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6화
[아아아~.]
각자가 쌓아 올렸던 기술과 경험. 생전과 생후. 그 둘이 걸어왔던 인생 속에서 쌓아 올린 감정들이 하나로 뒤섞여 노랫소리로 주변의 공기를 뒤흔들었다.
서로 각자의 노래를 주고받으며 부르던 것이 이제는 그 노래를 교환하는 틈조차도 아까운지. 도경과 마무는 서로의 노랫소리를 듣고 자신들의 노랫소리를 겹쳐 하나의 노래와 곡으로 만들어 신비한 노래를 탄생시켰다.
[우우~.]
비슷한 노래와 가사들을 겹쳐서 하나로 불렀던 노랫소리는 더욱더 단순한 형태로 바뀌어서 가사조차 존재하지 않는 음으로만 존재하는 형태로서 변해 있었는데 그것은 노래를 부른다는 수준의 것을 아득히 벗어나 표현 할 수 없는 그 무언가였다.
단순히 음으로 표현하는 스캣과 허밍의 형태로 부르는 노랫소리였지만 그 어떠한 노래보다 아름다운 노랫소리였으며 가사가 없음에도 음에서 전달되는 수많은 생각과 감정들은 마치 두 사람의 순수한 영혼을 엿보는 듯했다.
“후우…….”
“하아……. 하아…….”
주르륵.
시간도 공간도 잊고 오로지 본능적으로 음에만 집중했던 신비한 노래. 영원과도 같았고 찰나와도 같았던 두 사람의 노랫소리는 어느새 끝이 나 있었다. 얼마나 노랫소리를 이어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건 두 사람은 혼신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었다. 지치거나 생리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이곳에서 땀범벅이 되어 숨을 몰아쉬고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후. 제법이잖냐?”
“너야말로…….”
여운에 젖어있던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다. 서로의 노래에 대해서 각자만의 짧은 평을 남기며 웃음 지었다. 이 이상 말을 더하는 것은 구차한 것이었다. 이미 노래를 부르면서 서로의 영혼을 내다보았기에.
“그나저나 이 사람들은 뭐냐?”
“우리의 노랫소리에 이끌린 손님들. 곧 재밌는 거 볼 수 있을 거다.”
“재밌는 거?”
“저기를 봐봐.”
“저건……!”
인기척 없이 찾아와 언덕을 둘러쌓은 의문의 손님을 가리키는 도경의 말에 마무는 재밌는 것을 볼 수 있을 거라는 말과 함께 손가락으로 한쪽을 지목했다. 마무가 가리킨 그곳에는 눈물을 흘리며 조용히 눈을 감은 여성이 있었는데 그녀를 바라보는 도경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기 시작했다.
우웅우웅.
파아앗!
“……!”
눈물을 흘리며 눈을 감았던 여성의 몸이 새하얀 금빛으로 물들이며 반짝이기 시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깜박이는 빛의 주기는 점점 짧아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그녀의 몸에서 강렬한 빛이 터져나오며 빛줄기가 하늘 높이 솟아오른다.
펑!펑!펑!
그녀를 시작으로 도경과 마무의 노래를 들으러 왔던 사람들이 빛에 물들어 빛줄기가 되어 하늘 높이 솟아오르며 빛 가루를 허공에 흩뿌리기 시작했는데 밤하늘 무수하게 뿌려진 빛 가루들은 하늘하늘 허공을 유형하며 마치 몽롱하고 아름다운 은하수 같은 풍경을 자아냈다.
“어때? 장관이지?”
“어…….”
끄덕.
마무의 말 대로 이곳은 음유시인에게 있어 낙원일지도 몰랐다. 떠나면서 저리 아름다운 풍경을 남겨놓고 떠나는 관객들이라니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최고였다.
“그럼 슬슬 가라.”
“뭐?”
“노래도 원 없이 불렀겠다. 좋은 것도 봤겠다. 지금 헤어지는 게 가장 좋지. 네가 말했잖아? 아쉬울 때 가는 게 베스트라고 말이야.”
“야, 그거랑 이거랑 같냐? 너무 갑작스럽…….”
“머리 조심해라.”
“뭐? 으악!?”
촤아악!
꾸르르륵!
‘!?’
친구의 갑작스러운 축객령에 도경은 서운한 표정으로 무언가 마무에게 말을 하려 했지만, 그 말을 다 이어나가지 못했다. 하늘 위. 어디서 떨어졌는지 모를 거대한 물벼락을 맞으며 어디론가 휩쓸려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하하. 몸 조심히 잘 가라. 카일.”
도경을 휩쓸고 밤하늘 은하수를 타고 어디론가 날아가는 물줄기를 향해 마무는 후련한 웃음을 터트리며 작별인사를 건네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우웅우웅.
“정말로 성불하게 될 줄이야. 어처구니없네…….”
피식.
천천히 빛으로 물들어가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면서 마무는 실소를 내지었다. 설마 단 한 번의 노래로 자신의 미련이 사라져 버렸을 줄이야. 자신의 생각 이상으로 도경과 불렀던 노래가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친구와의 짧은 회포를 즐길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다음에…….”
스르륵.
“다시 함께 노래 같이 부르자.”
번쩍―!
진한 미소와 함께 밤하늘 환하게 비추는 빛줄기가 되어 어디론가 떠나는 마무.
도경은 마무가 그 어떠한 것에도 제약받지 않고 자유롭게 원없이 노래 부르는 것이 그의 미련이라고 추측했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이었다.
『그 녀석과 한 번 더 노래를 부르고 싶다.』
자신의 친구와 함께 최고의 노래를 부르는 것. 그것이 마무가 지니고 있던 진정한 미련이었다.
* * *
풍덩~!
도경을 실은 거대한 물줄기가 호수에 떨어져 거친 물보라와 함께 물기둥을 만들었다. 호수에 깊숙이 처박힌 모양인지 한참 있다가 도경이 물 수면 위로 올라와 급히 숨을 몰아쉬었다.
“푸하―! 아! 여기는 사람을 정상적으로 부르는 법을 모르는 건가?”
칙칙한 어둠을 한참을 헤매였고, 하늘에서 끊임없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격류에 휩쓸려 물웅덩이에까지 처박히기까지 하니. 아무리 도경이라도 이 제멋대로인 공간에 심기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왜? 그래서 나랑 만나는 게 불만이야?”
“……!”
두근.
수면 위. 둥둥 떠서 푸른 하늘 구름이 떠 있는 하늘을 보며 현자타임에 빠져있는 도경의 귓가에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 도경은 이 잊을 수 없는 목소리에 자신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는 것을 느끼었다.
“시아? 시아야?”
“뭐야? 그 의문형은? 벌써 내 목소리를 까먹은 건 아니겠지? 만에 하나 그렇다면 저주할 거야.”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새하얀 바위 위에 걸터앉아 인상을 찌푸린 한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흑단처럼 검은색의 윤기를 품은 긴 생머리, 선홍빛의 붉은 눈동자, 가느다란 선을 유지하는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로 특유의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녀를 바라보는 도경의 두 눈은 쉴 새 없이 떨리고 있었다.
“하하……. 시아 너무하잖아. 보자마자 저주할 거라니.”
울컥.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들려주는 그녀의 전매특허 대사를 들은 도경은 하마터면 울음을 터트릴 뻔했다. 저 퉁명스럽지만 사랑스러운 목소리가 얼마나 그리웠단 말인가. 눈물을 보이기 싫어 도경은 얼굴 위로 자신의 손을 덮었다.
“멍청아. 어서 올라오기나 해. 할 이야기 많잖아.”
“무신경하기는……. 죽었던 연인을 만난 건데 감정 좀 정리할 시간 좀 주라고.”
“헤헤. 그렇게 좋아? 곤란한걸? 나 질질 짜는 남자는 별론데.”
“뭐래? 누가 질질 짜?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거든?”
“뭐? 그 정도까지? 너 지금 말 다했어?”
휘익!
도경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샐쭉하게 눈초리를 좁힌 시아라 불린 여성은 걸터앉은 바위에서 높이 점프해서 물웅덩이에 몸을 던졌다.
풍덩!
“윽! 시아 뭐 하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해봐.”
“뭘? 말이야.”
“지금 얼마나 좋은지 말이야.”
“그거 들으려고 물에 뛰어내린 거야?”
“말해.”
높게 치솟아 오른 물보라에 다시 물에 흠뻑 젖은 도경은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도경의 얼굴을 두 손으로 붙잡아 자신의 얼굴에 고정하며 좀전의 물음을 던졌다. 그녀의 행동에 도경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그녀가 듣고 싶은 대답을 해주었다.
“좋아.”
“얼마큼?”
“음. 죽는 게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 만큼?”
“웃겨. 그게 뭐야?”
툭.
“농담이 아니야.”
와락.
“……!”
도경의 황당한 대답에 시아는 실소를 지으면서도 그 대답에 싫지 않았던지 샐쭉거렸던 눈매가 어느새 부드럽게 풀려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도경은 웃음 지으며 자신을 놓던 그녀의 손을 붙잡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겨 안았다.
“죽을 만큼 보고 싶었다 시아.”
“나도…….”
도경의 품속에 얼굴을 묻은 시아는 말없이 그를 안아주며 자신 또한 마찬가지였다고 대답해주었다.
“나도 보고 싶었어.”
호수에서 서로를 끌어안으며 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두 남녀.
『시아 브린다』
가르드 대륙. 【검은 마녀】라 불리던 존재였지만 도경이 진심으로 사랑했던 연인. 자신을 살리기 위해 대신 죽음을 택했던 그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연인의 재회에 도경이 눈시울을 붉혔다.
“그런데……. 카일 있잖아 한 가지만 물을게.”
“응. 물어봐. 시아.”
“죽을 만큼 보고 싶었다는 것 치고는 즐겼던 여자들이 너무 많지 않아? 여기저기 아주 날아다니던데?”
하지만 이내 이어지는 시아의 말에 도경의 눈물을 쏙 들어가고 만다.
“그, 그걸 어떻게?”
움찔.
“너 내가 누군지 잊었어?”
“시아. 너 설마 다 본 거야…….”
자신의 연인의 말에 도경의 얼굴이 황망한 표정이 서린다. 미래를 예지하며 천 리를 내다보는 신안을 가진 【검은마녀】 시아 브린다. 그녀의 태도를 보자니 그녀는 분명 지구에서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모두 아는 듯싶었다.
“그래 다 봤다! 그것도 생생한 라이브로 말이야. 이 난봉꾼아!”
“자, 잠깐.”
“잠깐은 무슨!”
퍽!
풍덩!
죽어서만큼 보고 싶었던 사랑했던 연인 간의 재회. 하지만 두 남녀의 재회는 생각만큼 그리 낭만적이지는 않은 듯싶었다.
* * *
[수술실]
덜커덩.
“서, 선생님 수술은 잘 끝났나요!?”
수술 중이라는 것을 알리는 조명 간판이 꺼지고 수술복을 입은 의사가 밖으로 나오자 도경의 부모님인 서단비 여사와 박호찬은 의사 선생님에게 서둘러 달려가 수술 경과에 대해서 묻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끝마쳤지만, 출혈이 심한 데다가 손상된 장기의 염증 상태가 심해서 도경 씨의 몸이 버틸지는……. 72시간은 고비일 듯 싶습니다.”
“고비라니. 그 말씀은…?”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지도 모르는 사황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 그런……!”
털썩.
첫 수술 이후. 10일간 2차례의 추가 수술. 결국 의사의 입에서 전해오는 절망적인 소식에 도경의 어머니인 서 여사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고 그런 자신의 아내를 부축하던 박호찬은 입술을 꾹 깨물며 침통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모습을 감춰가는 희망에 결국 의사가 떠난 자리에서 두 부모는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이, 바보 오빠야…….”
화장실에 잠깐 다녀온 사이 의사의 말을 듣고 울음을 터트리는 부모님을 보며 소희는 대기실 구석에 몸을 숨기며 눈물을 훔쳤다.
“얼른 일어나란 말이야.”
훌쩍.
너무나 무기력한 현실. 3일이란 시간 동안 도경이 무사히 깨어나기를 소희는 하늘에 향해 간절히 빌며 속으로 자신의 오빠의 이름을 애타게 부른다.
* * *
―『일어나. 이 바보 오빠!』
움찔.
“소희?”
머릿속에 들려오는 하나의 목소리. 도경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거리며 목소리 주인의 이름을 불렀다.
“으음, 무슨 일이야?”
“아. 여동생의 목소리가 들린 듯싶어서……. 잘못 들었나 봐. 나 때문에 깬 거야? 미안.”
새하얀 침대. 이불을 뒤덮고 곤히 자고 있던 시아가 자신 때문에 깬 듯 하자. 도경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잠자리가 예민한 그녀는 한 번 깨면 다시 잠에 못 드는 것을 아는 까닭이었다.
“으응. 아니야. 어차피 조금 깨어있어서 곧 일어나려 했어.”
“웬일이야? 오늘은 일찍 일어났잖아?”
“그런가…….”
“응. 보통이면 내가 깨워야 일어났잖아. 뭐, 잘됐네. 마침 아침 식사가 다 준비됐거든.”
자신의 몸을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내고 기지개를 피는 시아의 모습에 도경이 웃음 지으며 자신이 요리하고 있던 음식들을 그릇에 담아가 침대 위에 가져 놓자. 시아는 익숙하다는 듯 도경이 가져다준 시기를 건네받아 그가 만들어준 아침을 식사하기 시작한다.
“맛있어?”
“응. 이번 것도 맛있네.”
우물우물.
부드럽고 달콤한 프렌치토스트와 싱싱한 과일. 그리고 그녀가 좋아하는 딸기우유를 같이건넨 도경은 시아가 식사하는 모습을 행복하게 바라보았다. 잠에서 덜 깨 반쯤 눈이 감긴 상태로 자신이 만든 식사를 맛있게 먹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 귀였고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다.
“더 먹고 싶으면 말해. 금방 만드니까.”
“됐거든……. 누굴 돼지로 알아?”
“뭐야? 오늘 컨디션 안 좋아? 원래라면 3접시는 먹잖아.”
그 물음에 시아는 식기를 접시 위에 내려놓고 도경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물음을 던졌다.
“카일. 너 이곳에 나와 있는 거 행복해…?”
도경이 시아의 심상 세계에 머문 지 한 달이 되어간다. 처음에는 지구에서 도경의 여자관계 때문에 삐걱거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서로의 감정에 솔직히 따르며 이곳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시아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도경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연히 행복하지. 이곳은 우리가 꿈꿔왔던 장소잖아? 아무런 방해 없이 둘이서 평화롭게 오순도순 살 수 있는 곳 말이야. 행복하지 않을 리가 있나.”
“그렇지……. 하지만 도경 넌 이곳에 있으면 안 돼.”
“뭐야? 갑자기 왜 그런 소리를 해?”
“애써 모른 척하지 마. 너를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 들었잖아.”
“……!”
전쟁통에 만나서 사랑을 꽃피우고 죽음으로 헤어졌던 두 사람에게는 이곳은 꿈만 같았던 낙원이었다. 아름다운 호수가 펼쳐져 있는 경치 속에 조용히 녹아 들어있는 아늑하고 따스한 나무 오두막. 게다가 사랑하는 연인까지. 여기서 행복하지 않는다면 어디서 행복해할 수 있는단 말인가?
평소와 다른 시아의 행동에 도경이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었지만 이내 이어지는 시아의 말에 자신의 불안감의 출처가 어딘지 깨닫고 말았다.
“떠나야 할 때야. 카일. 도경으로서 말이야……!”
“시아…….”
“그런 표정 짓지 마.”
시아의 말에 도경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또다시 이별해야 한다는 그녀의 말에 부정하고 싶지만,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을 기점으로 자신의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들에 도경은 그녀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험난한 여정이 될 거야. 그러니 내 이야기를 잘 들어……!”
“……!”
자신의 이름을 나지막이 부르며 아무 말 하지 못하는 도경을 이해한다는 듯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끌어안아 토닥여주는 시아. 그녀는 도경의 귓가에 마녀로서 자신만이 아는 조언을 건네기 시작했다.
* * *
“그럼 가볼게……. 시아.”
“응. 잘가.”
“…….”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미루지 않고 작별을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다. 너무 서두른 게 아닌가 싶었지만 두 사람은 잘 알고 있었다. 미루면 미룰수록 서로가 너무나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금 서로가 교환하는 애틋한 눈빛을 보면 그 둘이 얼마나 갈등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시아. 미안해. 네 옆에 쭉 있어 주기로 약속했는데…….”
“됐어. 인기 많은 남자를 연인으로 둔 내 잘못 아니겠어? 신경 쓰지 마.”
“하하하. 그래…….”
퉁명스러우면서도 씩씩한 대답이었지만 그녀가 얼마나 속으로 슬퍼하는지 알고 있기에 도경은 그저 쓴웃음 내뱉으며 미안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후우…….”
드륵.
끼이익.
다음의 여정을 위해 오두막의 닫혀 있는 문고리에 손을 올린 도경은 심호흡을 뱉으며 천천히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러나는 미지의 풍경.
휘이잉―.
“…….”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가 도사리는 꺼림칙한 문 너머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는 도경. 앞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했지만,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지 머뭇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시아를 바라본다.
“시아 나는……!”
“에잇! 속 터지게 하지 말고 어서 가!”
도경은 망설이고 있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장소를 걷는다는 게 두려워서가 아니라 이대로 연인인 시아를 두고 떠나도 되나 하는 망설임 때문이었다. 그것을 알았는지 시아는 갑갑한 표정을 지으며 도경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손을 뻗어 힘차게 밀었다.
툭!
“뭣?”
문밖으로 밀려난 도경은 놀란 표정으로 시아를 바라보고 시아는 그런 도경을 향해 혀를 내밀며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었다.
“멍청아! 망설이지 마. 우유부단한 남자는 매력 없어!”
“시아 너……!”
휘이익! 쿵!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지만, 그녀의 두 눈에 맺힌 눈물방울을 발견한 도경은 그녀의 이름을 애타게 불러보지만, 문을 넘음과 동시에 자신을 덮치는 짙은 안개에 휘말려 도경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아아……. 가버렸네.”
주르륵.
”정말 마녀 체면이 말이 아니라니까. 세상에 이렇게 물렁한 마녀는 나밖에 없을 거야.”
오두막에 홀로 남은 시아는 도경을 떠나보내며 결국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바보 같았다. 원한다면 그를 붙잡고 천년만년 이곳에서 행복하게 시간을 보낼 수도 있으련만 그녀는 도경을 위해 그 행복을 포기하는 선택을 택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행복해야 해 카일…….”
우웅우웅.
도경에게 남기는 마지막 저주. 그렇게 도경의 행복을 기원하며 시아는 눈을 감으며 자신의 몸에서 새어 나오는 따스한 빛에 눈을 감으며 몸을 맡기었다.
번쩍.
오두막에서 강렬한 빛이 터져 나오고 그렇게 【므두셀라】의 수많은 심상 세계 중 하나가 찬찬히 허물어져 간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