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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351화 (351/357)

351화

모두가 웅성거렸다. 수화로 대화하고 있던 도경이 자신이 들고 있던 마이크를 소년에게 건네주고 또 다른 마이크를 가져오면서 무대 중앙 앞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들 기다리느라 조금 지루하죠?]

아뇨―!

도경의 물음에 가지각색의 대답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솔직히 도경의 과한 팬 서비스는 기다리는 입장에서는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아침에 시작했던 시간이 어느새 저녁이 다가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떠나지 않고 도경의 곁을 떠나지 않고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도경이 좋은 이유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벤트가 다 끝나고 무대에 홀로 남겨진 도경이 보일 행보를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루하지 않다고요? 거짓말인 것 같은데? 다들 뭘 기대해서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데요? 나 분명 미리 얘기했다. 오늘은 노래나 그런 것 없이 그냥 이야기만 하다가 내려갈 거라고?]

“구라 치지마! 안 믿는다―!”

“거짓말!”

“그러기만 해봐. 뒤엎을 거다―!”

무대 위에서 태어난 존재가 도경이라고 할 만큼 도경이 여태껏 보였던 행보를 떠올린다면 도경은 분명 이벤트를 마치고 기다림의 보답으로 자신들에게 노랫소리를 들려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기에 이리 기다리는 것이었고 도경이 저리 말해도 사람들은 절대로 믿지 않는 것이었다.

[뭐, 이런 무서운 팬들이 있어?]

팬들의 외침에 도경이 쓴웃음과 함께 어깨를 으쓱였다.

[믿지 않겠지만 사실 정말로 노래 부를 계획이 없어요. 사실 MR도 안 가지고 온 상태입니다. 그렇죠 진행자님?]

[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런데 정말로 노래 부를 계획에 없으신가요? 그래도 기타를 가져와서 내심 도경 씨의 노래를 들을 수 있을 거라 저도 기대하고 있는데 말이죠. 하하.]

[죄송하지만 요즘 몸 상태가 영 말이 아니라서 말이에요. 당분간은 휴식에 전념할 생각입니다.]

“……!”

도경의 말에 사람들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건 또 새롭다고 해야 할까? 도경이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고 내려온다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으며 자신의 몸 상태가 나쁘다고 말한 적도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몇몇은 혹시 도경이 몸이 좋지 않나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기 시작했고 도경은 그런 팬들을 진정시켜 나갔다.

[아, 다들 걱정하지 말아요. 정말 컨디션 문제니까. 아시다시피 내가 너무 열심히 활동했잖아요. 나도 사람인데 조금은 쉬어야죠. 안 그래요?]

[맞습니다. 활발한 활동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휴식도 중요하죠. 아쉽지만 도경 씨의 노래는 다음 기회에 들을 수 있는 거군요.]

[네. 하지만 지금 여러분들이 어떻게 반응을 보이냐에 따라 어찌 될 줄은 모르겠네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일까요?]

도경의 말에 팬들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그렇다고 말하자. 진행자가 매끄럽게 그 분위기를 이어받아 자연스럽게 멘트를 내뱉으며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도경이 원하는 것이 정확하게 이번 행사에 대한 활동에 대한 선을 긋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한 까닭이었는데 이내 그는 자신의 생각이 틀린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여기 꼬마 팬의 꿈이 저 같은 가수가 되는 거라네요. 그래서 지금 노래를 한번 시켜 볼 거예요. 제가 이래 봬도 스타 메이커로 불리는 프로듀서 아닙니까? 한번 가능성을 보고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재밌을 거 같아서요. 어때요? 한번 노래 들어보지 않을래요? 분위기 좋으면 오늘 내가 기분을 낼 수도 있는데.]

와아아―!

도경의 말과 함께 그의 뒤에서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영달을 향해 사람들이 함성을 터트리며 시선을 보내었고 영달은 그런 시선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지만, 이내 도경이 자신을 앞으로 이끌어 그의 옆으로 세우자 더는 사람들의 시선을 마냥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영달아.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자기 소개해야지.]

[아, 안녕하세요. 서영달이라고 합니다. 어쩌다가 제가 여러분 앞에서 노래 부르게 되었는데요……. 열심히 부를 테니 즐겁게 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말도 이쁘게 잘하고 똘똘해 보이죠?]

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가운데에도 자신들과 시선을 마주치는 것을 피하지 않으며 침착히 말하는 영달을 향해 도경의 팬들은 호감 어린 시선을 보내었다. 왜 그런 느낌 있지 않은가. 아무런 근거가 없음에도 왠지 노래를 잘 부를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말이다. 더구나 도경이 노래를 권유했기에 알게 모르게 기대감이 생겼다.

[생에 첫 무대가 제가 치는 기타 반주에 맞춰 여러분 앞에 노래를 부르다니 참,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부르고 싶은 노래가 뭐라고?]

[콰이어(Choir)의 ‘Here I am’을 부르고 싶습니다.]

[Here I am? 진짜로?]

[네.]

와아!

영달의 리퀘스트 곡에 사람들이 즐거운 가득한 반응을 보였다. 실패한 락 가수가 고향의 성가대를 지휘하며 대회에 진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던 3D 극장애니메이션 『Choir』.

미국의 유명한 애니메이션 회사가 도경과 합작하여 도경이 주연 성우와 노래 작곡을 맡았던 이 작품은 메가 히트를 치며 크게 흥행하였는데 그중 애니메이션 OST ‘Here I am’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제가상을 얻음과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으며 수많은 가수가 너도나도 커버한 주제곡으로 유명한 곡이었다. 특히나 가창력을 뽐내기 좋아하는 가수들이 이 노래를 즐겨 불렀는데 도경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마이크에 입을 때고 영달을 향해 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지 물었다.

“정말 괜찮겠어? 이거 꽤 어려운 노래인데? 음역대 키 올라가?”

“네. 친구들 하고 노래 불러봤는데 괜찮았어요.”

“뭐, 그렇다면야.”

‘친구들하고 부를 노래가 아니지만……. 못한다는 걸 할 수 있다고 하는 녀석은 아닌 듯싶으니. 뭐, 한번 믿어볼까? 못하면 내가 나서면 되겠지.’

『Here I am』

성가대의 노래 컨셉으로 만들어진 이 노래는 높은 음역과 그 음역을 끄는 부분이 길어서 난이도가 높은 노래로 유명한데 긴장감이 역력한 소년이 이 노래를 부를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좀처럼 쉬이 믿을 수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도경은 영달을 믿어보기로 했다.

두 농아인 부모님을 모시면서 나이에 비해 의젓한 영달이 못하는 것을 할 수 있다고 억지 부리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천천히 준비하고 노래하렴. 곧바로 반주 맞춰줄 테니 말이야.”

“네. 감사해요.”

‘녀석 열심히 하려는 게 귀엽네.’

피식.

나름대로 각오를 다지는 표정을 짓는 소년을 바라보며 도경은 미소지었다. 사실 도경에겐 영달이가 노래를 잘 부르든 못 부르든 상관없었다. 어떠한 결과가 나오던 도경은 영달에게 최고의 순간을 선사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 * *

“후우―.”

힐끔.

우글우글.

‘무거워……. 이게 가수가 바라보는 풍경이구나.’

조용히 호흡을 정리하며 긴장감을 몸에서 몰아내려 하지만 영달은 그리하지 못했다. 자신을 향해 시선을 보내는 수많은 관객 때문이었다. 노래를 부른다는 소식에 1층 홀은 물론 중앙홀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 압박감이 상상을 초월했다.

두근두근.

심장은 곧 터질 것 같고 시선을 통해 자신을 짓누르는 압박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거세어지기 시작한다. 이러한 압박감을 이겨내고 웃으면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이 이럴 때는 눈을 감고 호흡을 고르라고 하셨지.’

덜덜덜.

“……”

학교 방과 후 활동인 합창단에서 배운 가르침을 떠올리며 영달은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어 보지만 평소와 달리 그렇게 하니 긴장이 풀기는커녕 다리가 후들거렸다.

“영달아. 눈 감지 말고 저기 계신 네 부모님을 봐라.”

“아……!”

번뜩.

그 말에 영달은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뜨며 무대에 내려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자신의 부모님을 발견하였다. 자기보다 더욱 긴장한 모습으로 자신을 걱정하는 부모님을 말이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영달의 몸 떨림은 멈추었다.

『걱정하지 말아요.』

후읍.

영달은 자신의 부모님에게 가볍게 수화로 걱정하지 말라고 전달한 후. 크게 심호흡하며 곧바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떨림이 다 가시지 않았지만, 자신을 보며 걱정하는 부모님을 빨리 안심시키고 싶은 마음이 컸다.

[Remember me~.]

(날 떠올려요)

살짝 떨리는 목소리. 하지만 그 떨림은 듣기 좋은 소년의 미성을 다 가리지 못했다.

[슬퍼하지 말아요. 울지 말아요.

당신의 곁에 내가 있을 테니까요.]

오!

묘한 떨림이 가득한 목소리로 깔끔하게 뻗어 나가는 영달의 노랫소리에 사람들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조금은 불안정하지만 듣기 좋은 미성의 목소리는 노래를 부를수록 빠르게 안정감을 찾아가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세상이 차가운 어둠에 갇혀 있어도

두려워하지 말아요. 밤하늘 수놓아진 별처럼

당신의 곁을 밝혀줄 내가 있으니까.]

노랫소리를 뱉을수록 떨림은 가시고, 긴장으로 굳었던 몸은 서서히 풀리기 시작하고 영달의 표정이 좋은 표정으로 바뀌었다.

[세상에서 혼자서 떨지 말아요.

당신과 함께 떨어줄 내가 있어요.]

씨익!

영달의 목소리는 선명함을 찾아가며 원래 가지고 있던 힘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영달은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부모님을 향해 웃음 지었다.

‘이젠 걱정 안 해도 돼요.’

원래의 노랫소리를 되찾았다. 이제는 자신의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칠 일이 없었다. 영달은 크게 호흡하며 지금까지 불렀던 것보다 더 드높이 노랫소리를 내뱉었다.

[Remember me!

내가 있잖아요!]

와아―!

백화점에 울려 퍼지는 영달의 높은 노랫소리에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감탄성을 내뱉었다. 자신의 부담과 떨림을 떨쳐내고 당당하게 노래를 부르는 영달의 노랫소리는 꽃봉오리가 화사하게 개화한 것 같았다.

미약하고 연약한 존재감은 사라지고 하나의 존재로도 완벽하게 사람의 시선을 끄는 아름다운 꽃말이다.

“하하. 이거 어이없잖아.”

그런 영달의 모습에 도경은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은 운이 좋은 것일까? 최고의 순간을 선물해주려 했는데 오히려 자신이 최고의 순간을 받아버렸다.

‘책임감이 지나쳐도 너무 지나친 녀석이잖아.’

책임감이 강한 녀석이라고 해야 할까? 불안감에 가득한 부모님을 보자마자 자신의 두려움을 떨쳐내고 곧바로 힘을 발휘하는 영달을 보며 도경은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초등학생에 불과한 어린 녀석이 자신의 소중한 존재를 위해 평소보다 배 이상 힘을 발휘한다.

누군가는 이것을 보며 안타깝다고 생각할 테지만 도경은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책임감은 이 소년을 더욱더 강하게 만들어줄 것을 아는 까닭이다. 특히나 노래를 부르는 사람에게 있어선 이것은 재능이나 다름없었다.

‘노래는 남을 위해 부르는 것이니까.’

띠리링~ 띵!

위하는 마음으로 부르는 것. 그것이 노래였다. 소년의 재능을 통해 도경은 새삼스레 노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내가 있어.(Here I am).

너의 영혼을 밝혀줄 내가 있어.

날 떠올려 줘.(Remember me)]

“……!”

오싹.

작은 속삭임. 하지만 모두를 떨게 만드는 그 목소리에 모두가 소년의 뒤에 앉아서 기타를 쳐올리며 목소리를 내뱉는 존재에게 주목을 쏟기 시작한다.

“예정이 바뀌었어.”

예정이 바뀌었다. 영달이란 소년이 그 이상의 것을 보여줬으니. 도경 또한 그 이상을 보여줘야 했다.

‘재는 건 역시 내 스타일이 아니지.’

후웁.

노력하며 소년에게는 선물을 주어야 했다. 그 어디에도 살 수 없는 최고의 선물을 말이다. 도경은 영달을 바라보고 있는 두 부모님을 바라보며 기타 현을 퉁겨 올렸다.

퉁!

우우웅.

“……!”

그와 동시에 들릴 리 없는 노랫소리가 영달과 그의 부모님 몸 안에 울려 퍼진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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