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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명군이 되다-159화 (159/380)

인조, 명군이 되다 159화

부실한 내실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나라가 도합 3만인 북방군과 수방사를 유지하는 데만도 벅차서 왕이 종친들의 사재까지 털어 쏟아부어야 할 정도니까.

기실, 3만 병력은 이 시기 전체 추정 인구와 비교하면 0.3%에도 미치지 않는다.

그리 과한 비율이 아닌데도 이토록 힘든 이유는, 물론 내실이 부족해서지만, 더 자세히 말하자면 조정에서 파악한 인구가 실제 인구의 반의 반의 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병자호란이 끝나고 십여 년 뒤 행해진 조사에서 조선이 파악한 인구는 고작 150만 명에 불과했다.

여기서 또 십여 년이 지나서 재차 시행된 조사에서는 230만, 그리고 또 십여 년이 더 지나서는 520만가량으로 파악되는데 당연히 실제 인구와는 괴리가 광장히 큰 수치다.

인간이 십 년 주기로 분열해서 인구가 두 배씩 늘어난 게 아니라면 말이다.

이번 역사에서는 조선이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맞고 갈 데까지 가지는 않았으나, 이 시점에서는 왜란이 종결한 지 고작 이십여 년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간 왕이랍시고 군림한 선조와 광해군은 조선의 시스템이 가진 내구성을 한계까지 시험한 초유의 암군들이다.

농지의 파악은 인구보다 사정이 나았으니, 왜란 전보다 고작 반의반으로만 줄어들었다.

왜란이 큰 전쟁이기는 했으나, 왜구들이 핵병기를 쏘아 반도 과반을 금지구역으로 만든 것도 아닐진대 농지가 토막의 토막이 났다는 건, 행정력의 치명적인 약화를 의미한다.

그 결과로 영토 내부에 존재하는 인구의 7/8이, 농지의 3/4이 파악되지 않고 안개에 휩싸인 것이다.

사라진 만큼 나라가 쪼그라들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니 상비군 대비 실제 인구의 비율이 어떻건, 조정은 부담을 배의 배 이상으로 느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욕심을 부리겠다니.’

자만이다.

“나는 안분지족安分知足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경들 이상으로 야망을 품고 있지요. 내가 호기를 얻고도 나서지 못하는 건, 나라가 처한 상황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동?

소화되기도 전에 배가 먼저 찢어질 테지. 어떻게 찢어질지는 신하들에게 이미 말해주었다.

“그렇다고 홍태주와 후금의 죄과를 좌시할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가 저들을 벌주기 위해 꼭 강을 넘어야만 합니까?”

신하들 사이로 당혹한 기류가 번져나갔다.

“어떻게 강을 넘지 않고 오랑캐들을 벌 줄 수 있다는 말이옵니까?”

몇몇 사람만의 의문은 아니라는 듯 영의정 이원익이 모두를 대신해 물었다.

새삼 신하들이 물리적 우월감에 얼마나 경도되었는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본디 이 시대의 조선도 범지구적 관점에서 보면 절대 약소국은 아니다.

곧 세계를 풍미할 제국주의의 태동을 앞둔 서유럽에도 인구가 천만을 상회하는 국가는 프랑스와 신성 로마 제국 정도. 그런 그들을 압도하고 최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영국마저 인구는 육백만 명에 불과하다.

그러니 조선이 체급 자체는 작지 않은데도 17세기의 역사가 이 모양인 건, 주변에 강대국이 너무 많아서다.

옛 제국 명나라, 신흥 제국 청나라, 그리고 그들을 머지않은 미래에 압도할 미래의 제국 일본까지.

전교 석차 30등인 모범생도 학교가 성적 따라 줄을 세워 서른 명씩 반을 편성하면 꼴등이 되어버린다. 조선의 꼴이 딱 그렇다.

이러한 관계로 조선과 이를 경영해 온 관리들에게 제국을 압도하는 무력이란 그간 맛보지 못한 단맛이다. 다들 정신이 나가서 북진 정벌을 거론하는 이유다.

‘참나.’

조선이 이국을 상대하는 방법은 따로 있다. 본디 이국을 패고 강짜를 부려 압도하는 사정이 안 되었던 나라다.

먼 미래에는 중립외교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광해군도 실상 뒤에서는 대북 중진들과 공모하여 대패륵 대선과 홍태주 사이를 이간해 후계 싸움을 일으키고자 했다.

이런 수법이 조선의 전통인 것이다.

그럴진대.

“내게는 강을 넘지도, 칼을 휘두르지도 않고 후금을 벌할 일거양득의 방법이 두 가지나 있습니다.”

“……오오.”

그럴진대도 신하들은 새삼 감탄했다.

기어코 뇌가 망가진 모양들이다.

‘……하기야, 몸이 좋으면 머리가 고생할 필요 없지.’

다만 신속한 퇴행이 다소 놀라울 따름이다. 그래도 옛 방식을 다시 따른다면 정신들이 조금씩은 돌아오지 않을까.

낙관적인 기대를 하며, 내게 기대를 거는 신하들을 향해 흉중의 꾀 보따리를 풀었다.

“후금이 처한 난처한 상황은 경들에게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아픈 구석을 찌르는 것처럼 더 아프게 만드는 법은 없지요.”

그나마 금세 깨달은 이원익이 쫓아와 물었다.

“요동의 혼란을 가중시키고자 하시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는, 말로써 그들을 혼란하케 하는 것입니다. 홍태주가 본디 사패륵에 불과했던 자로 황제를 참칭한들 실체는 후금의 한이자 부친인 노추를 벤 패륜아에 불과하며, 원정의 실패와 아조가 세운 전공을 여실히 거론하여 홍태주의 무능과 아조의 강건함을 공포公布하는 것이지요.”

물론, 안에서만 이런 포고문이 돌아봐야 요동을 혼란하게 하겠다는 의도가 무색해진다.

“그리고 의주부를 통해 포고문이 요동 각처에 전해지도록 조처하는 겁니다. 홍태주의 추락과 실패를 공공연히 요동의 명인들에게 알려준다면, 그들은 홍태주를 조금 더 현실적으로 공략 가능한 표적으로 여기겠지요.”

마침 후금이 원정의 실패로 군사력도 크게 축소되었고, 정치적으로 혼란해지겠다 반란군이 양성되기에는 최적의 상황이었다.

굳이 이 혼란을 조선이 감당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만 무기처럼 쥐고서 홍태주와 후금을 향해 휘두르면 될 따름이다.

“이것이 나의 첫 번째 방법입니다.”

하나의 수법으로 내부적으로는 국위를 크게 선양하고, 바깥으로는 홍태주의 체면과 후금의 위신을 진창에 처박는다.

실로 일거양득의 수법 아니냐.

“두 번째 방법은 무엇이옵니까?”

좌의정 박홍구가 흥미진진하다는 얼굴로 채근했다.

그 역시 수법이라면 본디 일가견이 있는 자로, 내가 이괄을 암살해 버린 건을 끌어다 그대로 흥안군까지 쳤을 때 행동대장을 맡았으니까.

“두 번째 일거양득의 수법은, 아조의 변경만 아니라 경기 일대까지 침투한 여진족 유민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누르하치가 발호하여 만주를 일통하는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군소 세력이 굴복하고 붕괴됐다.

그 과정에서 부스러기처럼 퍼진 여진족 유민 일부가 조선에 흘러들어 왔다.

이들 유민들은 조선 사람들과는 언어적으로도 관습적으로도 이질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고려 때부터 장대한 세월 국경에서 지속되어 온 충돌과 마찰로 인해 오랑캐나 야만인 따위로 인식되며 배척과 멸시를 당했다.

일견 당연할 수밖에 없는 대우였으나 여진족 유민들이 이를 담담히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원래 역사에서는 노잡이로 종사하던 유민들이 후금군과 결탁해 강화도로 향하는 물길을 안내했다.

역사로 증명된, 굳이 좌시할 이유가 없는 내부의 불안요소다.

“아조로 흘러들어 온 여진족 유민 중에는 추장이었거나 추장의 일족이었던 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을 포섭해, 다른 여진족 유민들을 규합시켜 강 너머로 보내는 것이지요.”

첫 번째 방법이 간접적으로 명인 반란군을 유도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 방법은 직접 여진족 반란군을 만들어 강 너머로 배송해 주는 것이다.

“적잖은 여진족 유민이 조선 내부에서의 대접에 불만이 있을 테고, 또 후금에 원한도 있는 신세들이니 쉽게 협조를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박홍구가 물었다.

“하오나, 유민들은 원래 싸움을 피해서 도망친 자들인데 쉬이 따라주겠습니까?”

“북방군과 수방사가 증명해주지 않았습니까. 중요한 건, 싸워 이길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때마침 홍태주가 원정에 크게 실패해 후금이 안팎으로 매우 흔들리게 되었지요. 그간 여진족 유민들이 막연이 염원했을 고향 땅과 복수를 실현하기에는 최적의 상황입니다.”

그것을 여진족 유민들에게 잘 설명해 주기만 하면 된다.

“유민 모두를 설득할 필요는 없습니다. 상술했다시피, 유민들을 이끌 권위를 가진 몇 명만 포섭하면 됩니다.”

“흐음, 허어…….”

“현실적인 가능성을 보장해주기 위해 최소한의 지원은 해야겠지만, 내부에 중구난방으로 흩어진 쓰레기를 한데 모아 바깥에 버리는 비용이라 생각한다면 그리 비싼 값은 아닐 것입니다. 이것이 나라의 안팎을 안정시키고 전복시키는 두 번째 일거양득이지요. 보낼 때 포고문도 들려준다면 일거삼득입니다.”

박홍구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고 감탄했다.

나의 제안이 제법 간교했다고 여겨지는지, 그간 군사를 몰아 강을 넘자는 생각밖에 하지 못했던 신하들 사이로 전율에 가까운 감탄이 번져나갔다.

물리적인 우월감과 이를 실천하려는 야망이 자극적인 맛이라면, 나의 제안은 익숙하고 안정적인 맛일 거다.

분명, 나는 홍태주에게 먼저 강을 건너오면 곱게 두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홍태주는 내가 반대로 강을 넘어올 일은 없으리라 믿고 사고를 터뜨렸다. 물론 그의 전제는 옳았다.

하지만,

“강을 건너는 것보다 홍태주를 더 고통스럽게 만들 방법이 있거늘 왜 굳이 그러겠습니까?”

나는 그때 빈말은 하지 않았다.

홍태주도 그것을 깨달을 테지.

포고문을 퍼뜨리는 것도, 내부의 쓰레기를 모아다 홍태주네 안방에 쏟아버리는 것도 다 조선의 의도라는 게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행보다.

열불이 터지겠지만 제가 어쩔 텐가?

까불다가 손발이 이미 다 뒤로 꺾였는데.

에베베.

‘이 새끼. 어디 피똥 한 번 싸질러 봐라.’

신하들에게 씨익 웃어주니, 야만인에서 악동으로 돌아온 신하들도 따라서 씨익 웃었다.

* * *

조선의 왕이 속으로 놀리고 있던 시점에서.

홍태주는 이미 피똥을 싸지르고 있었다.

실제로가 아니라, 비유적으로 그랬다.

압록강변에서 잔당으로 전락한 군사를 이끌고 선양까지 귀환한 홍태주가 마주한 건 그새 주인이 달라진 수도였다.

“누가 반란을 일으켰더냐?”

홍태주의 물음에, 선양의 닫힌 성문 앞을 다녀온 친병이 답했다.

“아바타이입니다.”

“…….”

홍태주가 누르하치에 이어 다른 두 패륵을 베고 대금의 한위를 찬탈했던 날.

아파태는 한 줌의 친병을 이끌고 혼란해진 성경을 탈출했다.

그리고 외진 곳에서 쥐 죽은 듯이 정세를 관망하다가, 홍태주가 거병하여 군사를 이끌고 압록강으로 나아가자 적당한 시점에 선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선양에는 양자의 반란으로 지아비와 한, 대복진大福晉(왕비)의 지위와 자신 및 자식들의 안위를 모조리 잃어버린 아바하이가 있었다.

그간 아파태는 도르곤, 실질적으로는 도르곤의 어미인 아바하이와 야합해왔다.

조선 측의 조언 때문이었다.

기적적으로 다시 접촉한 두 사람은 그날로 누르하치의 적자인 도르곤을 정당한 대금大金의 한으로 추대하고서 선양과 일대를 장악했다.

홍태주가 조선 정벌에 성공하고서 귀국한다면 몰살을 면치 못할 일이었으나 아파태는 조선과 그 나라의 왕을 믿었다.

홍태주가 꾹 닫힌 선양 성문을 앞두고 피똥을 싸지르게 된 경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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