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명군이 되다 78화
누군가 똥물을 삶아 진귀한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한다면…….
십중팔구는 광인의 헛소리로 치부하리라. 들어줄 가치도 없고, 고민해 볼 가치도 없는.
그러나 병조판서 김신국은 고민했다.
금싱은 이전에도 공허한 수고로움으로 치부되었던 처리법을 도입해, 화약의 보관성과 성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그러니 윤음綸音이라는 점을 제외하고 본다면, 불경한 평가겠으나,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라도 진지하게 임할 수밖에 없었다.
왕의 통찰력이 이번에도 통할지 누가 알겠는가?
* * *
“커헉, 컥……! 퉤! 꺼윽!”
김신국은 눈물을 잔뜩 머금은 채, 걸쭉하게 늘어진 침을 내뱉었다.
“퉷!”
그리고 그가 소매로 얼굴을 닦고서 반개한 눈을 마저 떴을 때, 군기시 마당에는 위장으로 밀어 넣었던 아침밥이 세상 밖으로 나와 있었다.
자유를 만끽한 아침밥은 두서없이 뒤섞인 채 가마솥의 똥물과는 분별되는 존재감을 과시했다.
“우욱!”
후각에 이어 시각마저 유린당한 김신국은 애써 욕지기를 참으며 흙바닥을 긁었다.
가죽신 코가 닳을 게 분명했지만, 고역은 하나라도 덜어야지 않겠는가?
서걱서걱 흙바닥 긁는 소리와 군기시 관리와 장인들도 뒤따라 미봉책을 시행했다.
그렇게 일시적으로나마 시각적 참사가 가려지고 후각 역시 기능이 상실되면서 김신국은 침착을 되찾았다.
그리고 과거 자신의 판단을 재고했다.
‘전하께서는 그저 나를 골탕 먹이고 싶으셨던 게 아닌가?’
당해보니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고작 분뇨로 염초를 만들 수 있을 리 없잖은가.
만인이 귀물로 인정하는 금은조차 광맥을 들쑤시면 나오거늘, 염초는 그렇지도 않았다. 따지자면 염초는 금은 이상으로 귀한 셈이다.
그런데 몸에서도 쓸모없다고 배설하는 분변에서 염초가 나오다니?
‘길바닥에서 똥 주워 먹고 사는 개조차 웃고 갈 소리 아니냐!’
더군다나 금상은 전적이 있었다.
그는 대명률의 형법을 고수하지 않았다.
그래서 판서에 임명되기 전 시궁창이 되어버린 경회지에 빠진 적도 있고, 언젠가는 경회루의 돌기둥 위에 올려놓겠다고 협박당한 적도 있었다.
실현되기 전에 부원수가 나서주어서 망정이지.
어쩌면 이것도 금상의 불필요하게 기발한 형벌의 일종인지도 몰랐다.
‘……도대체 언제 밉보인 거지?’
김신국은 과거를 회고했다.
최근 그의 실책이라면 홍이포 복제에 실패한 것이 있다.
크게 추궁당하지는 않았지만, 북방군 주둔지를 제때 마련하지 못했을 때 점수가 많이 깎였을 터다.
혹은 모문룡을 상대할 계책이랍시고 뒤에서 훈수를 두다 적발되었을 때부터 이렇게 될 예정이었든지.
‘그래, 그때부터구나!’
김신국은 확신했다.
마침 남이공도 명나라로 보내지지 않았던가?
바닷길을 건너는 것부터 목숨을 걸어야 하지만, 온전히 명나라에 도착하더라도 다시 목숨을 걸어야 했다.
조선이 동강진을 쳐부순 걸 해명해야 하니까.
그러니 남이공이 갈 때는 서서 갔으되 올 때는 누워서 오거나, 삼국지의 관우처럼 머리만 남아 귀환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친우의 머리를 붙들고 오열해야겠군…….’
남 공, 어찌하여 머리만 오셨소!
‘……내가 한양에서 똥물 끓인 일로 목을 매달지만 않는다면 말이지.’
김신국은 채 반나절이 지나기도 전에 자신에게 붙을 별명을 쉽사리 짐작할 수 있었다.
변탕便湯 대감.
똥물을 끓였으니 이보다 직관적인 오명도 없다.
그렇게 변탕 대감이 수치에 자조하는 동안, 아궁이의 불길이 잦아들면서 가마솥의 악취도 수그러들었다.
그제야 사방팔방 도망쳤던 관리와 장인들은 겸연쩍은 얼굴로 돌아왔다.
그러나 군기시를 찾아온 사람은 그들만이 아니어서, 곧 담장 너머에서는 무수한 인기척과 함께 항의가 몰려들었다.
“안에서 무얼 하길래 이렇게 악취를 풍겨댄단 말이오!”
“당신들 때문에 일에 집중할 수가 없잖소!”
“내가 시험에서 떨어지면 당신들이 책임질 거요?!”
한양은 무수히 오가는 우마牛馬로 거리에는 분변이 즐비하고, 비가 내리지 않으면 오수가 괴어 썩어가는 개천開川도 있었지만, 똥물 끓이는 냄새는 완전히 새로운 지평이었다.
군중이 저마다 대는 이유는 달랐으나 모두가 분노했다는 사실만은 같았다.
그리고 잔불들이 뭉쳐 만들어진 화마의 기세는 제법 위협적이어서, 담장 너머로 자갈이 우박처럼 날아들었다.
“대, 대감!”
군기시 관리 하나가 사색이 되어 묘안을 청구했으나 김신국이라고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 만무했다.
“진정하시오! 이것은 염초를 굽기 위한 실험일 뿐이요!”
김신국은 담장 너머를 향해 이실직고하였으나 분노한 군중의 항의에 파묻혀 누구 하나 들어주는 이 없었다.
오히려 군중의 분노는 서로 마찰하여 거세게 타오를 뿐이었다.
이내 출입구 역할을 하는 솟을대문이 쿵쿵 울어댔다.
금방이라도 문짝이 쓰러지고 군중이 난입할 기세였다.
김신국은 아스라이 똥내 번진 하늘을 보내 장탄식을 흘렸다. 죽기 딱 좋은 날이었다.
* * *
김신국의 짐작은 하나를 제외하고 모조리 틀렸다.
그는 죽지 않았으며, 유일하게 들어맞은 추측은 변탕 대감이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오수를 졸인 가마솥에서 염초가 묻어나온 것으로 반박됐다.
왕이 얼핏 허무맹랑한 지시를 내린 건 멋들어진 변명을 지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염초의 생산을 위함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김신국은 탓하거나 변명할 구석 하나 없이 갖은 망신과 오명을 뒤집어써야 했다.
과거 북인의 잔당으로서 당하던 홀대와 치욕과는 종류가 다른 모욕이었고, 이런 쪽으로는 내성이 없었던 김신국의 정신력도 한계에 다다르고야 말았다.
그러니 김신국이 왕과 독대하는 자리에서 엄살을 시작한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새로운 공법을 이용하면 함토에서 얻는 염초의 양이 몇 배로 늘어나는 효용이 있으나, 오수를 달이는 과정에서 악취를 풍기는 맹점이 있었사옵니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왕에게 투정해 보겠는가.
김신국은 자신이 오해했다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왕이 고생을 인정해 주었으면 했다.
문무백관이 죄 자신을 머저리 취급하는데 왕에게나마 의지할 수 없다면 얼마나 처량할까?
“지난날 공법을 시험하는 와중에도 주변 관청의 관리들과 백성들이 몰려와 신과 장인들을 겁박하는 사태가 있었고, 여러 사람이 억울하게 오명을 얻게 되었으니, 다시 공법을 시행한다면 하관들이 따르지 않고 피할까 우려스럽사옵니다.”
김신국은 ‘오명’이라는 단어에 특히 힘주어 말했다.
금상에게는 하관들이 피할지 모르겠다고 했으나 기실 가장 꺼리는 사람은 본인이리라.
변탕이라는 오명이 일시의 놀림감에서 지워지지 않을 치부로 진화한다면 진정 대들보의 내구성을 자신의 목으로 시험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러니 김신국으로서는 진지하게 투정을 부린 셈인데도 왕은 딱하고 한심하다는 낯으로만 마주할 따름이었다.
그것이 김신국에게는 마음의 상처였다.
금상의 평판이 복합적이기는 하나 냉혈하다는 평가는 거의 없는데, 고작 투정 좀 부렸다고 못 볼 꼴 본다는 듯하였으니까.
그러나 이어진 말에는 김신국도 할 말이 없었다.
“오수를 끓이면 당연히 악취가 풍길 터인데, 도성 밖의 인적 드문 곳으로 나아가 공법을 실험할 생각은 전연 하지 못하셨습니까?”
“…….”
“악취를 풍긴다는 건 분명 단점이 맞지만,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아니거니와, 병조판서의 평가에는 과장된 면이 있는 듯합니다.”
“……예.”
김신국은 대답과 함께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만약 그의 심정이 물리적으로 반영되었다면 김신국은 마치 코를 풀어낸 휴지처럼 비참하게 뭉쳐져 한쪽 눈만이 겨우 접히는 것을 면한 채 시선을 피하고 있었으리라.
왕은 정확히 그 같은 김신국의 모습을 상상하고는 말했다.
“홍이포의 소형화는 얼마나 진행되었습니까?”
화제가 전환되자 그동안 유구무언이었던 김신국은 기꺼이 입을 열었다.
홍이포 복제의 건이라면 자신의 실추된 체면을 조금이라도 회복할 수 있으리라.
“분부대로 포신 내부는 주철을 쓰고 겉에 청동을 두른 시제품들을 제작하고 있사옵니다.”
“시제품, ‘들’이요?”
“그러하옵니다. 각기 주철과 청동의 비중을 달리한 것으로, 양산에 앞서 최적의 비율을 알아내고자 하옵니다.”
이때다 싶었던 김신국이었으므로, 왕은 물어보지 않았으나 각 시제품의 특징을 열거해 나간 뒤 결론 지었다.
“다수의 시제품을 제작하고 시험하는 데 다소간의 비용은 발생하겠으나, 금속의 비율에 따른 추이를 파악할 수 있으니 장기적으로는 큰 이익이 될 것이옵니다.”
뒤늦게 비용이나 안전을 개선한 개량형을 도입한다고 쩔쩔매지 않아도 되고, 훗날 다른 대포를 생산할 때 지금 실험을 참고한다면 크게 도움 되리라.
“마음에 드는군요.”
“서둘러 결과를 가져오겠습니다.”
김신국은 자신에 차서 말했다가, 자신의 자신감이 무엇의 반동인지 흠칫 깨닫고는 덧붙였다.
“……또한, 새로운 염초 생산법 역시 성저십리에 한적한 공간을 마련하여 마저 시험하겠나이다.”
“알겠습니다. 계속 수고해 주세요.”
김신국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삼켰다.
이것으로 체면이 조금은 회복되었을까?
그런 안일한 생각도 잠시 들었으나, 화제가 갑자기 홍이포로 전환된 이유를 짐작한 김신국은 도리어 민망할 따름이었다.
정녕 체면을 회복할 방법은 없는가?
그건 아니었다.
“기대되는군요. 병조판서가 비용과 안정성을 모두 잡은 소형 홍이포를 개발해 내고, 새로운 염초 생산법도 거듭 실험해서 최적의 절차를 완성할 때가요.”
“……신 역시 그러하옵니다.”
“그때가 되면 누군가가 병조판서의 오명을 입에 담으려고 할 때, 썩어나게 많은 화약과 대포로 머리통을 날려 버리기 전에 닥치고 할 수 있을 테지요. 판서께서 말입니다.”
왕이 덧붙인 말에 김신국은 미소 지었다.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서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김신국만이 아니라 왕 역시 진정으로 바라는 미래였고, 동정이나 배려심으로 한 말이 아니라 목적과 목표를 정해준 것이었으니까.
그에게 달리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나 망신과 오명으로 혼란했던 김신국이기에 뻔한 소리가 도리어 명확하게 다가왔다.
길이 밝혀졌다면 따라갈 따름이다.
* * *
변탕 대감은 장안의 화제거늘, 그와 독대한 이야기를 하는데도 들어주는 사람의 반응이 영 좋지 않았다.
딴에는 적적함을 달래주기 위함이었는데 말이다.
“흥미롭지 않으십니까?”
진지하게 물어보니 대비는 수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흥미고 나발이고 식사 중이오.”
“귀로 식사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대비는 그걸 말이라고 하냐는 듯, 경멸 어린 눈초리로 말했다.
“주상께서는 자신의 언행이 악질적인지는 않은지 재고해 보셨으면 하오.”
“에이, 그럴 필요 없습니다.”
“나에게는 있어 보여서 하는 말이오.”
“소용없습니다. 설마 제가 제 발언이 악질적이라는 걸 모르겠습니까? 저, 그렇게 뻔뻔한 사람 아닙니다.”
당당하게 말하니 대비는 꿀이라도 먹은 것처럼 입술이 딱 붙었다.
그리고 눈을 가늘게 뜬 채, 슬쩍 몸을 빼고서 말했다.
“뻔뻔한 사람 같소만…….”
“오해입니다. 다 대비께서 적적하지 말라고 그러는 거지요. 공주와 부마가 왔을 때 뒤에서 열심히 저를 욕할 수도 있고요.”
평소에는 워낙 바른 생활 사나이라서 이렇게 일부러 흠집을 만들어주지 못하면 뻔한 소리만 나올 거 아니야?
주상이 아주 착하다, 아주 공손하다, 자상하고 이타적이다, 배려심이 차고 넘치더라…….
그런 당연하고 뻔한 소리만 해봐야 금방 질리게 마련이지.
“그러다 안 좋은 소문이라도 퍼지면 나를 숙청하실 게요?”
“설마요. 저를 어떻게 보시는 겁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저와 대비마마 사이인데요!”
나의 호언장담에도 대비는 팔짱을 끼고서 PTSD 환자 같은 발언을 했다.
“이전에도 아들에게 배신당한 적이 있어서.”
“마음의 상처를 입으실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대비의 눈빛이 마치 ‘솔직하지 않았던 적은 있고?’ 하는 느낌이었다.
“대비마마께서는 소싯적 원한을 많이 접어주셨지요. 제게는 감사한 일입니다.”
손에 가슴을 얹고서 말하니 대비가 물었다.
“내가 상처받을 만한 발언은 아닌 듯하오만?”
“아직입니다. 조선 말은 끝까지 들어주셔야지요. 또한, 대비께서는 제가 과중한 업무로 생긴 울화를 잘 받아주시지요. 마찬가지로 감사한 일입니다.”
대비는 뚱한 얼굴로 답했다.
“받아주지 않을 방도가 있었다면 아니 받아주었을 거요. 주상의 표현대로,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그것이 아주 결정적인 부분입니다. 대비마마께서는 제가 지랄 맞게 굴어도 거부권이 없으시지요…….”
정치적인 영향력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번처럼 폐세자나 폐주에 관한 일이라면 꽤 목소리에 힘을 실을 수 있지만, 다른 안건에서는 거의 전혀 없는 수준이지.
그래서 나는 대비 때문에 걱정할 게 없었다.
“흐음, 과연 마음에 상처가 되는구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부디 이 꽉 깨물고 있으셨기를 바랍니다.”
“나 역시 주상께 이 꽉 깨물 수 있게 한다면 참으로 좋을 터인데……. 쯧.”
“진짜 폭력을 행사하는 것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저와 대비마마 사이니까요. 후환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와…….”
“나 사이니까?”
“그렇습니다.”
“명심해 두겠소이다.”
“그런데 제가 어디까지 말씀드렸던가요? 아! 똥물 졸인 가마솥에 흰 결정이 묻어나니 이것이 진짜 염초인지 아닌지 검증할 필요가 있었다고 했었지요. 그런데 그 방법이 맛으로…….”
“주상?”
“예.”
“밥상 엎어버리기 전에 닥치시오.”
지금부터가 재밌는데.
배움이 빨라도 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