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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명군이 되다-152화 (152/380)

인조, 명군이 되다 152화

쾅, 콰앙…….

압록강의 섬을 두고 벌어지는 도하전의 포성이 의주까지 퍼졌다.

그럼에도 북방군의 두 원수, 김충선과 정충신 그리고 평안도 병마절도사 이수일과 의주부윤 이경직은 동헌에 모여 태연히 전황을 논의했다.

“당장 강을 넘어오는 후금군은 팔기도, 몽골군도 아닌 명인들로 파악되었습니다.”

“오랑캐 놈들이 점령한 땅의 백성들을 화살받이로 내몰았군.”

“그렇습니다. 섬마다 비축된 화살과 화약을 소진할 용도로, 최소한의 무장만을 들려주고서 내보내는 중입니다.”

그들의 실체나 전의戰意, 본심이야 어떻건 조선군은 몰려드는 적군을 쏴 죽일 수밖에 없다.

“보급품은 전달할 수 있겠나?”

“당장 가까운 섬에는 물자가 전달되고 있지만, 전방에서는 뗏목과 난파한 뗏목, 박살 난 잔해와 물에 빠진 청군 따위로 대혼란이 벌어지는 중입니다. 적절한 보급을 수행하긴 매우 어렵습니다. 강행한다면 똑같이 혼란에 휘말리게 될 겁니다.”

“으음…….”

김충선은 쓰게 침음을 내고는 확인했다.

“섬에서 탈출하는 건 가능하겠지?”

“예. 병사들이 필사적으로 퇴로를 확보할 테니 탈출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물자를 안전하게 수송해야 하는 보급과 제 한 몸만 건사하면 되는 탈출은 난이도가 다르다. 더군다나 탈출은 보급과 달리 나아가는 게 아니라 빠지는 방향이었다.

“상정해 둔 계획이 그저 겉멋만 되지 않아서 다행이군.”

김충선이 말했다.

섬에 주둔한 조선군은 후금군이 지금처럼 대군을 이끌고 온다면 포위당하기 쉬웠다.

그래서 지금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모든 화살과 화약을 소모한 다음 대포는 파기하고 탈출하는 게 미리 상정해둔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 계획이 그저 주둔군의 사기를 보전하기 위한 겉멋에 불과했다면, 얼마나 잔혹한 일인가.

기실, 탈출이 보급에 비해서는 쉽다 뿐 그 자체가 만만하지는 않다는 점에서 병력을 섬에 주둔시킨 것부터가 냉혹한 판단이었다.

그러나 적의 진입을 최대한 지연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처였다.

정충신이 말했다.

“덕분에 북방군과 함경군이 침착하게 교전을 준비하게 되었으니, 사태가 진압된 다음에는 섬에 주둔한 이들에게 후한 포상을 내리시지요.”

“마땅히 그래야지.”

콰광!

근거리에서 폭음이 울렸다.

피탄한 파열음이 아니었다. 의주성에 배치된 낙서포가 적선을 타격하는 소리였다.

이는 그새 후금군이 더 가까워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가야겠군.”

도원수 김충선과 제장은 저마다 앞에 내려놓았던 투구를 챙겼다.

김충선은 턱 끈을 조이면서 일렀다.

“강변으로 떠내려온 후금군은, 무장을 해제하고 항복하지 않는 한 족속 불문하고 모두 처단한다. 그리고 병마절도사.”

“예.”

“북방군은 적의 주공이 진입하는 의주부 방면을 수비할 테니 그대와 관찰사는 각기 서편과 동편을 맡아 적의 조공助攻과 우회 시도를 차단하시오.”

“받들겠습니다.”

“화살받이의 용도가 우리의 물자를 낭비시키는 것만 있지는 않을 테요.”

김충선은 노파심에 덧붙였다.

이미 저들이 함경도에 먼저 군사를 보내어 이목을 분산시켰다는 건 모두가 들어 알고 있었다. 이번에도 또 비슷한 수작을 벌이기 쉬웠다.

그런데 과연 함경도에서는 적을 잘 막아내었을까?

혹여 방어선이 돌파되어 적의 진입을 허용했다면 평안도가 크게 우회를 당할 수도 있고, 나아가 왕이 있는 한양과 경기도가 혼란해질 수도 있었다.

‘……알아서 잘 해냈겠지. 일단은 당장 내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한다.’

최악의 경우라도 한양에는 신무기로 무장한 신설 중앙군이 있다.

그리고 그 중앙군은 이미 팔기와 대적하여 패퇴시켰던 전임 도원수 장만과 임진년 김충선이 출신한 일본의 침공을 혼자서 막아내다시피 한 충무공의 조카가 맡고 있었다.

그렇게 마음을 다스린 김충선은 동헌을 나서 곧장 말을 타고 전장으로 나아갔다.

평소 광대한 물줄기가 잔잔하게 나아가던 압록강에서는, 부원수의 말마따나 일대 대혼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상황만 혼란스럽다 뿐, 북방군들에게서는 딱히 동요하는 모습이 없다.

본디 이들이 군역을 피하여 도망쳤던 피역자들이었음을 생각하면 눈을 씻고 다시 볼 일이었다.

전장으로 나선 김충선과 정충신의 뒤로 커다란 원수기가 휘날렸다. 북방군은 저들의 지휘관이 등장한 것을 알고서 함성으로 맞이했다.

와아아아아아!

일순 포성마저 함성에 잡아먹혔다. 난중이거늘 기세만으로 팔기를 씹어먹을 사기였다.

* * *

“강을 확보했습니다.”

친병이 보고하자, 홍태주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눈치를 살피던 친병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홍태주는 못난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강 너머를 쳐다보았다.

그가 보기에 강은 아직 확보되지 않았다.

안전한 도하지점을 구축하지 못하여 화살받이들의 피로 붉게 물들어가는 강이, 어째서 자신의 손에 들어왔다는 말이냐?

“강변과 가까운 섬마다 화포를 재배치하고, 작업이 완수되는 대로 즉각 방포하라. 조선군을 강변에서 떨어뜨려 놓아야 강을 건널 수 있다.”

“아…… 예!”

친병은 잠시 정신이 팔렸던지 멍청하게 반응했다.

홍태주는 귀국하는 대로 이 쓸모없는 놈은 베어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화살받이를 내몰 때 사용한 것보다 더 정교하게 만들어진 배들이 나아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화포를 싣은 선박이 잔해를 헤치며 전방의 섬을 오갔다.

홍태주에게 요동의 한인 십중팔구는 반항적인 가축에 불과했으나, 개중에서 몇몇은 그럴싸한 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화포를 만드는 기술이 그러했고, 또 화포를 다루는 기술이 그러했다.

청淸이 금金으로 불리던 시절에도 화포는 운용했지만, 명군이 가져온 것과 요동에서 노획한 것을 되는대로 동원한 것에 불과하여서 그리 체계적이지는 못했다.

이러한 한계를 깨부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조선군이 아민의 정람기를 화포와 총기의 조직적인 운영으로 도살해버리는 광경을 목도했을 때였다.

‘놀라웠지.’

홍태주는 당시 자신이 느꼈던 감상을 짧게 축약했다.

본디 그는 화약의 힘을 낮게 평가했다.

운영에 필요한 비용에 비해서, 실제 효과가 작다고 여겼으니까. 방포하는 순간의 소리만 좀 크다뿐이지 포탄을 맞고 죽는 건 그저 재수 없는 몇몇 놈뿐이다.

총포는 갑주를 관통한다는 효용이 있지만, 대포나 총포나 한 번 쏘고 나면 장전까지 한세월이다. 활이라면 그동안 수십 발이고 날려댈 수 있다.

그런데 왜 비싸고 요란하기만 한 대포와 총포에 관심과 비용을 쏟아야 한단 말인가?

멍청하고 약해빠진 명군이 토해낸 것만 대충 수습해서 쓰다 버리면 그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지.’

그것을 조선군이 증명했다.

명군처럼 약해빠진 군대가 조악한 운영으로 본질적인 가치를 깎아내리지만 않는다면, 조선군처럼 화약을 이용해 천하무적으로 여겼던 팔기군조차 학살할 수 있다.

홍태주는 아민이라는 반면교사를 통해 조선군에 한 수 배운 셈이었다.

그리고 그날로 홍태주는 가르침을 조선에 되돌려줄 기회를 상정하고서, 유능한 한인들을 확보해 대포를 생산하고 포수를 양산해 왔다.

다만…….

‘이 정도로는 어렵겠지.’

홍태주가 직접 마주한 조선의 왕은, 자신을 바보로 여길 자가 아니었다.

분명 대책을 준비해두었을 터이니 반격이 무조건 통하리라고 속단할 수 없었다. 과연, 섬들마다 배치된 화포들이 몇 번 불을 뿜었을 시점이었다.

콰광! 꽈광!

강 너머에서 포화가 뿜어질 때마다 섬에서 흐릿한 비명과 함께 흙무더기가 터져나가고, 폭발이 일었다. 그럴 때마다 섬에서 가하는 화포의 화력이 한 움큼씩 줄어들었다.

정교한 대포병 사격.

청의 포대가 발악적으로 조선군의 포대를 향해 불을 뿜었지만 적중은 없었다. 애초에 유효 사거리 밖이었다. 청군의 대포로는 반격이 불가능했다.

“한이시여…….”

일방적 구타를 당하는 청군 포대의 상황에 장수가 결단을 요청했다.

홍태주는 역시, 라는 한 단어로 감상을 갈무리하곤 일렀다.

“계속해서 화포를 충당하고, 무의미한 반격을 시도하는 대신 조선군을 강변에서 몰아내는 데나 집중시켜라. 도하지점을 확보하는 게 최우선이다.”

“예.”

어차피 대포나 포수는 많았다.

* * *

“어디서 본 것처럼 흉내를 내는군. 병사들은 물리는 게 좋겠네.”

김충선이 연신 포화를 뿜어대는 섬을 향해 말했다.

낙서포가 적의 포탄이 닿지 않는 위치에서 비교적 높은 정확도로 대포병 사격을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적들의 포반은 바닥이 없는 것처럼 꾸역꾸역 충원되고 있었다.

심지어는 화약이 유폭해 구덩이가 생긴 자리에 또 대포를 밀어넣고서 갈기는 지경이니, 이렇게 악착같이 덤벼드는 저의야 너무 분명했으나 강변에서 적의 상륙을 저지하는 군사들의 손실이 조금씩 누적되고 있었다.

“그렇게 하시지요.”

정충신 역시 시선을 적에게로 향한 채, 김충선의 제안에 긍정했다.

곧 기패관旗牌官들이 전장으로 나아가 퇴각 명령을 내렸다.

평안도의 토병土兵들이 마저 방아쇠를 당기고 시위를 놓은 뒤 허둥지둥 강변에서 빠져나가자, 곧 섬 너머에 숨어 있던 후금군 함선들이 일제히 물살을 가르며 달려들었다.

이에 낙서포와 소홍이포가 접근하는 적선을 향해 연신 불과 포탄을 뿜어댔다.

“역시나 쉽게 가라앉지 않는군요.”

무수한 명중탄에도 파편만 튀기고 천천히 침수할 뿐이었다.

이전처럼 화살과 포탄을 소모시키기 위한 화살받이들의 뗏목이 아닌 탓이었다.

구조적인 안정성을 갖춘 선박이다. 관통탄으로 구멍 몇 개 났다고 박살날 리 없다. 비산하는 나무 파편에 내부에서 부상자가 여럿 생기기는 하겠지만, 그뿐이다.

“하선합니다.”

강변에 다다르자 선박마다 후금군들이 뛰어내렸다.

“팔기의 복식이 아니군.”

“정예를 먼저 소모할 놈들이 아닙니다. 복식을 보아하니 최근 원정에서 새로이 복종시켰다는 몽골놈들이겠지요.”

등 떠밀려 달려드는 명인보다는 훨씬 위협적인 적이다.

막 선박에서 내린 그대로 얕은 물에 서서 화살을 날려대니, 맞사격하는 조선군들 사이로 부상자가 속출했다.

오랑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침착함이다.

포탄도 총탄도 물과 닿으면 살상력이 크게 반감된다. 특히, 포탄의 경우 직격하지 않아도 주변의 돌과 자갈을 튀겨 부상자를 만들 수 있는데 물에 풍덩 빠져버리면 이러한 효용을 누릴 수 없었다.

“……안 들어오고 버티는군.”

김충선이 불안한 낯으로 분석했다.

몽골군은 얕은 강물만 아니라, 죽어 물 위에 뜬 우군과 명인 화살받이들의 시체까지 방패막이로 삼아 대치상황을 유지했다.

그러는 동안 선박은 또 강 너머의 적을 데려오기 위해 물러나고 있었다.

그렇다고 가서 쓸어버리자니 섬을 점거한 후금의 포대들이 신경 쓰인다.

또한 화력과 조직력을 강화하기 위해 기동성과 근접전 전투력을 다소 포기한 북방군이었기 때문에, 몽골군을 압록강으로 밀어 처넣으려다간 도리어 된통 당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으음…….”

김충선은 북방군과 강물과 시체에 기대 끈질기게 버티는 몽골군 사이에 오가는 사격전을 편치 못한 시선으로 주시했다. 전장이 적의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싸움에서 주도권을 잃게 되면 우위도 이점도 차근차근 빼앗기게 된다. 두 손이 모두 속박된 상태여서는 천하장사라도 방도가 없다.

정충신은 적이 지연전을 펼쳐 달성하려는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를 고민했다.

“……강변에 병사들을 모은 다음에는 진격하겠지만, 그래도 놈들에게는 불리한 싸움이 아닙니까?”

당장은 물과 그 위에 뜬 시신에 기대 북방군의 화력을 받아내고 있지만, 뭍으로 나오게 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또한, 화약 무기의 화력은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더욱 매서워진다.

강변의 비탈을 거슬러 오르는 동안 필살의 총탄이 폭우처럼 빗발치리라.

더욱이 북방군은 적의 접근을 저지하는 데 최적의 전술을 갖췄다.

전면에 장창방진을 세워두고서, 그 뒤 언덕에 위치한 포수와 사수들이 화력을 쏟아내면 후금군은 모조리 머리통이 꿰뚫려 몰살할 수밖에 없다.

“……저들이 시도하는 건 정면싸움만이 아닐 것입니다.”

정충신이 확신하기 무섭게, 멀리서 한 줌 조선군 기병들이 정신없이 달려왔다.

그리고 두 원수들에게 보고했다.

“팔기군이 상류에서 도하했습니다! 2만에 달합니다!”

“……뭐라? 2만?! 말도 안 된다!”

김충선과 정충신 모두 눈이 동그랗게 되어서 강 너머를 보았다. 각 팔기를 상징하는 군기는 여전히 미동 없이 휘날리고 있었다.

“……분명 팔기가 맞느냐!”

“예, 예! 소관의 눈으로도 직접 보았습니다!”

“그럼 저곳의 군기와 팔기군은…….”

기만술이다.

정충신이 다급히 기패관에게 명했다.

“적의 주공이 우회했다! 병마절도사에게 합류하라고 전해라!”

“예!”

정충신은 막 달려온 기병들에게도 전했다.

“관찰사에게는 최대한 적의 기동을 지연시키라고 전하게! 북방군이 앞뒤로 포위당하면 승산이 없다!”

“예, 예!”

그렇게 막 달려온 기병도 정신없이 뛰쳐나갔다.

정충신은 후욱,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도원수가 곁에 있었으나 의사를 묻지 못했다.

“대감.”

“개의치 말게. 적절한 판단이었어.”

김충선의 용서에 정충신은 거두절미하고서 화제를 넘어갔다.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후금의 2만에 달하는 정예 기병대가 우회했다.

포위를 당하지 않으면 어느 한쪽을 먼저 깨뜨릴 수밖에 없다. 그나마 취약한 쪽은 도하가 진행중인 몽골군이다. 그러나 북방군이 직접 몽골군을 소탕하러 가게 된다면, 저들이 장악한 섬에서 쏘아대는 포탄과 난전의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지극히 비효율적인 전투다. 많은 인명이 허무하게 스러지리라.

하지만 이 순간에도 2만에 달하는 정예 기병대는 질주하고 있다. 농민 징집병에 불과한 관찰사의 함경군이 그들의 돌파를 저지해내리란 기대는 안 하는게 좋았다.

김충선이 명했다.

“부원수, 휘하를 이끌고 몽골군을 척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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