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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명군이 되다-37화 (37/380)

인조, 명군이 되다 37화

늦은 밤.

한양의 거리마다 고요가 가라앉았다.

이따금 정적을 깨뜨리는 딱따기 소리만이 세상이 멈추지 않았음을 증명할 뿐.

그 한가운데 북촌의 어느 저택에서는 지방에서부터 다친 몸을 이끌고 올라와 오래간만에 자신의 집에서 잠을 청한 자가 있었다.

이괄.

상경의 피로 탓에 퇴궐하기 무섭게 곧장 잠든 그였다.

“크어어어…… 커헉, 컥!”

이괄은 거의 질식하는 사람처럼 코를 골아댔다.

별채의 아들 부부나 안채의 부인마저 잠을 뒤척일 정도로 지랄맞은 코골이였다.

그것이 일순, 뚝 멈추었다.

“…….”

몽롱한 정신으로 잠을 깬 이괄은 곧장 팔을 뻗어 방바닥을 매만졌다. 그리고 생각과 다르게 난방은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괄의 배는 노상에서 잠을 청하기라도 한 것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천장을 무너뜨릴 기세였던 본인의 코골이에도 깨지 않았던 이괄이 잠에서 깬 건 그 탓이었다.

“어으…….”

이괄은 방바닥을 짚은 채 조심스럽게 몸을 세웠다.

속이 얼마나 안 좋은지, 당장에라도 엉덩이에서 내용물이 흘러내릴 기세였다.

‘내가 뭘 잘못 먹었나?’

집으로 돌아온 기념으로 잠들기 전에 주안을 가볍게 걸치기는 하였다.

하지만 그 정도로 이렇게 탈이 난 적은 없었다.

아니면, 상경길에 병이라도 얻은 것일까?

풍기에서 갑작스럽게 몸 고생한 여독이 이제야 나타나는 걸지도 몰랐다. 반나절 동안 꼬박 목숨의 위협을 느끼며 산을 타는 건, 임진년 난리 때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 빌어먹을 놈,’

이괄은 풍기군수와 아전들이 독살毒煞한 얼굴로 쫓아오던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고는, 인상을 더욱 찌푸렸다.

어쨌거나 계속 회고할 정도로 행복한 기억은 아니었고, 지금은 추억에 잠기는 것보다 훨씬 급한 일이 있었다.

“끄응.”

이괄은 한 손으로는 엉덩이를 받친 채 어기적대며 방을 나섰다.

바깥의 찬 바람을 맞으니 속이 더욱 요동치는 듯했고, 이제는 아래만 아니라 위로도 지랄이 올라오는 듯했다.

이건 확실히 무언가를 잘못 먹어서 벌어진 일이다.

난리 때 몸 고생 심했던 사람이 토하고 싸지르는 꼴을 몇 번 보긴 하였으나, 이렇게 뒤늦게 소란이 벌어지는 건 본 적이 없었다.

‘뭘 잘못 먹어서 이러지?’

이괄은 뒤뚱거리며 측간을 찾았으나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저녁이야 주안상으로 대충 뭉갰으니 문제가 될 만한 건 아침의 상경길에 얻어먹은 밥뿐이었다.

‘혹시 그자가?’

고래 등 같은 기와집에서 사는 사람이 먹을 게 없어 상한 밥을 해 먹지는 않을 테니, 무슨 수작을 부린 게 분명했다.

그래, 그자가 숙청된 대북의 인사와 가까운 인물이라면 자신에게 해코지할 이유는 충분했다.

“이런 제기랄…….”

이괄은 당장에라도 그 저택으로 돌아가 아주 분탕焚蕩을 내버리고 싶었으나 측간으로 향하는 발길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는 너덜거리는 문짝은 몸으로 대강 밀어버린 다음 중앙이 뻥 뚫린 바닥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참으로 지저분하였으나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 별다른 수가 없었다.

헉헉거리며 숨을 몰아쉬던 이괄은 아래로 내용물을 쏟아내면서도, 아래에서 올라오는 악취에 욕지기가 올랐다.

이미 속이 좋지 않은 상태여서 이괄은 곧바로 몸뚱이를 웅크린 채 위에서도 내용물을 쏟아냈다.

“우웩!”

푸드득!

“어으으윽!”

푸득!

“그어억!”

뿡!

이괄은 위아래로 독주 겸 합창하며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생각했다.

지랄도 이런 지랄이 없다고.

* * *

웅성웅성.

본디 회의가 있는 날은 아니나, 충격적인 소식이 새벽부터 전해지면서 신하들이 소집되었다.

그 이유는,

“풍기에서 습격당했다가 작일 귀환한 이괄이 오늘 새벽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말은 경들 모두가 들어 알고 있을 것입니다.”

웅성웅성.

귀가 그리 밝지 못한 사람들이 뒤늦게 소식을 접하며 어전이 어수선해졌다.

“조용히 하세요.”

이어진 왕의 명령에 어전의 소란은 차차 잦아들었고, 충격과 당혹감을 드러내지 못하게 된 신하들은 용상에 시선을 집중한 채 귀를 기울였다.

“이괄은 어려서부터 나라를 위해 고생하다가 불미스럽게 유명을 달리하였으니, 내 사자死者의 명예를 위하여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이괄이 발견되었을 때의 모습이 얼마나 민망했던지, 시신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 노비가 아니라 가족이었다면 이런 소동은 벌어지지 않았으리라.

“내가 경들에게 말할 수 있는 건, 이괄이 독살毒殺되었다는 것뿐입니다.”

“……!”

“이것은 나의 추측이 아니라 검시를 맡은 자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사지 멀쩡하게 상경한 사람이 갑자기 죽어도 흉한 일이거늘, 아예 독살이라니!

신하들은 쓸개라도 씹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풍기군수가 암행어사를 습격한 것만 해도 작은 일이 아닌데, 이어서 왕의 안마당이나 마찬가지인 한양에서까지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절대 조용하게 끝날 수 없었다.

대규모 옥사를 각오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이외에는 무엇도 알아낼 수 없었으나 이것만은 확실합니다. 이괄을 습격한 풍기군수는 나라에 만연한 폐단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워왔으며, 이괄은 바로 그것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되었다는 것입니다. 좌의정?”

나의 호명에 박홍구가 손을 모아서 답했다.

“예.”

“좌상이 이괄의 독살을 조사해 주세요. 단서가 많지는 않겠지만, 노력은 해야지 않겠습니까.”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다른 두 의정께서는 제신이 이 일로 경거망동하지 않도록 잘 단속해 주시고, 진행 중인 일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신경 써주셨으면 합니다.”

영의정 이원익과 우의정 조정이 각자 손을 모으고서 허리를 숙였다.

“좌찬성과 병조의 관리들은 당분간 주변을 유의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유능한 사람을 더 잃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명심하겠사옵니다.”

이상의와 이하의 관리들이 꾸벅 허리를 숙였다.

“당분간 순찰은 강화하는 게 좋겠습니다. 판윤께서는 밤에 수상한 인물이 횡행하지는 않는지 살펴주세요.”

“예.”

구굉은 고개를 숙이며 짧게 답했고 이어진 광경에 신하들이 감탄했다.

만약 왕이 호들갑을 떨며 당장 죄상을 밝히라 소란만 피웠다면 한양 전체가 어수선해졌으리라.

대신, 왕은 당황하는 기색 없이 각자의 위치에 어울리는 역할을 침착하게 지시했다.

이에 요직을 맡은 이들이 차례대로 응하여 왕명을 받드니, 보는 사람들은 절도마저 느낄 수 있었다. 모름지기 조정의 분위기란 이래야 하는 법이다.

“나랏일은 한시도 그칠 수 없으나, 충신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을 수도 없으니, 급하게 모은 자리는 이만 파하고 오늘 하루는 철조輟朝하겠습니다.”

철조란 단어 그대로 조회를 정지함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대신이나 지체 높은 사람이 유명을 달리하였을 때, 국가적으로 애도 기간을 갖기 위해 며칠을 철조하였다.

‘할 말은 다 했지만.’

내가 철조라면 철조지.

“좌의정은 남아 계세요. 이 일에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부산스러웠던 해산이 있었던 뒤. 어전에는 내가 호명한 박홍구만이 멋쩍은 얼굴로 남았다.

박홍구는 주변이 텅 빈 것을 확인하고는 이쪽을 바라보았다.

“하실 말씀이 무엇이옵니까? 하명하시지요.”

나는 박홍구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박홍구는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용상의 계단 앞에 이르렀고, 재차 손짓하자 더욱 조심스럽게 계단을 반쯤 올랐다.

“오세요, 좌의정.”

“송구하오나 신이 어디까지 가야 할는지…….”

나는 용상의 팔걸이를 툭툭 두드렸다.

그 광경에 박홍구는 깜짝 놀라 두 눈이 동그랗게 되어서는, 반사적인 느낌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치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는 듯.

어찌 승지나 내관도 아닌 사람이 용상에 오르겠으며, 하물며 용상의 팔걸이에 앉을 수 있겠는가? 상상으로도 당치 않은 일이었다.

“내가 그만큼 좌의정에게 긴밀히 드릴 말이 있어서 그럽니다. 아니면, 거기서 계속 버티시렵니까?”

“…….”

“그럼 나도 여기서 계속 버텨야지. 옥좌에 앉은 채 해골 뼈다귀가 남을 때까지 말이에요.”

왕의 말에 박홍구는 핼쑥해진 얼굴로 묵은 숨을 토해냈다.

하는 말은 마치 아이가 억지를 부리는 듯하였으나, 그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 아이가 아니고 왕이었으니 박홍구로서도 죽을 맛이었다.

“제발 용서해 주시옵소서, 전하…….”

“하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팔걸이에 앉지는 말고 옆에 서세요. 그조차도 안 되겠습니까?”

“…….”

“이런. 경이 기어코 나를 옥좌 위의 뼈다귀로 만드시려나 봅니다.”

왕의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호들갑에 박홍구는 정말 마지못해서라는 얼굴로 용상의 계단을 터덜터덜 올랐다.

만약 누군가 이 꼴을 본다면, 당장 끌어내어 패대기치겠지.

“하명하소서…….”

박홍구가 질린 목소리로 청했고, 그제야 왕은 반가운 얼굴로 물었다.

“이괄은 누가 죽인 것 같습니까?”

* * *

가시방석에 앉았다는 말이 있다.

느닷없이 나라의 주인이 바뀐 뒤로, 박홍구는 한동안 그런 심정으로 지내왔다.

왕 무서운 줄 모르고 떵떵거리며 살았던 삼창의 목이 한순간에 달아나고 그들의 측근들까지 숙청되는 판국에 무슨 배짱으로 목숨을 장담하겠는가?

언제 찾아올지 모를 ‘다음 차례’만을 자나 깨나 근심할 뿐이었다.

그러나 매우 다행스럽게도, 새로 즉위한 왕은 지지자들과는 다르게 상식선의 지성을 겸비한 사람이었다.

아니, 그 이상의 인물로 박홍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며 어떻게 제공해야 할지 알 정도로 현명했다.

그것이 입증된 날 박홍구는 왕에게 투신했다.

어지간하면 죽었을 목숨, 왕의 선심과 배려로 구사일생하였으니 덤으로 얻은 인생을 바치지 못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참으로 현명한 선택이었는데, 그날로부터 지금까지는 방석에서 다시 가시가 돋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는.

‘늙으면 죽어야지, 구차하게 살다가 이게 무슨 고생이란 말이냐?’

박홍구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평생 불사의 영약을 쫓았다는 진시황도 금상의 신하 노릇을 하다면 천수도 과분하다는 것을 깨달을 거라고.

‘아무래 그래도 이번에는 참으로 너무하셨지!’

금상에게는 이따금 신하를 고약하게 다루는 악취미가 있는데, 이번에는 퇴궐 전 자신에게 벌어진 일이 그러했다.

‘용상의 팔걸이에 앉아보라니!’

왕의 윤허가, 아니, 설령 명령이 떨어지더라도 상상조차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었다면 왕이 나를 골리는구나, 하고 넘어갔을 거다.

그러나 왕은 자신을 기어코 용상의 곁까지 불러놓고는 짓궂은 질문까지 하지 않았던가?

‘이괄을 누가 죽인 것 같냐니!’

박홍구도 ‘가능성’은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이괄이 너무 보기 좋게 죽은 탓이다.

정말로 반개혁파의 독살에 당한 거라면 애초에 이괄이 한양으로 돌아올 일도 없었겠지. 그전에 나자빠졌을 테니까.

풍기군수가 굳이 시끄럽게 일을 벌일 필요도 없었고 말이다.

애초에 반개혁파의 존재 자체가 허상이나 마찬가지다.

각지에서 부패가 만연하고 폐단이 범람하는 이유는 사회의 기강이 쇠락하고 풍속이 저하된 탓이지, 목민관이 모조리 왕 아닌 누군가에게 충성해서 벌이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괄이 당한 습격과 독살로 왕은 개혁에 비협조적인 자들에게 칼을 겨눌 수 있게 되었다.

역적과 한 패거리냐고.

신하가 감당할 수 있는 위협이 아니었다. 살아남고 싶다면 찍소리 말고 개혁에 찬동해야지. 뒤가 구려도 더 큰 일을 당하고 싶지 않다면 이실직고하고 따르는 수밖에 없다.

개혁을 원하는 왕에게는 참으로 잘 맞아떨어지는 그림 아닌가?

단지, 그 가능성을 감히 받아들일 수 없었을 뿐이다.

왕이 권한다고 용상의 팔걸이에는 앉을 수 없는 것처럼…….

-이괄은 누가 죽인 것 같습니까?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신이 아직 아는 바가 없어, 커헉!

왕은 질문해 놓고 자신을 순간적으로 잡아당겼다.

만에 하나라도 그럴 줄은 몰랐던지라 찰나의 순간 용상의 팔걸이에 걸쳤고, 황급히 일어섰으나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니까, 상상도 할 수 없어야 할 일이 실현된 것이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전하께서 내게 하신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하신 거잖아!’

네가 상상도 할 수 없는 그 일을, 내가 벌인 게 맞다고.

이괄을 독살한 범인은 자신이라고.

그러나 왕은 이렇게 친절하게 말해주지 않았다. 대신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꼴을 보며 좋다고 웃어댔을 뿐이다.

그리고 현재.

왕은 본인과 함께 이괄의 저택에 조문하러 가는 중이었다.

이보다 더 고약한 왕도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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