‘스캔들 너무 분위기가 과열되었어……!’

이번 스캔들로 도경이 정의감 넘치는 이미지가 만들어진 이후에 도경의 주변은 혼잡한 잡음들이 맴돌기 시작했다. 각종 기부 단체부터 시작으로 익명으로 도경을 향해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좋은 뜻으로 하는 것이라며 각종의 명분 거리들을 가져와 도경을 날로 먹으려는 업계 종사자들까지 골치 아픈 유형들이 도경을 향해서 모여오고 있었는데 그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경은 그저 해맑기 그지없었다.

“뭐, 어때요? 스타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쉽게 내뱉을 게 아니야. 수많은 스타들이 이런 비정상적인 열기에 자신도 모르는 새에 사건 사고를 내는 거라구. 이제부터는 진짜 자기관리랑 처신 잘해야 할 때야. 알겠지?”

주변의 인기와 기대가 지나치게 높아지다 보면 그 인기의 열기에 당사자는 변하기 마련이다.

팬들의 높은 기대와 요구에 충족할 수 있을까 정신적으로 불안해하기도 하고 혹은 그 반대로 오만해져 자신만의 편협한 세계에 빠지기도 했다. 둘 중 어느 것이 되었든 간에 자신을 잃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가는 것은 똑같다.

“또 그 이야기……. 샛길로 안 새니까 걱정하지 말라니까요? 어찌 된 게 이재는 엄마보다 형이 더 잔소리가 심해졌어. 주변 때문이 아니라 형 때문에 스트레스받겠어.”

“아니……. 걱정이 되니까 하는 소리지.”

문자를 시작으로 만날 때마다 항상 정신 교육으로 귀결되는 그의 행동에 도경이 질린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박진용은 자신의 주변의 과한 인기의 열기에 걱정했지만, 도경이 생각하기엔 가장 극성인 사람은 바로 그였다.

그런 도경의 심경을 알았는지 조금은 찔린 기색을 보이는 박진용을 보며 도경이 그를 다독이기 시작했다. 한국에 얼마 안 있을 황금연휴를 잔소리로 시작해서 잔소리로 끝낼 수 없었다.

“이젠 전속 매니저까지 생겼겠다. 뭘 그리 걱정해요? 크리스틴 보면서 프로패셔널 하다고 마음에 들어 했잖아요.”

“그건 그렇지……. 그런 고급인력이 네 매니저를 해준다니.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어.”

이번에 회사를 나와 도경의 전속 에이전트로 미국에서 매니저까지 하기로 한 크리스틴을 떠올리며 박진용은 걱정을 지우고 조금은 안심되는 표정을 내보였다.

법학을 전공하며 변호사 자격증과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까지 4개 국어를 구사하며 에이전트로서 전문가다운 포스를 풍기는 크리스틴은 박진용에게 있어 믿음직스러운 안전장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이어지는 도경의 대답에 그의 안전장치는 금이 나고 말았다.

“그리고 솔직히 내가 조심한다고 사건 사고가 안 터지겠어요? 그냥 마음 편히 가지라니까요. 일 생기면 이번처럼 화끈하게 처리하면 되죠. 나 박도경. 도망가지도 숨지도 않는다. 올 테면 와봐 랄까요?”

척.

“도경이 너…….”

과장되게 공격 자세를 취하는 도경을 보며 박진용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사건 사고를 안 내겠다는 생각보다도 터져도 기꺼이 수습하겠다는 도경의 그 호기로운 마음가짐에 박진용은 기가 찼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런 역발상을 어떻게 하는 걸까? 넋 놓고 도경을 박진용이 바라보고 있자 도경은 그 시선을 오해했는지 어깨를 으쓱이며 자신을 향해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

“하하. 너무 감탄하지 않아도 돼요. 내가 멋있다는 거 알고 있으니까.”

“멋은 개뿔. 그건 그냥 대책 없는 꼴통이지.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어, 어? 왜 그래요? 자, 잠깐 다가오지 말죠?”

훽!

“시끄러워 얼른 이리 안 와? 대표로서 너의 그릇된 생각을 가만히 둘 수 없어!”

“아, 이럴 때만 대표님이래. 둘이 있을 때는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으면서 왜 이랬다저랬다 해요?”

“내 마음이다. 아니꼬우면 네가 형하고 대표해!”

후다닥.

도경의 자뻑에 결국 분노를 터트리는 박진용. 그는 도경을 붙잡아 손수 훈육해줄 생각으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지만 괴랄한 운동 신경을 지닌 도경이 쉬이 잡혀줄 리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진짜 나만큼 건전한 놈이었잖아요. 지금도 이렇게 얌전히 있는데 뭐가 문제에요?”

“헉헉. 누가 너보고 불건전하데? 그냥 은연중에 네가 도발 어그로를 즐기니까 문제라는 거지. 그리고 얌전!? 갑자기 파티 연다면서 소속사 대표를 불러서 팝콘 기계를 날라서 설치하는 게 네 딴에는 얌전한 거냐? 너 내가 만만하지?”

“아하하. 그 보답으로 첫 팝콘은 대접한다니까요? 이거 은근 제 로망이었는데 팝콘 어떻게 튀겨질지 기대되지 않아요?”

“로망은 얼어 죽을! 그리고 말하려다 만건데 저 악취미적인 플래카드는 뭐냐? 당장 떼.”

“왜요? 재밌지 않아요? 보면 애들이 웃을걸요?”

“웃겠지. 그리고 난 그걸 보면서 이마에 주름이 하나 늘어가겠지……! 어그로도 정도껏 해라! 이놈 자식아!”

휘익!

한국에서 매일 공연했던 도경의 소극장 무대 위. 그곳에 걸려있는 플래카드를 가리키며 박진용은 방심하고 있던 도경을 향해 급작스레 몸을 날렸다.

“잡았다!”

“우악! 뭔 놈의 아귀힘이……!”

“후후. 이래 봬도 벤치 120kg 들거든.”

“아니. 내 주위에 뭔 근육 바보들밖에 없어.”

“바보? 그래. 오늘 바보한테 한번 죽어 봐.”

“어어!? 진짜 힘쓰게요? 이러면 저도 가만 못 있죠. 저도 힘 행사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해봐. 짜샤. 작년까지만 해도 3대 500치는 몸이었다.”

“후회하지 마요. 흡!”

번쩍!

“윽!? 이거 안 놔?”

“하하! 후회할 거라고 말했죠? 힘이란 더욱 강한 힘 앞에 허무한 겁니다. 대표님.”

자신에게 헤드록을 걸어 힘을 가하는 박진용을 향해 몸을 밀착시킨 도경은 그를 단숨에 둘러업어 몸을 번쩍 일으켜 헤드락을 풀었다. 단숨에 전세 역전된 상황. 도경에게 들쳐진 상태로 힘에서 밀렸다는 사실에 나이를 잊고 분한 표정을 짓는 박진용을 보며 도경이 고소를 짓고 있을 때. 소극장 안으로 일찍 온 한 명의 손님이 난입해 시끄러운 비명성을 내질렀다.

“오빠! 지금 미쳤어? 대표님한테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윽! 소희?”

일찍 온 손님의 정체는 도경의 친동생 박소희. 그녀는 기막힌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오빠와 대표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동네 초등학생 꼬마애들이 레슬링 하는 것도 아니고 둘이 지금 뭐 하는 짓인지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소희야 이건……!”

삐끗.

“윽! 허리가?!”

쿠당탕.

소희에게 황급히 변명하려던 도경은 발을 헛디뎌 자세를 흩트렸고 이내 허리의 형용할 수 없는 충격을 느끼고는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참 내 진짜 두 사람 다 뭐 하는 건지. 응? 저건 또 뭐야?”

바닥에 뒤엉켜 넘어진 두 사람을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던 소희는 뒤늦게 소극장에 걸려있는 플래카드를 발견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진짜 관심종자라니까. 잘도 저런 걸 돈 주고 만들었네.”

저벅저벅

휙!

부우욱!

“악! 박소희 너 지금 무슨 짓을……!”

“응? 뜯으라고 걸어둔 건지 알았는데? 무슨 문제라도?”

“…….”

도경의 동생답게 탁월한 운동 신경으로 단숨에 위로 도약해서 플래카드에 손을 뻗어 뜯어내는 소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도경은 허리의 통증도 잊고 비명을 내질렀지만, 소희의 반응은 그저 쿨하기 그지없어 도경은 할 말을 잊어버렸다.

“하하하. 속이 시원하네. 저게 멋진 거란다 도경아.”

툭툭.

“저리 가요.”

박진용의 속 시원한 웃음에 도경은 슬픈 눈으로 바닥에 떨어진 플래카드를 바라보며 애잔한 표정을 지었지만, 소희는 그런 자신의 오빠를 시선을 무시하며 플래카드를 바닥에 집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정말 창피해서 못 살겠다니까. 애들이 봤으면 어쩔 뻔했어?”

『우민들이여 왕의 귀환을 맞이하라. 왕이 돌아왔다.』

도경이 야심 차게 준비한 플래카드는 그렇게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한 채. 무대 뒤편 저 멀리 내던져 졌다.

“도경 오빠 저희 왔어요!”

“형! 우리도요!”

“사부―!”

우르르.

잠깐의 헤프닝. 얼마 지나지 않아 소극장으로 도경의 시사회에 초대받은 지인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며 좌석이 하나둘 채워지기 시작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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