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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명군이 되다-133화 (133/380)

인조, 명군이 되다 133화

왕명이 떨어지고서 병조와 호조는 곧장 당일부터 싸움이 벌어졌다.

주제는 예산이었다.

한때 열성적으로 군축을 주장했던 전 호조판서, 현 병조판서 이광정은 호조에서 충분한 예산을 배정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대로 북방군 신설을 맡아 부지 및 시설의 확보를 맡고 피역자들이 평양부에 집결할 때까지 발생할 숙식 비용으로 골머리를 앓았던 전 병조판서 현 호조판서 김신국은 병조가 너무 방만하게 예산을 잡아놓았다고 성토했다.

‘……뭐지, 서로에게 당한 걸 그대로 돌려주는 중인가?’

그래도 타협점이나 타개책을 전달하면 같은 소리가 또 나오지는 않았다.

국책을 시도하면 퇴행이나 정체가 흔히 발생하는데, 아닌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다들 이미 해봤던 일이라 익숙한 덕이겠지.

“……중앙군의 이름이라.”

딱히 중요하지는 않아서 미뤄둔 건이다.

이런 관념으로 임해서일까.

저번 신군新軍 창설 때는 이름을 너무 정직하게 지었다. 북방군이라니.

객관적으로 평가해보면 좋은 작명은 아니었다.

개설 목적이 이름만 봐도 너무나 분명했으니까. 후금에서는 분명 마뜩찮게 생각했을 거다.

‘인조 때 부대 이름을 사용하는 건…….’

썩 내키지 않는다.

어영군御營軍. 수어청守御廳. 총융청摠戎廳.

무능한 훈련도감과, 반정의 수단이었던 지방군 양쪽 다 믿지 못해 창설한 군대다. 친위대의 성격이 더 짙다.

이름만 봐도 그렇다.

어영군과 수어군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어御는 왕을 의미한다.

왕의 군대御營軍. 왕을 수호하는 관청守御廳.

총융청의 명칭은 중립적이나 창설 의의는 같다. 이괄의 난 직후 더욱 기존의 군대를 믿지 못하게 되어, 속오군束伍軍을 분할해 창설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또 믿지 못해서 만든 게 노골적인 명칭을 가진 수어청이고.

‘그래서 만들어진 군대의 명칭을 답습하고 싶진 않단 말이지……. 그냥 부르던 대로 중앙군이라 하면 안 되나?’

신하들에게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학을 떼는 모습이 그려졌다.

차라리 이건 어떻냐면서 나보다 좋은 작명 감각을 발휘하겠지.

그 결과로 인조가 사용한 명칭이 채택된다면, 차라리 북방군처럼 뻔한 의도가 보이는 이름으로 짓느니만 못했다.

‘그럼, 중립적이면서도 익숙한 명칭을 써볼까.’

* * *

“수방사首防司가 어떻겠습니까.”

조회 때 적당한 틈을 타 물어보니 영의정 이원익이 곧장 되물어왔다.

“수방이라 하심은, 지킬 수守에 막을 방防이옵니까?”

수도방위사령부를 축약한 수방사를 말한 건데.

꿈보다 해몽이라고, 영의정이 알아서 잘 끼워맞췄다.

굳이 그게 아니라며 축약어 자체로는 어색한 수방사首防司를 고집할 이유는 없겠지.

“그렇습니다.”

“명칭이 역할에 걸맞으니, 적합하다고 사료되옵니다.”

고개를 들어 제신을 돌아보았으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심심할지언정 나쁘지 않다는 걸까.

“그럼 신설될 중앙군의 명칭은 수방사守防司로 하겠습니다.”

“……전하.”

김신국이었다.

“말씀하세요.”

“신이 유일하게 우려하는 점이 있다면……. 수방사의 병력은 본디 군역을 기피했던 자들로, 적을 맞아 장렬하게 싸우기 어렵사옵니다.”

“북방군도 마찬가지였을진대, 해적이나 북적을 상대로는 분전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도원수인 장만과 부원수인 정충신이 잘 조련했기 때문이지 병사들의 자질이 뛰어나서는 아니옵니다.”

이광정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북방군에서 부원수를 빼오자는 말이외까?”

연이어 병조참판 이귀도 나섰다.

“아니될 말이오! 정충신은 병사들을 매우 잘 조련하고 적을 맞아서도 열심히 싸우는 인물인데, 그를 북방군에서 빼내면 국경은 누가 지키겠소이까!”

도원수인 김충선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듯했다.

하기야, 장만의 후임으로 김충선이 내정되었을 때 반대했던 이귀다.

그래서 잘 달래주어 찬성하게 했는데, 이번에 하는 말을 들어보니 속으로까지 설복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장만을 다시 원수로 기용하는 게 어떻겠사옵니까?”

이광정이 제안했다.

그 역시 정충신을 북방군에서 빼내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 모양.

대신, 정충신과 함께 일했으면서도 지금은 놀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장만은 북방군 도원수로서 재임하는 동안 애써 사임하려 들었는데, 다시 원수로 불러들인다고 기꺼워하겠습니까?”

“전하께서 부르신다면 응당 응하는 것이 신하 된 도리이옵니다.”

“말을 강으로 데려갈 수는 있어도, 물을 억지로 마시게 할 수는 없지요.”

그러자 이귀가 끼어들었다.

“그 점에서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나타나는 것이옵니다. 짐승이 아니라 도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어명이 떨어졌을 때 기꺼움의 여부를 고민하기보다 명령부터 수행할 것입니다.”

장만도 정이품까지 지낸 전직 재상인 만큼 이 자리까지 귀가 닿을 터다.

여기에서 말하는 것과 대놓고 면전에서 말하는 것이 별반 다르지 않는 셈이다.

그런데 ‘왕명을 따르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라고 거의 공표를 해버렸으니…….

‘이래서야 더 장만을 시키기 부담스럽잖아.’

그리고 내가 장만을 북방군 원수로 기용한 이유는, 그의 능력보다는 정충신의 재량이 충분히 발휘할 여건을 만들어줄 적임자였기 때문이다.

장만의 의견이야 잠깐 차치하더라도, 그를 재차 원수로 삼겠다면 부원수부터 고려해야 했다.

‘한명련은…… 함경도를 계속 지키는 게 맞다.’

후금이 변칙적으로 평안도가 아닌 함경도에서 쳐들어온다면 대응해 줄 능장이 필요했다.

‘인간성 면에서는 당장 수방사에 필요한 적임자도 아니고.’

끝내 역적이 된 건 맞지만, 납득할만한 계기는 있다.

한명련은 인조가 반정으로 즉위한 직후 사직을 요청했으나 반려되었고, 억울하게 이괄과 함께 반역을 기도했다는 혐의로 압송되던 중 이괄군에 구출되어 합류했다.

놓아달라는 데 놓아주지도 않고 사람을 역적으로 만들어버렸으니 당연히 칼을 거꾸로 쥘 수밖에 없다.

마치 삼국지연의의 위연처럼 ‘네가 나를 역적으로 몰아갔으니, 그 奀같은 역적 노릇을 내가 해주겠다’가 된 것이다.

그러나, 참작이 가능하다고 수방사에 필요한 인재상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김신국이 건의했듯 수방사 병력의 출신은 피역자들.

이들을 북방군과 마찬가지로 역전의 용사로 개조하기 위해서는 평범한 사람 이상의 충성심을 가진 인재가 필요했다.

그래서 북방군 부원수로 정충신을 먼저 낙점하고, 그가 재량을 발휘하도록 장만을 원수로 삼지 않았던가.

‘충신이라…….’

당장 눈앞에 보이는 제신은 두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인조와 붙어 반역을 저지른 사람과, 이전의 왕을 저버리고 내게 붙은 배신자들.

이제 와서 책망할 거리는 아니다.

단지 수방사에 필요한 인재를 여기서는 구할 수 없을 뿐이다.

‘……구굉? 그는 분명 충신이지. 하지만 구굉은 군사를 다스려본 경력은 없는데.’

무과 급제자이긴 하나 실제 경력은 목민관에 치중되어 있다.

장연현감, 양성현감, 고창현감 등.

그가 현재 한성부 판윤을 맡은 이유다. 청렴하면서도 처신이 외척답지 않게 적절하다는 점 역시 판윤직에 어울린다.

‘그가 군대 지휘관이 된다면 정충신보다는 장만에 더 가까운 느낌이겠지. 부원수로서는 좋은 조합이 아니다.’

차라리 장만 대신 원수 자리에 기용하는 것이나 고려할 법하다.

아무튼, 썩 마땅한 후보가 떠오르지 않는 관계로 신하들에게 추천을 구했다.

객관적이지는 않겠지만 계속 추천받다 보면 돌덩어리 가운데 옥이 하나쯤은 나오겠지.

“청렴결백하면서도, 하관이나 혹 양민들의 기강을 바로잡아 엄정하기로 유명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자 삼의정과 육경이 기꺼이 저마다 아는 사람들을 거론했다.

막상 귓구멍에까지 와닿는 이름은 잘 없었다. 추천이 한 바퀴 돌아서 이원익이 다시 입을 열기 전까지는.

“충청병사 이완李莞 또한 강직하고 청렴하다는 평가가 있사옵니다.”

여러 사람이 찬탄했다.

그라면 적합하겠다는 듯.

흔치 않게, 이귀 역시 긍정했다.

“이완이라면 믿을만합니다.”

깐깐함을 넘어 편협함까지 쉽게 보여주는 이귀였다. 그의 흔치 않은 신뢰에 여러 사람이 놀라워했다.

이귀는 불쾌해했지만.

‘……이완에 대해서는 사료가 많지 않아서 아쉬웠는데.’

그나마 알려진 바가 의주에서 부윤을 지낼 당시, 패악을 부리던 모문룡의 병사들을 구타했다는 것.

정묘호란 당시에도 의주에 있었기 때문에 전쟁 초기 허무하게 죽었다는 것.

이원익도 고개를 돌리고서 말했다.

“이완은 충무공의 조카이며, 노량해전 때는 전사한 충무공의 유지를 이어 싸움을 승리로 이끈 전공이 있사옵니다.”

좌의정 박홍구도 덧붙였다.

“조실부모한 사정으로, 어려서부터 충무공이 거두어 길렀으니 충무공의 양자와 진배없습니다. 덕분에 잘 배워서 처신에 부족함이 없으니, 군사를 맡기더라도 화근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좋습니다. 장만과 이완을 각기 수방사의 원수와 부원수로 제수하겠습니다.”

신하들은 이견 따위 없다는 듯 일제히 읍했다.

* * *

혁파된 이래 을씨년한 폐가가 되어 최소한의 관리만 받아온 분호조 청사들은, 때마침 신설된 수방사의 본청으로 전용하기 딱 좋았다.

머지않아 해산할 훈련도감의 건물을 사용해도 좋겠지만, 선후는 수방사의 신설이었다.

한양의 방위를 공백으로 둘 수는 없었으니까.

부원수로서 부름을 받고 온 이완은 완고하면서도, 은근히 수척하여 더욱 그러한 기운을 풍기는 낯에 염소 수염을 하고 있었다.

얼핏 먼 미래에서 진짜 이순신의 초상이라며 떠돌았던 그림과 비슷했다.

“내가 경을 부원수로 제수한 이유는 수방사의 병사들을 잘 조련할 인재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

이완은 바닥을 짚고서 허리를 숙였다.

그런 그의 곁에서, 장만은 재차 원수로 불린 게 불만인 듯 입술을 꾹 닫고 있었다.

만약 왕의 앞이 아니었다면 그 입술이 그대로 삼 보 전진해서 툭 튀어나왔겠지.

그러나 노인 학대는 조선의 전통이다. 부릴 이유가 있다면, 부릴 뿐이다. 세종대왕께서 상은 물론 벌의 의미로도 그러하셨기 때문에 후대의 왕들은 좋은 명분을 얻은 셈이다.

왕이 희대의 성군인 세종대왕을 본받아 늙은 신하를 학대하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나. 거기에 이견을 표출하는 건 신성성에 가까운 세종대왕의 권위에 흠집을 내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원수께는 미안하게 되었지만, 그대 역시 수방사의 원수로서 꼭 필요한 인재였기 때문입니다.”

칭찬에 딱딱했던 장만의 낯이 조금 풀어졌다.

그 칭찬, 아끼지 않는다고 밑지지 않는만큼 조금 더 칭찬하기로 했다.

이완에게 말하는 형식으로.

“그대도 들어 알겠지만, 철산과 의주에서 북방군이 대승을 거둔 건 부원수의 역할이 주효했으나 그 전에 원수가 부원수를 든든하게 지지해주지 않았다면 그처럼 놀라운 대승은 거두기 어려웠을 겁니다.”

과장만은 아니다.

멀지않은 과거만 하더라도 지휘관들의 불협화음으로 얼마나 많은 실책과 패전이 양산되었던가.

만약 도원수의 성향이 장만과 달랐다면 낭중지추의 재주를 가진 정충신은 인정받기 이전에 압박과 탄압부터 당했을 거다.

실제 역사에서도 그렇게 되었고.

나는 화룡점정으로 다시 장만에게 일렀다.

“원수는 될성부른 인재의 재량을 지원하고 감독하는 데 천부적인 자질이 있기 때문이지요.”

이건 과장이 맞았다. 장만이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었다면 이괄의 난은 벌어지지 않았을 테니까.

그저 잘 풀어주는 사람일 뿐이다.

‘본인만 좋아하면 그만이지 뭐…….’

낙향한 뒤 영웅담 떠드는 것을 취미로 삼았던 장만이다.

돌아가서 왕이 자신을 이렇게 높게 사고 있더라며, 마음에도 없이 겸양하면서 슬쩍슬쩍 자랑할 게 분명했다.

아마 정충신도 자신이 키운 것마냥 떠들겠지만, 정충신이 고작 그 정도로 못마땅해할 사람은 아니니 상관없겠지.

“두 분, 잘 부탁하겠습니다.”

만족한 장만과 딱딱한 이완이 각기 다른 분위기로 부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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