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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348화 (348/357)

348화

【명동 갤러리 백화점】

군더더기 없는 흰색 톤의 깔끔한 외벽. 둥그스름한 사각형이 널찍이 눌린 모양새를 지닌 6층 규모의 갤러리 백화점은 다소 다른 백화점의 화려함에 비해서는 밀리는 면이 있었지만, 백화점 내부는 중앙홀이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게 시원하게 뚫려있는 구조와 천장 가운데에 하늘을 볼 수 있게 만들어 아늑하면서도 시원한 느낌을 주는 특색이 있었다.

“음……. 생각보다 더 소박한 장소잖아. 무너지지나 않을까 몰라.”

백화점 내부로 들어선 두 남자. 검은색 정장이 잘 어울리는 날카로운 분위기를 지닌 김강한과 머리부터 발끝까지 숨길 수 없는 귀티가 철철 흐르는 카심이 많은 인파들의 사이를 뚫고 들어와 갤러리 백화점 내부를 둘러 보기 시작했다.

“네가 이 장소를 골라놓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냐?”

“진심으로 제가 이곳을 골랐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제가 준비 한 곳은 이곳과 전혀 다른 곳이었어요. 이곳은 도경이 삼촌이 고른 곳이에요.”

“그래? 어쩐지 네 취향은 아닌 듯싶었다.”

분명 나름대로 분위기가 좋은 백화점이었지만 항상 최고만 겪으며 온갖 화려함 속에 자라난 아랍 왕족 출신인 카심의 눈에 차기에는 조금 모자란 장소기는 했다.

“좋은 곳도 많은데 왜 하필 이곳을 고른 건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아요……. 제가 추천하는 장소는 다 깐 거 알아요? 덕분에 제가 준비한 대형 이벤트들이 다 나가리 되었다니까요.”

“그래서였군.”

“네?”

“아니다.”

카심의 불만섞인 투덜거림을 들은 김강한은 쓴웃음 지으며 일의 전후 사정이 어찌 되었는지 단번에 파악했다. 카심과 도경. 두 사람 다 또라이지만 서로 결이 다른 또라이다. 도경은 상대방을 후끈 달아오르게 하는 화끈한 타입이라면, 카심은 적당히를 모르는 스케일로 상대방을 질리게 만드는 타입이었다.

한 일화로 카심이 도경의 동상을 서울 한복판에 세우려고 했던 사건이 있었는데 주변에서 고도의 안티가 될 수 있다고 카심을 말리지 않았다면 한국에선 광화문에 있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동상보다 더욱 큰 동상이 세워질 뻔했으리라.

‘그때 그 도경이 지은 표정은 정말 볼만했는데 말이야.’

자신의 동상이 세워질 뻔한 이야기를 듣고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던 도경을 떠올리면 지금도 실소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바글바글

“그나저나……. 카심 한 가지만 물어보자.”

“뭔데요? 삼촌?”

“홈쇼핑 건에 대한 미팅은 끝났다만 왜 이곳에 날 끌고 온 거지?”

애써 무시하려고 했지만 많은 인파들 속에서 비좁게 끼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감각에 결국 인상을 찌푸리고 만 김강한은 카심을 향해 자신이 왜 이곳에 와있는지 물었다.

D&D 방송국에 홈쇼핑몰 채널을 개설하고 싶다는 갤러리 대표와의 미팅은 이미 끝난 상태. 자신이 곳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없었다.

“아, 왜겠어요? 추첨권 얻는 데 도움을 달라 부탁하는 거지요.”

“하아……. 그러니까 그걸 내가 왜 해야 도와야 하는 거냐 말이다? 다른 사람도 많은데 말이야. 부하직원 시키면 되잖아.”

“도경이 삼촌이 그걸 용납할 거 같아요? 팬클럽 회장한테도 얄짤 없는 사람인데? 삼촌 말고는 절 도울 사람은 없어요! 그러니까 도와줘요~!”

덥석.

팬 사인회에는 당첨이 되지 않았지만, 백화점에서 기획한 결제 이벤트로 도경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 추첨권을 얻기 위해서 자신까지 동원한 카심을 보며 김강한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도경의 사인과 사진을 찍는 거는 너한테는 아무 때나 받을 수 있는 거 아니냐. 도대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있는 거야……?”

매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본다면 언제든지 볼 수 있고 사진을 찍는다면 언제든지 찍을 수 있는 것이 도경과 카심의 관계이다. 굳이 이런 요란법석을 떨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김강한의 입장이었지만 카심은 다른 듯싶었다.

“그거랑 이거랑 완전히 다른 거라고요. 순수한 팬으로 존재할 수 있는 자리라고요. 절대 포기할 수 없어요.”

“정말.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징글징글하다 해야 할지…….”

“삼촌 제발요……!”

“후우…….”

자신의 소매를 붙잡으며 간절함이 섞인 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카심의 행동에 김강한은 골치 아픈 표정을 지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앞의 녀석의 표정을 보니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릴 적 절찬리 인기에 팔렸던 게임 소프트를 눈앞에 두고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랄까? 만약 자신이 이 부탁을 거절한다면 왠지 모르게 울고 떼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갤러리 백화점에 울며 소동 피운 외국인. 그 정체는 D&D 회장?

오싹.

‘그건 안 되지!’

설마 그럴까 싶지만 카심의 정신세계는 정상은 아니지 않은가. 정말로 이 수많은 사람 앞에서 울면서 떼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김강한은 자신의 등골이 오싹하는 감각을 맛보았다.

“어쩔 수 없네……. 카드 내나 봐. 여기서 액수 상관없이 아무거나 결제하면 얻을 수 있다는 거지?”

“삼촌……!”

“다음에는 도와주지 않을 거다. 딱, 오늘만이다.”

“응! 알았어! 딱 오늘만!”

자식을 갖는 부모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순수히 너무나도 기뻐하는 그 모습에 김강한은 자신도 모르게 실소 지었지만, 그는 알까? 대한민국의 모든 부모가 딱 한 번만이라는 약속을 지켜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 * *

[도경 씨. 나와주세요!]

와아아아아―!

바글바글!

갤러리 백화점 1층 홀. 정 중앙에 마련된 조그마한 무대 위에 놓여있는 사인회 부스의 세팅이 모두 끝이 나고 그 뒤로 놓여있는 큰 스크린 속에 도경이 현장 진행자의 외침과 함께 무대 위로 오르는 모습이 비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박도경이라고 합니다.]

와아아!

“잘 생겼다―!”

“여기 봐줘요! 이쪽! 이쪽!”

“이쪽도 봐줘요!”

“사랑해요! 박도경!”

찰칵! 찰칵!

백화점 내부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환호성과 함께 기다렸다는 듯이 도경을 향한 팬들의 격한 환영 인사세례에 도경이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봐봐. 내가 이래서 이런 자리 안 하려고 했다니까. 여러분 쉿! 여기 소리가 잘 울려 퍼지는 곳이라 너무 소리 지르면 내가 곤란해.]

시끌시끌.

1층부터 6층까지 어느새 자리를 잡고 빙 둘러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해 도경은 입가에 검지를 대고 조금 자제해달라는 표시를 보였다.

[너무 시끄러우면 나 그냥 갈 수도 있다. 내 성격 알지?]

뚝.

콘서트도 아니고 단순히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는 자리일 뿐인데 이리 과열되어서야 팬 미팅을 제대로 해나갈지 의문이었는데 신기하게도 팬들의 열기는 도경의 한마디에 순식간에 진압되었다.

[좋아. 흥을 내는 것은 좋지만 오래 즐길 수 있게 적당히 자제도 해줘. 그럼 내가 여러분들의 시간을 책임지도록 할게요.]

네―!

존대와 반말이 섞인 특유의 장난기 어린 반존대를 내뱉는 도경을 향해 팬들은 즐거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으로 크게 화답했다. 다년간 도경의 진행에 조교가 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이야! 그나저나 사람들이 많이 모였네. 6층 괜찮아요 나 잘 보여요? 잘 보이면 6층만 소리 질러봐.]

와―!

[아니 6층만 소리 지르라고! 여기 콘서트장 아니야.]

아하하!

특유의 장난기가 섞인 도경의 목소리와 함께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는 곳. 이제는 익숙하다시피 한 도경이 만들어나가는 분위기에 사람들은 자연스레 자신들의 몸을 맡기기 시작한다. 그도 그럴 게 자신이 내뱉은 말을 꼭 지키는 도경이다.

* * *

“역시. 대단해……!”

2층 위에 서 있던 한 남자는 감탄스러운 기색을 내보이며 아래에 있는 도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도 어떻게 주눅 하나 들지 않지?”

수많은 사람에게 그것도 가까운 거리에서 둘러싸인 상황에서 조금도 당황하는 모습 없이 사람들과 소통해 나가는 도경을 직접 보자지 정말 신기했다.

TV에서나 인터넷에서 많이 봐 왔지만,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항상 당당하게 앞에서 나서 분위기를 이끌어 나가는 도경을 직접 눈앞으로 보자니 그의 특별함이 더욱더 크게 느껴졌다.

‘태생이 다른 사람.’

진행자의 도움 없이 홀로 빼곡하게 차 있는 사람들을 능숙하게 다루며 분위기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조율하는 도경의 모습을 보면 마치 하나의 지휘를 맡고 있는 마에스트로처럼 보였다. 세상은 도경에게 있어 오선지였고 사람들은 도경에게 있어 음표 같은 느낌이었다.

그 태생이 다를 것 같은 능력과 모습을 목격하는 남자는 자신이 제대로 확신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의 영웅은 진짜야…….”

꾸욱.

자신이 시들어가던 인생을 구해준 영웅은 실재했으며 진짜라는 것을 말이다. 남자는 자신이 붙잡고 있던 난관에 손을 떼며 등 돌려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팬 미팅하는 도경을 바라보고 싶었지만, 그는 조금 더 욕심을 내었다.

‘직접 보고 인사를 건네고 싶어.’

좀 전에 카심이 그랬던 것처럼 이 청년 또한 포토 추첨권을 노려 도경을 직접 만나보려는 듯싶었다. 그런데 이 청년. 어딘가 익숙하다 싶어 살펴보니 초면이 아니었다.

문래동에 있는 【중앙 철공소】에서 일하면서 TV 속에 나오는 도경을 바라보며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직접 만나서 전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있었던 현수란 이름을 지닌 청년이었는데 아무래도 이번에 자신의 그 소망을 이룰 수 있을 듯싶었다.

‘나의 스타……! 나의 영웅……!’

도경을 뒤로하고 떠나는 발걸음. 포토 추첨권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는 왠지 느낌이 좋다고 생각하며 서둘러 걸음을 옮긴다.

* * *

“우아아―! 정말로 도경이 형아다! 신기해!”

도경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모이고 움직이는 갤러리 백화점 1층. 그 가운데 한 어린 소년이 아버지의 어깨에 목마를 탄 채로 자신의 눈망울을 초롱초롱 빛내가며 도경을 바라보았다.

도경의 팬인 이 어린 소년은 환희와 기쁨을 숨기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을 발을 동동 구르며 쉴새 없이 표현하고 있었는데 그런 자기 아들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얼굴에 진한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툭툭.

『아들 그렇게 좋아?』

『응! 완전 좋아! 아빠 진짜 고마워요. 일 때문에 피곤했을 텐데 저랑 쉬는 날에 이곳에 와줘서요.』

『고맙긴. 아들이 좋아하는데 이정도는 아빠가 해줄 수 있어.』

아들의 말에 아버지는 고개를 내저으며 어깨를 으쓱이며 웃음 지었다. 아무리 피곤하다 하더라도 자식이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아버지들은 피곤함을 느끼지 못한다.

『아들 좀 더 가까이 가볼까?』

『아뇨. 엄마가 우리 못 찾을 수 있으니까 여기 있어요. 여기서도 잘 보이니까 괜찮아요.』

『우리 아들 착하네.』

또래보다 의젓하고 조숙한 아들의 대답에 아버지는 웃음 지으면서도 가슴 한쪽으로는 자신들 때문에 이리 조숙해지지 않나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자신의 어미를 배려하는 아들의 대답은 일반 또래와는 다른 생각이 곁들어 있는 것을 아는 까닭이었다.

‘고맙고 미안한 아이.’

글썽.

농아인(聾啞人).

청각장애로 듣지 못해 언어 장애가 있는 부모를 둔 자기 아들은 또래보다 조숙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부모로서 한없이 고마웠고 미안했었다. 그리고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시울이 붉게 물들려는 감각에 아버지는 서둘러 투박하게 한 손으로 자신의 눈을 훔쳤다.

툭툭.

『여보. 나 왔어. 무슨 일 있어? 왜 눈이 붉어? 혹시 울었어?』

『으응. 아냐. 눈이 간지러워서 비비다 보니.』

『으이구. 그러지 말라니까. 그나저나 영달이는 도경이 형 보느라 정신이 없네? 엄마가 온 줄도 모르고 정신이 팔려있네. 자기야 피곤하지? 이거 먹어. 자기가 좋아하는 샌드위치 사왔어.』

『언제 아래 식품관에 내려가서 먹을 거 사 왔어? 같이 가지……. 혼자서는 힘들었을 텐데 말이야.』

『뭘 이런 거 사는데 다 같이 가. 됐으니까 신경 쓰지 마.』

『그래도…….』

화장실을 갔다 온다던 아내가 언제 사 왔는지 모를 샌드위치를 입에 물려주며 자신의 손에 음료수를 쥐여주며 무언가를 챙기고 있자 그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많은 사람들이 있는 가운데 농아인이 홀로 다니는 것은 고독한 일. 특히나 사람들의 시선에 민감한 자신의 아내는 더욱더 그러했을 텐데 아들을 신경 쓰느라 아내를 신경 쓰지 못해 내심 마음이 불편했다.

『진짜 괜찮대도? 그리고 그런 것보다는 자기야 오늘 나 완전 계 탔다!』

『음?』

『기다려봐.』

뒤적뒤적!

하지만 불편한 마음도 잠시. 자신의 아내가 평소보다 상기된 모습으로 자기 어깨에 메고 있던 백에서 무언가를 뒤적이는 모습에 남편은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렇게까지 신나게 보이는 아내의 모습은 드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아내가 왜 저리 신났는지 그는 알 수 있었다.

『짜자잔!』

스윽!

『……!』

소리 나지 않는 효과음을 내뱉으며 하나의 골드 티켓. 그것을 바라보는 남편은 이내 기쁨에 물든 표정으로 자신의 아내를 사랑스럽게 쳐다보았다.

다양한 사람과 특별한 이벤트가 벌어지는 곳. 소리소문없이 찾아온 하나의 행운에 한 가족이 들리지 않는 기쁨의 환호성을 내지른다.

“으아악! 왜!? 안 나오는 거야? 왜!? 추첨권이 벌써 7장밖에 안 남았단 말이야! 나오라고! 나와―!”

“소, 손님 진정……!”

그리고 돈은 썩어 넘치지만 필요할 때 더럽게 운이 따라주지 않는 한 남자의 비명 또한 백화점에 메아리 퍼지듯 울려 퍼지기도 했다. 다양한 인연과 운이 교차하는 팬 미팅 사인회. 그 안에서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울고 있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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