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화
많은 사람이 웃고 있었다. 대단하지 않은가. 사람을 웃기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그런데 쉴새 없이 저리 자연스레 웃음을 띠게 하다니.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광경이었다.
사람들이 도경을 얼마나 좋아하는 알 수 있었고 도경 또한 그들을 좋아하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여실히 드러낸다.
“부러워.”
사람을 좋아하지 못하는 그로서는 그건 매우 부러운 것이었다. 그렇기에 즐겁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함을 느끼는 이율배반적인 상태로 그는 시선을 떼지 않고 도경과 팬들이 만들어내는 광경을 눈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툭!
“음?”
“앗. 죄송합니다.”
몸 뒤에서 부딪히는 감촉에 사내는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어깨를 향해 묵직이 눌렀던 감촉에 조금 놀랐기 때문이었다.
뻐금.
『죄송합니다.』
“제가 더 잘 보려다가 그만 균형을 잃고 말았어요. 죄송해요…….”
꾸벅.
뒤돌자마자 고개를 숙이며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사과하는 부모와 아버지의 어깨 위에 목마를 타고 있던 한 소년이 미안함이 역력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구나……. 아, 전 괜찮습니다. 사과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언가 말을 하고 싶지만, 말을 하지 못한 채. 필요 이상으로 굽신거리며 사과하는 소년의 부모를 바라보며 사내는 서둘러 그들의 사과를 받아 주었다. 많은 말을 섞지 않아도 안다. 소년 부모인 사람들은 몸에 장애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좀 쓸데없이 크지? 이젠 잘 보이니?”
스윽.
“아! 감사합니다.”
호리호리해 보이지만 자신의 키는 180 중반. 작지 않은 신장으로 아버지의 어깨 위로 목마를 타고 있지만, 소년의 시선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을 깨달은 사내는 옆으로 걸음을 옮겨 소년이 도경을 잘 볼 수 있게 시야를 터 주었다.
‘애가 조숙하네.’
물끄러미.
끽해야 철모르는 초등학생. 어린 나이임에도 어른인 자신을 향해 어른처럼 의젓하게 사과하며 수화로 부모님들을 진정시키는 소년의 모습이 조금 신기했다. 아마도 농아인인 부모님 때문에 어른들 앞에 나서는 경우가 많았겠지 싶었다.
그런 사내의 시선을 느꼈을까 도경을 향해 눈빛을 반짝이느라 여념이 없던 소년이 이내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 왜 그리 보세요?”
“보기 좋아서. 박도경을 정말로 좋아하는구나 싶어서 말이야.”
첫인상이 좋아서일까? 어린아이들을 싫어하는 사내가 이례적으로 소년을 향해 말을 걸었다.
“당연히 좋아하죠. 도경이 형은 제 우상이자 영웅인걸요?”
“영웅……? 꽤 특별한 표현이네. 그리 말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우상(Idol)이자 영웅(Hero).』
도경을 향해 영웅이라는 소년의 말에 사내는 몸을 움찔거리며 이내 흥미를 보여왔다. 보통이라면 멋있다던가, 대단하다던가, 존경한다는 표현을 하지. 자신의 영웅이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분명 그럴만한 연고가 있을 것이리라.
그 또한 도경을 ‘나의 영웅’이라 자주 지칭하지 않는가. 분명 소년에게는 도경과 관련된 특별한 사연이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도경이 형은 우리 가족을 구해준 은인이거든요.”
“가족을 구해준 은인?”
“어머니 수술비를 마련하느라 형편이 어려워져서 길바닥에 내 앉을 뻔했는데 도경이 형이 운영하는 재단의 지원을 받아 치료도 받고 집을 구할 수 있었거든요.”
“그랬구나. 정말로 영웅이라 불릴 만하네.”
“헤헤헤.”
어린 나이에도 길바닥에 내 앉을 뻔했다는 말을 하면서도 얼굴에 그림자 하나 없는 소년을 보면서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소년도 자신처럼 도경에게서 구원을 받은 것이리라. 그와 함께 피어오르는 동질감에 사내는 소년에게 물었다.
“너는 꿈이 뭐니?”
“가수요! 도경이 형처럼 많은 사람의 힘이 돼줄 수 있는 훌륭한 가수가 되고 싶어요.”
“그거 부럽구나. 나도 너처럼 어렸었으면 그런 꿈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도경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망설임 없이 자신의 꿈을 대답하는 것을 보며 사내는 소년이 빛나 보인다고 생각했다.
어린아이의 치기라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치기를 사내는 부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는 이미 자신의 한계를 잘 아는 어른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은 씁쓸해 보이는 사내의 웃음에 소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형도 아직 꿈을 가질 수 있지 않나요?”
“음 내가? 아니 무리지. 이 나이에 가수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니 말이야.”
피식.
소년의 천연덕스러운 물음에 사내가 쓴웃음 지었다. 꿈이라는 것은 듣기 좋지만, 현실이 뒷받침되어야 이룰 수 있는 것. 아직 소년은 어려서 그런 점을 모르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소년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아뇨. 가수 말고 남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거요.”
“어?”
“사실 가수가 아니어도 그런 사람은 될 수 있는 거잖아요. 저는 가수가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런 사람이 될 거에요. 그러니까 형도 할 수 있어요.”
“너……. 훌륭하구나.”
한 방 먹었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이게 누가 이 말을 초등학생의 말이라 믿을까? 소년이 집중하는 부분은 가수가 아닌 힘이 되줄 수 있는 사람. 사람 그 자체가 목표라는 것을 깨달았다. 직업이 아닌 어떠한 사람이 되느냐가 소년에게 있어선 중요한 것이었다.
“헤헤. 대단하긴요. 그냥 부모님이 하시는 말을 하는 건데요.”
“아니 남에게 그런 이야기를 당당히 전할 수 있다는 점이 훌륭해. 아마도 너 같은 사람이 다른 이들의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거겠지.”
사람은 어릴 때부터 타고나는 것이라는 것을 이럴 때마다 느낀다. 그것이 재능이 되었건, 기질이 되었건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무언가의 가치를 품고 자신의 자기 자신의 길을 나아가 꽃을 피우려 한다. 사내는 소년에게 그런 가능성을 보았다.
“너는 이름이 뭐니?”
“영달. 서영달이라고 해요. 형은요?”
“난 김현수라고 한다. 영달아 형이 네게 한 가지 선물해도 될까?”
“네? 선물이요?”
“이거란다.”
스윽.
“우와!”
자신이 들고 있는 쇼핑백을 뒤적거리며 무언가를 꺼내 드는 김현수를 보면서 영달이가 감탄성을 내뱉기 시작했다.
“어때? 마음에 드니?”
도경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정교하게 제작된 미니 동상을 받아든 영달은 눈을 반짝이며 흥분된 표정을 지었다. 색칠까지 칠해져 있는 이 미니 동상은 누가 봐도 감탄할 수 밖 없는 물건이었다.
“형이 직접 만든 거예요? 진짜 잘 만들었다……!
“마음에 드는가 싶어 다행이네. 가져.”
“정말요……? 정말 제가 이거 받아도 돼요?”
“그럼~. 대신에 기다리는 동안 나와 말동무 되어 준다는 조건이란다.”
“네! 언제든지요!”
부담을 덜어주는 김현수의 말에 영달이가 활짝 웃었다.
같은 영웅을 가슴속에 품은 소년과 사내. 두 사람은 도경에 관해서 이야기꽃을 피우며 인연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는데 무엇이 그렇게 할 말이 많았던지 이야기꽃을 피우는 동안 길었던 줄이 줄어들었고 드디어 두 사람은 도경을 만날 순서가 가까워졌다.
“정말 제가 먼저 가도 돼요?”
서영달은 김현수를 바라보며 우물쭈물 거렸다. 자신을 위해서 목말을 태워주고 그가 도경에게 선물로 주러 가져온 직접 만든 도경의 미니 동상까지 선물로 받았는데 이제는 순서까지 양보하려는 그의 행동에 미안한 까닭이었다.
말동무하면서 친해지긴 했지만 받기만 하니까 영달의 입장에서는 마음이 불편하였다.
“괜찮대도? 정 마음에 걸린다면 내가 만든 동상을 도경에게 네가 먼저 자랑 좀 해주면서 잘 말해줘. 나한테 팬 서비스 잘해달라고 말이야.”
“아……!”
전부터 자신의 마음 부담을 덜어주는 그의 배려심 깊은 말에 영달은 그가 마음씨 넓고 자상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 어서. 스타를 기다리게 하면 안 되지?”
툭.
“네. 감사합니다. 현수 형. 그럼 다녀올게요.”
“그래. 잘 다녀오렴.”
* * *
두근두근.
부모님과 함께 걸음을 옮기며 무대 위로 올라서는 영달은 자신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것을 느꼈다. 줄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무대에 계단을 오르는 순간 정말로 자신이 도경을 만난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었다.
“안녕.”
툭. 스슥!
『나의 꼬마 팬 반가워.』
“아……!”
테이블에 앉아 자신을 맞이해주는 도경의 목소리. 그리고 그의 손 인사에 영달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스타라고 하더니 정말로 상상도 못 한 인사를 자신에게 건네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나의 히어로.』
“하하! 서운한데?”
“……?”
스슥.
영달은 도경을 향해 혹시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손을 움직여 도경에게 자신의 인사를 보내봤다.
『앞에 최고라는 수식어가 빠졌잖아.』
손짓과 표정. 누가 봐도 자연스러운 수화였다. 그 수화에 영달은 감동한 표정을 지으며 도경이 원하는 대로 수식어를 붙여주었다. 아니, 붙일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도경은 소년에게 있어 최고였으니 말이다.
『안녕. 최고의 히어로. 만나 뵈어서 영광이에요.』
글썽.
『어이쿠. 울면 안 된다? 어느 히어로가 애를 울리겠어? 좋은날 우는거 아니지?』
『안 울 거예요.』
스슥.
도경의 수화에 영달은 서둘러 자신의 옷소매로 글썽이는 눈물을 훔치며 씩씩하게 미소지었다. 그 말대로 이 좋은 날 왜 운단 말인가? 간신히 울음을 참은 영달은 도경을 향해 힘찬 걸음을 옮겼다.
* * *
『어떻게 수화를 하시는 거예요? 완전히 놀랐어요.』
『개인 사정으로 제작 무산된 영화인데 주인공이 청각장애를 지닌 작곡가였거든. 그 영화의 오디션을 보기 위해서 수화를 배웠었지. 어때 쓸만하지?』
『너무 잘해서 깜짝 놀랐어요.』
그렇지 않아요? 엄마 아빠?』
끄덕.
『그렇구나. 엔간한 수화 통역사보다 매끄럽게 구사하시네요. 영화 오디션을 위해서 이 정도까지 하시다니. 정말 대단 힘들었을 텐데 』
수화는 또 다른 언어와도 같아서 조금이라도 손짓이 다르면 다른 뜻이 되고, 손짓과 동시에 자연스레 표정을 보여야 하는데 도경의 수화는 소년이 보기에는 훌륭하다 못해 완벽했다. 소년의 뒤에 있던 두 부모도 그 말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도경의 수화를 칭찬
『그나저나 계속 수화로 대화해도 되는 건가요? 그냥 편하게 말씀하셔도 되는데…….』
『왜요? 평범하게 이야기하는 데 문제 될 게 있나요? 게다가 음성으로 대화하면 두 부모님이 저희가 무슨 대화를 하는지 알지 못하시잖아요.』
『……!』
도경과 자신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유독 모이는 듯해. 영달의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지만, 도경은 고개를 저으며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말라고 말했다. 장애를 지닌 몸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불편해하는 심정은 이해 가지만 그녀가 지금은 그 시선을 버텨내길 원했다.
『영달이 부모님. 가족이 같이 이곳에 있는데 모두가 지금 이 순간을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만큼은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 쓰지 말죠. 그도 그럴 게 아깝잖아요. 자기 아이가 스타를 만나는데 가족이 눈치 보는 건 말이에요. 그렇지 영달아?』
툭.
『…네.』
『……!』
고개를 끄덕이는 영달이의 머리에 손을 올리며 웃음 짓는 도경의 모습에 두 부모가 눈시울을 붉히며 이내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하겠다고 말했다. 매사 주변의 시선에 신경 쓰고 눈치 보느라 자식인 영달이에게까지 영향을 받게 했던 게 얼마나 미안했던가. 도경의 말처럼 오늘만큼은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 나처럼 가수가 되고 싶다고?』
그런 두 부모님의 허락에 도경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영달이를 향해 물었다.
『네! 도경이 형처럼 사람들에게 희망과 힘을 주고 싶은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그럼. 여기서 한번 노래해 보지 않을래?”
소근
“네?”
도경의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영달은 수화하는 것도 잊고 음성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게 이 많은 사람 앞에서 그것도 도경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노래라니? 생각만 해도 떨려서 엄두가 나질 않지만, 도경의 이어지는 말에 영달이는 곧 자신의 마음을 바꾸게 된다.
“지금 가장 네 힘을 필요로 하는 관객이 두 명 있잖니.”
“……!”
도경이 턱짓으로 가리키는 곳. 그곳엔 자신을 멀뚱멀뚱 바라보는 자신의 부모님이 자리에 서 있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