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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352화 (352/357)

352화

[나를 떠올려 줘. 나를 잊지 말아줘.

너에게 내가 있어. 너를 위해 곁에 있을 거야.]

감동과 전율. 그것은 하나의 경이로움의 형태로써 사람들의 눈앞에 나타났다. 처음에는 하나의 목소리가 추가되었을 뿐이지만 지금은 수십 수백 명의 목소리로 하나의 노랫소리를 내며 사람들의 영혼을 강타하고 있었다.

[내리는 비를 멈추고 따스한 빛으로 어둠을 밝혀.

웅크렸던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봐.

너와 내가 바라보는 하늘은 언제나 푸르를 거야.]

신기한 현상이었다. 수많은 목소리가 노래를 따라부르지만, 도경의 노랫소리를 내는 타이밍만큼은 기가 막히게 알아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낮추고 도경의 목소리를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였으니 말이다.

[내가 여기에 있어. 나를 떠올려 줘~]

우웅―.

아마 그러한 이유는 정체불명의 이 목소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묘한 떨림으로 모두의 가슴을 적시고 일렁이게 만드는 목소리. 그 목소리를 품은 노랫소리에 사람들은 홀릴 수밖에 없었다.

백화점 1층부터 6층까지 넓은 백화점에서 울리는 도경의 노래를 따라부르는 사람들과 그들을 지휘하며 이끌어 나가는 모습은 하나의 웅장한 오케스트라를 보는 듯했다.

‘진짜 노래로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가수구나…….’

울컥.

사람들의 목소리를 악기 삼아 연주도 멈추고 혼신을 다해 노래를 부르는 도경의 모습을 바라보며 영달은 벅차오르는 감정에 눈시울을 붉혔다. 단순한 팬 서비스가 아닌 정말로 혼신을 다한 열창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 보고 있어요? 그리고 들리시나요?’

부르르.

온몸을 떨리게 만드는 이 노랫소리. 영달은 이 노랫소리가 자신의 부모님 귓가에도 닿았으면 싶었다. 귀가 들리지 않더라도 이 정도의 떨림을 전달하는 노래라면 분명 들을 수 있으리라.

‘하나님. 당신이 존재한다면 부디 이 노래를 부모님께 듣게 해주세요.’

영달은 빌다시피 했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 두 번 다시 없을 최고의 순간 최고의 노래였다.

이 감동과 떨림. 전율과 경이로움이 조금이나마 부모님에게 닿기를 소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나 잔인한 것이었다.

힐끔.

“아…….”

영달의 간절함이 닿았을까? 노래를 부르는 와중 부모님에게 시선을 돌린 영달은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노래에 맞춰서 고개를 까닥거리고 있는 부모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단순히 고개를 까닥거림이지만 영달에게 있어서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자신의 부모님이 노래를 듣고 있다는 것은 영달에게 있어 그런 것이었다.

“아아아!”

모두의 합창에 드높이 터트리는 소년의 감정. 도경은 그 목소리를 들으며 두 손을 들어 올려 주먹을 쥐며 사람들에게 신호를 보내었다. 그것은 팬들에게 있어 익숙한 신호. 아니, 팬이 아니더라도 자연스레 노래 부르는 것을 멈추게 만드는 무언의 신호였다.

순식간에 멎어버린 노랫소리. 하지만 영달은 멈추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터트려 나갔다.

[내가 있어.

신이 없더라도 너에게 기적을 가져올 내가.

목소리를 드높이며 너를 위해 노래를 부를 내가

영원히 목소리를 드높여 올릴 거야.

네가 존재하는 그 순간까지―.]

수천 명의 앞에서 영달의 감정이 실린 노랫소리가 드높아 올라가 백화점 가득 울려 퍼진다. 소년의 진한 감정이 실린 노랫소리를 들으며 도경은 웃음 지으며 들어 올렸던 주먹을 활짝 펼치며 그 목소리에 화답한다.

[나를 떠올려 줘~!]

우웅―!

주르륵.

‘끄응.’

도경의 온몸에 땀이 맺히기 시작한다. 수십 수백 수천 명의 화음을 조율하고 끌어내는 도경의 능력 덕분에 그의 몸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지만, 도경은 자신의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부모님을 모시며 일찍 철이 든 소년에게 기적을 선물하는 일이었다. 이 정도의 고통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

‘이 맛에 노래하지.’

씨익.

* * *

[미쳤다. 미쳤다! 아오! 갈걸! 가야 했는데―! 아, 오늘 하루의 나를 죽이고 싶다!]

[아니 무슨 합창단이야? 뭐 이리 합이 잘 맞아? 이거 짜고 치고 하는 거 아니죠?]

[성준이 이후로 역대급 듀엣 나왔다.]

[듀엣보단 저건 합창이죠. 백화점에 있는 사람들을 한순간에 성가대 만든 거 보소.]

[꼬마애 선곡 오졌다. Here I am 고른게 신의 한 수!]

[뭔가 되게 울컥하네요. ㅠㅠ]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인터넷 방송으로 팬 미팅을 보고 있었던 사람들은 난리가 났다. 설마 팬 미팅 현장에서 저런 레전드 상황이 펼쳐질 줄은 누가 알았던가? 다들 도경의 팬 미팅에 가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주요 검색 포털사이트에선 갤러리 백화점과 도경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 순위에 올라가고 있었고 기자들은 빠르게 영상들을 캡처해서 기사들을 신속하게 써 올리고 있었는데 카심은 그것을 바라보며 희열에 몸을 떨었다.

“진짜 도경이 삼촌은 정체가 뭘까요? 정말 저러니까 제가 미칠 수밖에 없다니까요. 대단하지 않나요?”

“그러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앞의 경이로운 풍경을 보며 진한 희열을 품은 카심의 물음에 김강한은 말을 잇지 못했다. 처음으로 직접 눈앞에서 도경의 노래를 듣는 그는 왜 사람들이 도경에게 열광하는지, 카심이 왜 그리 미친 짓을 저질렀는지 이제는 조금 이해될 것 같았다.

전신에 스며들어 영혼을 울리는 노래였다. 감정이 무딘 자신조차도 이럴진대 평범한 사람들이 저런 노래를 들어버리면 다른 노래는 귀에도 들어오지도 않으리라.

“삼촌의 노래를 들으면 신을 믿게 돼요.”

“신?”

“삼촌을 통해 신이 우리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는 거 아닐까 생각이 들거든요.”

“……!”

카심은 몽롱한 눈빛으로 도경을 바라보았다. 어렸을 때부터 모든 것을 가지고 최상위의 위치에 태어나 그 누구보다 부유하게 자랐던 카심. 하지만 그 시절의 자신은 그 누구보다 부족했었다고 카심은 생각했다. 부족함을 모르기에 아픔과 힘듦을 몰랐으며 자신을 높이고 주위 사람들을 낮추며 세상을 시시하게 보던 철없는 소년이 자신의 과거였기 때문이다.

(어이 꼬맹아. 괜찮냐?)

과거 어린 시절. 한 범죄조직에 납치되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배낭여행 중에 폐공장에서 노숙하고 있던 도경에게 구함을 받으며 시작된 짧은 여정을 떠올린 카심은 미소 지었다.

‘그때는 정말 재밌었는데…….’

충동과 무계획. 한없이 자유롭지만, 시끌벅적한 사건과 사고로 가득했던 여정은 그 당시에 힘들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카심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과 경험이 되어 한 편의 방랑기가 되어있었다.

그 안에서 세상에 무기력하고 무지했던 자신을 깨달으며 겸손함과 존중을 배웠고 도경을 통해서 사람과 돈에 대한 가치를 배웠다.

‘삼촌. 자신의 가치는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거라고 했었죠.’

가까운 사람의 배신과 막상 세상에 홀로 떨어져 나와 아무것도 못 하는 무기력한 자신에게 우울할 때. 도경은 기타 하나와 목소리 하나로 자신을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살아가는 즐거움이 뭔지 보여주었다.

“역시. 나의 가치는 삼촌의 있어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당시나 지금 부르는 도경 노래는 변함없이 언제나 사람에게 힘이 되어 준다. 그것이 진정한 도경의 가치였으며 카심이 그의 옆에 있으려고 하는 이유였다. 그도 그럴 게 도경의 가치를 옆에서 지켜보며 투자해야 했기 때문이다.

카심이 찾아낸 자신의 가치는 『투자』였다.

자신의 넘쳐나는 부를 올바른 투자처를 찾아 투자하는 투자자로서의 가치. 그리고 카심에게 있어 올바른 투자처란 바로 도경의 노래였다.

‘당신의 노래를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듣기를……!’

* * *

“역시! 도경이 넌 최고야.”

카심이 스스로의 가치를 확신하고 있을 때. 한 사내도 도경을 통해서 그와의 인연과 가치를 확신해 나가고 있었다.

“영달이에게 먼저 순서를 양보하기 잘했어.”

끄덕.

그 남자는 좀 전에 영달이와 함께 도경에 관한 이야기의 꽃을 피우며 영달에게 순서까지 양보한 김현수였다. 그는 도경과 영달이 보여주는 경이로움과 장엄함 광경에 사로잡혀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로 말이야…….”

도경과 노래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는 영달을 보며 김현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잘됐다는 생각과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으며 질투 나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잇값을 하지 못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정말로 부러운 것은 부러운 것이었다. 이 세상 자신의 꿈과 가능성을 그려나가며 이루어 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이를 먹고 주변을 둘러보면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아는 데는 어렵지 않았다. 그렇기에 진심으로 영달이 부러운 것이었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저리 못 하겠지.”

세상은 가혹했으며 사람이란 존재는 그리 대단한 존재가 아니었다. 특히 자신처럼 36살을 먹은 어중간한 존재라면 더욱더 말이다. 그렇기에 도경이나, 영달같이 빛나는 존재들을 동경하며 부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평온한 일상을 보내는 것이 최선이었다. 지금 이 노래를 들으며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처럼 말이다.

[어둠 속에 날 떠올려 줘.]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평온한 일상을 보내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현수가 얻은 평온한 일상은 그를 시들어가게 만드는 독이었다.

[차가운 세상 속에 혼자 있지 마.]

아무것도 극복하지 못하고 무기력 끝에서 얻은 평온이란 그를 우울하고 괴롭게만 했기 때문이다.

[넌 혼자가 아니야.]

김현수의 평온은 36년간 오랜 기간동안 천천히 만들어진 걸작이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암으로 떠나보내고 아버지와 남동생과 함께 남은 사람들끼리 힘내서 살아갔다. 씩씩하게 어머니의 빈자리를 서로가 메워가고 아버지의 재혼을 응원하며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지만 미묘한 비틀림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결국 평범한 불행이란 형태로 삶을 이뤄 나갔다.

그나마 구색을 갖추었던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는 서로에게 서운한 소리가 나올까 서먹서먹해서 잘 하지 않게 되었고 형제로서 서로 의지했던 동생은 조금씩 방황하기 시작하더니 온갖 사고를 불러오며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갔다.

그것은 김현수에게 있어 참으로 희한한 일이었다. 경제적으로 힘든 것도 아니었고 가족들도 못나지도 나쁜 사람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깨달았다.

『평범하니까 그렇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좀 전에도 언급했던 것처럼 사람은 생각보다 평범해서 보잘것없는 존재이기도 하며 세상은 그런 사람들에게는 살기 어려운 현실을 갖추고 있었다. 그렇기에 사람은 누구나 특별해지길 원하며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고 그 사람을 동경하며 가지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이 차갑고 가혹한 현실을 극복해 나가며 행복한 삶을 영위해 나가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김현수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계속해서 자신의 비틀려 나가는 불행한 일상을 극복하기 위해 공부에 목매달았고 대기업에 취직해 그 또래들보다 열심히 일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진취적으로 살아갔다.

―아빠가 해준 것이 없어 미안하다. 그래도 현수 너는 똑 부러지니 잘 살 거다.

항상 만나면 입버릇처럼 고생만 시켜서 해준 게 없어 미안하다는 아버지를 위로하며 무거워진 가슴을 이끌고 갑갑함과 알 수 없는 두려움을 쫓기 위해 일에 열중했으며.

―형 이번에 끊고 진짜 잘 해볼게.

알코올중독 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한 번만 기회를 달라던 동생에게 힘이 되어주기 위해 좋은 말로 다독이며 기꺼이 손을 빌려주었다. 힘이 빠지려만 하건만 그래도 김현수는 체념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신념이나 숭고한 뜻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포기하기엔 여태까지의 기울였던 힘과 노력이 아까웠고 억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했다시피 세상은 평범한 사람이 살기에는 어려운 세상이다.

―형 미안해.

알코올중독을 극복하고 정신 차리고 성실하게 일하고 있는 줄 알았던 동생은 사실 비트코인 열풍에 휩쓸려 자신이 빌려준 돈과 남몰래 사채를 쓰며 거액의 빚을 남기며 짧은 말과 함께 자살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흑윽. 미안하다. 내가 어렸을 때 너희들을 신경 못써준 다 내 잘못이다.

―맞아! 이게 다 아빠 잘못이야. 아빠가 우유부단하게 굴지만 안았어도 이런 일은 진작에 일어나지 않았어요!

―혀, 현수야?

그리고 어김없이 입버릇처럼 미안하다고 울음 섞인 말을 내뱉는 약한 아버지. 김현수는 평상시처럼 그를 향해 위로하려 했지만, 생각과 다르게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위로가 아닌 원망 어린 말들이었다.

―도대체 왜 남들처럼 평범하게 못 사는데? 거지처럼 못사는 것도 아니고 반듯한 직장들도 있고 취직도 시켜줬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 되는 거냐고?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현수야. 아빠가 미안하다. 그러니 잠깐 진정하고……. 윽!

―아, 아빠?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가슴을 움켜잡고 쓰러지는 아버지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짐이 되기 싫다며 미안하다는 편지와 함께 자취를 감춘 아버지. 그때 현수는 깨달았다.

자신 또한 주변 사람에게 힘이 돼주지 못한 평범한 사람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평범함은 죄악이다.』

후에 집의 재산을 처분해서 동생이 떠나고 남긴 거액의 빚을 갚고, 부담을 주거나 신경 쓸 사람 없어 예전보다 확실히 나아진 일상. 자기 자신만 챙기며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최선인 36세 김현수의 평온의 삶은 그렇게 한 가지의 교훈을 끝으로 완성되었다.

‘그렇기에 도경이 너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런 익사할 것 같은 자신의 평온한 일상에 숨통을 틔워준 존재가 바로 도경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자신의 힘든 현실을 잊게 해주는 특별한 오아시스.

자신의 구더기 같은 현실 속에서 도경은 힘이 되어주고 자신에게 살아갈 목적을 만들어 주었다. 그렇기에 특별한 스타였고 그만의 영웅이었다.

[너에게 내가 있어.]

와아아―!

노래를 끝마치고 모두의 함성 속에 땀을 닦으며 웃음 짓는 도경을 바라보며 김현수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도경을 만날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기 시작한다.

부스럭부스럭.

그가 들고 있는 갈색의 평범한 봉투가 유독 거슬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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