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명군이 되다 111화
일거리를 떠안게 된 김육이 심경 복잡한 얼굴로 물러났고, 나는 그간 경청만 하였던 객에게 물었다.
“세자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강원도와 마찬가지로 수운을 최대한 이용하되, 그렇지 못한 곳에서는 조금이라도 고생을 덜 방편을 구상하겠사옵니다.”
“어디 구상해 보거라.”
대답이 늦어져도 괜찮다는 의미로 어좌에 늘어졌다.
세자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한참을 고심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막 던져진 화두일 뿐만 아니라, 쉽게 해결될 문제였다면 지금까지 공물을 받지도 않았다.
세자의 대답은 오히려 빠른 편이었다.
“수운의 효용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는 세미 대신 포를 거둠이 어떻겠사옵니까?”
“운송이 부담된다면 부담되지 않는 물목으로 대체하겠다는 전략이구나.”
“예.”
“그렇다면 다시 공납의 제도로 회귀하는 셈이 아니냐?”
공납의 의의였다. 세미의 운송이 부담되고, 어차피 중앙에서도 각지에서 나는 고가치 특산품을 구해야 하니, 산지에서부터 특산품으로 납세를 갈음하면 모두가 이롭지 않겠느냐는 거다.
발상은 합리적이다.
탐욕과 세월이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았을 뿐이지.
선혜법은 부패할 대로 부패해버린 공납제를 엎어버리고 원래의 방식으로 돌아가자는 제도다.
“공납의 폐단은 말단의 백성들에게 그들이 쉽게 구하지 못하는 물목을 세금으로 거둔다는 데 있사옵니다.”
“하지만 포는 백성이라면 누구나 만들 수 있으니, 납공의 폐단을 일축하겠다는 선혜법의 의의에도 부합한다는 말이구나.”
“그러하옵니다.”
대답에 막힘이 없으니, 이미 이 부분을 고민해 보고서 답한 모양이다.
“총명하구나.”
“……아니옵니다.”
세자는 얼굴을 붉히고서 덧붙였다.
“누구나 할 법한 사소한 생각이옵니다.”
“그 사소한 생각들이 뭉쳐서 거대한 진전을 이뤄내는 법이지. 중원의 제국도 무수한 인명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중원에서도 가장 앞에 서는 인명이 있다.”
“황제를 이르시옵니까?”
“그래. 네가 떠올린 그 사소한 생각이 그렇다. 호조에 전해두마.”
세자는 내가 추켜세워주는 게 민망했던지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이유 없는 칭찬도 아니거늘.’
세자가 말한 대로 되기 때문이다.
운송이 힘들어지면 품이 더 드는 건 둘째치고, 상품의 가치가 훼손된다. 노상에 더 오랫동안 노출되기 때문이다.
하물며 세미는 식량. 비바람을 맞으면 금세 상하고 썩어버린다.
그래서 하삼도 내륙 지방과 강원도 영동은 취급이 훨씬 쉬운 목면과 삼베로 세미를 대신했다.
“제도의 단초를 생객해낸 건 좋지만, 뒤따르는 고민과 실행이 없다면 의미가 없다. 그러니 사람을 부려 이루게 하되 용인과 감독에 힘써 네 뜻이 곡해되거나 좌절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그것이 구중궁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마저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경우기 부지기수였고.
“명심하겠사옵니다.”
“그래. 오늘은 이만하면 되었다. 돌아가서 푹 쉬어라.”
허락에도 세자는 선뜻 물러나지 못하고 눈치를 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느냐?”
“……시강 때 한 강관講官이, 아바마마께서 소자를 아무리 총애하셔도 끊임없이 사양하고 겸손해야 한다 당부하였습니다.”
당연한 소리를 어째서 새삼스럽게 세자에게 했을까.
세자는 누가 그 같이 말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저 강관이라고 얼버무렸을 따름이다.
‘자신의 이실직고로 불이익이 갈까 염려하는 걸까.’
그렇다면 참으로 가상하고 세심한 생각이었다. 물어본다면 알려줄 것을 알기에 묻지 않았다.
“강관이 그리 말한 이유는, 부모의 사랑에도 도리어 비뚤어진 사례가 많기 때문이겠지.”
태종만 하여도 양녕대군을 극진히 사랑하였으나 결과는 좋지 못했다.
양녕대군을 대신하여 왕이 된 사람이 누구인지를 생각해 보면 후대로서는 차라리 잘된 일이지만 당시 태종의 심정은 어땠겠으며 양녕대군의 기분은 어땠을까.
갈수록 엇나가는 세자의 모습에 눈물까지 흘리며 하소연한 태종이다.
“그러나 나는 세자가 그런 사례에 해당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수신하고 있는데 어떻게 방종할 수 있겠느냐?”
나는 세자를 불러 곁에 앉혔다.
“그것을 강관이라고 모르지는 않았을 테니, 어쩌면 세자에게 수신보다 각오를 더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말에 세자가 시선을 내렸다. 세자 역시 짐작하고 있었던 것일까.
‘사람의 마음은 갈대와 같지…….’
제삼자의 눈에는 왕이 아무리 세자를 사랑할지라도, 그것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다.
이 역시 매우 흔한 일이기 때문이다.
불투명해진 미래에서는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그러했으며, 인조 역시 눈앞의 세자에게 그러했다.
“걱정하지 말아라. 이 아비가 때로 변덕을 부리긴 하지만, 세자에게 그럴 생각은 없다.”
확언하니 세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딴에는 진지하게 고민했던 모양이다. 아비의 사랑이 한 군산에 가시지는 않을까, 하고.
나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조금 장난기를 섞어 말했다.
“세자가 이처럼 아비의 사랑을 의심하였으니, 내 세자가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못하도록 벌을 해야겠다.”
“……예?”
나는 세자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단단히 끌어안고서 뺨따구를 빨아들였다.
* * *
흡성대법이 펼쳐진 뒤, 세자는 진이 빠진 채 한쪽 뺨이 빨갛게 되어서 빠져나갔다.
이만하면 나의 사랑이 한결같다는 것을 깨달았겠지.
짬이 난 틈을 타 호조판서에게 보낼 글을 썼다.
현재의 호조판서는 인조조차 체직하지 못하고 십여 년을 연달아 호조판서로 기용한 김신국이다.
전쟁이 마무리되었으니, 그의 능력을 계속 이용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곳에 배치해둘 필요가 있었다.
반대로 빈 병조판서의 자리는 그간 호조판서를 지내며 군축을 주장했던 이광정이 맡았다. 북방군의 편성으로 과도해진 군부를 효율적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어서였다.
물론, 돈을 아끼는 것도 좋지만 칼질을 남발하면 도리어 조직이 망가질 수 있으니 세심한 조율을 거듭 당부해 두었다.
“이만하면 호판에게 보낼 글은 됐고…….”
직인을 찍어 마무리한 뒤 승전색을 불렀다. 내가 직접 호판에게 가져다줄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과자나 바스락거리면서 여유를 즐기고 있으니 승전색이 찾아왔다.
“들어오세요.”
그리고 윤허와 함께 들어선 사람은, 승전색이 아니었다.
“전하.”
“예조판서가 아니십니까?”
남이공이었다.
난처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그가 질색하고서 입궐까지 할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명나라의 사신이 방문했습니까?”
“그러하옵니다.”
남이공이 권자를 바쳤다. 철산부사의 장계였다.
‘이쪽으로 왔군.’
명나라는 그동안 철산부 가도의 동강진을 조선과의 창구로 여겨왔으니 익숙한 길로 온 모양이다.
하기야, 사신들을 태운 배로 새로운 바닷길을 개척할 필요는 없었겠지. GPS도 없는 세상이다. 망망대해에서 조난이라도 발생한다면 그대로 물귀신행이다.
장계 서두에는 사신들의 신상부터 기재되어 있었다.
‘사례감 태감 왕민정王敏政과 어마감 태감 호양보胡良輔…….’
태감이란 명나라 환관기구들의 장관을 뜻한다. 그중에서도 사례감은 모든 환관을 아우르는 우두머리격 기구다.
어마감은 황제의 말 등을 관리하는 기구.
“예판께서는 두 사람에 대해 아시는 바가 있습니까?”
“왕민정과 호양보는 간신 위충현魏忠賢의 당여로, 매우 탐욕스러우며 위충현에게 수 만 냥의 은을 바쳐 지금의 자리를 샀다고 하였사옵니다.”
남이공은 (비교적) 최근 명나라를 다녀왔다. 그때 손가락만 빨지 않았다는 듯 남이공이 덧붙였다.
“또한, 명나라에서는 조선을 오가는 사신행이 거금을 쥘 기회로 파다히 알려져 있사옵니다. 심지어는 일개 시종의 자리까지 값이 매겨져 있어 위충현에게 그만큼의 뇌물을 바쳐 한다고 하였으니, 사신의 자리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옵니다.”
이미 전적이 있는 왕민정과 호양보다.
태감의 자리까지 돈을 주고 샀다는데, 설마 사신의 자리라고 능력에 따라 기용되었을까.
“두 놈 딴에는 값을 치렀으니, 이제 벌이를 해야겠다고 작정했겠습니다.”
“…….”
남이공은 감히 속단하지 않았으나 침묵이 곧 대답이었다.
“나라의 사정이 매우 곤궁합니다. 고작 재물이나 거둘 요량으로 사신을 자원한 작자들을 우대할 여유는 없어요.”
“하오나, 그런 의도로 자원한 자들이온데 예물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앙심을 품고 양국에 오해를 초래하지 않겠사옵니까?”
“정녕 두 태감이 그리한다면 역적이나 다름없지요. 지금 중원의 명운이 바람 앞의 등불 같은데, 고작 사익을 위하여서 외교를 농간한다는 게 말이나 되겠습니까.”
“주상전하의 하교가 백 번 지당하오나…….”
남이공은 난처한 낯을 한 채, 차마 말을 끝맺지 못했다.
“예판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것인지 나도 압니다. 세상 일이라는 게 옳다고 항상 옳지만은 않으며, 글렀다고 그르지만은 않지요.”
남이공은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숙였다. 간언이랍시고 왕에게 편법을 주지시켰으니 선비로서는 부끄러운 짓을 한 셈이었다.
그러나 그리 틀린 말도 아니었다.
“세상 사람이 다 성인 같지 않은데 별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왕민정과 호양보는 성인들과는 대척점에 선 인물들이다.
그리고 그런 자들 앞에서 대개의 조선 왕들은 약한 모습을 보여왔다.
광해군이나 인조처럼 무너진 제 입지를 붙들고자 명나라의 권위를 빌려야만 했던 암군도 그랬지만, 반대로 그럴 필요가 없었던 왕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대 패권국의 입장이 사신들의 보고에 따라 달라지는데, 우대하지 않을 도리가 있습니까?”
남이공이 착잡한 낯으로 끄덕였다.
이에 나는 단언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
“전제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명나라는 이제 일대 패권국이 아니에요. 천하는 송과 요, 금이 대치하였던 시절처럼 양강이 줄다리기를 하는 상황입니다.”
“하오나, 명나라가 끝내 후금을 멸하고 질서를 가져온다면 조선은 오랑캐들과 야합한 불령한 변방으로 인식되지 않겠사옵니까?”
“송나라가 끝내 질서를 가져왔던가요?”
남이공은 답하지 못했다.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하지만 하나만은 확실하지요.”
“…….”
“양강이 대립하였던 시절 고려가 번성할 수 있었던 건 송나라와의 친교를 갈구해서가 아니라, 요를 상대로 실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여요 전쟁에서 당시 요나라는 요 황제 성종聖宗이 직접 대군을 이끌고 친정하였으나, 끝내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막대한 손실만 입은 채 패퇴하고 말았다.
이는 요나라를 밀어내고 중원 북부를 차지한 금나라도 인지하여 고려를 함부로 공격하지 못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조선은 두 제국의 알력다툼을 자국이 번창할 기회로 여겼고 한반도 역사상 가장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과연 고려가 요 성종을 패퇴시키지 못했다면, 송과의 친선을 갈구하였어도 당대의 성세를 이뤄낼 수 있었겠습니까?”
천부당만부당할 가정이다.
그러나 남이공은 답하지 못했다.
“그러면 내가 예판께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하문하시옵소서.”
“과연 명나라 황제와 조정이 환관들이 용돈 많이 타먹어서 기분 좋았다는 후기와, 후금군의 피로 젖어 검붉게 변한 정람기 깃발 중 어느 쪽을 더 반기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