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4화
【뉴스 속보!】
[갤러리 백화점 팬 미팅 사인회에서 도경 팬에게 피습당해!]
방송이 송출되고 있는 TV 브라운관을 메꾸는 하나의 자막. 채널을 가리지 않고 전해오는 속보에 대한민국이 충격으로 들썩였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과 뉴스란에서는 도경에 관한 기사들이 우후죽순 올라와 오고 있었고 커뮤니티 사이트에선 도경이 총에 맞은 영상들이 기재되어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주고 있었다.
―『어이어이. 이거 농담이지? 누가 좀 거짓말이라고 해줘!』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대한민국에서 총격 사건이라니. 그것도 우리 도경이한테……!』
―『사망했다는 말도 나오고 있던데 정말일까요?』
―『루머가 너무 많다… 누가 제대로 된 소식 좀 알려줘. ㅠ ㅠ』
―『어떻게 된 겁니까? 한국은 세상에서 안전한 나라 중 하나 아닙니까?』
―『지금 이게 무슨 일인가요? 도경이 무사하기를 간절히 빕니다…….』
급기야는 외국에까지 도경의 소식이 퍼져나갔는지 한국 포털사이트와 커뮤니티 사이트에 외국인들의 글까지 달리고 있는 상황. 사건이 일어난 지 한 시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벌어진 일인 것을 고려했을 때. 오랜 시간이 지나 않아 도경에 대한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질 것이 불 보듯 뻔한 듯싶었다.
* * *
【BBC 월드 뉴스】
[아시아의 보석, 세계적인 만능 엔터테인먼트로 인정받고 있는 카일 씨가 자신의 나라인 한국에서 오늘 백화점 팬미팅 이벤트에 참여한 팬에게 총기로 피습을 받은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현지에서 들리는 소식으로는 5시간의 대수술 끝에 중환자실에 있다고 하는데요. 그야말로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카일 씨를 피습한 인물은 철공소에서 일하는 36세 남성으로 자신의 능력으로 직접 총기를 제작했다고 밝혔는데요. 용감한 시민에게 제압당할 당시 이 가해자는 별다른 저항이나 흥분한 감정을 보이지 않았고 순순히 경찰들에게 체포되어 전후 사정을 차분히 진술하고 있다고 합니다.
예전부터 우리들은 세기의 스타를 잃어버리는 비극적인 사건들을 지금처럼 자주 목격합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파파라치, 일그러진 팬심, 악의적인 루머. 술과 약물중독 등등. 모든 것은 사람의 약한 곳에서부터 오는 일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에 카일 씨. 우리는 당신이 힘이 필요합니다. 부디 지지 말고 우리곁에 돌아와 노래를 들려주세요.]
전 세계적인 뉴스를 보도하는 BBC의 메인 앵커가 비통한 표정을 지으며 카메라에 대고 도경을 향해 쾌유를 빌었다. 누가 봐도 뉴스의 언론인으로서가 아닌 한 명의 팬으로서 하는 개인적인 말이었지만 그 누구도 그 행동을 비판하지 않았다. 그 메인 앵커의 말대로 그들에겐 아직 도경의 노랫소리가 주는 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믿을 수 없는 능력으로 신화적인 결과를 만들면서도 힘든 일에 처한 사람들을 기상천외한 방법과 그 자신만의 방식으로 꾸준히 도와가며 인간적인 모습을 잃지 않았던 도경은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된 21세기 최고의 스타다. 그런 스타를 사람들을 이런 일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모두들 기도한다.
『도경이 무사히 우리 곁으로 무사하게 돌아오길……!』
* * *
“사람들을 위해서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너 이 새끼! 그걸 말이라고 해? 죽여버리겠어!”
덥석! 우당탕!
“이,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카심 회장님!”
“건들기만 해봐. 너희들도 다 박살 내버릴 거니까……!”
“……!”
참고인 조사를 받고 있던 카심은 참지 못하고 김현수의 멱살을 붙잡아 바닥에 내리꽂았다. 경찰서 안에서 난동을 피우는 카심은 실성한 사람이나 다름없었지만, 주변 경찰관들은 쉬이 그를 말리지 못했다.
저 젊은 외국인 청년이 대한민국의 차세대 언론을 이끌어갈 곳이라 평가받는 D&D 미디어의 회장이며 정·재계 높으신 분들도 건들지 못하는 아랍 왕족 출신이라는 것을 아는 까닭이었다. 그러니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굴릴 뿐이었다.
“뭐? 언젠가는 늙고 평범한 사람이 될 거라고? 그게 뭐 어때서?! 불멸이란 영원을 부여한 거라고? 도경이 삼촌이 그런 것을 원했을 것 같아!? 너는 그저 사람을 믿는 것을 두려워 하는 형편없는 놈이야! 네 스타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한 겁쟁이라고!”
“그럴 수도… 하지만 난 후회하지 않습니다.”
“뭐?”
자신의 몸 위에 올라타 분개를 터트리는 카심을 바라보며 김현수 처연한 미소를 지었다. 그 말대로 자신은 사람을 믿을 용기가 없는 겁쟁이다. 하지만 김현수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았다.
“모두들 영원히 도경을 추억할 겁니다. 도경이란 스타가 그린 생전의 전설을 그리워하며 가슴 속에 최고로 스타로 새겨둘 테죠. 비교당할 수도, 비교당할 리도 없는 전무후무한 불멸의 스타. 그야말로 최고의 존재죠. 우리는 스타를 잃은 게 아니라 최고의 스타를 얻은 겁니다.”
“이익! 우리라고? 너와 나를 동급으로 취급하지 마!”
뚝!
차라리 김현수가 어딘가 정신질환을 앓아서 질 나쁘게 미쳤다거나, 뒤늦게 후회를 하며 추하게 용서를 구한다거나, 얄팍한 논리로 헛소리를 한다면 이 정도까지 흥분하지 않으리라.
김현수는 너무나 제정신으로 미친 짓을 저질렀다. 자신만의 논리와 신념을 품어 후회하지 않았고 마치 미래를 위해 이것이 낫다고 여기는 선지자같은 면모를 보이는 김현수의 낯짝을 보자니 절로 억장이 무너진다.
“너 같은 건……!”
분노에 몸을 맡기며 카심을 오른손을 높이 들어 올려 주먹을 쥐었다. 그의 낯짝을 박살을 내지 않으면 이 원통함과 분노가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카심 그만해라.”
조용히 침묵을 지키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김강한이 결국 카심을 말렸다.
덥석!
“이거 놔요! 저런 새끼는 당장 죽여버려야 해!”
“소용없다. 저런 놈에게 뭘 해도 너의 마음은 풀리지 않을 거다.”
사이비 교단 에덴을 상대했던 김강한은 안다. 자신이 옳은 일을 했다고 신념을 품은 자들만큼 말이 안 통하는 대상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교단이 와해되고 자신들의 교주가 사라졌지만, 지금까지도 믿음을 놓지 않는 이들처럼 김현수는 자신의 신념과 올바름의 논리를 놓지 않을 것이었다. 이런 이들에게 감정을 터트리거나 쏟는 것만큼 허무한 것은 없었다.
“이럴 시간에 차라리 병원에 가서 도경의 곁에…….”
“제가 거길 어떻게 가요. 저 때문에 도경이 삼촌이 총을 맞았는데 제가 무슨 낯짝으로 거길 가냐구요! 모든 게 나 때문이라고요! 빌어먹을 나 때문에……! 아아악―!”
벌떡!
타다닥.
“카심…….”
경찰서 밖으로 뛰쳐나가는 카심을 바라본 김강한은 카심이 후회와 죄책감에 빠져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도 카심은 자신 때문에 연 팬미팅이 아니었다면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아마도 저는 저 사람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듯싶군요.”
스윽.
“죄?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고는 만족스러운 듯 보이는군.”
“그런가요? 그렇군요. 아마도 저는 당신의 말대로 만족스러운 거겠죠.”
카심이 뛰쳐나가고 몸이 자유로워진 김현수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자리에 앉았는데 그 표정엔 만족스러운 표정이 담겨있음을 김강한은 눈치채고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저 청년은 영원히 도경을 기억하겠죠. 자신의 곁을 일찍 떠난 도경을 안타까워하고 그의 존재를 위하며 평생 그리워할 겁니다. 그리고 그의 기억 속에선 찬란한 빛을 간직한 젊디젊은 도경이 영원히 살아 숨 쉴 겁니다.”
김현수는 카심을 바라보며 자신의 행동이 틀리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했다. 도경 그는 변치 않는 불멸성을 얻은 최고의 스타가 된 것이리라. 그렇기에 자신은 만족하는 것이겠지. 그런 생각에 빠져있던 김현수를 향해 차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불쌍하군.”
“불쌍하다고요? 아니요. 저는 누구보다 행복합니다.”
김강한의 불쌍하다는 말에 김현수가 처음으로 발끈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게 자신은 그 어느 때보다 충족한 상태이다. 삶의 목적을 이루었고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입증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그것을 모욕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아니. 너는 불쌍하다. 현실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포기했으니까.”
“흥. 이런 빌어먹고 추악한 세상이 존재하는 현실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당신이야말로 불쌍하군요.”
강자와 약자가 나뉘고 먹고 먹히는 세상. 그리고 평범함이 죄악이 되는 세상. 이 세상은 그리 훌륭한 것도 아니었고 그리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김현수는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김강한을 비웃음 지었다.
“너는 도경이 불쌍해 보였나?”
“뭐?”
“도경은 네가 추악하다고 여긴 세상 속에서 그 누구보다 삶을 살아가려 했던 남자다. 네가 가치가 없다고 여긴 곳을 사랑하며 자신만의 가치를 발견해 곡을 만들었다. 그것도 네가 불쌍하다 여긴 현실을 살아가려는 사람들을 위해서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말이야.
세상을 자신의 노랫소리로 가득 채우려 했던 놈이야. 그런데 정말로 너는 이 세상이 가치 없다고 느끼는 건가?”
“……!”
“너처럼 나약한 놈이 현실을 외면하고 순수함과 영원함에 목을 매달지. 에덴의 아름다운 낙원을 꿈꾸었던 사람들처럼 말이야.”
“그런…….”
김강한의 말에 김현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이 도경을 불쌍히 여긴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도경을 그 누구보다 동경하며, 그의 대단함을 느끼며 세상 그 누구보다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이가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도경의 가치가 영원하길 원했기에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이지. 절대로 그를 불쌍히 여겨서 이런 일을 벌인 것이 아니었다. 무언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에 김현수는 쉴 새 없이 두 눈동자를 떨었다.
“도대체 넌 도경의 뭘 보고 있었던 거냐? 도경의 보였던 행동들과 사람들을 위해 불렀던 그 노래 속에서 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건가?”
“시, 시끄러워!”
김현수의 말대로 현실 속의 세상은 그리 변변치 않은 것임은 분명했다. 현실은 아름다운 완벽한 낙원이 아니라 추악하고 혼란스러운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김강한은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이 가혹한 세상에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게 선택할 수 있었고, 자신만의 가치를 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려준 사람이 바로 도경이었다. 사람들을 위해서 노래를 부르고 나은 선택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책임지는 그 행동을 보면 깨달을 수 있었다.
“세상은 네가 생각한 것보다 살아갈 가치가 있어. 그것을 모르는 네 녀석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놈이다. 도경은 죽지 않아. 살아 돌아올 거다. 그도 그럴 게 그 녀석은 너와는 달리 이 세상을 그 누구보다 좋아하는 녀석이니까.”
“으…….”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말과 함께 등을 돌리며 걸음을 옮기는 김강한의 뒷모습을 김현수는 고장이 난 장난감처럼 고개를 꺾어 바라본다. 그리고 이내 알 수 없는 신음성과 함께 절망에 가득 찬 절규를 내뱉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평범한 사람에서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 된 자신의 처지를 깨달았기에… 자기 같은 사람을 위해 노래를 불렀던 도경을 자신의 손으로 총을 쏘았다는 뒤늦은 죄책감이 그를 뒤덮었기에 김현수는 짐승처럼 울부짖는다.
* * *
삑―. 삑―. 삑―.
쉭. 쉭.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가득한 방. 고저 없이 일정한 주기로 울리는 전자신호음이 울려 퍼지는 이곳은 한 병원의 중환자실. 한 남자가 산소 호흡기에 의지한 채 숨을 쉬며 쥐죽은 듯이 병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선생님… 우리 도경이 무사히 일어날 수 있는 거죠?”
“최선을 다해 수술을 끝마쳤지만… 워낙 상태가 위중하여서 추가 수술을 할 경우도 생길 수 있고 어찌 될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솔직히 지금의 수술도 도경 씨의 체력과 의지가 남다르기에 가능한 거였다고 생각합니다. 남은 것은 그저 기다리는 것 뿐이겠지요.”
코앞의 거리에서 네 번의 총알을 맞았다. 총 한 발에 쇼크사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숨이 붙어있다는 것이 용한 지경이었다. 숨김없이 그런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의사 선생님 말에 도경의 가족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슬픔에 잠기기 시작했다.
“흑흑흑… 도경아.”
“오빠……!”
“크흑!”
“…….”
가족들이 슬픔에 잠긴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경은 그저 미동한 점 없이 눈을 감아 힘겹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 * *
“하아~. 여기는 또 어디냐?”
철벅. 철벅.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으로 가득한 장소. 축축한 바닥의 감촉을 느끼며 걸음을 옮기는 도경은 한숨을 내뱉으며 짜증 어린 섞인 목소리로 힘껏 소리를 내질렀다.
“아, X발 꿈이냐? 이런 개같은 전개는 사양한다고! 뭐라도 쳐 나와라―!.”
한참을 걸었다. 처음에는 자신의 마지막을 떠올리며 심각한 표정도 짓고, 긴장감이 가득한 표정도 지었지만, 이 어둡고 축축하고 어두운 공간을 한참을 배회하니 남는 것은 짜증과 갑갑함이었다.
아무것도 없이 심심한 장소. 이곳은 지옥일까? 이러한 현상이 계속 유지 될까 봐 내심 초조함과 불안감의 표출로 도경은 개드립을 던졌다.
“하하하. 여전하구나! 카일.”
“……!”
이 상황에 힘차게 개드립을 던지는 도경도 어지간한 꼴통이지만, 자신의 개드립과 동시에 뒤에서 빛과 함께 갑자기 등장한 낯선 인물을 보며 도경은 어이없는 미소를 지으며 이곳이 꿈이라 확신했다.
“오랜만이다. 타이론.”
“오? 날 알아보는 건가?”
“친우이자 나의 왕의 목소리를 까먹을 리 없잖아. 그나저나 그 모습은 뭐냐?”
“하하하. 조금 쪘지?”
“그게 조금이냐? 왕이 아니라 빵집 아저씨인 줄 알았다.”
화려한 왕좌에 앉아 싱그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배불뚝이 왕을 보며 도경은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수많은 남성과 여성의 가슴에 불을 질렀던 카리스마를 지닌 꽃미남 왕은 어디로 가고 저런 빵집 아저씨 같은 사람이 남아있던가 말인가? 어이가 없어 그저 실소밖에 나오질 않았다.
“정말 내가 개꿈이라도 꾸는 모양이야.”
피식.
오랜만에 재회한 이세계 『가르드』의 인연에 도경이 처음으로 이곳에서 웃음 지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