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344화 (344/357)

344화

[작년 인종차별 논란 낳았던 고집불통의 그래미 결국 도경에게 항복선언!]

[올해의 『앨범』 『레코드』 『노래』 부문 동양인 최초 그래미 어워즈 본상 부문 석권! 또 다른 전설이 태어나다!]

[박도경 미국 활동 중단하고 귀국 선언! 그 이유에 모두가 주목하다!]

[그래미 시상식 소감 후. 스페셜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카일의 신곡. 『N/R』 더 나은 인생을 나아가는 메시지가 담긴 음표(Note)와 쉼표(Rest)…!]

[음악의 순수함을 믿는 아티스트! 올해의 아름다운 스피치 선정!]

[한국을 돌아가는 도경을 향한 보이콧 물결! 아시아인 스타에 대한 미국의 이례적인 사회 현상이 벌어지다.]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난리 났네요.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역시 크리스틴 씨 말대로 오늘 바로 돌아가길 잘한 것 같군요.”

미국 활동을 접고 자신의 나라로 돌아간다는 도경의 발언에 여기저기서 난리가 일고 있는 것을 보며 성준은 시상식을 마치고 곧바로 전용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자신들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 누구도 도경 씨가 미국 활동을 접었을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을 겁니다. 당연히 이 정도 반응은 당연한 겁니다.”

“그렇죠…….”

힐끔.

5년 만에 미국 전역은 물론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가수이자 배우다. 이 정도의 반응은 예상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크리스틴의 그런 반응에 성준은 새삼스레 자신의 옆에서 곤히 자는 도경을 바라보았다.

“새삼스러운 거지만 이 형은 그런 존재였죠. 이상하게 항상 그 사실을 깜빡한단 말이죠.”

“익숙합니다. 성준 씨 뿐만이 아니라 누구나 다 그런 반응들을 보이니까요.”

“하하. 하긴 원체 스타라는 티를 내지 않으니…….”

스타가 된 도경은 의외로 검소했다. 스타들이 가지고 있는 그 흔한 외제 차도 운전면허 따기 귀찮다고 사지 않았으며 비싼 의류나 브랜드 또한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도경이 돈을 쓰는 곳은 오직 먹는 것과 문화생활을 즐기는데 비는 비용들밖에 없었다.

“저도 도경 씨와 전속으로 계약 맺으면서 제일 놀란 점이 그런 점이었죠. 망나니처럼 놀 것 같은 스타일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건전하게 놀아서 말이에요.”

“아하하. 도경이 형이 미친 짓이 많이 저지르긴 하지만 건전하긴 하죠.”

건전한 또라이. 팬들이 도경을 좋아하는 점은 바로 그런 점이었다.

보통 셀럽과 스타들이 자주 드나드는 파티나 행사보다는 자신이 마련한 소극장과 작업실에 머물며 라이브 방송으로 팬들과 소통하는 것을 즐겼으며 밖에 나가더라도 일반 사람들이 즐기는 것처럼 문화와 여가생활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도경에게 친근함과 신선함을 동시에 느꼈다.

돈 자랑하고 화려한 삶을 살며 행복을 과시하는 듯한 스타들보다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을 누리며 계속해서 소통을 시도하며 즐거움을 안겨다 주는 도경을 보는 것이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안에 무수한 사건들이 있었기에 건전한 또라이라 불리기도 하는 거지만 말이다.

“크리스틴 씨는 놀라지 않았나요? 형이 미국 활동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말이에요.”

“글쎄요. 5년간 놀랄 일들의 연속이라 이제는 그러려니 하게 되네요.”

“하하. 그도 그렇겠네요. 새삼스레 크리스틴 씨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형 옆에서 그 많은 일을 같이 겪었을 테니까요.”

“정말 처음에는 말 못 하게 힘들었죠. 항상 예상치 못한 일들을 가져와 골머리 썩게 했으니까요…….”

체념한듯한 크리스틴의 대답에 성준이 고소를 지으면서도 진심으로 크리스틴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도 그럴 게 미국에서 도경의 정신 나간 일화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작품에 쓸데없이 참견하는 영화 투자자들과 싸움을 벌이거나,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이를 발견하고 그를 빼내기 위해 갱단과 시비를 붙거나, 급진적인 이념단체들과 싸움을 벌이는 등. 5년간 쉴 새 없이 사건을 만들었던 도경의 옆에 붙어있는 크리스틴은 그야말로 살아 숨 쉬는 수호령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이해가 갑니다. 그러한 과정이 있었기에 이렇게 모두에게 인정받는 성공을 쟁취할 수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감독과 함께 투자자들에게 맞서 싸워서 히어로들의 관짝이라 불리던 HC(Hero Comics) 필름 사를 소생시키고 갱단에서 구해 낸 소년이 지금에 와서는 힙합 신을 주도하는 아티스트가 되었다. 처음에는 항상 역풍을 맞았지만, 곧 자신의 힘으로 극복해 나가며 주변에게 인정할 수밖에 결과를 가져오는 도경을 보면서 크리스틴은 깨달았다.

모두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진정한 성공은 리스크를 피하면서 편한 길에서 얻는 당연한 성공이 아닌 도경처럼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면서 쟁취해낸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크리스틴 씨가 형 옆에 있어 줘서 다행이에요. 역시 형의 마마(MaMa)라고 불리는 사람다워요.”

“네? 그걸 어떻게…!”

“돈키호테 레이블에서 만난 웨인씨에게 들었어요. 다들 뒤에서 크리스틴을 그렇게 부른다면 서요?”

“으으……! 그게 다 도경 씨 때문입니다. 저를 비꼬며 대답한 마마(??)를 다들 마마(MaMa)로 알아듣는 바람에…….”

“네? 뭐라구요? 하하하.”

그런 크리스틴의 대답에 성준이 참지 못하고 큰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이 형은 못 말린다니까요.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상대방을 곤란하게 만든다니까요.”

“동감입니다.”

도경을 공통분모 삼아 이야기를 나누는 성준과 크리스틴. 말하면 할수록 정말 도경은 알 수 없는 물체였다.

“도대체 이형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전혀 알 수가 없다니까요. 그 몸 상태가 될 때까지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건지.”

“제 불찰입니다. 죄송합니다…….”

“아뇨. 크리스틴 씨가 미안할 일은 아니죠. 모두를 감쪽같이 속인 이 형 잘못이지…….”

물끄러미.

도경이 자신에게 그래미 어워드에서 오프닝 무대를 도와달라고 연락 왔었을 때 의아해했지만 이내 도경의 몸 상태에 알아차렸을 때는 매우 놀랐었다. 항상 무적 같던 형이 사실은 그 누구보다 지쳐있었다는 사실은 성준에게 있어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자신을 몰아붙였을까요? 그 연유를 읽을 수 없어 갑갑하네요.”

“연유라……. 아, 그거라면 혹시 이 이야기와 관련 있을지도…!”

“음? 뭔가 짐작 게 있나요. 크리스틴?”

“아, 별건 아닐 수도 있지만, 예전에 도경 씨와 웨인 씨가 첫 계약을 맺고 술 마시던 때 했던 이야기 하나가 지금 문득 떠올라서요.”

“그래요? 그게 무슨 이야기였나요?”

“원더랜드…….”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알고 싶었다. 도대체 자신을 몰아가면서까지 도경이 나아가는 길의 목적지가 무엇인지 말이다. 그런 성준의 말에 크리스틴도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문득 과거에 있었던 일이 떠올려 내었다.

“자신만의 원더랜드를 가지고 싶다고 했습니다.”

“원더랜드요?”

“음……. 분명 이렇게 말했었죠. 셀 수 없이 수많은 무대가 펼쳐진 땅. 모두가 자유로이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곳. 세상의 음유시인들이 찾는 영원한 낙원이라고 했죠. 뭐, 생각외로 낭만적인 이야기라 기억하고 있었는데 어쩌면 도경 씨는 지금까지도 그런 이상을 품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아뇨. 이상 같은 것이 아닐지도 몰라요.”

“네?”

성준의 의아한 물음에 크리스틴은 그때 들었던 이야기를 기억을 더듬으며 말하면서도 자신이 한 말이 웃긴지 가볍게 미소 지었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성준은 굳은 표정으로 진지하게 그녀의 말을 곱씹고 있었다.

“이 형은 정말로 그런 장소를 만들어내려고 하는 걸지도 몰라요.”

“……!”

크리스틴의 말을 들은 성준은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도경이 바라보고 있는 목적지는 바로 그 원더랜드라는 곳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것이라면 여태껏 어딘가를 멀리 내다 보는 듯한 눈빛도 세속에 초연한 도경의 언행들 전부가 설명 가능했다.

“정말 터무니없는 걸 바라보고 있었어…….”

도경에게 있어 최정상의 위치에 도달하는 것은 스쳐 지나가는 통과점 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너무나도 스케일이 큰 그의 목표에 성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 저을 뿐이었다.

‘그런데 왜 이리 설레냐…….’

두근두근.

음악과 셀 수 없는 무대가 펼쳐지는 곳이라니. 한 개인이 품기엔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목표였지만 이상하게 그것을 들은 성준의 가슴은 진정이 되질 않았다.

* * *

5년 전 갑자기 나타나 대한민국에서 돌연변이라고 불리는 미디어 회사가 하나 있었다.

【D&D 미디어】

DD라 불리는 이 회사는 처음에는 작은 매스컴을 담당하던 출판 잡지사를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국내의 인터넷 대형 스트리밍 방송국까지 집어삼키며 이 둘의 특성을 합한 D.net이란 채널을 만들어 TV와 모바일 스트리밍을 겨냥한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방송국을 탄생 시킨다.

처음 등장한 이 괴이한 신생 미디어 회사는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출처를 알 수 없는 넘쳐흐르는 자본을 통해 우수한 인재를 영입하고 투명한 운영방식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시스템을 구축. D&D는 아무도 다루지 못했던 정·재계의 굵직한 사회고발을 통해 믿고 보는 언론 채널이란 타이틀을 얻어내며 5년이 지난 지금 공중파 방송을 압도하는 성장을 이룩한 회사였다.

“도경이 삼촌이 공항에서 출발했다고요? 그게 정말이에요!?”

“그렇다고 하더군.”

“시상식 끝나자마자 극비리에 바로 출발하다니. 참 성격이 급하다니까요 도경이 삼촌은……. 어서 우리 또도반 부서에 이 희소식을 알리고 환대할 준비를 해야겠어요!”

벌떡.

“…….”

D&D 미디어 방송국. 최상층에서 도경이 공항에서 출발했다는 소식을 들은 갈색의 피부를 지닌 청년이 호들갑을 떨며 자리에서 일어나지만 이내 보고를 올렸던 남자가 그의 어깨 붙잡아 자리에 다시 앉혔다.

“카심. 쓸데없는 짓 말고 앉아라. 결재할 서류들 한 묶음이다. 어딜 가려는 거냐?”

“윽! 강한 삼촌 쓸데없는 짓이라뇨!? 우리 슈퍼스타인 도경이 삼촌을 환대하는 게 어떻게 쓸데없는 일이 될 수 있어요? 레드카펫하고 리무진 준비해 놓고 촬영팀들 준비해 보내서 도경이 삼촌의 모습을 널리 알려야죠. 이일은 제가 진두지휘해야 제대로…….”

“저번에도 말했지만 네가 이러니까 D&D랑 도경이란 유착관계다 뭐다 소문이 나는 거잖냐. 특별대우는 그만둬.”

“아……. 확 관둬버리고 JY엔터에 입사할까요? 점점 이 자리에 대해서 회의감이 생기기 시작하는데요…….”

툭툭.

“그만 칭얼대라.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대한민국의 투명한 언론의 미래를 이끄는 D&D 젊은 회장이 팬질 하기 위해 사퇴한다고? 한번 도경에게 얘기해 보시지? 도경이 참 좋아할 거야. 너를 쫓아낼 수 있을 거라고 말이야.”

“윽! 그건…….”

자신의 이름이 적힌 회장명패를 툭툭 건드리며 심술부리던 카심이 김강한의 말에 그 행동을 멈추고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전번에도 앨범 사재기한 게 걸려서 한국에서 쫓겨날 뻔했는데 만약 자신이 D&D를 관둔다는 사실은 알면 그 기회에 정말로 쫓겨날 수도 있었다.

수 억원의 앨범 사재기를 하고 도경의 사진을 전국 곳곳의 광고판에 걸어 놓는 등. 이성을 잃고 도경을 향해 수많은 만행을 저지른 자신이라면 쫓겨나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투명한 언론과 방송을 책임지는 D&D가 아니었다면 진즉 쫓겨났을 것이었다.

“아셨으면 얌전히 않아서 서류 결재하시죠. 회장님.”

“흥……! 말만 회장이지. 누가 상전인지 모르겠네요.”

“맘에 안 든다면 해고해도 된다만? 기꺼이 받아주마. 팔자에도 없는 일을 하자니 나도 지긋지긋하거든.”

“강한 삼촌은 말을 해도 어쩜 그리 매정하게 해요? 삼촌까지 떠나면 진짜 회사 팔아버릴 줄 알아요!”

김강한의 엄포에 상처받았다는 표정을 짓는 카심. 하지만 김강한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이 철부지 왕족님을 옆에서 겪으면서 저런 거 하나에 일일이 대응하다간 끝이 없다는 것을 이미 잘 아는 까닭이었다.

“알겠으니까. 빨리 결재해. 좀 있으면 미팅 가야 하니까.”

“네네. 금방 대령해 줍죠. 누구 말인데 당부를 어기겠나이까.”

“후……. 카심. 언제 나랑 몸으로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구나. 진심으로 말이야.”

“…….”

흠칫.

결재하느라 침울해하는 와중에도 잊지 않고 자신의 속을 긁는 카심을 보자니 혈압이 오른 김강한은 카심의 뒤로 다가가 그의 매끈한 뒤통수를 정성스레 쓰다듬어 주며 끈적한 살의를 쏟아부어 주었다.

사각사각!

그와 함께 말없이 빠르게 결재 서류에 사인해 나가는 카심. 그 솔직한 생존본능 반응에 김강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주변에 있는 소파에 앉아 결재가 끝나기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후우. 도대체 어쩌다 이리됐는지…….”

중얼.

D&D 미디어 회장 『카심 알 나인』.

그리고 그를 보조하는 D&D 사장 『김강한』.

자신은 에덴을 쫓고, 카심은 그저 도경을 건드린 이들을 혼내주려고 벌였던 일이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대한민국의 언론과 방송을 책임지는 방송국을 차려버리고 말았다.

어쩌다 보니 사장직을 맡아 회장인 카심을 보조하며 방송국 운영을 돕는 일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이없는 일이었다.

뒷세계에서 피비린내 나는 일을 하며 어둠을 배경 삼아 독한 위스키 한잔을 마시며 고독을 씹었던 자신이 이젠 정각 칼퇴에 은근히 기뻐하며 길거리에 파는 따스한 전기구이 통닭을 품 안에 안고 집에서 TV를 보며 맥주와 함께 먹는 것에 행복함을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복수를 끝내고 너무 물러져 버렸어. 내 정체성이…….’

“끝났다! 오늘분 결재는 끝났어요. 강한 삼촌.”

“굿잡.”

척!

‘오늘은 정시 퇴근을 할 수 있겠군.’

소파에 앉아 자신의 정체성에 고민하고 있을 때.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김강한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결재 서류를 받아들이며 문을 열고 회장실 밖으로 나서려 했다. 마지막 충고 또한 잊지 않고 말이다.

“그럼 이만 가보지. 아, 그리고 카심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나머지 결재 서류도 다 끝내놔라. 비서한테 언질 줬으니까 빠져나가면 어찌 되는지 알지?”

“악마!”

“그럼 자르시던가.”

철컥.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퇴근 이후에도 할 수 있다.

빨리 일을 마칠 것이 신난 김강한의 발걸음은 가볍기 그지없었는데 그 모습을 보면 정체성을 고민할 것 없어 보였다. 김강한 그는 이미 회사원 마인드로 살아가고 있는 듯 보였으니 말이다.

‘오늘 맥주는 X라이트가 괜찮겠군. 싼 맛이 의외로 땡긴단 말이지.’

5년이란 시간. 그 긴 시간은 아무래도 많은 것을 바꿔놓은 듯싶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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