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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명군이 되다-178화 (178/380)

인조, 명군이 되다 178화

접대란 타인의 비위를 맞추는 것.

그 점에서 위충현은 확실히 접대의 전문가다.

목숨을 걸고 황제의 비위를 맞췄으며, 끝내는 조종하는 데 이르렀으니까.

그가 오늘날 일궈낸 무수한 부와 권력이 모두 접대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런 위충현에게 상대방의 호불호를 파악해두는 건 접대의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자신의 취향을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은 흔치 않았고, 남이공 역시 예외에 해당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이었으나, 전문가인 위충현에게는 다 방법이 있었다.

때로는 소소한 질답으로.

또, 때로는 수족을 먼저 보내서 자리를 만들어보는 것으로.

다각도의 설문과 실전을 통해 위충현은 남이공이라는 인물의 호불호에 대해서 완성도 높은 분석을 해냈고, 오늘 그를 위해 만들어진 자리는 그러한 분석의 결과가 적절하게 반영되었다.

“어떻습니까?”

위충현은 정문으로 들어서는 남이공을 맞아, 가타부타 없이 의향부터 물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밤.

드넓은 마당은 매끈하게 잘 정리되어 틈틈이 놓인 좌등의 불빛에도 그림자 한 조각 지지 않았다.

배후의 전각은 그러한 마당이 훤히 보이는 대청을 가졌고, 뻥 뚫린 마루에는 시야를 가리는 기둥이나 난간이 없었으며 가장자리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등불이 걸렸다.

남이공은 밖에서는 석등을 좋아했고, 안에서는 품질 좋은 조선산 종이를 통해 나오는 은은한 불빛을 선호했다.

“호오…….”

저택의 첫인상만으로 남이공의 입이 살짝 열렸다.

위충현은 안쪽의 불빛을 등진 채 작게 실소했다. 직접 준비한 자신이 봐도 몽환적인 풍경이다.

그래도 주빈主賓의 반응을 보니, 적절한 장소를 마련하기 위해 저택의 원래 주인과 단호한 협상을 거친 보람이 있었다.

그러게 왜 고분고분 저택을 내어주지 않느냔 말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천하의 위충현이 직접 손을 대주겠다는데 영광인 줄 알아야지.

위충현은 다가서는 남이공을 피해 곁으로 살짝 물러나, 안쪽으로 팔을 뻗었다.

“들어오시지요. 귀빈을 위해 주안을 미리 마련해 두었습니다.”

황제 외에는, 아니 황제를 포함해서도 무서울 게 없는 위충현이지만 접대의 순간에는 다르다.

평소 황제의 뒤에 서서 제국과 천하를 주무르던 자신이, 손님을 위해서 체면과 격식을 내려놓고 접대만 한다.

그런 대조적인 모습에 여러 사람이 항복했다.

사람의 마음속은 들여다보지 못하는 흔한 안목을 가진 이들은, 지위와 재주를 불문하고 위충현의 진심 접대에 사람이 생각보다 소탈하더라, 손님을 잘 대해주는 사람이다, 알고 지내면 진국이다, 따위의 호의적인 평가를 세뇌라도 된 것처럼 퍼뜨리곤 했다.

자발적으로 엄당의 수족이 되는 건 물론이고.

“명망 높으신 위 태감께서 공손하게 맞아주시니 민망하군요.”

“바쁜 사람에게 억지로 자리를 청하였으니, 이 정도 공손한 게 예의지요. 자. 서둘러 들지 않으시면 내 팔이 떨어집니다.”

“음.”

남이공은 웃는 낯에 침을 뱉을 정도로 뻔뻔한 사람이 못 되었다.

제가 잘 해주겠다는데, 굳이 정색하고서 그러지 말라고 만류할 수야 있나.

그저 석연치 않은 기분을 조금 품고서 대청으로 향했다.

남이공의 이러한 경향 역시 위충현이 알아둔 바였다.

그는 앞서가는 남이공을 뒤따라 대청에 오르며, 검지와 중지를 연신 까딱거렸다.

* * *

주빈의 등장과 함께 연회가 시작했다.

위충현의 수하들이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잡담을 걸었고, 남이공은 마다하지 않았다.

위충현 본인은 드문드문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을 때 끼어들었다.

첫 번째 주안이 마르고 새로운 주안이 들어왔다.

위충현은 본론을 서두르지 않았다.

사람은 술이 들어가야 사고능력과 경계심이 약해지는데, 남이공은 아직 드러나는 취기가 없었다.

자기 절제가 잘 된다기보다는 그냥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다.

그가 술을 마다하는 인물이 아님은 알았으나, 외부나 중대한 자리에서는 특수한 신분을 의식하여 절주하였으므로 이건 위충현도 어쩔 수 없는 바였다.

잔을 거듭 강권하는 건 너무 노골적이니까.

그래도 술이 아예 안 들어가지는 않았다. 절주는 금주가 아니니까.

남이공의 뺨은 차차 물들어갔고, 웃음소리가 커졌다. 위충현도 따라 웃었다. 그리고 바닥을 보이는 접시를 뒤적이며 하인에게 따졌다.

“손님께서 기분이 한창 좋으실 때인데, 주안 나오는 속도가 이렇게 느려서야 되겠느냐?”

“송구합니다. 중요한 재료가 떨어져, 요리가 잠시 늦어지고 있습니다.”

“한심하기는!”

위충현의 다그침에 남이공이 끼어들었다.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많이 먹어서 배는 고프지 않습니다.”

“……크흠!”

위충현은 짧게 헛기침하고는 당부했다.

“손님께서 배려해 주시니 더 언성을 높이지는 않겠지만, 계속 불편을 드리는 건 나의 체면이 상하니 숙수들에게 최대한 서두르라고 일러라.”

“알겠습니다.”

하인이 물러나고, 위충현은 양해를 구하듯 멋쩍게 웃었다.

약간의 소동이 있어서일까.

왁자하게 농담과 잡담이 오가던 분위기가 조금 식었고,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위충현은 큼큼 헛기침하고서 자세를 고쳤다.

지금이 아니면 마땅히 때가 없다는 듯이.

“염치 불고하고, 내가 남 대인에게 뻔뻔한 질문을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연회의 모든 것과 매 순간을 기획하고 설계한 위충현이다.

중요한 재료가 떨어져?

그럴 리가!

방금 벌어진 소동 역시 본론을 시작해야 할 때를 위해 사전에 계획해 둔 바였다.

기실 하인을 통해 숙수들에게 지시한 건 요리를 서두르라는 게 아니라, 재차 불평을 표할 때까지 일체 요리를 내오지 말라는 지시였다.

이런 내밀한 사정을 외부인인 남이공은 알 리 없는 바.

“얼마든지요!”

엄당의 영수인 위충현이 직접 나온 자리에서 그저 놀다만 갈 리는 없음을 알았던 남이공이다.

흔쾌한 대답에, 위충현은 과장되게 안도한 얼굴로 말했다.

“지금이 아니면 때가 없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허심탄회하게 물어보십시오.”

“남 대인께서는 대명이 적극적인 입장을 취해주기를 바라시는지요?”

“이를 말이겠습니까.”

“대명이 안팎으로 혼란하다는 건 알고 계시겠지요.”

그런데 왜 전쟁을 부채질하냐.

“물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변방의 소국이라고 혼란이 없겠습니까?”

우리도 힘들기는 피차 마찬가지인데 무슨 엄살이냐.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십시오. 내가 감히 사료하건대, 조선의 사정이 아무리 복잡한들 대국의 혼란에 비하겠습니까?”

“태감의 말씀이 옳습니다.”

남이공이 짧게 단정하고서 덧붙였다.

“그러나 소국이 왜 소국이라 불리겠습니까? 작은 혼란에도 소국은 충분히 무너질 수 있습니다. 지난 십수 년간 무능한 폐주의 통치로 나라가 도탄에 빠졌음은 태감께서도 들어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크흠.”

위충현은 헛기침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무능한 군주의 치세라면 확실히 조선보다는 명나라가 더 길고 혹독했다.

합쳐 백 년에 달하는 가정제와 만력제의 치세는 뿌리 깊게 박혀 있었던 제국의 주춧돌까지 들어냈으니까.

하지만, 위충현은 이 문제에서 발언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황제의 손과 발로서 기능하는 환관이다. 무능했을지언정 정당하게 군림했던 옛 황제를 욕보일 수도 없거니와 결정적으로 대명의 암흑기가 황제가 바뀐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건 위충현 본인이 일조하는 바가 컸으니까.

옛 군주가 무능해서 많이 힘들다, 따위의 엄살에 일언반구 못하고 맞아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할 말이 없다고 고분고분 상대방에게 주도권을 넘겨줄 위충현이 아니었다.

갑자기 엄살이 오가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서로에게 홍태주의 처리를 떠넘기기 위해서다.

위충현의 목표는 분명했다. 남이공에게 그러한 정치적 목적 달성은 불가능함을 상기시켜, 개평 삼아 던져주는 뇌물만을 위안 삼고서 북경에서 꺼지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조선의 치세는 폐주 때와 비교하면 괄목상대할 만큼 융성하지 않습니까? 홍태주를 이미 궁지에 몰아놓기까지 했고요.”

“나라의 주인이 옳게 바뀐 뒤로는, 분명 태감의 말씀대로 치세가 괄목할 만큼 바뀌었지요. 그러나 골병든 환자가 하루 만에 병을 떨쳐내기는 힘든 법입니다.”

“정녕 조선이 골병든 환자였다면, 어떻게 대명마저 쉬이 감당하지 못하는 홍태주를 물리칠 수 있었겠습니까.”

남이공은 고개를 저었다.

“두 차례의 전투에서 조선이 기적적으로 승리를 거둔 것은, 올바른 주인이 서서 신민이 함께 수호하였기 때문이지 나라의 사정이 하루아침에 달라져서가 아니었습니다.”

“조선 군대의 강성함은 나도 이미 거듭 전해 들었습니다.”

“합쳐 고작 2만이지요. 그나마 환자의 몸에서 괜찮은 부분을 추려낸 것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대명에서도 이만한 군사를 보내 후금의 심장에 비수를 박아넣지 않았습니까?”

안산공방전.

“앞서 천병天兵이 치명타를 넣어 후금을 불수로 만들었고, 또 홍적이 불충 불효하여 유능했던 노적을 주살해버리지 않았다면 그날의 기적도 어떻게 있었겠습니까.”

남이공은 질린 얼굴로 항복하듯이 두 손을 다 들었다.

“이 사람이 동네방네 조선의 공적을 떠드는 이유는, 위 태감 앞이기에 이실직고합니다만, 물지 못하는 개가 소리만 쳐 위협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아조가 천조의 도움 없이는 천하의 공적을 감당하지 못하여, 손이 보내져서 공의公義를 호소하게 되었는데, 자꾸 이상한 소문이 돌아 조선의 사정이 과장되니 그저 난처하기만 할 따름입니다.”

엄살도 이쯤 되니 접대의 전문가를 자부하던 위충현조차 평정이 흔들렸다.

남이공의 말마따나 과거의 조선은 왜적 하나 감당하지 못하여 천조의 도움을 갈구하였다지만, 지금은 어떤가?

왜적조차 소탕해버렸던 천조마저 감당하지 못하였던 오랑캐를 두 번의 전투만으로 반신불수를 만들어버렸다.

그러고도 더 괴롭히기 위해 뒤에서 벌이는 공작들의 악독함은 말해 무엇하랴.

이러한 조선이 끝내 강을 넘어 홍태주에게 결정타를 먹이지 않는 이유는 하나다.

명나라만 좋은 일은 절대 해주지 않겠다!

명나라로선 골 때릴 노릇이다.

조선과는 공적公敵인 후금만을 조묭해왔지만, 이해관계가 없는 영토 반대편에서는 후금 못지않은 오랑캐 세력이 발호했다.

수서토사水西土司와 수동토사水東土司.

토사土司는 조선의 토관처럼 향토 유지들을 우대하기 위한 제도다.

다만 명나라는 방대한 영토를 거느린 제국인 만큼 항토 세력의 규모도 남달라, 명예직에 불과한 조선의 토관과 달리 토사는 독자적인 세력권을 가지고 있었다.

십수만 군대를 동원해 반란을 일으킬 정도로.

누르하치의 발호와 사르후 전투의 패전이 분명 충격적이었음에도 대명이 온 힘을 다하여 후속 조치에 돌입하지 못한 이유다.

두 토사는 누르하치 이전에, 그리고 누르하치보다 더 크고 방대한 규모로 반란을 일으켰고 심지어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 반란에 묶인 대명의 군사만 40만을 상회하고 있었다.

그래도 진압은 요원한 상태다. 오히려 양 토사의 반란은 본거지인 귀주성을 넘어 사천성까지 번지고 있었다.

명나라가 조선에, 홍태주는 너희가 마저 책임져주면 안 되겠냐고 애걸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조선은 요지부동이다.

얻을 게 없으니 나서지도 않는다.

그것으로 끝이었다면 차라리 다행이었으리라.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방해라도 말아야 할 텐데, 북경의 여론을 선동해 요동으로 군사 파견을 채근하고 있다.

‘……땅이라도 떼어줘야 하나?’

위충현은 고민했다.

이 불청객을 북경에서 쫓아낼 수만 있다면…….

어느 정도의 출혈은 감수하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일개 태감이 제국의 영토를 내어주고 마는 걸 고민하는 건 어불성설이겠으나.

자신 이상으로 황제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엄당과 동림당 사이에서 박쥐처럼 오가며 힘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남이공만 꺼져준다면 제국은 다시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된다.

문제 될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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