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명군이 되다 118화
개천 정비의 필요성을 백관들 앞에서 강변하긴 했으나, 이실직고하자면 대단한 열의가 있던 건 아니었다.
단지, 매해 여름이 될 때마다 경운궁까지 번져오는 악취에 벼르고 있었을 뿐이다.
아무리 조선시대라지만 왕이 시궁창 냄새를 계속 맡아야 하나?
그러다 정람기와 함께 후금의 기세가 꺾였다. 지난 전쟁에서 억류된 포로들이 마저 송환됐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찾아온 명나라의 사신들도 염가에 제법 만족시켜서 돌려보냈다.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했을 즈음엔 추석도 지나고 비가 멎는 겨울을 앞두고 있었다.
곧장 궁인들을 시켜 경회루 연못의 수원을 막고 바닥에 깔린 침전물을 걷어냈다. 제법 할만해 보였다. 신하들 앞에서 개천의 정비를 거론했다.
그로부터 고작 두 달 지났다.
“벌써 준천사업이 끝날 줄이야.”
벌써, 라고 하기엔 조금 이른 시점이겠다.
사업은 아직 완수되지 않았다. 동대문인 흥인지문興仁之門의 남쪽, 개천이 성외로 빠져나가는 길목인 오간수문五間水門에서 마지막 작업이 이뤄지는 중이니까.
그러나 전체 진척상황을 본다면 벌써라 칭해도 좋았다. 분명 삼 년을 기약했는데 두 달만에 끝을 보고 있었다.
“백성들이 수고로움을 감내한 덕이옵니다.”
김류가 선선히 말했다. 평소 누군가를 칭찬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물며 자신이 맡은 사업에서는 더더욱 그럴 터였다.
하지만 삼 년을 전제한 사업을 고작 두 달 만에 완수한 덕인지 어울리지 않게 백성들을 치하했다.
“심지어는 소경까지 일신의 불편함을 감내하고서 한 팔 걷어붙였으니, 백성들의 노고가 아주 가상합니다.”
소경은 시각 장애인을 의미한다.
과연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준천 사업에 일조할 수 있을까 궁금했지만, 직접 나와서 보니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소경들은 서로를 줄로 묶어 간격을 유지한 채 땅을 갈아엎고 있었다.
앞서 소가 쟁기를 끌면서 지나간 자리였다. 괭이가 갈라진 토사를 마저 찍어내니, 장대한 세월 사암처럼 굳어버린 개흙이 잘게 부스러졌다.
“백성들이 열의로 지난한 사업을 단숨에 진척하였으니, 조정은 반드시 신의로 보답해야 합니다. 비슷한 일로 금세 사람들을 다시 귀찮게 하지 않음으로써 말이지요.”
그러러면 평소에 개천을 잘 관리해야 했다.
“태종께서 개거도감을 설치하고 한양의 물길을 정비한 지 이백 년이나 흘렀습니다. 그 결과물이 어떻습니까?”
오물에 찌들어 생활 쓰레기와 함께 축적된 개흙의 색상은 부자연스러우면서도 불길했다.
이런 강바닥에서 아낙은 빨래를 하고 아이들은 멱을 감는다. 21세기 위생관념으로는 광기 수준의 만행이다.
그러나 그같은 행위를 무작정 금지하기란 어렵다. 백성들이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강을 최대한 깨끗하게 유지하는 방법밖엔 없었다.
“토사와 오물은 강바닥과 수문에 계속 쌓일 것이니, 같은 사업을 다시 일으키지 않으려면 평소에 개천을 정비하는 인원을 두어 정기적으로 강바닥과 수문을 청소해야 합니다.”
세자에게도 했던 말이었다.
고작 두 달만에 내가 직접 시행하게 될 줄 몰랐던지라, 뒤돌아보면 아들에게 늘어놓은 장광설이 민망했다.
그래도 준천의 필요성은 제대로 인식했을 테니 나의 지시를 번복하는 실수는 벌이지 않겠지.
“준천도감은 사업이 끝난 다음에도 곧장 혁파하지 말고, 전례와 절차를 책으로 출간하여 후대가 개천 정비의 필요성을 망각하는 일이 없게 하고, 또 만의 하나 때 참고할 교범으로 삼아야겠습니다.”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또한…….”
나는 미래의 지혜를 조금 빌려오기로 했다. 21세기는 아니었다.
영조는 개천이 한계 이상으로 악화되자 21만 5천 명의 인력과 막대한 예산을 들여 대대적으로 준천사업을 일으켰다.
그 과정에서 개천을 평소 잘 정비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한 한 사람이 꾀를 냈다.
“개천을 관통하는 각 다리마다 글자를 새긴 표석을 세워두세요.”
“글자……, 말이옵니까?”
“그것이 하나라도 보이지 않게 된다면 토사가 많이 쌓였다는 의미이니, 개천 정비의 필요성을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 물어보았던 김류가 짧게 감탄했다.
“받들겠사옵니다.”
* * *
개천의 준설이 마무리된 뒤.
새해를 앞두고 동지사冬至使가 파견됐다.
정사로는 본래 만만한 남이공을 염두에 두었으나, 명나라 사신 접대 때 의외의 성과를 보여주었으므로 대신 다른 사람을 보냈다.
이번 동지사는 동지에 늘 보내지던 정례사행의 의의 외에도 명나라에서 세자 책봉을 공인한 것에 대한 사은사謝恩使, 신년 축하를 위한 정조사正朝使의 역할을 겸했다.
육로가 끊겨 위험한 바닷길로 내왕하게 된 만큼 사행을 압축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보름이 지난 시점에 철산부사가 치계했다.
명나라에서 사신이 방문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신의 신분이 매우 특이합니다.”
과연 그러했다. 영의정 이원익이 마저 말했다.
“근자에 조선을 방문한 사신은 대개 환관으로, 학사는 폐조 때 조사詔使 유홍훈과 양도인이 방문하여 황제의 등극을 알린 것이 마지막이었사옵니다.”
“다시 학사가 방문한 모양이군요.”
“그러하옵니다. 본래 지내던 관직이 병부좌시랑으로, 아조의 병조참판에 상응하는 위치인데 사실상 병부상서를 대신해 파견되었다 봐도 무방할 것이옵니다.”
“병부상서가 자리를 비울 수는 없을 테니 말이지요.”
“예에.”
사신의 원래 관직이 시사하는 바가 컸다.
명나라에서 군무를 담당하는 병부에서, 무려 차관에 해당하는 좌시랑이 직접 조선을 방문할 이유란 특정한 범주에 있지 않겠는가?
“사신이 안주부에서 북방군을 방문할 수도 있겠습니다.”
지난 번 방문한 왕민정과 호양보에게는 의주부 전투에서 취한 전리품을 들려주었다.
두 사람에게는 각기 아민과 자송합의 무구를, 황제에게는 정람기 깃발을 보냈는데 여러 사람이 돌려보았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렇게 명나라에서 조선을 향한 의심이 거둬졌다면, 그 다음에는 어떤 행보를 보여줄까?
‘정람기를 격파한 조선군 전투력의 비결이 궁금하지 않을까.’
중원의 문명에서 모자라거나 뒤떨어지는 건 없다고 자신하는 명나라지만, 사르후 전투 때 된통 당하고서 요동을 여전히 수복하지 못하고 있는 명나라다.
이미 털 붉은 오랑캐들에게서 화창火槍(조총)과 홍이포를 수입하는 지경 아닌가.
설령 저들의 변방으로 여기는 조선이라 할지라도 후금 격퇴에 도움 될 만한 문물이나 기술이 있다면 기꺼이 (그러나 기고만장한 태도로) 수입하고자 할 터였다.
‘절대로 안 되지.’
척계광의 기효신서에서 탈피하여 살수들을 장창방진으로 무장한 건 세계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그리 선진적인 전술은 아니다. 원형은 기원 전부터 존재해 왔으니까.
북방군의 실질적인 전투력은, 장창방진 뒤에서 발생한다.
살수들의 규모와 정비례하는 사수와 포수들이 끊임없이 투사하는 막강한 원거리 화력.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시대를 앞선 화약 생산 및 보관 방법과 소형화해 양산한 홍이포였다.
명나라에서 이러한 것들을 도입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동북아의 균형이 깨지겠지.’
그리고 동북아의 균형이란 조선이 가장 큰 이득을 누릴 수 있는 구도다.
후금은 정람기를 손실하고도 보복하지 못하고, 명나라는 주청사를 보내지 않아도 알아서 왕과 세자를 책봉하여 환심을 갈구한다.
평소라면 불가능한 상황.
지금의 구도를 상실한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아찔했다.
“북방군 원수들에게 사신 및 잡인의 군영 출입을 엄금하게 하세요.”
“예에.”
“또한, 서둘러 원접사를 파견하여 사신 일행이 일탈하는 경우가 없도록 주의해야겠습니다.”
말이야 주의한다는 거고, 실제로는 감시하겠다는 뜻이었다.
이원익은 이견이 없다는 듯 손을 모아서 허리 숙였다.
* * *
그로부터 또 며칠이 흘렀다.
병부좌시랑의 방문 목적이 어쩌면 북방군 정탐만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무에 종사한 식견이 정탐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으나, 반대로 너무 많은 경각심을 산다. 나의 대응만 해도 그랬다.
‘고작 강바닥 한 번 쓸어냈을 뿐인데 곧바로 평지풍파인가?’
양강의 구도는 부스러기를 많이 주워먹을 수 있다는 게 좋지만, 고래 사이에 낀 새우 신세를 근본적으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도, 단일 제국이 중원을 차지하고서 주변에 저들의 패권을 완고하게 강요하는 것보다는 낫다.
그래서 앞으로의 대처가 중요하다.
마치 지금 상황처럼.
“세자빈을 간택해야겠습니다.”
간만에 처소를 찾아온 중궁이었다.
“……벌써, 말입니까?”
“세자가 장성하여 책봉례와 함께 관례를 치른 지 오래인데, 아직 배필을 맞이하지 못하였으니 종실의 완석惋惜(안타까움)이 된 지 오래입니다.”
새해가 되면서 세자의 나이도 한 살이 늘어났다.
그런데 그게 열넷이다. 미래로 치면 이제 중학교 1학년이다.
“세자가 아무리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해도, 본질은 여전히 어린아이거늘 책봉례를 앞두고 형식적으로 행해진 관례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역사를 상고한다면 세자는 당장 세자빈을 간택하더라도 늦은 편입니다.”
용상 옆자리에 앉은 중궁이 빤히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순회세자順懷世子는 열 살에 황씨를 맞이했으며, 인종대왕 역시 순회세자와 같은 춘추에 인성왕후를 맞이했습니다.”
“…….”
하필이면 예시를 들어도 단명한 순회세자와 인조라니.
광해군이나 이지는 폐서인되었으니 어쩔 수 없긴 하다.
“그런데, 중궁의 말씀이 마치 외워두신 듯합니다. 혹 왕사를 직접 확인하셨습니까?”
“……왕실의 종부宗婦입니다. 가문의 역사에 관심이 없겠습니까.”
대답이 늦고 눈치도 은근히 보는 모습이 곧 말의 진위였다.
그래서일까. 중전은 민망했던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지 않았다.
아마도, 중신 몇이 중궁전에 입시하여 세자빈 간택을 주청한 모양이다.
이전에도 몇 사람이 연망하여 내게 세자빈 간택을 주청한 적이 있었다.
나는 독사 같은 요즘 처자들에게 금지옥엽인 세자를 내어주고픈 마음이 추호도 없었으므로 단호히 불윤不允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이제 중학생 1학년이야, 이 양반들아.’
더군다나 세자로서 후계자 수업으로 바쁜 몸이다. 가정까지 책임지게 할 수는 없었다.
……세자가 원한다면 모를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드니, 세자가 중궁전을 오가는 신하들의 목적을 몰랐을까 싶다.
서궐의 주인은 세자이니 입출입은 당연히 알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내색하지도 않았고, 끝내 중궁이 찾아와 간택을 거론할 때까지 중신의 출입을 금지하지도 않았다.
‘이 녀석, 설마…….’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어쩌면 중궁에게 세자빈 간택을 주청한 사람이 신하들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신하들에게 단호히 퇴짜를 놓은 건 중궁도 이미 알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찾아와서 마음을 돌리고자 했다.
‘괘씸하네……?’
자신이 이제 애가 아니라고 투정이라도 부리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