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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명군이 되다-24화 (24/380)

인조, 명군이 되다 24화

훗날 경희궁慶熙宮으로 개칭되는 경덕궁慶德宮은, 인조와도 인연이 있는 궐이다.

궐이 세워진 터가 본디 부친 정원군의 사택이 있던 자리였으니까.

그래서인지, 인조는 광해군 때 세워진 궁궐은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에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정작 본인은 경희궁보다 전소된 창덕궁에 더 애착을 가졌음에도 말이다.

‘아깝기는 해.’

정말로 잘 지어놨으니까.

백성들의 고혈로 쌓아 올렸다지만, 이런 궁궐을 써먹지도 못하고 없애버리기는 아깝다.

나는 동행한 신하들을 향해 말했다.

“오히려 무수한 고혈이 들어갔기 때문에라도, 알뜰하게 이용해야지 않겠습니까?”

신하들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내가 경덕궁을 방문한 이유는 이곳을 세자 책봉식 장소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신하들은 경덕궁에 찍힌 낙인을 들어 반대했지만, 이유가 그것만은 아니었다.

“이곳 경희궁은 현존하는 궁궐 중에서 가장 클 뿐만 아니라, 인경궁과도 연결되어 그 규모가 실로 방대하옵니다.”

이마저도 함께 연결된 자수궁은 용도 때문에 제외하고서 말한 것이었다.

궁궐의 여인들이 노후를 보내는 장소니까.

“하온데 전하께서는 경운궁에 기거하시면서, 장차 세자가 될 원자에게는 방대한 궁전을 맡기신다면, 원자에게 부담이 크지 않겠사옵니까?”

경운궁은 본디 선조가 동궐東闕로 일컬어지는 창덕궁-창경궁을 재건할 때까지 임시로 사용했던 궁궐.

임시라는 용도에 걸맞게, 서궐西闕로 일컬어지는 경덕궁-인경궁과 비교하면 한없이 초라했다.

그것이 신하들이 보기엔 사리에 맞지 않았다.

세자는 본디 동궁東宮이라고도 불린다. 왕이 기거하는 궁궐의 동쪽 영역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한데 경운궁을 아득히 능가하는 서궐을 세자가 몰염치하게 전용해도 된다는 말인가?

“내가 이곳에 들어와서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가렴주구의 낙인이 찍힌 궁궐이다.

“폐주가 실정한 책임을 물어 그를 쫓아내고 왕위에 올랐는데…… 내가 들어사는 건 사리에 맞지 않지요.”

반정의 명분을 돌아보지 않고 한 몸의 편의만 생각한다면 오리지널 인조가 그랬듯 찬탈자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렇다고 궁궐을 무너뜨린다면 백성들의 고통을 무위로 돌리는 셈이에요.”

“하오나, 어떤 백성들은 이 궁궐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울 것이옵니다.”

“세자가 장성하여 즉위할 즈음에는 아니게 될 수도 있지요.”

이곳을 책봉례 장소로 선정한 이유였다.

낙인이 있다고 파괴하거나 금지禁地로 둘 게 아니라, 미리 약을 쳐놔야 나중에 접수하기 쉬웠다.

“물론, 진통은 있겠지요.”

서궐을 파괴하지 않고 이용하는 게 옳냐는 지적이나, 지금처럼 세자가 왕을 제치고 방대한 궁궐을 차지해도 되느냐는 의문 등.

“하지만 내가 이 진통을 감수해야 서궐을 보전하고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애꿎은 백성들만 다시 고생하게 되겠지요?”

오리지널 인조는 이 같은 각오가 없었기 때문에 멀쩡한 서궐을 두고 반정 때 전소한 창덕궁을 중건했다.

그 과정에서 들어간 비용과 인력은 인조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게 아니다.

광해군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백성들을 부려먹어서 해낸 일일 뿐이다.

“창경궁으로 이어 하심은 어떻겠사옵니까?”

인정전만 덜렁 남아버린 창덕궁과 다르게 창경궁은 방화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으니까.

“일리는 있지만, 창덕궁과 창경궁은 엄격히 나뉜 궁궐이 아니에요. 내가 이어 하게 되면 절반의 폐허를 내버려 둘 수 있겠습니까?”

결국 백성들을 부려다 치울 수밖에 없다.

“세자가 서궐을 안게 된다면 부담은 느끼겠지만…… 그만큼 내가 기대한다는 것을 깨닫고 수신修身한다면 차라리 잘된 일입니다.”

이미 몸을 망칠 정도로 부담을 느끼고 있는지라, 이건 진심이라기보다는 신하들을 달래기 위한 겉치레에 가깝다.

그래도 소현세자에게 기대가 큰 건 사실.

효종이 된 차남, 봉림대군도 나쁜 왕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을 안고서 소현세자를 차기 왕으로 밀어주기로 했으니 그만큼 잘 해주기를 바라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이미 마음을 굳혔으니, 세자의 거취는 더 논의하여도 소용없습니다.”

할 말은 다 한지라 칼같이 단언하고서 궁궐 구경을 이어갔다.

그런데, 정말로 잘 지어놨다.

원체 방대한 영역으로 조성해 놓은 데다 광해군은 실사용도 못 하고 마무리만 남겨놓은 채 쫓겨난지라 새 궁궐 느낌이 물씬 풍겼다.

미래로 치자면 신축 아파트 같은 느낌?

……그러면 나는 자식을 신축으로 보내고 본인은 옛집에 남은 아버지인가.

조선에 떨어진 뒤 처음으로, 부모님이 보고 싶어졌다.

* * *

내가 어전에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또 협조한지라 책봉례는 쾌속으로 마련됐다.

막상 시작하면 잘할 거면서 그동안 왜 미적거렸대?

아무튼, 길일이 되어 나는 다시 경덕궁을 방문했다.

저번에는 궐을 지키는 최소한의 인원만 있어 한산하다 못해 싸늘했는데, 이번에는 의례도 있겠다, 세자의 생활에 필요한 인원까지 더해진지라 인적이 상당했다.

“모든 준비를 마쳤다니, 어좌로 행차하시지요.”

내시의 요청에 수긍하고서 뒤를 쫓으니, 경덕궁 정전正殿에 집결한 문무백관들이 맞아주었다.

신하들은 평소 입는 근무복 대신 경축일을 위한 금관金冠에 조복朝服 차림을 하고서 홀笏을 받쳐 든 채였다.

나 역시 책봉례를 맞아 곤복袞服에 면류관冕旒冠을 착용했다. 덕분에 걸음마다 눈앞에서는 색색의 구슬들이 흩날렸다.

해둔 말이 있어서인지 왕의 입장을 알리는 고취는 없었다.

대신 적막처럼 내려앉은 고요가, 나의 위치를 증명했다.

어좌에 앉아 뜰을 내려다보니 협소한 경운궁과는 느낌이 확실히 다르다.

경복궁도 이런 분위기였을까?

반정 때 창덕궁 정전인 인정전으로 신하들을 불러모은 적이 있었지만, 처형식과 책봉식은 비교 대상이 아니지.

북이 울리고, 이번 행사로 진짜 세자가 되는 소현세자가 팔류관八旒冠과 칠장복七章服 차림으로 다가왔다.

단김에 소뿔을 뽑은 보람이 있었다.

세자의 얼굴에 진한 근심은 가신 지 오래였다.

하지만 안도했다기보다는, 책봉례를 맞아 긴장과 기대가 근심을 덮어버린 듯했다. 잔뜩 경직된 얼굴 위로도 그러한 감정이 쉽게 읽혔으니까.

“부담되느냐?”

세자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가, 푹 숙였다.

“책봉례는 단지 네가 세자가 되었다는 것을 기념하는 행사일 뿐이지, 아비의 마음속에서 너는 이미 이 나라의 세자였다. 이건 고작 겉치레일 뿐이야.”

“예…… 예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네가 어울리지 않게 바짝 움츠러든 게 보기 좋지가 않아서 하는 말이다. 고개를 들어라.”

세자가 어렵사리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나를 마주하고는, 그새 안색이 바뀌어서 희미하게 웃었다.

“웃으니 보기가 좋구나.”

“망극하옵니다, 아버지.”

세자는 작게 미소를 품은 채로 다시 고개를 숙였다.

“속행하라.”

행사가 절차가 따라서 진행되고, 곧 세자에게 죽책과 옥보가 전해졌다.

죽책은 옛날 책처럼 쪼갠 대나무에 책봉례를 행하는 이유와 부왕으로서 하는 권고를 새겨 엮은 것이며, 옥인은 옥으로 만든 도장에 왕세자인王世子印 네 글자를 새긴 것으로, 각기 세자의 임명과 권한을 증명하는 예물이다.

교명敎命도 내려졌는데, 이것 역시 죽책처럼 권고를 담은 글이다.

다만 죽책과는 여러모로 의미가 달랐고, 직접 전하는 당부에 가까운 만큼 제술관을 거치지 않고 하고 싶은 말만 짧게 적어놓았다.

-思量安民, 共存共榮。

사량안민, 공존공영.

백성이 평안할 방법을 생각해서, 백성과 함께 살고 백성과 함께 흥하라는 뜻이다.

군주라면 마땅히 그래야지.

이것이 다스림의 본분인지라 이것만 잘해도 그만이요, 이조차 못한다면 뭘 더 하든 헛짓인 법이다.

그런데 신하들은 너무 짧아서 없어 보인다더라.

아니, 내가 소설 쓰나? 다음으로 왕이 될 세자에게 내리는 당부인데 왈가왈부하지 말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리고 서식도 지켜주지 않았나.

-……故玆敎示, 想宜知悉。

고자교시, 상의지실.

이렇게 교시하니 잘 이해하라는 뜻이다.

이렇게 분량을 두 배로 만들어줬는데도 만족을 못 하면 내 잘못은 아니지.

아무튼, 전달할 건 전달했고 문무백관도 세자의 등극을 축하했다.

잘됐네.

“이제 해산하면 되나?”

곁에서 산선傘扇, 부채 모양의 양산을 든 시위에게 물어보니 한참 눈치를 보다가 끄덕였다.

왜 확신이 없어?

내가 해산을 원하면 해산하는 게 맞지.

신하들이 밀물처럼 빠져나갔고, 나는 세자를 불러 무릎에 앉혔다. 녀석이 쓴 팔류관 모서리가 자꾸 내 얼굴을 찍어대는 탓에 그냥 벗겨 버렸다.

“그새 얼굴이 핼쑥해졌구나!”

“이렇게나 지칠 줄은 몰랐사옵니다.”

“다 끝났으니, 속은 시원하겠구나?”

“…….”

“앞으로 세자로 살아갈 것이 부담되느냐.”

“예.”

“하하. 막상 몇 해 지나면 이때는 왜 이리도 벌벌 떨었을까 싶을 거다.”

뭐든지 익숙해지게 마련이니까.

나 역시, 스스로조차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르게 적응했다. 충격 요법의 영향이 컸지.

조선에 떨어지자마자 반정날 능양군이라니!

이래서야 왕의 일상 정도로는 동요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세자에게 나와 똑같이 충격 요법을 시행하는 건…… 좀 그렇고.

상황이 다르니까.

나야 어떻게든 왕 노릇에 적응해야 예정된 환란을 대비할 수 있지만, 세자에게는 여유가 있는 편이다. 더군다나 부담감도 이미 큰데 충격까지 주고 싶지는 않단 말이지.

“신하들이 어째서 이곳에서 책봉례를 행하는지 알려주었습니다.”

“아아.”

나는 못 쓰겠지만 버리기는 아깝고, 세자가 부담은 느끼겠지만 그래서 수신하면 좋고…….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예?”

“그저 상황이 복잡해서 아비가 이렇게 저렇게 대응했을 뿐이지, 네가 부담 갖거나 미안해할 일이겠느냐? 아비가 원래 여기서 살았는데 네가 쫓아낸 것도 아니잖으냐.”

나는 세자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오히려 이 아버지가 억지를 부렸는데 네가 마음고생을 해서 미안하구나.”

“아, 아니옵니다.”

“보아라.”

나는 세자에게서 시선을 떼고 정전의 뜰을 바라보았다.

“넓고 깨끗하고 전망도 좋구나. 네가 이 아비 같아도 자식이 이렇게 멋들어진 궁궐에서 지내면 기쁘지 않겠느냐?”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내가 이런 곳에서 살기 힘들다고 자식까지 살지 못하게 하는 건 오히려 부모로서는 못 할 짓이지.”

억지로라도 이런 데서 살게 해야지.

“네가 정 부담을 느낀다면, 이 아비와 약속 하나만 하여라.”

“말씀하시옵소서.”

“원래 이곳 궁궐은 경복궁이나 창덕궁을 재건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었다.”

오리지널 인조와 흥선대원군은 그렇게 했다.

한 명은 낙인을 피하고 싶어서, 다른 한 명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서.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유를 알겠느냐?”

“백성들 때문이옵니까?”

“잘 알고 있구나. 나 한 사람이 덜 편한 대가로 무수한 백성이 고생을 덜 수 있다면, 그것이 군림하는 자로서 옳은 일이다. 만약 옛 궁궐을 재건할 때가 있다면, 오직 백성들이 원할 때겠지.”

“백성들이 궁궐의 중건을 원하겠사옵니까?”

“지금이야, 다들 폐주 때 고생을 너무 많이 한지라 궁궐의 궁 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겠지. 하지만 너나 너의 후손이 선정을 잘 펼쳐 백성들이 평온하고 좋은 거처를 가진다면, 그렇게 만들어준 왕 역시 평온하고 좋은 거처를 가지기를 바라지 않겠느냐?”

“아…….”

“그런 때가 오지 않았다면 옛 궁전들은 그대로 두어라. 차라리 폐허로 남겨두어 반면교사로 삼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나라를 외적에게 내어주면 어떤 꼴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내가 무엇을 위해 궁궐마저 불타는 것을 감수하며 폐주를 내쫓았는지 항상 상기하도록 말이다.”

흥선대원군은 그러지 않았기에 또다시 야욕을 드러내는 일본 앞에서 경복궁을 중건했으며, 인조는 자신이 찬탈하는 동안 불타 버린 창덕궁을 중건했다.

그 결과가 무엇이던가?

나는 다시 세자의 머리를 쓸어내리며 덧붙였다.

“……이렇게 교시하니, 잘 이해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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