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명군이 되다 185화
“충성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한간 관리의 통역이었다.
분명 원숭환의 말은 그보다 훨씬 길었으나, 홍타이지는 굳이 지적하지는 않았다. 그간 절개 있는 명나라인이 제 앞에서 하는 말이야 많이 들어보았으니까.
참상을 겪고 또 포로가 되어서도 꺾이지 않은 건 사람 대 사람으로서 순수한 존중감을 가지게 했다.
생존을 위해 충성을 가벼이 내버리고 비루하게 자비를 구걸하는 다른 포로들은 모조리 노예로 만들어버렸다만, 이 같은 자에게 그런 신세를 강요하는 건 인간으로서는 차마 하지 못할 폭거.
“내 마음 같아서는 직접 목을 베어주고 싶으나…….”
홍타이지는 팔을 들고자 하였으나, 지난 전투로 무리한 그의 두 팔은 두뇌의 지시에도 파들파들 떨리기만 할 뿐이었다.
“상태가 이래서 직접 목을 베어줄 수 없군.”
한간 관리가 곧바로 통역했다.
마치 제가 청나라의 황제라도 된다는 양 어조부터 태도까지 건들거리는 모습이 여간 볼썽사나운 게 아니었는데, 그건 원숭환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홍타이지 자신보다는 생존과 권력을 위해 발닦개를 자처한 한간 관리를 한참 노려보다가 퉤, 피 섞인 침을 내뱉었으니.
이어지는 짧은 문장에 한간 관리가 불쾌한 얼굴로 전했다.
“아무나 좋으니 빨리 죽여달라고 합니다.”
“흐음.”
통역의 순화를 제한다면, 아마 오랑캐는 다 똑같으니 무슨 상관이냐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을까.
홍타아지는 역시나 아쉬운 기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를 따르지 않겠다는데 어쩌겠는가. 고이 적지로 되돌려보내었다간 후환이 될 테고, 심신을 무너뜨려 괜찮은 사람을 망가뜨리는 건 그가 원하지 않았다.
홍타이지는 곁의 호위를 쳐다보곤, 원숭환을 향해 턱짓했다.
호위는 성큼성큼 나아가 원숭환의 옆에서 칼을 뽑았다.
곧, 제국 최후의 명장이 제국 없는 황제에게 패사敗死했다. 시종 흐리던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졌다.
* * *
“견제가 전혀 안 됐는데.”
의주부에서 치보를 보내왔다. 소식은 금주에서 명군과 다이곤-아파태 후금군의 연합이 홍태주 상대로 패배했다는 것.
명나라는 가까스로 탈환한 요서가 다시 풍전등화에 놓였다.
홍태주가 보기에 명나라가 만만하다면 지킬 사람이 없어진 요서를 접수할 테고, 아니라면 내버려 두겠지. 아직 다이곤-아파태의 후금이 있으니까.
‘홍태주가 요서를 탐내지 않는다면 다이곤과 아파태가 차지할 수도 있겠네.’
명나라와 아파태 쪽 후금이 협공을 했다고 두 세력 사이에 진지한 협력이 논의되었으리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명나라야 후금 상대로 워낙 당한 게 많았고, 아파태 역시 전성기 시절 후금을 기억하고 있어서 요동을 정리하는 대로 뒤통수를 까야 할 덩치 큰 먹이쯤으로 여기고 있을 테니까.
그 구도에서 조선은 논외다.
홍태주가 자기 두개골이 깨져가면서까지 조선은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걸 입증해놔서.
아무튼, 요서의 향방이야 어떻건 조선에 희소식은 아니다. 홍태주를 다시 요양에 처넣으려고 벌인 일인데 실패해버렸으니까.
명나라와 아파태의 군대를 꺾어버린 홍태주는 그동안 회복한 영역에서 더욱 독보적인 입지를 다지게 되겠지.
주변에 난립한 군소 부족들도 줄을 갈아탈 테고.
“곤란하군. 곤란해.”
아무리 망했어도 청나라를 창건한 황제라는 걸까.
확실하게 매듭짓기 위해서는 남을 부릴 게 아니라 조선의 군대를 강 너머로 보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후 무주공산이 되어버린 요동에서 조선이 딱히 거둘 이익이 없더라도 말이다.
홍태주는 살아 있는 화근이고…… 그것을 또 증명해 냈으니까.
그러나, 얻어걸린 강대국의 명성이 나라의 내실을 근본적으로 바꿔주지는 못했다.
초유의 암군이 연달아 즉위하는 동안 대전쟁마저 연이은 이 시기 조선이다. 망국의 기세가 절정에 달한 병자호란 이전이라도 충분히 위태로웠다.
환자로 비유하자면 중환자실 입원 상태.
적절한 조치가 계속되어야만 사망을 면할 수 있다. 그래서 즉위와 함께 수술에 들어갔으나, 현재 조선은 회복기 이전에 여전히 수술대에 놓여 있다.
‘이제 충청도에 선혜법을 도입했으니…….’
또 하나의 진보를 이룩했으니 이 자체는 분명 기쁜 소식은 맞다. 그러나 곡창지대인 하삼도에서 핵심을 다투는 경상도와 전라도는 아직 선혜법이 시행되지 않았다.
경기도와 가까운 황해도도 마찬가지.
근본적인 변화는 계속 이뤄지고 있으나 도입한 순간에 극적인 결과물이 나오지는 않는다.
이러한 와중 상비군 2만을 계속 유지할 수 없어 북방군과 수방사 일부를 해산했다.
이천만 백성을 아우르지만, 행정력이 닿는 인구는 최근까지 반의 반의 반에 불과했던 탓이다. 인구 대비 병사의 체감 비율이 따따따블인 셈. 개선이 이루어진 지금은 따따블 정도일까.
조선의 현황이 이렇다. 괜히 남의 손을 빌려다가 홍태주를 견제하려던 게 아니다.
이번 시도가 무위로 돌아갔다고 조선이 처한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홍태주야, 물론 손을 써두지 않으면 후환이 되어 돌아올 거라는 건 알지만…….
수술 진행 중인 중환자 상태로 무리해야 할 정도로 시급한 문제냐면, 글쎄. 의문부호가 먼저 떠오른다.
무리라면 의주 전투를 두 번이나 치르면서 충분히 하지 않았을까?
대강이나마 상황이 수습된 상태에서 굳이 개복된 뱃가죽을 억지로 부여잡고 강까지 넘어가야 하나?
아니라면, 내실부터 다스려야지.
조선이 이 지경이 된 이유부터가 암군들이 내실을 다스리지 않아서다.
남이공이 귀국한 건 희소식이다.
물 안 좋은 조정에 쓸만한 사람이 늘었다.
* * *
영의정 이원익이 말했다.
“생산량은 경상도와 전라도가 훨씬 높으나, 선혜법을 도입하는 데는 부담이 훨씬 큽니다.”
뒤이어 누군가 반박했다.
“그만큼 많은 실효도 거둘 수 있지 않습니까? 급선무는, 마땅히 가장 큰 실효를 거둘 수 있는 지역일 것입니다.”
충청도에 선혜법이 도입된 지금, 조정의 화제는 어느 지역이 다음 차례냐는 것이었다.
두 번째 의주전투로 국난을 극복했기 때문일까.
안심한 위정자들은 옛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패거리를 만들어 각기 다른 주장을 펼쳤다.
서인들은 하삼도의 다른 두 지역, 경상도와 전라도에 선혜법을 도입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북인들은 경기도와 인접한 지역 중 유일하게 선혜법이 도입되지 않은 황해도를 다음 차례로 지목했다.
선혜법의 시조인 이원익은 후자를 은근히 밀어주는 중.
서인들이 하삼도의 선혜법 시행에 필요한 갖은 노고들을 ‘어차피 내가 하는 고생 아닌데?’쯤으로 여기는 데 반해, 이원익은 선혜청의 수장으로 그 고생을 직접 하는 위치였다.
그나마 고생이 덜하고 실현 가능성이 큰 황해도가 구미가 더 당길 수밖에.
그리고 서인들이 하삼도를 미는 건 정치적인 이유가 컸다.
전라도야 본디, 북인의 전신인 동인의 텃밭으로 과거 선조가 일으킨 기축옥사로 수천 명 선비가 고초를 겪었던 곳이고…….
경상도는 아예 동인의 뿌리와도 같은 곳.
영남학파의 중흥을 이끈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이 동인들의 대스승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상도와 전라도는 모두 광대한 토지와 무수한 인력을 기반으로 방대한 부를 일구며, 전통적인 학맥을 고수한 채로 인재를 한양으로 앞다투어 입성시키는 유지들의 세력이 강했다.
이들에게 세금을 공물로 대체하지 못하고 오롯이 보유한 토지의 면적에만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선혜법은 금전적으로 이롭지 못했다.
서인들은 충청도라는 발판도 마련되었겠다, 거둘 실리가 많다는 명분으로 북인들의 기반을 약화하겠다는 거다.
서인만 나쁘고 북인이 정의라는 게 아니다.
당장 북인들은 황해도를 밀고 있지만, 그 황해도마저 선혜법이 도입된 다음에는 어떻게 나올까?
차례를 더 미룰 수 없다면 선혜법 도입 자체에 비협조적으로 변하지 않을까.
아주 배들이 불렀다. 난관 하나 넘었다고 벌써 기고만장해져 정쟁에 돌입하다니…….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다. 암, 정쟁이 없으면 한반도가 아니지.
저들끼리 떠들다가 지친 신하들이 용상을 향해 이목을 모았다. 서로를 설득할 수 없으니 최고 결정권자가 대신 정해달라는 거다.
“내가 가만히 경청해 보니, 경상도와 전라도는 법이 시행되어 거둘 실효가 방대하나 그만큼 준비하고 공을 들여야 할 바도 많았습니다.”
“하오나…….”
바로 들어오는 반발.
나는 곧바로 일축했다.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수운으로 세곡을 옮기려면 남해와 서해를 빙 둘러야 합니다. 벽지라면 동해까지 포함되겠지요. 그러고도 안흥량이 있는 태안반도를 건너야 합니다.”
안흥량은 고려 시대부터 뱃사람들의 저승문으로 악명이 자자한 물길.
“충청도야 경기도와 인접하였으니 육로를 통해 태안반도를 우회하였으나, 경상도와 전라도의 세곡까지 그럴 수는 없습니다.”
“어째서 말이옵니까? 태안반도 남쪽에서 하역시킨 뒤 충청도의 세곡과 함께 옮기면 되지 않겠사옵니까?”
아니, 이 양반들아. 그게 말처럼 되겠어?
“경상도, 전라도 전체에서 거둔 세곡의 양은 충청도의 금강 이남에서 거둔 세곡의 양보다 수십 배는 많을 겁니다. 그러면 길도 새로 뚫어야 하고, 인부도 훨씬 많이 동원해야겠지요.”
경상도와 전라도에 선혜법을 시행하겠다면 태안반도 문제는 둘 중에 하나다.
들이받다가 대가리까지 깨질 각오를 하고서 어떻게든 뚫어버리던가.
아니면 해마다 생고생을 반복하던가.
그런데, 지금 조선은 먹고 죽을 예산도 없는 나라다.
오죽하면 남이공이 북경에서 분탕 치며 엄당과 동림당 사이에서 알뜰하게 금괴까지 뜯어서 보내야 했겠나.
그 금괴마저 이미 다 쓰고 없다.
들어오는 족족 나갔지.
군비로 얼마, 충청도의 기반시설 확충에 얼마, 또 환자와 방랑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복지사업에 얼마, 하고 여기저기 한 움큼씩 떼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더라고.
남이공이 제가 벌어다 준 금괴가 다 어디 갔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거다.
당신의 금괴는 조선팔도에 있습니다…….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법을 시행하는 건 충분한 사전준비와 함께 세심한 조율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급선무는 맞지만, 절대로 서두를 일이 아니에요. 지금은 황해도에 선혜법을 도입하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인들이 구시렁대는 동안 북인들이 앞다투어 긍정했다.
그리고 황해도 시행을 은근히 밀고 있던 이원익이 대표로 한 걸음 나서서 받았다.
“전하의 하교가 온당하니, 의정부에서는 선혜청 및 호, 공조와 논의하여 왕명의 구체적인 실현안을 구상하겠사옵니다.”
내가 북을 치니 따라서 장구를 치는 수준의 날치기였으나, 어심이 굳었으니 어쩌겠는가.
서인들은 조금 구시렁대다가 말았다.
어차피 저들도 경상도와 전라도에 선혜법을 앞당겨서 도입할 수 있다고는 진심으로 여기지 않았을 거다. 워낙 비현실적이어야 말이지.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수준이었을 거다.
* * *
회의가 해산한 뒤.
왕명으로 인해 마지못해 황해도 안에 부역하게 된 공조판서 김류와 병조참판 이귀는 오래간만에 회동을 가졌다.
폐조 시절, 폐주를 몰아내기 위해 의기투합하였던 두 사람은 반정 후 신왕을 향한 태도를 두고 반목했다.
김류는 금상이 범상한 사람이 아니므로 과욕을 부리는 대신 굴종하며 자리보전 및 점진적인 출세를 지향했고.
이귀는 저들 서인을 견제하고자 원죄 가득한 북인 떨거지들을 살려놓는 왕에게 사사건건 반발했다.
그러나 그런 분열도, 북인을 마저 일소하기 위한 정쟁도 어느샌가 희석되어 버렸다.
가도를 점거한 채 쌀 도적질을 하다가 수틀리자 침공해버린 명나라산 해적 떼와 싸우고, 허울뿐인 이패륵 자리에 불만을 품고서 자신만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강 너머를 노리던 아민과 싸우고, 끝내는 후계자 신분에도 갑자기 눈깔이 돌아가서는 부친을 베고 원기옥을 모아 침공한 홍태주와도 싸웠으니…….
거듭되는 비상시국에 태평히 당리당략이나 논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황태주가 완전히 몰락해 버린 뒤 조선은 후금이 벌벌 떨고 전 세계가 경악하는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관리들은 시대 앞선 국뽕에 심취하여 요동 패권을 주장하였으나 왕의 단호한 반려로 좌절했다. 그렇게 투쟁할 대상을 잃어버린 자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조정은 다시 북인과 서인으로 분열했다.
해묵은 원한은 이미 먼지 덮인 지 오래였고 누구의 감정도 동요시키지 못하였으나 권력과 지분을 향한 욕망은 언제고 빛이 바랬던 적이 없었다.
김류와 이귀의 회동은 그렇게 성사됐다.
전란을 거듭하는 와중 요직을 건사한 북인들은 세를 회복했고, 분열한 서인은 따로 놀아서는 북인들과 맞설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적어도 한 가지 점에서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북인의 다리를 다시 분질러놔야 한다는 것.
성질 급한 쪽이 먼저 입을 열었다.
“경상도나 전라도를 제치고 황해도에 선혜법이 도입된 건 어쩔 수 없었다 쳐도, 문제는 지금부터네. 미리 수를 준비해 둬야지 않겠나?”
상황이 반전했다.
평안도와 함경도는 물리적인 거리가 하삼도와 진배없는 데 반하여 농업은 미진해 선혜법을 시행해도 거둘 실효가 적다.
황해도 다음은, 무조건 경상도 아니면 전라도인 이유다.
두 지역은 북인의 금전적 인적 기반.
북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갑자기 미적거리기 시작할 거다. 황해도의 선혜법 안착을 최대한 지연해야 다른 두 지역의 도입이 그만큼 늦어질 테니까.
반대로 서인은 황해도의 선혜법 안착에 힘을 쏟아야 했다. 그래야 다른 두 지역의 선혜법 도입이 당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인이 직면한 문제는 북인들의 태만만이 아니었다.
태안반도!
상충하는 정계의 이해관계야 내 알 바냐는 듯 반 천년의 세월 하삼도로 향하는 물길 길목을 틀어막고서 여러 왕을 좌절시킨 대자연의 수문장.
이 태안반도를 해결하지 않고는 북인들의 기반을 타격하는 것도 요원한 일이었다.
북인이 꾸역꾸역 태안반도를 걸고넘어지면서 일을 잡아끈다면 서인도 난처해진다.
그때 가서 대응하려면 늦는다.
북인들이 황해도의 선혜법 안착을 어떻게 훼방할까 고민하는 지금, 미리 태안반도의 공략을 시작해야 한다.
이귀가 말했다.
“금상도 두 도에 선혜법을 도입하고 싶을 텐데, 우리가 미리 해법을 준비해 놓으면 전하께서도 좋아하지 않으시겠나? 이거야말로 충정이지!”
가슴에서 우러나오기보단 이해관계에서 얻어 걸리는 충정이었으나, 결과만 좋다면 그만 아닐까.
그런 생각은 김류도 다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내 머리를 맞대고 태안반도의 공략법을 구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