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명군이 되다 6화
“말씀 삼가시지요?”
김자점이 정색했다.
자신이 기용한 간신배에게 뒤통수를 맞은 김류는 밤중에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얼굴이 붉어졌지만, 김자점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아직 거사가 끝나지 않았는데, 동지同知께서는 어찌하여 민망한 말씀을 거듭하여 분열을 초래하십니까?”
김류는 기가 찬다는 듯 코웃음 치며 외쳤다.
“간교한 제안으로 대감과 대비마마 사이를 음해하더니 이제는 나의 의도까지 왜곡하는구나! 그러면서 감히 분열을 입에 담느냐?!”
“소인은 단지, 공이 대감의 의문에 답하지 못하셨기에…….”
“놈!”
“……대신 말씀을 올렸을 뿐입니다! 그것이 무슨 잘못이라고 이렇게 핍박을 당해야 합니까?!”
“닥쳐라!”
본디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며 조선식의 의리를 과시했을 두 간신배의 싸움은,
“김 공.”
나의 호명 한 번으로 끝났다.
하지만 김류와 김자점은 조금도 진정하지 못한 채였다.
나를 의식해 입만 닫았을 뿐이지, 여전히 씩씩거리면서 서로를 노려보았으니까.
“두 분께서 많이 흥분하신 모양입니다. 그리고, 함께 거사한 동지에게 간귀라니요.”
말이 심했다는 듯 바라보자, 김류는 한없이 억울한 투로 항변했다.
“하오나, 대감……!”
“안에서 듣겠습니다.”
나는 팔을 뻗어 도총부를 가리켰다.
“여기에서 공의 뜻을 밝혀봐야 분란만 이어지지 않겠습니까? 일단 두 사람의 의견을 차분히 들어보고, 이 사람이 판단하겠습니다.”
내가 완벽하게 주도권을 가지는 그림이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동요한 김류는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다. 여전히 붉어진 얼굴로 김자점만을 노려볼 뿐이었다.
이에 김자점은 팔짱을 낀 채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김류를 향해서.
“소관은 대감의 말씀에 응하겠습니다. 동지사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김류는 흥, 콧방귀를 뀌고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내게 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노기가 쌓이다 못해 응어리진 기색이었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김류가 다시 이곳으로 나왔을 때는 기분이 많이 달라져 있을 거다.
나는 김류를 대동하고서 도총부로 향했다.
그리고 솟을대문의 안쪽으로 들어서자, 김류가 곧장 토로했다.
“대감께서는 정녕 저런 간신배의 헛소리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계시지 않겠지요?”
보는 눈이 없어져서인지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김류였다.
“그러게, 왜 이 사람이 자문을 구할 때 말을 빙빙 돌리셨습니까?”
“이런 자리가 아니고서야 함부로 입을 열었다간 무슨 트집이 잡힐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대감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알지.
오히려 잘 알기 때문에 일부러 모두의 앞에서 물어본 거다.
그래야 이 간신배의 상투를 붙들어 이리저리 끌고 다닐 수 있으니까.
그런 꼴이 되기 싫다고 상황을 복잡하게 만든 건 본인이잖아?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반정의 공신들입니다. 그런데도 공께서는 허심탄회하게 한마디 하지 못할 정도로 제공諸公을 의심하십니까?”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대감께서도 방금 보지 않으셨습니까? 조용히 거사에 동참했다가 일이 거의 성사되자 본색을 드러낸 자 말입니다!”
뻔뻔한 항변이었다.
김자점은 반정 때 관직이 없어서 일개 선비로 참여했음에도, 논공행상 때 일등 공신으로 선발된다.
이전부터 김류 등과 긴밀하게 지냈다는 증거다.
그런데 입 싹 닫고 모르는 척이라니.
“그럼, 지금이라도 가르쳐 주시지요. 대비께서는 상심도 야망도 크신 듯한데, 이 사람이 어떻게 처신해야겠습니까?”
대비가 반정의 명분을 잡고 전횡할 수 있다는 건 이미 이귀가 경고했다.
내가 대비에게 끌려다니지 않으려면 단순히 넓은 마음을 품고 일방적인 효도를 보여주는 것 이상의 방법이 필요했다.
“……으으음!”
김류는 앓는 소리와 함께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마지못해서라는 듯 답했다.
“진솔하게 말씀 올리자면, 대비마마의 월권을 막기 위해서는 자점의 제안을 따르는 것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본의가 아니라는 듯 김류가 곧장 덧붙였다.
“하지만 세간의 평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감께서는 오롯이 대의로 거사를 일으켰는데, 폐주와 마찬가지로 대비를 박대한다면 반드시 뒷말이 나올 것입니다.”
나와 함께 반정을 이끈 김류도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대비마마의 억지를 받아주자는 말입니까?”
“둘 다 하책임은 알지만, 자점의 방식은 당장 안위를 누릴 뿐이지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김류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대감께서 우려하신 상황은 아직 벌어지지 않았잖습니까?”
뭔 개소리야……?
이미 경운궁에서 뻗대고 있다잖아!
이 자식은 자기가 대비를 감당하는 게 아니라고 쉽게 말하고 있다.
대비가 자연사할 때까지 끌려다니라니, 절대로 안 될 말이지.
그랬다간 흑화해서 오리지널 인조처럼 정명공주에게 보복이나 하려 들 게 뻔하다. 나라고 마냥 착한 사람은 아니거든.
“이 사람에게 방책이 있으니, 더 나은 방법이 없다면 도와주세요.”
“……예?”
“공이 낙서洛西에게 한 번만 져 주세요.”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김류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대놓고 면상을 찌푸리는 게, 감정을 숨기지도 못한다.
그만큼 어처구니없다는 거겠지.
“대비를 겁박하자는 말은 낙서가 처음 꺼냈지요? 찬동하는 사람은 하나 없었지만, 그래도 낙서는 이 사람이 보호해 줄 것을 기대하고서 공과 맞섰습니다.”
혼자서만 어그로를 끌었다는 뜻이다.
“……설마.”
“일단 낙서의 방식으로 대비께 협조를 구한 다음에, 뒷말이 나온다면 낙서에게 책임을 물어서 정리합시다.”
김류는 내가 설명을 끝맺기도 전에 이해한 듯했으나, 막상 말을 마친 다음에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이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으십니까?”
“아닙니다.”
“이편이 낙서에게도 이롭습니다. 이 사람의 심려와 대비마마의 울분을 제 한 몸 불살라 다스려 나라와 인군이 당할 해악을 막으니, 이것이 충이 아니고서야 무엇이겠습니까?”
본디 쥐새끼처럼 줄을 이리저리 갈아타며 배신만 거듭했을 김자점이다.
그런 놈에게 이 정도면 과분한 삶이지.
“소관은 충을 행한다는 말은 들어보았어도, 충이 행해졌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제 와서 김자점을 동정하는 김류였다.
그래도 같은 간신배다 이거지?
“나가면 이 사람이 운을 띄울 테니, 공께서는 맞춰주기만 하세요.”
“……알겠습니다.”
도총부를 나서서 다시 반정 패거리가 기다리는 거리로 돌아왔다.
이귀 주변이 어수선했는데, 경운궁을 다녀오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알아본 듯했다.
그럼 앞으로 벌어질 상황도 쉽게 이해하겠지.
그래서 방해하지 않는다면 나야 고마울 따름이다. 나는 길을 터는 반정 인사들을 지나쳐 김자점 앞에 섰다.
“원래 두 분 모두의 의견을 경청하고 결정하고자 했습니다만, 김 공이 먼저 뜻을 굽혀주셨습니다.”
“……?”
김자점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서 김류를 쳐다보았다.
김류는 김자점의 의문을 부정하지 않았다.
크흠, 불편하다는 듯이 짧게 헛기침하고 말 뿐이다.
그것이 긍정으로 해석된 걸까.
“……!”
김자점은 곧바로 기고만장해져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이 김류를 꺾었다고 과시하는 거겠지.
“다들 대책을 강구하지 못할 때 낙서만이 홀로 상책을 고안하셨으니, 공을 세울 기회도 응당 낙서께 돌아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네가 직접 경운궁으로 가서 대비를 협박하라는 소리였다.
김자점은 능청스럽게 겸양했다.
“대감께 미력하게나마 도움이 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망극할 뿐인데 어찌 공을 탐내겠습니까?”
마음에도 없을 소리.
“이 사람이 보답으로 드릴 수 있는 게 기회밖에 없으니 하는 말입니다. 도와주십시오.”
“그래도…….”
“낙서께서 계속 사양하시면, 이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낙서의 공을 빼앗으라 명령해야 합니다. 정녕 나를 악인으로 만들고자 하십니까?”
거절할 수 없는 명분을 만들어주니 그제야 김자점은 마지못해서라는 듯 수긍했다.
“알겠습니다. 대감께서 강권하시니, 소관이 염치 불고하고 명령을 이행하겠습니다.”
그리고 멀어지는 김자점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경쾌했다.
그 길이 꽃길이 아니라 불꽃길이라는 걸 알았다면, 저렇게 즐겁지는 못했을 텐데.
‘제가 좋다니 다행이지.’
나는 주변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만, 계속 밖에 있으려니 춥고 피곤들 하시겠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서 숨 좀 돌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나는 막 나섰던 도총부를 가리켰다.
* * *
인조는 정말 개 같은 놈이다. 이런 놈이 수괴이니 아랫물이라고 수준이 다를 수가 없다.
이제는 내가 인조가 되었지만, 여전히 변함없는 생각이다.
‘이것이야말로 인적인, 능적능. 능양군이 능양군에게 날리는 시원한 일침!’
통쾌한 자기반성을 통해 발전을 이룩하니 이것이 군자의 경지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나?
‘인조 개새끼.’
내가 명백한 진리를 새삼스레 되새기는 동안 도총부의 반정 인사들은 분분하게 논의를 이어갔다.
주제는, 내가 어디서 즉위식을 치를 것이냐?
장소는 당연히 궁궐이겠지만, 광해군이 공사를 남발해 놓은 덕에 후보가 많았다.
먼저 오리지널 인조가 점찍어두었던 창덕궁.
대비가 머무는 경운궁.
공사가 거의 끝난 경덕궁과 인경궁.
그리고 개축되고 있던 자수궁과 존재감이 소실되어 버린 창경궁까지.
‘그런데 다 문제가 있단 말이지?’
창덕궁은, 반정군이 여우를 잡는답시고 호화 캠프파이어로 만들어버렸다.
궁궐에서 가장 상징적인 시설인 인정전이 화마에서 살아남기는 했는데, 그거라도 멀쩡한 게 어디냐, 하고 인정전에서 즉위식을 치른다면 아주 볼 만해질 거다.
집결한 문무백관에게 아직 잔불로 뜨끈뜨끈한 창덕궁의 폐허를 보여주게 될 테니까.
그리고 인정전 뜰에서는 삼창의 목도 베지 않았던가?
내가 폭군 노릇이 하고 싶고, 그래서 이게 니들의 미래란다, 하는 시그널을 보낼 생각이 아니라면 창덕궁은 피하는 게 맞다.
‘그리고 경운궁은 대비가 나를 불러내려 했던 장소지.’
굳이 김자점을 보내서 대비를 불러냈는데 경운궁으로 찾아가서 즉위식을 치르겠다?
대비를 엿 먹이고 싶다면 이쪽이 정답이다.
‘경덕궁과 인경군은 광해군이 민생과 재정을 파탄 내가며 지은 궁궐이고…….’
거기서 즉위식을 치르는 건 안 좋게 보일 수 있었다.
그리고 자수궁은 원래 승하한 왕의 여인들이 노후를 보내던 곳이었다. 새로운 왕이 즉위할 만한 장소는 아니지.
창경궁은 창덕궁의 부속이나 마찬가지고.
‘후보는 많은데 정답이 없어.’
덕분에 반정 인사들의 의견도 치열하게 갈렸다가, 지금은 크게 두 무리로 정리됐다.
먼저 경운궁을 지지하는 쪽.
경운궁은 선조가 임란 후 생활했던 정릉동 행궁을 개축한 곳이고, 대비가 유폐되어 있었던 만큼 아주 상징적이었다.
그리고 인경궁과 경덕궁을 지지하는 쪽.
공사도 거의 끝난 데다, 불탄 창덕궁을 대신할 정궁正宮도 필요하겠다, 둘 중 한 곳에서 즉위식을 치르자는 것이다.
‘각기 명분과 실리를 지향하는군.’
신하들은 각자 가치 판단을 통해 더 중요하게 여기는 쪽을 지지하겠지만…….
나는 명분이나 실리보다 대비를 엿 먹이는 게 끌리는걸?
기껏 협박까지 해서 궐 밖으로 끌어내고는, 경운궁으로 돌아가서 즉위식을 치른다?
‘모욕이고 모독이지.’
대비는 내가 왕위에 오르면 종법상 어머니가 될 사람이다.
하지만 그것을 믿고 설치려는 예비 어머니를, 나는 협박에 이어 똥개 훈련으로 다스리는 거다.
‘이건 절대로 패륜이 아니야.’
장차 내가 독살을 시도할 일이 없도록, 지금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예비 어머니의 기강을 다스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식이 어긋난 길을 간다면 부모로서 엄히 다스릴 필요가 있듯이, 반대로 부모가 어긋난 길을 간다면 자식으로서 엄히 다스려야지 않겠나.
이것이야말로 진짜 효도지.
“경운궁에서 즉위하겠습니다.”
결정을 내리자, 기다렸다는 듯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작은 간신배가 돌아온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