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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명군이 되다-1화 (1/380)

인조, 명군이 되다 1화

새벽 두 시 반.

모니터 가장자리의 시계가 시각을 알렸다.

음, 시간 잘 가네.

금요일 밤이라고 불타오르는 건 인싸들 이야기지.

나 같은 놈은 주말을 믿고 밤을 조지는 게 유일한 낙이다.

그래 봐야, 한다는 건 게임이나 동영상 시청. 아니면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무수한 뻘글을 정독하는 정도지만 심심하다고 느낀 적은 없다.

시간 잘 가더라고.

그리고, 모니터만 들여다보는 건 아니다.

나는 이 새벽에 커피까지 마시면서 밤을 새우고 있다. 평일에는 엄두조차 내지 못할 짓거리지. 하지만 머릿속에서 졸음과 카페인이 싸우는 이 알딸딸한 느낌은 국가가 허용한 유일한 마약이지.

“하, 이놈 X나 던지네.”

모 만화에서 나오는 철학 선생님이 있으시다. 그분의 어록이 참 유명하지.

뭐라더라, 인간이 다섯 명 모이면 쓰레기가 하나쯤 있다던가?

오늘도 철학 선생님은 1승을 적립하셨다. 불패야, 아주.

버릇처럼 엔터키를 쳤다가, 타이핑은 못 하고 다시 엔터키를 쳤다.

예전 같았으면 손가락 끝으로 트롤의 사지를 아주 찢어버렸을 텐데…….

요즘은 다 죽었지.

다음은 영구 차단이라 후달려서는 아니다.

절대.

트롤이 망쳐놓은 판이라 적당히 힘 빼고 하다가 서렌을 던졌다.

오늘도 파란색 보석은 어김없이 터지는군.

그런데 파란색 보석이 터지면서 빨간색으로 패배가 뜨는 건 좀 안 맞지 않나?

아니면 말고.

알트탭으로 커뮤니티 창을 띄우니 메인에 눈길 끄는 제목이 있었다.

[선조가 인조보다 더 위인 이유]

역덕은 지나칠 수 없는 제목이네.

안 눌러볼 수가 없잖아?

딸깍, 클릭과 함께 글 제목이 물들면서 화면이 달라졌다. 그리고 펼쳐지는 내용.

1. 선조는 도성을 한 번 버렸는데 인조는 세 번이나 버렸음

2. 선조는 도망이라도 잘 쳤는데 인조는 붙잡혀서 대가리 박음

3. 선조는 아들을 미치게 했는데 인조는 아예 죽여 버림 ㅋㅋㅋ

“……다 아는 이야기구먼.”

내용 자체는 뻔했던지라 실소조차 나오지 않았다. 뭐, 이런 글은 원래 본문보다 댓글이 진국이지.

드래그를 내리니 무수한 추천 수 아래로 성토가 이어졌다.

-런조가 많이 까여서 글치 인조가 더 쓰레기야

┗ㄹㅇ 인조랑 떠서 이기려면 고종쯤은 데려와야 함

┗런도못한조 vs 황국신민 ㅋㅋㅋ

┗이런 새끼들이... 왕?

-인조가 아들 죽였다고? 소현세자 독살설 믿는 놈 아직도 있냐

┗직접 죽인 것만 아니지 죽게 내버려 둔 건 맞지 않나?

┗기록이나 찾아보고 말해라

┗소현세자 죽기 무섭게 며느리랑 손자들 담가 버린 놈이 누구? 원래 세자 골골대기 전부터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게 인조였다.

┗어쨌거나 인조가 직접 소현세자 죽인 건 아니다

-인조반정 명분 두 가지. 아버지를 독살하고 형과 아우를 죽였으며 어머니를 폐했다. 임진년에 조선을 구한 명나라를 배신하고 오랑캐에 투항했다. 그래서 인조는 가족도 안 죽이고 오랑캐에 투항도 안 했죠?

┗ㄹㅇㅋㅋ 절대 투항 안 했죠?

┗인조가 죽인 건 형도, 아우도, 애미도 아니었고 대청제국은 오랑캐 후금이랑은 다른데?

┗이게 맞지 어떻게 대중화의 적통 다이칭 구룬이 오랑캐냐

┗자는 또 낳으면 된다고 ㅋㅋㅋ

┗나라의 존속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투항한 거지. 왕이 끝까지 싸우다 죽으면 결과가 달라지냐?

막 올라온 글인데도 댓글이 2페이지를 향하고 있었다.

그만큼 인조 혐오가 짙다는 거다. 솔직히, 역사를 배웠다면 인조 혐오할 수밖에 없지.

오죽하면 삼전도비에 스프레이 테러까지 벌어졌겠냐고.

“인조도 자기가 이렇게 욕먹을 줄은 몰랐을 거야.”

알았으면 대가리 안 박았으려나?

인조가 좀생이에다 소인배라서 알았어도 박았을 거다.

반정 일으키면서 떠벌린 말이 있는데 설마 항복하면서 나중에 말이 안 나올 줄 몰랐을까. 알고서 박았지.

다음 댓글 페이지를 누르니 그새 3페이지까지 쌓인 채였다. 화력 진짜 강하구나, 감탄하면서 계속 읽어가니 한 놈이 필사적으로 인조 쉴드를 치고 있었다.

┗아는 거 하나도 없으면서 댓글 다는 놈들이 왜 이렇게 많냐?

┗인조 치세가 광해군보다 백 배는 나았지

┗인조한테 당해본 적도 없으면서

대강 이런 내용의 대댓글이 댓글마다 달려 있었다.

3페이지 내내.

“미친놈인가.”

만연한 인혐 속에서 인조 쉴더는 고독한 싸움을 이어갔다. 거기에 말려든 사람들도 대댓글을 난사하면서, 이제는 타는 냄새를 맡고 난입한 어그로까지 섞여 댓글란은 광란의 현장이 되어갔다.

-인조 X신인 거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필사적으로 실드치는 놈 하나 있네 ㅋㅋ

┗사료 한번 안 들춰보고 억까하는 쪽이 더 X신이지

┗필사적인 거 보니 본인인가봄

-쉴더야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사료 보면 광해군보다는 낫더라?

┗ㅇㅇ

┗광해군이 똥 묻은 개라고 겨 묻은 개는 욕 먹지 말아야 함?

┗여기는 왜 댓글 안 달리냐 ㅋㅋㅋㅋ

┗또 ‘런’ 했네 ㅋㅋ

옛날 생각이 나기도 해서, 재미있게 구경하고 있으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조 쉴더는 진지하게 인조를 옹호하는 걸까, 아니면 그런 캐릭터를 가장해 불을 붙인 걸까?

전자가 대단히 미친놈이라면 후자는 대단한 어그로다. 인조에 대한 평가야 너무 뻔한데 다구리까지 맞아가며 불을 지폈으니까. 이상하게도 커뮤니티에는 다 이런 놈이 하나씩은 있더라고.

철학 선생님이 여기서도 승리하나?

그런데 그렇게 불 지펴도 동조할 사람이 없으면 본인만 피곤하지 않을까.

어쩌면 처맞는 게 좋은 마조히스트일지도 모르겠다.

정상인인 내가 어떻게 어그로의 사고방식을 알겠느냐만…….

역덕의 심장이라 호기심은 동했다.

어쩌면 전자일 수도 있잖아?

진짜 미친놈이라서 진지하게 인조를 옹호하는 거지.

어그로는 항상 많지만 진짜로 미친놈은 잘 없는데, 그런 거라면 무슨 발상인지 궁금했다.

-인조 쉴드 혹시 인조 환생이야?

오래간만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겼다.

어그로가 아니라면 인조 본인이 아니고서야 이렇게까지 진지할 수는 없을 것 같거든.

반응은 금방 달렸다.

┗킹능성있다

┗이거였네

┗실제 역사를 말하는 거랑 환생이랑 무슨 상관이냐?

┗진짜냐고 ㅋㅋ

싸움판에 끼어든 건 내가 막차였는지 새 댓글은 더 달리지 않았다. 그 탓인지 인조 환생은 내게 대댓글을 더 달았다.

┗개나 소나 인조라고 불러대는데 못 배워먹은 티 좀 내지 마라. 왕의 묘호를 자나 호도 아니고 막 부르는 게 말이 되냐?

┗인조대왕이 맞지.

┗그리고 정축년에 어쩔 수 없이 성에서 내려온 게 그렇게 잘못한 일인가? 광해군이었으면 아예 남한산성까지 가지도 못했을 텐데

┗광해군이 계해반정 때 도망 못 간 것도 고변 들어왔는데 기생 끼고 술이나 처먹고 있어서였으니까

정축하성丁丑下城, 계해반정癸亥反正…….

삼전도의 굴욕과 인조반정의 다른 이름이다. 요즘 시대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단어들.

환생의 재현도가 놀라웠다.

내가 인조고, 인조가 나인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른 건가?

잘 배워놓고 이 지경이라면 진짜 정신이 단단히 나갔다는 뜻이다.

이따금 역사를 파다가 음모론 따위에 너무 심취해서 사문난적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아마 이런 쪽이 아닐까.

무협으로 치면 마공을 파다가 주화입마에 빠진 격이지.

인조 빙의면 진짜 입마入魔네?

이런 건 정신이 들 때까지 패주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어르신들도 기계가 맛이 가면 다 때려서 해결하지 않았나. 그거랑 비슷하다.

-다 떠나서, 인조는 광해군이 오랑캐이자 명나라의 원수인 후금과 통교하고, 윤리강상을 위반했다는 명분으로 반정을 일으켰잖아? 정작 그 명분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인조는 자신이 찬탈자에 불과했다는 걸 스스로 입증했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냐?

잠시 기다리니 인조 빙의가 대댓글을 달았다.

┗본인도 알고 있었겠지. 그런데 신하들이 너무 무능해서 오명을 쓰게 된 거다.

인조 빙의의 댓글이 더 이어졌다.

┗세자가 죽은 뒤에 족보를 정리한 건 다음에 왕이 될 봉림대군 앞길 치워준 것뿐이고

┗새파란 왕손들 살려둬서 굳이 분쟁 거리 남길 필요도 없고, 그런 사리분간 못 하는 꼬맹이를 혼란한 시대에 왕으로 만든다는 게 오히려 위험하지

나름대로 이유는 내세웠다만, 변명으로밖에 안 보인다.

┗결국 명분 지키지 못한 건 인정 안 하고, 전부 남 탓에 사정 탓이네. 진짜로 인조 환생이냐?

┗병자호란 때는 손 놓고 구경만 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청나라 앞잡이가 된 김자점을 영의정으로 만들어준 놈이 누군데?

당연히 인조다.

┗나라 살리려고 발 빠르게 뛰어다닌 최명길이 모함받으니까 칼같이 삭탈관직한 놈이 누구고?

이것도 당연히 인조다.

┗왕이 그따위 인선을 보여주는데 신하들이 안 무능하겠냐? 안 무능하면 오히려 이상하지. 인조는 신하 탓할 자격 없어.

┗세자 가족 말살해 버린 게 냉정한 판단이었다면 애초에 청나라부터 크기 전에 냉정하게 상대했어야지. 오랑캐라고 얕잡아보고 단교하고 배 째다가 원산폭격이나 박을 게 아니라

그리고 이것만 문제였던 게 아니다.

┗인조가 명분만 못 지켰냐? 내정을 잘한 것도 아니고 외교까지 개판 쳐놨잖아. 내치와 외치를 동시에 말아먹은 건데 그러고도 욕 안 먹으면 그게 더 신기한 일 아닌가?

┗자연스럽게 된 왕이라도 못하면 욕먹는 게 보통인데, 거창한 명분 내세우고 반란 일으켜서 찬탈한 놈이 무능했으니까 더 욕을 먹는 거야. 그게 불만이면 무능한 놈이 반란 일으켰으면 안 됐지

두두두두 키보드를 두드렸더니 귀가 다 따가웠다.

남들 다 자는 시간에 자연 발화나 일으키다니…….

민망해져서 키보드를 밀어내고 숨을 돌렸다. 반응을 확인하니 그새 답댓이 여럿 달려 있었다.

인조 빙의는 아니었다.

┗무호흡 딜링보소 숨은 쉬면서 때려라

┗사학과 출신이냐?

┗인조야 와서 반박해라

┗댓글 안 다네 ㅋㅋ

┗도망감 ㅋㅋㅋ

┗인조 4번째 RUN 신기록 갱신

다들 댓글은 안 달고 구경만 하고 있었군.

인조 빙의는 정말로 도망갔는지 답댓글이 달리지 않아서, 마지막으로 한 대만 더 때리기로 했다.

┗애초에 인조는 청나라랑 날 세우고 싶지도 않았을 거야. 그냥 왕 노릇 한번 해보고 싶었을 뿐인데 신하들이 너무 진지하게 받아준 거지. 안 그랬으면 자존심 상하게 대가리 박는 일도 없었을 텐데. 그걸 이해 못 해주는 세상이 나쁘다. 그치?

이미 도망간 뒤에 이런 소리 해봐야 무슨 소용이겠냐만, 녀석이 워낙 진심이어서 말이지.

나도 모르게 진심을 발휘하고 말았다.

그래도 막상 저지르고 나니 결과물이 한심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키보드를 휘두르는 시절은 다 지나갔다고 생각했건만.

마음은 아직도 청춘이다, 이거지.

“쯧……. 새벽에 무슨 짓이냐.”

아침이 되면 더 시끄러워질지도 모르겠다. 새벽인 지금도 이 정도 화력이니까.

┗내가 인조였으면 울부짖으면서 뛰어내렸다 ㅋㅋㅋㅋㅋ

┗아까 그놈 이거는 보고 갔으면

┗얘가 인조 시대에 있었어야 했는데 ㅈㄴ 아쉽너

┗능양군 인성 생각하면 일침 맞았다고 부끄러워하는 게 아니라 면상 시뻘개져서 사지 찢으려고 들걸? ㅋㅋㅋ

┗쉴더도 지금 쒸익쒸익하고 있을 듯

……역시 아침 되면 난장판이 벌어지겠군.

지울까, 고민하는데 새로운 답댓 알림이 떴다.

인조 빙의였다. 도망간 줄 알았는데.

┗당대의 걸이나 주라도 이런 모욕은 받지 않았을 거다. 아무리 내가 실정을 했다지만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거늘 이런 식으로 욕보이다니?

“와…….”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내가, 라니 이 자식 과몰입 한번 소름 끼치게 하네?”

그새 접신이라도 했나?

┗그게 최선이라면 왕을 하지 말았어야지. 차라리 동네 똥개 한 마리 잡아다가 추대했어도 능양군보다는 잘했을 듯

대화가 통하지 않으니 놀리기라도 할 생각이었다.

┗함부로 지껄이는구나. 너라고 나보다 잘할 것 같으냐?

┗누구를 데려다 놔도 개만도 못한 능양군보다는 잘하겠지. 사람이라면

┗네가 쓴맛을 봐야 알겠구나.

┗능양군 개새끼

더 떠들어봐야 원색적인 말만 오갈 것 같아 도발만 남기고서 커뮤니티 창을 껐다.

그리고 시각을 확인하니 어느새 새벽 네 시.

“아, 미친.”

어그로에 불탔더니 순식간에 시간이 지났다.

“흐아아암! ……어으.”

오밤중에 진을 뺀 탓인지 피곤했다.

그냥 잘까?

이 닦아야 하는데.

화장실까지 가기 귀찮았다.

평소에 잘 닦았으니 한 번은 걸러도 되겠지.

침대에 몸을 날려서 곧장 드러누우니 모니터의 빛에 눈이 부셨다. 내버려 두면 알아서 꺼지겠지…….

* * *

“대감!”

다급한 부름이었다.

그런데 뭐, 대감이라고?

사고할 새도 없이 방문이 왈칵 열렸다. 그리고 들어선 이는 철저하게 무장한 차림의 중늙은이였다.

마치 사극에서나 볼 법한 모습의…….

“아니! 결의한 시간이 다 되었는데 무엇을 지체하십니까? 속히 채비하셔서 나가셔야지요!”

중늙은이가 안고 있던 덩어리를 풀자 차르륵, 마찰음과 함께 원색의 두정갑이 나타났다.

“일어나십시오! 무장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어어…….”

여전히 경황이 없었지만, 일단 일어서려는데 중늙은이는 그마저도 답답하다는 듯 어깨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두 팔을 들게 하고는 갑주를 입혀왔다. 그러면서도 추궁했다.

“밤 2경에 홍제원에서 모이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대감께서 우물쭈물하고 계시면 먼저 모인 의병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정신이 퍼뜩 들었다.

역사를 통틀어, 밤 2경에 홍제원에 모일 일이라곤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인조반정!’

그렇다면 중늙은이가 연신 대감이라 불러대는 나는…….

아니, 어째서?

“당신은 누구고!”

한참 갑주를 입혀주던 중늙은이가 무슨 멍청한 소리냐는 듯 황당한 얼굴로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금세 시선을 거두고는 손을 마저 움직이며 답했다.

“굉입니다, 굉!”

“……구굉?”

“예에! 구굉具宏입니다! 대감의 외숙인 구굉이요! 길은 제가 인도할 터이니, 대감께서는 정신이 들 때까지 말씀을 아끼시는 게 좋겠습니다!”

구굉은 갑옷의 끈을 팡팡 조이고는 내 손목을 잡아챘다.

힘이 워낙 장사였던지라 나는 구굉이 이끄는 대로 끌려 나왔다.

어둠이 내려앉은 마당에는 창검들이 반짝였고, 장정들은 잔뜩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분위기다.

……그래, 인조반정이 일어나기는 하겠지!

그런데 왜 내가 여기 껴 있는 거냐고!

“모두 따라와라!”

사고를 이어갈 여유도 없이 구굉은 일갈과 함께 대문을 나섰고, 말 옆에 서서는 나의 한쪽 허벅지를 붙잡아 올렸다.

“손을 밟는 게 편하시겠습니까?!”

“아, 아니요!”

구굉의 성난 재촉에 서둘러 안장을 끌어당겼다.

정신이 하나도 없지만, 반정 중 능양군이라면 얼을 탈 때가 아니다.

살면서 말을 몰아본 적은 한 번도 없었으나 일단 다리를 안장 너머로 넘기니 구굉이 말고삐를 쥐고서 외쳤다.

“제가 견마牽馬할 터이니 대감께서는 허리만 꼿꼿이 세우고 계십시오! 가자!”

구굉이 앞서 나가자 고삐 쥐어진 말이 다각거리며 따랐다.

고개를 돌리니 무장한 장정들 역시 우르르 쫓아오고 있었다. 무수한 인원이 분주히 이동했으나 소란은 없었다.

거리에는 의도된 침묵이 감돌았다.

오직 개들만이 컹컹 짖으며 이변을 고발할 뿐이었다.

……젠장.

이게 다 뭐야?

악몽이라도 꾸는 건가?

밤공기의 추위나 뺨을 스치는 바람은 빌어먹게도 생생했다.

문득 침대에서 눈을 감기 전 인조에 빙의한 어그로의 답댓이 떠올랐다.

‘너라고 나보다 잘할 것 같으냐?’

능양군 개자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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