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9화
램프의 정령 지니라는 것을 아는가. 그 어떠한 소원과 부탁을 받고 들어주는 존재처럼 도경은 자신의 사인회를 찾아온 팬들의 애정 어린 공세와 자신을 향한 소원을 들어주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빠. 꼬시듯이 노래 한 소절만 불러줘요.
―형. 팔씨름 한판!
―아, 악수 한 번만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작곡가가 꿈이에요 형. 제 노래 봐주실 수 있으세요!?
―이거 모자 써주고 사진 찍어주세요.
―파티시에 전공인데 제가 만든 마카롱이에요. 맛 어떠세요?
―영화에서 나오는 대사 저한테 한 번 쳐주시면 안 돼요?
평범한 부탁과 함께 어떨 때는 황당한 부탁도 있었지만, 도경은 램프의 요정처럼 웃으면서 그들의 부탁을 흔쾌하게 들어주었다. 덕분에 도경에게 사인받는 팬들의 표정에는 웃음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들을 부럽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도경과 팬들의 교류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도경 팬 미팅 사인회 Live!】
└『아, 재밌겠다. 구경이라도 하게 지금이라도 갈까?』
└『사람들 개 바글거리던데 늦은 듯. 그나저나 도경이 개 혜자네? 팬들이 해달라는 거 다 해주네. 귀찮은 거 싫어할 줄 알았는데 의외라고 해야 하나?』
└『ㅇㅈ 작곡한 노래 다 듣고 기타 가지고 와서 피드백 주는 거 보고 진짜 개 훈훈했다.』
└『부럽다. ㅠ ㅠ 다음에도 팬 미팅 사인회 하려나? 저건 또 소극장하고 다른 맛이 있네요.』
└『무슨 맛집이냐? ㅋㅋㅋ 소극장으로 만족해야죠. 솔직히 사인회보다는 소극장이 더 혜자 아님?』
└『그렇죠. 저는 다음에 소극장 오픈하면 가보려고요. 언제 오픈하려나 기다림이 생각보다 길어짐.』
└『도경도 체력이 무한은 아니니까. 그나저나 소극장도 이젠 예매하는 거 하늘의 별 따기 아님? 듣기로는 개 힘들다고 하던데?』
└『ㅇㅇ 개 힘듦. 내 친구 3달 동안 신청했는데 아직도 예매된 적 없음.』
└『도경이 조교술 시작됐다. 사인 대신에 지장으로 안되냐고 지금 약 파는 중. ㅋㅋㅋㅋ』
└『악! ㅋㅋㅋ』
오랜만에 대중의 앞에 선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도경을 향해 갈구하는 욕구를 품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 않았을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막상 일대일로 팬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도경을 보며 자신들 또한 도경을 만날 기회를 얻고 싶었다.
백화점 내부 곳곳에 설치된 TV를 통해 팬 사인회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추첨권을 얻기 위해 여기저기서 지갑을 쉽게 여는 것이 그 증거였다.
“평소보다 10배 매출을 넘겼네. 미쳤다…….”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 박도경, 박도경 하더니 진짜 이유가 있었네요.”
“그러게 말이다. 어떤 외국인 팬은 추첨권 얻으려고 명품관에 10억 넘게 썼다고 하더라.”
“아, 그 이야기 들었어요. 박도경 광팬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서 그 손님 결국 추첨권은 얻었나요?”
“아니. 어이없게도 모두 꽝 나왔다고 하더라.”
“헐……! 10억이나 썼는데도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똥 손이래요?”
“그러니까. 덕분에 우리 쪽도 엄청 당황했다고 하더라.”
『스페셜 이벤트』
팬미팅에서 도경과 함께 사진을 찍고 즉석에서 만든 포토 카드와 도경의 미발표곡이 담긴 USB를 받는 이벤트.
백화점 안에서 10만 원 이상 결제하면 이벤트에 응모할 수 있는 시리얼 넘버를 받게 되는데 기가 막히게도 10억 원치의 시리얼 넘버들이 전부 꽝이 뜨고 만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그야말로 똥 손 중에 똥 손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일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손님 가만히 있었어요? 그만한 액수를 쓰고 당첨 안 된 거잖아요.”
백화점 직원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똥 손을 가진 손님에 관해 물었다. 도경의 스페셜 이벤트를 참가하기 위해 하루에 10억을 지른 고객이다. 그런데 꽝이라니 자신이라도 가만히 있지 않을 상황이었다.
“당연히 길길이 날뛰었지. 백화점 측에 추첨권을 늘리라고 성화였다고 하더라고.”
“에구구……. 난감했겠네요.”
“아니. 그게 의외로 금방 해결됐다고 하더라.”
“네? 어떻게요?”
“매니저님한테 그 이야기를 들은 박도경 씨가 그 손님을 만나서 설득했대. 팬들 사이에 돈 가지고 격차를 만들고 싶지 않다면서 공정성을 지켜달라고 말이야. 원한다면 자기가 직접 10억을 물어주겠다는 말까지 했대.”
“우와―. 보통이면 추첨권 하나 주고 끝내지 않아요? 그것도 10억인데 말이에요. 돈 가지고 격차를 만들고 싶지 않더라……. 진짜 멋있긴 하네요.”
“그러니까 말이야. 어린 친구가 대단하지.”
짧은 시간 또 하나의 레전드 일화를 만들어낸 도경. 그런 도경을 가까이서 지켜 보고 있던 카심이 분한 표정을 지으며 도경을 바라보며 발을 동동거리고 있었다.
“으으으. 이건 말도 안 돼.”
“포기하고 여기서 얌전히 구경해. 자리라도 좋은 곳에 얻었잖냐.”
“완전 진상 취급받고 얻은 자리잖아요.”
“네가 좀 진상이긴 했지.”
“뭐라고요!? 전 제 권리를 요구한 것뿐이에요. 10억넘게 쏟아부었는데 추첨권이 안 뜬 게 말이 돼요?”
“그럼 좀 전에 도경이한테 그렇게 얘기하지 그랬냐?”
김강한의 말에 카심이 흠칫거렸다.
“아니……. 강한 삼촌이 그때 도경이 삼촌을 봤어야 한다니까요. 모르는 사람처럼 존대하는 것도 그렇고 웃으면서 눈을 마주치는데 진짜 눈이 1도 안 웃는데 어떻게 그렇게 말해요? 진짜 살 떨려 죽는 줄.”
“왜 너는 그렇게 스스로 매를 버는지 모르겠군.”
절레절레.
좀 전의 도경을 떠올리며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카심을 보며 김강한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설마 그 잠깐의 순간에 그러한 헤프닝을 만들지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10억짜리 똥 손을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도경의 레전드 일화를 만들어준 것을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대단함에 혀를 내두를 뿐이었다.
“으으……. 불행해.”
김강한의 내두르는 소리가 들리는지 마는지. 카심은 그저 자신의 불행에 울상지었다. 모처럼 팬 미팅과 사인회를 주도했건만 자신은 손 놓고 구경이나 해야 한다니.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란 상황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너무해요. 너무합니다! 도경이 삼촌……!”
* * *
“뭐야? 왜 저렇게 봐? 미안하게 시리. 그게 그리도 쇼크였냐?”
사인을 다 마치고 잠시 휴식을 가지는 도경은 자신을 향해 울상을 지으며 야속하다는 듯 눈빛을 보내는 카심을 보며 내심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솔직히 추첨권 하나 내주는 거야 그에게 있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카심의 그 애정 어린 팬심은 도경에게 있어 낯부끄러운 것이기 때문에 되도록 회피하고 싶었다.
‘저 녀석의 팬심은 아무리 봐도 부담스럽단 말이지.’
팬심이라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오묘한 것이어서 누군가의 팬심은 아무렇지도 않고 괜찮지만, 어떤 이의 팬심은 부담이 되어 무겁기도 했으며 혹은 오글거리거나, 낯부끄러워지기도 한다.
“도경 씨. 포토존의 준비가 끝났습니다. 이벤트는 언제쯤 진행할까요?”
“아, 지금 바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괜찮겠습니까? 사인을 다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지 않았습니까. 그리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좀 더 휴식을 취하고 싶으시면 그러셔도 됩니다.”
도경이 오묘한 팬심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무대에 포토존의 준비를 끝낸 진행자가 다음 이벤트를 언제 진행할지를 물었는데 지금 바로 시작하자는 도경의 대답을 듣고는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게 별다른 휴식 없이 4시간 동안 연달아 300명의 팬과 소통을 나누고 모두의 니즈를 들어주었던 도경이다. 분명 체력적으로 힘들 것이 분명했다.
“아뇨. 팬들을 기다리게 하는 건 별로 취향이 아니라서요.”
자신과 함께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도경은 고개를 내 저었다. 컨디션 난조의 몸 상태에 안 힘든 것은 아니었지만 오랜 시간 동안 기다렸던 저 사람들 또한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힘내서 가보겠습니다.”
그 대답에 진행자가 감탄 섞인 눈빛과 함께 힘찬 음성을 내뱉었다. 여태껏 많은 행사와 무대의 진행을 맡아오며 일했지만, 오늘 도경이 하는 행동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었다.
[자! 사인회는 끝이 나고 이제는 백화점의 행운을 거머쥔 주인공들을 만나볼 차례입니다! 포토존에서 도경 씨와 단독으로 사진을 찍는 것도 모자라 무려! 도경 씨의 미발표한 미니 앨범이 들어있는 USB를 받게 되는데요. 도경 씨의 말을 빌리자면 온전히 여러분들이 소장하는 노래였으면 해서 앞으로도 발표하지 않을 거라고 합니다. 당첨자분들은 누가 되었든 간에 참 부럽습니다.]
진행자의 말에 홀에 모여있던 팬들이 놀라움과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무대 옆에 줄 서 있는 이벤트 당첨자들을 바라보았다. 미발표곡이지만 그래도 세계적인 스타 프로듀서가 만든 곡이다. 그런데 그 노래를 온전히 팬 서비스 차원에서 준다니 그야말로 희소가치가 있는 선물이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눈빛을 띠고 있을 때. 조용히 팬들을 지켜보고 있던 도경이 웃음 지으며 그들을 향해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 참고로 급전이 필요하면 팔아도 무관해요. 분명 가치가 오를 테니까 오래 묵혀놓았다 파세요. 인터넷에 곡 유출만 안 하면 쏠쏠할 겁니다.]
우와아!
[네! 정말 이벤트 당첨자분들 계 타셨네요. 그럼 행운의 주인공들을 모셔볼까요! 한 분씩 올라와 주세요.]
희소가치 있는 선물에서 매우 금전적인 가치를 띠게 된 도경의 선물에 모두가 후끈 달아오르는 함성을 내지르고 진행자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신호를 보내 폭죽을 터트리며 분위기를 몰아 무대 위에 당첨자들을 불러 세우기 시작했다.
팬 사인회라고는 볼 수 없는 다소 정신 나갔다 싶은 놓은 텐션이었지만, 모두들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포토존에서 이벤트 당첨자를 맞이하며 독특한 컨셉으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고 있는 도경을 보며 웃음을 터트리기 바쁘기 때문이었다.
하하하!
JY엔터테인먼트 대주주의 건의로 열린 도경의 첫 팬 미팅 사인회는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수 배로 껑충 오른 백화점 매출과 10억을 지른 정신 나간 열성 팬. 그리고 자신의 미발표곡 앨범을 팔아도 좋다는 괴짜 같은 스타. 그야말로 도경다운 팬 미팅과 사인회에 모두가 웃음 가득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다.
“…….”
단 한 사람만 빼고 말이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