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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명군이 되다-10화 (10/380)

인조, 명군이 되다 10화

대비와의 바람직한 진전이 있었던 뒤.

노을이 찾아왔다.

아침까지는 한산했던 즉조당에 궁인이 몇 명 들어섰다. 그들이 내온 석수라를 받은 뒤에는 경운궁을 나섰다.

오전에 결정된 일정이 있었다.

웅성웅성.

불타 버린 경복궁 앞 육조거리에는 구경꾼이 즐비했다.

병사들은 좌우 길목을 틀어막고서 난입을 방비했고, 중앙에는 봉두난발의 죄인들이 줄지어 있었다.

“나는 죄가 없다!”

“살려만 주십시오!”

“너희들의 천하가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 같으냐?!”

죄인들은 저마다 항변과 애원, 저주와 독설을 토해내며 육조거리를 시끄럽게 만들었다.

궁지에 몰린 이들의 발악이다.

다들 양손이 뒤에 묶인 채로 귀마다 화살이 꿰어 있었다.

사형을 앞둔 자의 행색이다.

“주상 전하 납시오!”

가갈呵喝과 함께 구경꾼들이 새 떼처럼 흩어졌다. 하지만 발은 물러나면서도 시선은 용안을 향했다.

불경이지만 군중에 두려움은 없는 법.

더군다나 이들은 원수 같은 이들의 처형을 앞두고 있었다.

처형을 앞둔 죄인들 모두 광해군 시기에 실세들과 결탁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며, 백성들을 공공연히 핍박한 자들이니까.

“전하.”

영의정 이원익과 다른 두 의정 박홍구와 조정, 반정의 핵심 인물들인 김류와 이귀 등.

반정 때보다 호사스러운 지위에 있는 자들이 나를 맞아주었다.

“명령만 내려주신다면 집행을 시작하겠습니다.”

이원익이 말했다.

그의 역할은 선혜법의 확대와 양전만이 아니었다.

칼자루를 쥔 반정 인사들에게서 북인 잔당의 목숨을 보전하는 것 역시 이원익의 역할이었다.

원래 그가 오래전부터 조정의 봉합을 위해 힘쓴 사람이기도 했고.

하지만 그런 이원익조차 지키지 못한 자들이 있었다.

한찬남韓纘男과 백대형白大珩, 정영국鄭榮國. 박응서朴應犀와 한희길韓希吉. 그리고 정조鄭造, 윤인尹訒, 이위경李偉卿 등.

이이첨 일파의 수족으로서 엉터리였던 봉산옥사를 확대하고 폐모살제에 앞선 공으로 정운공신定運功臣과 형난공신亨難功臣에 녹권된 자들이었다.

반정으로 광해군이 쫓겨나고 이이첨은 죽었으며 대북은 몰락한 현재, 공신 명단은 그대로 살생부가 됐다.

그리고 파계승 성지性智와 방술사 김일룡金馹龍, 명나라에서 도망 온 시문용施文用과 점쟁이 복동福同 등.

이들은 풍수지리와 요술 따위로 폐주에게 접근해 궁궐 공사를 남발하게 만든 자들이었다.

반정의 후폭풍을 줄이려는 나와 이원익조차도 이들은 살려주기 어려웠다.

아니.

오히려, 후폭풍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이들은 신속하게 처형해야 했다. 광해군 시대 내내 혼란만 유발한 자들이다.

“집행하라.”

그 한마디로 충분했다.

“안 돼!”

귀에 화살을 꿰고 얼굴에 분칠을 한 죄인 하나가 상투가 붙잡혀 나왔다.

“살려주시오! 다시는 죄짓고 살지 않겠소! 한 번만 기회를 달란 말이오!”

그는 상투가 고정될 동안 우악스럽게 몸을 비틀면서 발악했지만, 끝내 머리와 목이 분리되어 나뒹굴었다.

“와아아아!”

구경꾼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잘 죽었다며 고소해하는 자도 많았고, 형장에 침과 가래를 뱉으며 원한을 드러내는 자도 많았다.

그동안 다른 사형수들도 제각기 반응을 보이며 하나둘 형장으로 끌려 나왔다.

붉은 노을이 땅에 졌다가 천하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곳곳에 화등잔보다 뜨겁게 타오르던 열기는, 마지막 단두와 함께 식었다.

스산한 돌풍이 비린내로 가득한 형장을 휩쓸었다.

“얼마 죽이지도 않았는데 한나절이 꼬박 지나갔습니다.”

나는 곁에서 공손히 손을 모은 이원익에게 덧붙였다.

“이 짓거리도 두 번은 못 하겠습니다, 영의정.”

북인 계열에서 죽일 만한 자들은 이번에 다 죽었다.

그럼에도 이런 대숙청이 다시 일어난다면, 죄과가 분명치 않음에도 당적만으로 죽는 이가 속출할 테지.

절대로 사양이다.

“염려치 마소서. 죽을 만한 자들은 거의 복주되었으니 이 같은 일이 두 번은 없을 것이옵니다.”

나와 이원익은 멋대로 확언과 약속을 나누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는 북인의 거두로 평가받았던 좌의정 박홍구와 우의정 조정이 표정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그보다 더 먼 곳에서는, 반정 패거리와 서인들이 삼삼오오 이마를 맞댄 채 북인 잔당의 시선을 쫓았다.

이놈들이 서로를 찢어 죽이고 싶어 하는 만큼 후금군이 모두를 찢어 죽일 가능성도 커진다는 걸 알고는 있을까?

아직 갈 길이 멀었다.

* * *

“아버지!”

반가운 인사가 즉조당 뜰을 울렸다.

슬쩍 고개를 들어서 바깥을 보니, 여인과 아이들이 궁인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서고 있었다.

‘……올 게 왔군!’

눈이 질끈 감겼다.

‘능양군의 원래 가족을 어떻게 대해야 하냐?!’

당신들이 원래 알고 있던 능양군은요, 있었는데 없어졌습니다.

마법처럼 사라졌습니다.

나는 원래 400년 후에 살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당신들 가장을 욕하려다가, 이렇게 됐습니다…….

‘……미친놈인가?’

도저히 이실직고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입 꾹 닫고 능양군인 척하더라도 눈치채지 않을까 싶고…….

사실, 이런 걱정은 한참 전부터 해왔다.

하지만 방도가 없는 걸 어떻게 해?

“어휴!”

나는 한숨을 토해내고는 다가오는 가족들을 맞이했다.

물론, 웃는 얼굴로.

스마일. 스마일.

“왔, 크흠. 왔…… 느냐?”

제기랄. 말이 목에 걸려서 겨우 끄집어냈다만 어색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선두의 꼬맹이는 조금도 의아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인사가 무척이나 반가웠는지 말리는 내시도 제치고 내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나는 와락 안겨드는 아이를 끌어안았다.

“아버지!”

반가의 자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맹랑한 이 녀석이…….

못난 인조를 대신해 온갖 수모만을 당하고 죽은 소현세자인가.

마냥 안타깝게만 느껴졌다.

“강녕히 지내셨사옵니까?”

“그래.”

“소자는 아버지를 뵙지 못하는 동안에 잠을 이루지 못했사옵니다!”

“나도 요즘은 잠자리를 뒤척인다.”

아직은 세자가 아닌, 소현세자가 환한 얼굴로 물었다.

“아버지께서도 소자를 보고 싶으셨사옵니까?!”

“……그래.”

“이렇게 소자가 찾아왔으니, 소자도 아버지도 더는 밤에 뒤척이지 않아도 되옵니다!”

“다행이구나.”

팔자에도 없이 생긴 자식이었지만…….

나는 소현세자의 등을 쓸어내렸다.

부왕을 대신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으며, 피랍된 조선인 노예들을 구출했으며, 넓은 세상을 보고 돌아와서는 스스로 우물에 갇혀 사는 부왕과 권신들을 깨우치고자 했던 소현세자다.

하지만 그러한 고생도 무색하게 소현세자는 인조의 끊임없는 의심과 견제를 받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남겨진 세자빈과 자식들은 졸지에 역적이 되어 막내만을 남겨둔 채 사형을 당하고 오지에 버려져 죽으니, 독살설이 퍼지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어떤 원한이 있어서 제 자식에게 그런 짓을 벌일 수 있을까?’

능양군은 인간이 안 됐다는 증거다.

“부자가 함께 우애가 좋으니 보기 좋습니다. 그간 강녕하게 지내셨습니까?”

조금은 냉담한 목소리.

인조의 첫 번째 아내인 인열왕후였다.

도대체 왜 화가 났는지 궁금했지만, 나는 곧바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인열왕후는 갓난아이를 품고 있었다.

새파란 핏덩이 같은 자식을 두고 반정을 꾀했으니, 당연히 부인으로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수밖에 없지…….

‘그런데 반정을 기도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능양군인데.’

팔자에도 없이 생긴 건 소현세자만이 아니었다.

인열왕후도 생겼고, 그녀의 한쪽 손을 붙잡고 있는 봉림대군과 핏덩이 같은 막내 인평대군도 생겼다.

‘……이게 쾌락 없는 책임이란 거로군.’

말로만 들어보았는데 내가 당하는 입장이 될 줄이야.

“자, 잘못했습니다?”

조심스럽게 사과하니 인열왕후는 기가 찬다는 듯 웃었다. 그러면서도 하는 말만은 공손했다.

“지아비가 나아가면 부인은 쫓아갈 뿐이지요. 무슨 바람으로 사과까지 하십니까?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말과는 다르게 목소리는 여전히 냉담해서 그렇지.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더니 나는 억울하게도 그 유탄을 맞았다.

반란을 일으킨 건 내가 아니라 능양군이라니까?

……지금은 내가 능양군이긴 한데.

이거 참,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고…….

“크흠.”

나는 괜히 헛기침 한 번 해주고는 인열왕후와 자식들을 안내해 준 궁인을 쳐다보았다.

‘빨리 딴 데 어디든지 보내 봐!’

‘……?’

‘다른 곳으로 보내라고!’

열심히 눈알을 굴리며 신호를 보냈지만, 궁인은 어색하게 웃기만 할 뿐이었다.

‘어떻게 이런 놈이 궁궐에서 일하고 있을 수 있지? 반정 패거리가 심어놓은 첩자인가?’

그런 합리적인 생각마저 들 무렵.

인열왕후가 입을 열었다.

“궁궐의 다른 곳도 둘러보고 싶네만.”

“아아, 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눈치라곤 쥐뿔 없는 첩자는 그제야 싱글벙글 웃으면서 발을 돌렸고, 인열왕후는 나를 쓰윽 흘겨보고는 소현세자에게 말했다.

“네 아버지는 그만 괴롭히고, 이 어미와 함께 궁궐부터 마저 둘러보자꾸나.”

“알겠습니다, 어머니.”

소현세자는 내키지는 않는 듯 처진 목소리로 답하면서도, 나를 안은 팔을 풀었다.

아이를 천천히 내려놓으니 소현세자는 공손히 손을 모은 채로 꾸벅 허리를 숙였다.

“다시 인사드리러 오겠습니다. 아버지!”

“그래……. 천천히 둘러보거라.”

“예!”

소현세자는 미련을 두지 않았다. 녀석은 앞서 돌아선 인열왕후를 쫓아 달려갔다.

하늘이 참 맑고 높았다.

진이 다 빠지는군.

그래도 생각했던 것보다는 기분이 괜찮았다. 역시 호란은 막아내야 했다.

* * *

이원익은 청나라를 이기기 위한 비결로 세 가지를 말했다.

인재, 부국, 강병이다.

앞선 두 가지는 진전이 있었다.

이원익을 영입해서 양전과 선혜법의 확대를 주문했으니까.

더 많은 인재를 기용하고 검증된 정책들을 시행할 필요가 있지만, 모든 일은 원래 한 걸음부터다.

문제는 강병을 어떻게 실현하냐는 것이지.

‘조총의 확대 도입이나 신무기 개발도 좋지만, 쌍령에서 벌어진 전투는 무기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증거지.’

훈련이 부족했던 속오군束伍軍이 청군이 채 접근하기도 전에 화약을 소모한 것이 패인이었으니까.

알려진 것과 달리 일방적인 패배는 아니었다지만…….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면 고칠 부분은 고쳐야 한다.

‘상비군을 두고 직업 군인을 양성해야 하나?’

그러면 훈련 수준이 높은 강군을 만들 수 있겠지만, 부국이 전제되지 않은 채라면 북조선이 600년 전부터 정통성을 갖추는 수가 있다.

예산의 효율적인 집행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은 민생도 국가 재정도 박살이 난지라…….

‘아이고 머리야.’

그래서 전문가를 불렀다.

“인사드리옵나이다, 전하.”

“인사드리옵나이다.”

한명련과 정충신이 순서대로 허리를 숙였다.

각기 북방에서 순변사巡邊使와 첨절제사僉節制使를 지내고 있던 사람들로, 내가 얼마 전 고취를 제물로 바쳐 소환했다.

두 사람 모두 천민 출신임에도 지금의 위치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재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원래 역사에서는 이괄의 난에 연루되어 반역자로 의심받지.’

그 결과 한 사람은 진짜로 반역자가 되었고, 죽음을 맞이했다.

‘한명련…….’

이후 그의 아들 한윤韓潤은 후금으로 건너가 길잡이를 자처하여 영웅인 제 아버지를 배신한 조선과 인조를 처단하고자 했다.

정묘호란이 발발한 결정적인 계기였다.

내가 있으니 달라질 역사지.

어쨌거나, 두 사람은 본디 광해군 때 임명되어 그동안 북방에서 직을 지내왔다.

소식은 들었어도 이렇게 두 눈으로 용상의 주인이 바뀐 것을 확인하고서 많이 놀랐겠지만, 굳이 해명이 필요한 부분도 아니고 지금 주제와도 다르다.

“가타부타하지 않고 본론부터 꺼내겠습니다. 요동을 차지한 노적의 기세가 조금도 꺾이지 않고 산해관마저 위협하고 있는데, 자칫 그들이 산해관을 넘지 못한다면 일단 아조의 강토부터 침범하려 들까 우려스럽습니다.”

한명련과 정충신이 짧게 눈을 맞췄다.

“여러 장수 중에서 가장 유능한 그대들에게 북방의 전략을 자문하고자 하니, 내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면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한명련은 양보하겠다는 듯이 정충신에게 고개를 돌렸다.

순변사로서 국경 안쪽만을 순찰하던 본인과 달리, 정충신은 직접 누르하치를 접견하기 위해 입국까지 한 적이 있어서겠지.

정충신은 사양하지 않고 말했다.

“신이 수해 전에 여진의 진영에 다녀와서 파악하기를, 저들의 병사에는 8부部가 있는데 25초哨가 1부이며, 400인이 1초입니다.”

“8만의 군세가 있다는 뜻이군요.”

“전투병의 편제가 그러하옵고, 부마다 2천 명 정도가 더 붙어서 대략 9만 6천여 명쯤 되옵니다.”

과장 더해서 10만 대군이로군.

여기에 한명련이 덧붙였다.

“지금 가장 부족한 것은 군사이옵니다. 임진년 때 많은 사람이 상한 마당에, 일전에는 2만 여에 달하는 군사가 명나라로 갔다가 패하고 말았으니, 바야흐로 국경에도 사람이 부족하여 위태로운 지경이 되었습니다.”

명나라로 갔다는 건 사르후 전투를 말하는 거겠지.

인조반정이 있기 고작 수 해 전, 광해군은 강홍립姜弘立을 도원수로 삼아 누르하치를 치려는 명군을 돕게 했다.

하지만 본대인 9만의 명군이 따로 움직이다 각개격파를 당해 버리는 바람에, 조선군은 명군에 합류하지 못하고 후금군과 단독으로 교전하다 대패하고 말았다.

“사람 자체가 부족하다면, 어떻게 군사를 징발할 수 있겠습니까?”

“왜란이 너무 참혹했던 관계로 백성들은 군역을 지게 되면 무조건 죽는 것으로 아니, 다들 빚을 져서라도 장수들에게 쌀과 베를 바치고 군역에서 빠지고자 하옵니다.”

소위 방군수포放軍收布라는 폐단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문제가 있어서 중종 말년에 양성화했지만, 군역을 지지 않고 군포만 바치는 납포군納布軍만 양산됐다.

거기에 오늘날에는 제도마저 문란해져 지방관이 베를 받고 풀어주는 일도 잦아졌다.

그러니 한명련의 의도는 이를 원천적으로 금지해 버리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방군수포를 금한다면 군사의 숫자는 늘어날지도 모르겠으나, 과연 지방관들이 엄중하게 이행할지 모르겠습니다.”

말단에서 방군수포가 자행되는 이유는 지방군에 대한 감독권이 현지 지휘관에게 귀속되어 부패에 취약한 탓도 있지만, 그만큼 지방군의 재정이 극악한 탓도 컸다.

오죽하면 병마절도사나 수군절도사마저 방군수포하여 거둔 쌀이 아니고서야 먹을 식량이 없다는 말까지 나올까?

이런 마당에 무작정 방군수포를 금지해 봐야 비웃음만 듣고 말 뿐이다.

이에 정충신이 제안했다.

“납포를 증액하여 각 군영의 재정과 지방관의 급료로 삼게 하고, 입번入番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엄중히 분간하여 올리도록 한다면 지방관이 재물을 도용하는 일을 방지하고 군사도 늘릴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게 무슨 말이요!”

한응인이 즉각 반발했다.

“거두어들인 군포를 급료로 삼게 한다면 지방관들이 방군수포를 권장하고, 나아가서 강제할 우려가 있소!”

“그런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방군수포는 만연하지 않습니까?”

“……!”

한명련은 부정하지 못하고 헛기침했다.

그러나 정충신의 방식을 지지할 수는 없다는 듯, 이내 고개를 저었다.

“사람이 한없이 부족한 이때 방군수포를 엄금하기는커녕 도리어 권장해서야 군사는 절대 늘어날 수 없소이다.”

그러나 금지하여서 통제될 경우와 통제되지 않는 경우는 다르다.

‘때려잡으려면 변명거리는 안 줘야 하는데 방군수포 없이는 밥도 못 먹는다는 소리가 나올 지경이라면…….’

한명련의 주장처럼 무작정 금한다고 금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만약 내게 주어진 시간이 많았다면 차분히 폐단을 시정하여서 순변사의 주장을 따랐겠지만, 지금은 언제 달병㺚兵이 강을 건널지 모르니 차선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두 사람이 허리를 숙였다.

“그러나 순변사의 지적을 간과할 수는 없지요. 첨사의 제안대로 방군수포를 개정했을 때의 부작용이 얼마나 발생할지는 누구도 알 수 없으니, 일단 순변사와 첨사가 뭇 장수와 군졸들의 인심을 파악하여 올려주셨으면 합니다.”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북방에 있던 사람이 부름을 받고는 한양에 와서 제도 개정에 대해 민심을 파악하려 든다면 무척 수상하게 보이겠지만…….

그건 알아서들 할 일이지.

설령 말이 새어서 공론화가 일더라도 여론 취합 면에서는 나쁠 게 없었다.

“방군수포가 이토록 문란해진 데는 지방군의 재정이 이토록 악화할 때까지 방관한 중앙의 책임도 큽니다. 나 역시 재정을 정비하고자 힘쓰는 중이니, 믿고 함께해 주세요.”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한명련에 이어 정충신도 허리를 숙이며 답했다.

“미욱한 장수들을 이토록 중용해 주시니, 반드시 이 망극한 성은에 부응하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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