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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353화 (353/357)

353화

“안녕하세요. 영달이가 말해주더라고요. 되게 고마운 형이 올 거라고 팬 서비스 부탁한다고 말이에요.”

“아, 네…….”

“음? 어디 불편하세요?”

“아닙니다. 이렇게 도경 씨를 직접 보는 게 믿기지 않아서요.”

“하하. 그런가요? 그럼 악수라도 한번 나눠볼까요? 그러면 실감이 날 수도”

“아…!”

손을 내뻗으며 웃음을 짓는 도경을 바라보며 김현수는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도경의 손을 붙잡았다. 생각보다 부드러운 감촉을 통해 느껴지는 도경의 존재감에 그는 드디어 실감이 났다. 자신은 지금 도경과 함께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꾸욱.

단순한 악수에 이렇게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 수 있었다. TV 속에서나 보았던 도경을 현실에서 직접 만난 이렇게 악수까지 하다니 마치 꿈만 같은 일이었다.

“정말로 도경 씨군요.”

“네. 박도경입니다. 이번 팬분도 참 재밌는 분이 오신 듯 싶네요.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36살입니다.”

“아, 형님이셨네요. 괜찮으시면 말 편하게 하셔도 돼요.”

“이렇게 말하는 게 편합니다. 괜찮습니다.”

말을 편히 해도 된다고 말했지만, 김현수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어찌 그에게 편하게 반말을 할 수 있겠는가? 자신을 친근하게 대해주는 도경을 바라보며 김현수는 도경을 향해 준비했던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도경 씨 팬으로서 정말로 만나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만나는군요. 영광입니다.”

“하하. 영광이라니. 너무 거창한 표현인데요?”

“진심입니다. 도경 씨의 노래에 제 인생은 구원받았는걸요.”

“어쩜 그런 낯부끄러운 말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내뱉다니……. 형님 덕분에 제 얼굴이 화끈해져서 어쩔 줄 모르겠네요.”

진지한 팬이랄까? 이렇게 점잖게 대하면서 자신을 좋아해 주는 팬에게는 조금 약한 도경은 살짝 난처한 웃음을 흘리며 테이블 옆에 있던 사인지를 쥐었다. 그런 도경을 바라보던 김현수는 미소지었다. 확실히 사람은 직접 만나서 말을 섞어봐야 한다고 하더니 TV에서의 모습과는 달리 나름 쑥스러움을 타는 도경의 모습이 신기했다.

“좋아할 줄 알았는데 이런 칭찬에는 의외로 약하군요.”

“저도 부끄러움은 느낄 줄 아는 성격인데 당연하죠. 특히 형님처럼 진지하게 칭찬하는 사람한테는 조금 약해요.”

“하하하.”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김현수입니다.”

“혹시 제게 원하는 문구 같은 거 있으세요?”

“네 있습니다.”

도경은 서둘러 자신의 사인지를 꺼내 사인을 하며 그가 특별히 원하는 문구가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김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원하는 글귀를 말하였다.

“아래에 『세상에는 쓸모없는 음은 하나도 없다.』라고 적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현수 형님. 이거 제가 예전에 공익광고에서 말했던 대사잖아요. 저 수치사하게 하려고 컨셉 잡으신 거예요?”

“하하. 아닙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라서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참, 내 이거 때문에 얼마나 놀림당했는지 아세요? 상상도 못 할걸요?”

김현수가 사인지에 적길 바라는 글귀를 들은 도경은 한참을 투덜거렸다.

별생각 없이 출연했던 공익광고였지만 시도 때도 없이 장소 불문 어디에서도 나오는 그 광고 때문에 팬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온갖 드립에 시달렸던 경험이 있는 도경에게 있어 잊고 싶은 대사였기 때문이다.

“너무 그 광고를 싫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광고 때문에 제 인생이 많이 바뀌었거든요.”

“인생까지나? 또 형님 과장해서 표현하는 거죠?”

“아닙니다. 정말로 많이 바뀌었습니다. 덕분에 이렇게 도경 씨를 볼 수 있게 되었잖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저는 정말로 그 말 한마디에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

투덜거리면서 사인지 위에 자신이 말한 글귀를 적어주는 도경을 보며 김현수는 고개를 저으며 정말로 자신이 그 말 한마디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바뀌었다 말했다.

“인생에 의욕을 되찾게 되었고 뒤늦게나마 자신의 꿈을 가지게 되었으니 말이죠.”

“그렇군요……. 그나마 형님한테는 그 공익광고가 제구실한 모양이네요.”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허름한 모텔. 작은 방 천장에 줄을 걸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목을 매달려는 순간을 떠올리며 김현수는 웃음 지었다.

작은 TV 액정에서 시원한 웃음을 지으며 내뱉던 도경의 그 말에 김현수는 다시 한번 인생을 살아가기로 마음을 바꾸었었다. 도경의 말대로 이 세상에 쓸모없는 음이 없다면 평범한 자신이라도 어딘가에 쓰임새가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형님 같은 사람이 늦게 가진 꿈이라니. 분명 소중한 꿈이겠네요.”

스슥!

“그 꿈. 이루었으면 좋겠네요. 응원할게요.”

도경이 보기에 김현수는 매우 진중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분명 그가 뒤늦게 가진 꿈이 가볍지 않을 거라 예상했다. 도경은 유성펜으로 사인지 모퉁이 구석에 그를 위한 자그마한 글귀를 남기었다.

「현수 형님의 소중한 꿈이 이루어지길!」

“응원…….”

“음? 괜한 오지랖이었나요?”

“아뇨. 아닙니다. 그저……. 제 꿈을 응원받을지 생각지 못해서 당황한 것뿐입니다.”

“네? 왜 당황해요?”

“제 꿈은 이기적인 꿈이니까요.”

“이기적인 꿈이요?”

김현수는 말없이 도경이 건넨 사인지를 받으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흐렸다. 설마 자신의 꿈을 도경에게서 응원받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도 그럴 게 자신의 꿈은 그 누구에게도 응원을 받을 수 없는 이기적인 까닭이다. 특히나 도경에게 있어서는 더욱이 응원받아선 안 됐다.

“네. 제 꿈은 누구도 응원하질 않을 이기적인 꿈입니다.”

“…….”

이기적인 꿈이라고 말하며 어딘가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는 김현수를 바라보며 도경은 그 연유에 관해서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야기의 주제를 돌리고 싶은 것인지 자신이 준비한 선물을 꺼내는 김현수의 행동에 도경은 묻지 못하고 그냥 넘어갔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도경은 그가 왜 그런 말을 꺼냈는지 몸으로 직접 알게 된다.

* * *

탕!

백화점 가득 울리는 단발성 가득한 굉음. 그것은 정말로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꺄아악!

“뭐지……? 무슨 소리가 났는데?”

“몰라. 아래쪽에 폭죽이라도 터트렸나……?”

몇몇은 그 소리에 무슨 사고가 터진 줄 알고 비명을 질렀지만, 백화점에 있는 대부분은 무언가 터지는 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내 자신들의 볼일을 보기 시작한다.

“…….”

굉음의 소리가 난 근원지 백화점 1층 홀. 모두는 자신들의 눈앞에 벌어진 일에 모두가 몸이 굳은 채로 멍하니 도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경의 흰 와이셔츠. 배 윗부분에 붉게 물들며 빨간 꽃을 피우고 있는 이 비상식적인 광경을 말이다.

주르륵.

처음에 사람들은 이 비정상적인 광경을 믿지 않았다. 어느 정도로 믿지 않았었냐면 이 모든 일이 모두 도경이 꾸민 깜짝 이벤트일 정도로 치부할 정도로 자신들의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을 믿지 않았다.

“총? 지금이게 무슨…?”

비틀.

‘젠장. 이게 지금 무슨 일이지? 내가 꿈을 꾸고 있나?’

그중에서 가장 믿지 못한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바로 일을 겪고 있는 당사자인 도경이었다. 가슴의 격통보다 자신에게 벌어진 이 일이 실감이 가지 않았다.

분명 좀 전까지 선물을 받으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포토존에서 서로 웃음 지으며 포즈를 취하면서 사진까지 찍었다. 그것도 모자라 마지막 포옹을 부탁하여 포옹까지 한 팬이 자신의 가슴에 총을 쏜 것은 도경이라도 쉬이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왜? 도대체 왜 이런 짓을?”

“미안합니다. 도경 씨. 이게 제가 이루고 싶었던 꿈입니다.”

“꿈?”

자신조차도 미치고 펄쩍 뛸 일에 도경은 몸 안에 엄습하는 고통에 인상을 찌푸리며 이 일을 벌인 장본인을 바라보았는데 역시 꿈은 아니었는지. 좀 전 자신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김현수가 그대로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물론 그가 들고 있는 총은 여전히 꿈처럼 비현실적이기 그지없는 것이지만 말이다.

“네. 당신에게 변치 않는 마침표(.)를 찍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뭔 개소리야…….”

쿨럭.

평온하기 그지없는 기색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김현수를 보며 도경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변치 않는 마침표라니 격통이 아니었더라도 이해하질 못할 말이었다.

“도경 씨. 당신은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존재입니다.”

저벅저벅.

총 맞은 부위를 두 손으로 세게 억누르며 힘겹게 서 있는 도경을 향해 김현수는 걸음을 옮기며 거리를 좁혀나가면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직 까지는 도경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있어 보이는 듯싶었기에 부리는 사치였다.

“만인의 스타이자 나의 하나밖에 없는 고귀한 영웅이죠. 그러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더군요. 당신도 언젠가 늙고 평범해질 거라는 것을 말입니다. 아니, 어쩌면 늙어서 추해질 수도 있겠죠. 나는 그런 잔인한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뒤늦게 제 자신의 가치를 발견했습니다.”

평범함을 죄악으로 여기는 김현수는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만인의 스타이자 자신의 고귀한 영웅인 도경을 한없이 사랑스럽다는 듯이 한없이 자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당신이 언제까지나 영원한 스타로 있게 만드는 악역으로서요.”

“미친…….”

“아뇨. 저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멀쩡히 사고하고 사람들의 감정에 공감할 줄 아는 평범한 정상인입니다. 다만 자신의 평범함에 버티질 못하는 나약한 사람일 뿐이죠.”

스윽.

미쳤다는 도경의 말에 김현수는 그에게 총구를 겨누며 자신은 평범한 사람이라 차분하게 일컬었다.

“대체 어디가 평범한데…….”

“도경 씨. 당신처럼 특별한 사람은 영원히 모르겠죠. 저처럼 평범하고 나약한 사람들에게는 현실을 버티기 위해선 영원한 판타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끼리릭.

“도경이 삼촌!”

“박도경! 이 개자식아! 뭘 멍하니 있는 거냐-! 정신 안 차려?”

김현수가 검지에 힘을 주며 천천히 방아쇠를 당기며 돌아가는 총기의 실린더 소리와 함께 자신을 향해 걱정 섞인 외침을 들으며 도경은 어이없는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누군 가만히 있고 싶어서 있는 줄 아나?’

피식.

참 더럽게 운이 없다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갱단들의 사투를 벌여도 멀쩡했던 자신이다. 원래의 몸 상태라면 절대로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었지만, 멀쩡하지 못한 몸 상태로 좀전의 노래에도 능력을 과하게 사용한 것이 그의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도경으로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총 한 발에 온몸의 힘이 쭉 빠져서 간신히 서 있는 것이 고작인 게 도경의 현재 상황이었다.

‘아니. 누가 한국에서 총 맞을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어…!?’

철컥!

“하, 좆같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감각 속. 자신의 귓가에 똑똑히 들려오는 방아쇠를 당기는 소리를 들으며 도경은 짤막하게 욕설을 내뱉었다.

탕! 탕! 탕!

풀썩.

두 번째로 터져 나오는 총성과 함께 도경은 핏줄기를 뿜으며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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