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명군이 되다 65화
“단단히 미쳤군!”
“제정신이 아닌가 봅니다!”
모문룡의 변명에 신하들이 한 마디씩 수군거렸다.
그도 그럴 게, 동강진 총병으로서 호의호식은 다 누린 사람이 자신은 허수아비에 불과했다지 않나.
“뻔뻔한 데도 정도가 있거늘!”
그러나 모문룡은 정도가 없는 사람이었다.
“전하! 소관이 중임을 맡고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였으니, 죄를 물으시더라도 어찌 달게 받지 않겠습니까. 하오나 자칫 대국에까지 소식이 전해진다면 장차 양국의 우호와 북적의 단죄가 어그러질까 두렵습니다!”
모문룡은 진심으로 훗날을 걱정한다는 듯이 말했다.
그의 행보를 되돌아본다면 연기력이야 어떻건 진실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지만, 모문룡을 힐난하던 대신들은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가도 정벌은 어떻게든 명나라에 소명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전하…….”
영의정 이원익이 용상 쪽으로 허리를 숙였다.
“모 장의 발언은 본질적으로 목숨 구걸에 불과하나, 그 주장이 틀리지는 않았사옵니다.”
“…….”
“죽어 마땅한 몸일지라도 죄인의 신변을 명나라가 보장하고 있으니, 처형하게 된다면 소명의 신뢰도도 하락할 것이옵니다.”
이원익의 간언에 모여 선 대신들이 음, 하고서 침음했다.
“그렇다면 영상께서는 죄인을 어떻게 처분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사행에 딸려 보냄이 옳을 줄로 아뢰옵니다.”
“도적 수괴를 벌하지 말고 고이 돌려보내라는 말입니까?”
“도적의 목숨은 값싸지만, 국익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옵니다.”
“허.”
왕은 내키지 않는다는 듯 탄식했으나 반박은 없었다. 도적의 수급을 거두어서 어디에 써먹겠는가?
그러나 무쓸모한 수급이라도 거두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했고, 감정적인 이유만으로 그 대가를 감수할 수는 없었다. 이는 신하들도 의견이 다르지 않아 대신들은 합이라도 맞춘 듯 고개를 숙였다.
“나라를 생각해 주시옵소서.”
여기에 이원익마저 재삼 권유하니, 왕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영의정.”
“예에.”
“정녕 저 개자식을 죽일 방법이 없겠습니까?”
손을 모으던 이원익이 고개를 들었다. 짧은 정적이 있었고, 이원익은 허리를 숙였다.
“더 드릴 말씀이 있겠사옵니까.”
“우리가 형을 집행하지 않아도 모문룡이 죽을 방법은 많을 것입니다.”
“하오나 죽은 모문룡이 산 모문룡에야 비하겠사옵니까?”
명나라에서 곧이곧대로 믿어줄 리도 없다. 그들이 도리어 약점을 잡고자 나선다면 최악이었다.
“모문룡이 의문스럽게 죽는다면 명은 반드시 사람을 보내어 사인을 조사할 것이니, 자칫 드러내어 죽이느니만도 못하옵니다.”
제신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그러니 대놓고 죽이자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왕의 미련이 쉬이 가시지 않을 뿐이다.
“잘 때 독사를 풀어버린다면…….”
“수도 한복판에서, 하물며 중죄인을 심문하고 수감하는 의금부에서 죄인이 뱀에 물려 죽었다는 말을 믿어주겠사옵니까.”
“자살한 것으로 꾸미는 것은요?”
살벌한 대담이 아무렇지도 않게 오가자 신하들은 침묵으로 일관하였으나, 오직 이원익만이 막힘 없이 반박할 뿐이었다.
“자타살의 감별은 어렵지 않은데 행해지고 나면 되돌릴 수 없으니 매우 위태롭사옵니다.”
“시가달을 부추겨 모문룡을 죽이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한다면 시가달까지 죽여야지 않겠사옵니까? 해명해야 할 죽음만 늘어나게 되옵니다.”
왕은 거듭 창의력을 발휘했으나 번번이 가로막혔다. 기어코 모문룡을 죽이겠다면, 억지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
가볍지 않은 정적이 한참을 감돌았으나 왕은 끝내 결단했다.
“……좋습니다. 이 쓰레기를 그대로 실어서 명나라에 버리지요.”
여러 사람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망극하옵니다.”
이원익은 왕의 용단에 감사해하며, 군관에게 손짓했다. 모문룡을 데려가라는 뜻이었다.
“예.”
군관은 굳은 얼굴로 모문룡의 팔을 붙들었다.
그간 총병 운운하며 대들었던 모문룡은, 얌전히 입을 닫고서 군관의 인도를 따랐다.
끝내 구사일생하였다는 과분한 행운이 주어진 참이라 물러나는 모문룡의 입가에는 채 억누르지 못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
그 광경이 이원익에게도 괘씸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비록 폐주 시절 폐모에 반대하다 관작을 빼앗기고 은인자중隱忍自重하게 된 이원익이었으나, 나날이 혼란스러워지는 나라의 사정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간 모문룡이 유민을 내세워 강탈하듯 받아간 재물이 얼마나 많던가? 동강진이 제 역할은 다하지 못할지언정 해악은 끼치지 않기를 바랐다.
한데 금상의 단호한 태도에 모문룡은 반성은커녕 칼부터 뽑아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고혼들을 위해 직접 저놈을 참해 버리고 싶지만…….’
자신마저 이처럼 노기가 들끓는데 철산부의 참상이 전해졌을 때 극도로 진노한 왕이라면, 얼마나 힘겹게 감정을 추스르고 있을까. 거기에 자신마저 기름을 끼얹을 수는 없었다.
이원익이 본심과는 다른 소리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이때, 신하들 사이에서 한 사람이 나섰다.
“전하.”
김류. 그는 자신이 데려온 소인배 동족 김자점을 제거하면서 왕에게 많은 점수를 땄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세자의 실전 교육에 왜 최초로 초빙되었겠는가.
왕에게 호감을 사는 방법을 알았으니 실천으로 옮기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가깝게는 왕의 해결사, 멀리는 의정의 자리까지 탐내는 김류는 다시 한번 왕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조참의.”
이원익은 김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보인다는 듯 가만히 호명했다. 그러나, 욕망과 함께 머릿속에 불이 들어온 김류는 태연히 답했다.
“대감.”
두 사람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이 일었으나 처음부터 김류가 이긴 싸움이었다.
“말씀하세요.”
왕의 관심을 끌었으니까.
김류는 기꺼이 입을 열었다.
“한갓 죄인의 목숨이 무거워야, 얼마나 무겁겠습니까.”
“……무슨 말이지요?”
“죽음은 죄인에게 충분한 벌이 되지 못하옵니다. 도리어, 그 구차한 일생을 끊어줄 수 있다면 자비로운 처사가 아니겠사옵니까.”
그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다는 투여서, 여러 사람의 시선이 움직였다.
“이조참의께서 좋은 방법이 있나 봅니다.”
“모문룡 외에도 사로잡힌 해적들이 많사옵니다.”
“그래서요?”
“개중에는 모문룡이 양자로 삼아 부리던 수하도 있사옵니다.”
공유덕과 경중명.
“그들은 성과 함께 이름까지 바꾸어서 호형호제하였다는데, 이것은 모문룡이 전하께 거짓을 고한 정상이옵니다.”
“그렇지요.”
왕의 대답은 짧고 딱딱했다. 설명은 이만하면 충분했다는 뜻이리라.
“모문룡으로 하여금 그들을 죽이게 하십시오.”
“……흐음.”
“모문룡은 거짓을 고하였으니, 수하들과 부자의 연을 맺었다는 증거를 없애기를 바랄 것이옵니다.”
“그렇다면 내가 모문룡을 돕는 꼴이 아닙니까?”
“사로잡은 도적을 다 죽인다면 그럴 것이옵니다.”
그러나, 생존자가 있어 증언한다면 모문룡은 또 저 혼자 살고자 양자들까지 죽인 꼴이 된다.
아무리 더럽고 추악한들 무리가 있어 믿고 따른다면 발 디딜 자리는 남는 법.
하지만 자신이 거둔 패잔병과 유민들을 버린 데 이어 부자 결연까지 맺은 양자들마저 제 손으로 죽인다면, 모문룡은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리라.
그리고 명나라로 송환되어 온갖 개소리를 지껄이더라도 외면받을 터다. 꼴에 총병인 그의 증언에 심각한 신뢰도 타격을 일으키는 셈이다.
“좋은 발상입니다. 이조참의께서 맡아주세요.”
“망극하옵니다.”
* * *
국문이 해산한 뒤.
중신들은 안에서의 일을 추궁해 대는 구경꾼들을 물리치고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다.
이는 의정부 대신들도 마찬가지였다. 입을 맞춘 적도 없거늘 대신들은 한 무리가 되어 의정부 본청에 차례대로 배석했다.
“음.”
눈치싸움이 이어지던 중, 영의정 이원익이 침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이조참의의 제안이 속 시원하긴 하였으나 정말로 실행될 줄은 몰랐소이다.”
“대신 모문룡이 살아남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최소한이외다. 명나라의 사신이 방문했을 때 모문룡의 수급을 안겨줄 수는 없지 않소?”
명나라에서 한판 붙어보자는 식으로 받아들인다면 곤란했다.
물론, 모문룡이 먼저 철산부를 공격한 정상이 있으니 명나라라고 마냥 큰소리치기는 힘들 것이다. 하물며 함께 후금을 앞둔 사이가 아니냐.
하지만 최선은 오해의 여지조차 주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니 전하께서도 모문룡을 죽이지는 않으셨지요. 무엇이 문제라는 말입니까?”
“처벌이 잔혹하지 않소.”
박홍구는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어 눈살을 찌푸렸다.
“죄인을 시켜 죄인을 베는 건 분명 잔혹한 일이겠지만, 법류에 두어 오래도록 시행해 왔습니다. 같은 죄인이 아니고서야 그럼 누구의 손을 더럽혀야 만족하시겠습니까?”
“그런 의미가 아니외다.”
“아니면, 모문룡이 수하들을 베고 싶지 않았는데 강제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오히려 모문룡은 기꺼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미 저 하나 살겠다고 무수한 인명을 저버린 그다. 그에게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직접 손을 더럽히는 건 고민할 거리도 아니었다.
이원익이 고개를 젓자 박홍구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하면 무엇이 문제란 말입니까?”
“모문룡과 수하들은 서로 부자의 연을 맺지 않았소이까. 이조참의의 제안은 아비에게 제 자식을 베라 종용한 것과 마찬가지요.”
단순히 사람을 죽여서 잔혹하다는 소리가 아니었다. 윤리적으로 과하게 옳지 않아서 잔혹하다는 것이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없었으나, 공감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의정부의 관직이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무수한 풍파와 생명의 위협을 헤치고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백관의 정점에 오른 대신들에게 이원익의 발언은 마냥 사람 좋은 소리에 불과했다.
하물며 환국 때 죽다 살아난 북인 중진 박홍구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그게 이조참의의 목적이었지요. 영상께서는 그 작자들이 고이 살아서 돌아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십니까?”
“…….”
“반드시 아조에 대한 흉참한 날조를 퍼뜨리고 다니겠지요! 저들이 일말이라도 반성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천만에요! 어떻게든 재기하고자 팔아먹을 수 있는 건 모조리 팔아먹을 겁니다!”
거기에는 조선의 평판도 당연히 포함되리라.
“애초에 그럴 놈들이기 때문에 소란을 일으켰던 거고, 모 적은 부자 결연까지 맺은 제 수하를 벤 것입니다.”
이에 우의정 조정과 좌찬성 이상의가 쓰디쓴 침음과 함께 고개를 주억거렸다.
행위의 옳고 그름을 떠나 조선에 필요한 일이었고, 모문룡은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래서 벌어진 일일 뿐이었다.
여론을 날개처럼 등에 업은 박홍구가 덧붙였다.
“죄인들의 처우에 천륜 따위를 생각해 줄 필요 없습니다. 애초에, 그 부자의 연이라는 게 왜 맺어졌겠습니까?”
정녕 아비가 양자를 거두듯이, 자식이 또 하나의 아비를 모시는 마음으로 연을 맺었을까.
“천만에요! 다 소인배들이 서로를 믿지 못해 장난처럼 벌인 일입니다.”
“……그래도.”
이원익이 엄하게 말했다.
“부모와 자식의 연을 가볍게 여겨서는 아니 되오.”
“그래 봐야…….”
“다들 폐조 때 일을 잊어버리셨소?”
폐주가 부모와 자식의 인연을 저버린 사건이 있었다. 환국의 가장 큰 명분이었던 만큼, 조선이 오늘날에 이르게 된 이유라 보아도 무방했다.
그리고 이 문제에서 북인은 입을 열 자격이 없었다. 내심 섬뜩해진 박홍구가 헛기침과 함께 고개 돌렸고, 여러 사람이 시선을 내렸다.
“이 사람이 문제 삼고자 하는 건 이조참의의 발상이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요.”
“…….”
“명백하게 윤리적이지 않은 이조참의의 제안을 전하께서 기꺼이 받아들이셨다는 거요. 다들, 전하의 인품이 어떤지는 아시지 않소이까?”
이따금 말로써 신하를 거세게 구박하지만, 그것이 징벌로 이어진 적은 없다.
오히려 평소에는 넘치는 관용으로 조정과 나라를 다스리니 덕분에 목숨 건진 이들만 이곳 의정부에서도 여럿 아닌가?
폐주나 그 전대 왕과 비교하면 인격자나 마찬가지였다.
“광해군도 세자 때는 성군의 자질을 지극히 보였으나 끝내 어찌 되었소이까? 이 사람은 전하의 성정이 바뀌지는 않을까 우려되오.”
이원익은 동의를 구하듯 주변을 돌아보다가, 박홍구에게 덧붙였다.
“철산부에서 참사가 벌어진 뒤로 우리가 고개는 들지 못하게 되었다지만, 그래도 걱정할 건 걱정해야지 않겠소이까?”
“……크흠.”
왕의 내밀한 치국의 도리를 접해 본 박홍구는 차마 입을 열지는 못하고 심경만 복잡해졌다.
과연 금상은 하해河海와 같은 인물이었다. 한없이 넓고 무한히 품는다는 점에서만이 아니라, 깊게 들어갈수록 검어진다는 점에서 말이다.
“좌상?”
“……말씀하시지요.”
“대감께서 둘도 없는 충신이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소이다.”
왕의 자비로 목숨을 건사했고, 왕의 배려로 입지를 회복한 그다. 충신이 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의아할 노릇.
이원익의 주장에 반해 왕의 선택을 지지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나, 그런 충신일수록 성군의 변화를 걱정하는 게 맞지 않겠소이까?”
“……지당한 말씀이십니다.”
박홍구가 어렵사리 수긍하자 이원익은 한결 편해진 얼굴로 끄덕였다.
“지금은 전하의 진노가 크시니 당장 간언을 올리지는 못하더라도, 제공이 함께 염려를 염두에 두고서 때때로 말씀 올린다면 내가 감사함이 한량없겠소이다.”
* * *
늦은 밤.
경운궁 즉조당.
바람 한 점 없는 깊숙한 곳에서.
곳곳에 세워진 촛대와 화등의 불빛이 연신 일렁이자 웅크린 그림자 하나가 연신 흔들렸다.
“……이 같은 일이 있었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