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명군이 되다 189화
세자는 비누대왕의 길을 걷게 됐다.
가상하지만 허황된 계획은 파기하고, 아비의 조언을 따라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세자가 왕실에서 쓰는 물건을 친히 나눠주겠다는데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그러한 일이 있었다는 소문은 발 없는 말을 타고 빠르게 퍼져 한양에서는 비누라는 단어가 새롭게 거론되기 시작했다.
뭔지는 몰라도 대단한 양반들이 그걸 쓴다더라는 식.
바로 입질이 들어오는 걸 보니 너무 성급해지지만 않는다면 비누대왕의 탄생은 순항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사났네, 경사났어.
그리고 이런 와중에도 서인과 북인의 물밑 당쟁은 치열했다.
거대한 이권을 두고 지키느냐, 지키지 못하느냐의 싸움을 하는 중이었으므로 당연했다. 비누가 눈에 들어오겠는가?
소문이 귓전을 긁어대어도 ‘비누라고? 써보고 싶기는 한데…… 그래서 우리가 하던 일은 어디까지 왔지?’ 따위의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쟁의 치열함은 김신국네 문지방이 닳는 속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왜 김신국네인가?
범선의 도입을 남이공이 감독하게 되어서다. 더 자세히 설명하면, 김신국은 남이공과 소북이라는 당적을 함께 했으며 사적으로는 사돈 관계다.
남이공은 출장을 떠났으니 그를 대신해 가장 가까운 사람을 설득, 또는 매수하여 영향을 끼쳐보겠다는 의도.
“금일 새벽에 김류가 김신국의 거처를 방문했사옵니다.”
미리 한양 곳곳에 눈을 풀어놓은 최 상선이 보고했다.
“서인이 사활을 걸었나 봅니다.”
B급 간신배에 불과할지라도 김류는 서인의 영수.
게다가 본인을 조정의 진정한 흑막쯤으로 여기는 과대망상증 환자이기도 했다.
그런 김류가 직접 움직인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명분이 없는 건 아니다.
소북의 영수였던 김신국이다. 그를 북인 솎아내기로 살벌했던 환국 시기, 숙청은커녕 요직에 추천한 사람이 김류였다.
김신국에게는 은인 되는 셈. 그 빚을 부정하기란 쉽지 않다.
마침 김신국은 호조판서이기도 했다.
조세제도에 관여할 힘이 있다는 뜻.
김류의 구원이 가벼운 은원은 아니니 어떻게든 반응이 있지 않을까.
지위를 통한 공적인 방식이건, 남이공을 통한 사적인 방법이건 간에 말이다.
* * *
한양이 갖은 소문과 아귀다툼으로 바람 잘 날 없는 동안.
남이공과 벨테브레이 일행은 충청도 금강 하구의 군산창群山倉에 있었다.
뱃전에서 추를 묶은 밧줄을 늘어뜨려 수심을 측정하는 모습은 남이공에게나 일대 관리들에게나 생소한 광경이었다.
물길이란 앞선 사람에게서 배우거나, 몸으로 체득하여 익히는 것이지 수면 아래의 지형을 지도로 만든다는 생각을 누구도 해본 적이 없었던 탓이다.
벨테브레이와 두 네덜란드인 부하들은 그게 충격적이었다.
‘해도를…… 안 만들었다고?’
어촌에서 태어난다면 일대의 지리는 자연스럽게 익히겠으나, 그 너머에서는 문외한일 수밖에 없다.
이때 필요한 게 해도였다.
항구 일대의 수심과 해류, 유속을 파악하여 기록해둔다면 외지인이라도 보고 익혀 쉽게 통행할 수 있다.
-오랑캐들이 해도를 접한다면 그들 역시 출입이 편해지지 않겠는가?
벨테브레이가 해도 제작을 제안하자 남이공이 했던 우려였다.
-일본과 몽골도 물리친 ‘천하의 대조선’이 오랑캐 침입을 두려워합니까?
벨테브레이는 그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자화자찬을 역으로 응수했다.
기실, 그에게 해도의 제작은 지도 제작과 마찬가지로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해명까지 필요한 일이라 여기지도 않았고, 외침을 우려한다는 것도 조선의 관용구를 빌리자면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꼴이었다.
해도가 없어 자국민부터 불편한 마당에 무슨 오랑캐 타령이냐.
“대감.”
벨테브레이의 작업을 주시하던 남이공이 고개를 돌렸다.
심부름꾼이었다.
“한양에서 온 서찰입니다.”
“흠.”
봉투를 열어 손으로 털어내니 편지 한 장이 툭 떨어졌다.
펼쳐보니 익숙한 필체가 눈에 들어왔다. 내용을 읽기도 전에 김신국이 보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김신국은 안부와 함께 서해의 일을 물어왔다. 명나라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다시 나갔는데 괜찮으냐. 할 만하느냐. 오랑캐가 고분고분하더냐.
범선의 제작은 가능하겠느냐.
그것이 하삼도의 선혜법 시행에 열쇠가 될 수 있겠느냐.
꼬치꼬치 캐묻는 게 많았으나 남이공은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원래 김신국과는 사적으로도 친한 사이였고, 귀국한 다음에는 회포를 충분히 나누지 못하고 헤어졌으니까.
궁금한 게 많을 수 있다.
또, 호조판서 아닌가.
남이공은 심부름꾼을 향해 편지를 들어 보였다.
“자네 주인되는 사람이 내가 그리운 모양이야.”
남이공이 실소를 지으며 말하자, 심부름꾼도 함께 실소를 지었다.
“답서는 돌아가는 대로 쓰겠네. 지금은 일하는 중이어서.”
“알겠습니다.”
“객사에서 쉬고 계시게. 아전들에게 나의 손님이라고 소개하면 자리와 식사 정도는 내어줄 테니.”
“감사합니다.”
심부름꾼은 꾸벅 허리를 숙였고, 남이공은 고개를 까딱인 뒤 다시 바다로 시선을 향했다.
벨테브레이는 자리만 옮긴 채 여전히 수심을 확인하고 있었다.
“사관님, 여기서 이러고 있으니 원시인들 상대로 불 켜는 법부터 가르쳐 주는 것 같지 않아요?”
“17세기에 해도조차 없다니, 이놈들은 무슨 7세기인 줄 아나.”
“7세기에도 해도는 있었을걸?”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7세기면 로마 제국 있던 시절 아니야?”
“무슨 7세기에 로마 제국이야, 기원전 7세기도 아니고!”
곧 헤이스버르츠와 페스바르트는 로마 시대의 시기를 두고 다투기 시작했다.
“어떻게 기원전 7세기에 로마 제국이 있었겠냐? 그때면 인간들은 죄 동굴에서 자고 사냥이나 하고 살았을 거다!”
“기원후 7세기보다는 기원전 7세기가 맞지! 로마가 예수님께서 못 박히시고 600년 동안이나 더 있었겠냐?!”
엄밀히 말하면 로마는 기원전 7세기에도 존재했고 기원후 7세기에도 존재했다. 2200년 동안 로마는 ‘하하 아직도 있지롱’했기 때문.
기원전이나 기원후의 7세기 로마 모두 두 사람이 생각하는 전성기의 로마 제국과는 크게 달랐지만.
덕분에 귀만 따가워진 벨테브레이가 외쳤다.
“쓸데없는 걸로 그만 싸우고 기록이나 똑바로 해, 바보 멍청이들아!”
“그럼 내기만 할게요. 로마가 7세기에 있었는지, 기원전 7세기에 있었는지.”
“어휴.”
“로마가 7세기에 있었다는 데 플로린 열 개 건다.”
“확인은 어떻게 하려고?”
조선에서 확인해 줄 리는 없으니까.
“죽기 전에는 돌아가겠지. 가서 신부님에게 물어보면 될 거 아니야? …쫄?”
“뭐, 쫄……? 이 자식이 뒤질라고. 난 기원전 7세기라는 데 플로린 스무 개 건다!”
페스바르트의 말에 헤이스버르츠가 곧장 비웃었다.
“지랄한다. 너한테 플로린이 하나라도 있기나 하냐?”
“야! 너야말로 있기나 하냐?!”
“있지. 누구처럼 술 마시고 여자 찾는다고 다 갖다버리지는 않아서.”
곧 두 사람은 내기에 걸 플로린이 있는지를 두고 싸웠고 벨테브레이는 폭발했다.
“이 개자식들아! 지금 시위하냐!”
* * *
다음 날이 되어, 벨테브레이는 내기라곤 까맣게 잊어버린 헤이스버르츠와 페스바르트와 함께 해도를 분석했다.
물론, 감독인 남이공도 함께였다.
이 늙고 초췌한 조선의 관리는 바다라면 물고기밥만 쏟아낼 줄 알지, (세 사람만 해도 작성에 투입된 이유였다) 쥐뿔도 아는 게 없었으므로 벨테브레이는 눈높이 해설을 해야 했다.
“일단 다른 건 모두 무시하시고, 등고선만 보시면 됩니다.”
“물 아래의 높낮이를 표현한 건가? 굉장히 시각적으로 편하군.”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맞습니다. 그리고 배를 바다에 띄우면 물에 잠기는 부분이 있겠지요? 배가 오가려면 무조건 그것보다는 깊어야 합니다.”
당연한 소리.
조수간만의 차를 생각하면 넉넉하게 깊어야 했다.
“범선이 오가려면 부두를 이쪽으로, 여기까지는 내야 합니다.”
“흠……. 그게 가능한가?”
“방법은 많습니다.”
“당장 공사할 수는 없네.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가 맡은 일은 주어진 환경에서 범선을 운용할 수 있는지 파악하고, 가능하다면 시범선을 제작해서 실험해 보는 것뿐이야.”
벨테브레이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가 생각하기엔 범선의 운영은 예정된 수순이어서 굳이 기존의 불리한 시설을 고수하고 오직 실험만을 위한 시범선을 따로 만들어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이 보수적인 나라의 관리들이 그러길 원한다면 어쩌겠는가.
이게 이세계의 귀족이 되기 위한 대가라면 응해줄 수밖에 없었다.
부하들은 몰라도 자신은 사략선 선원 노릇에는 질렸으니까.
“조정으로서는 필요한 조심성이네.”
오랑캐의 제안이었다.
고려해주는 것만으로도 과분하다 여기는 자들이 많았다.
“첨저선을 시도했다가 평저선으로 회귀한 전례가 존재하는 만큼 무턱대고 선박체계를 뒤엎을 수야 없는 노릇 아닌가?”
가능은 한지, 가능하다면 실제로 시도했을 때도 문제는 없는지, 그렇다면 도입했을 때 비용 대비 실리는 얼마나 취할 수 있는지 다 확인하는 게 먼저였다.
“알고 있습니다. 제 딴에서는 답답해서 그렇지요.”
“좋은 성과를 낸다면 좋은 결과 역시 따를 걸세. 자네가 보기엔 어떤가?”
벨테브레이 일행의 최종 목표는 금강 하류의 군산창에서 태안반도 너머 공진창貢津倉까지 세미를 옮길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공진창 일대의 해도는 내려오면서 이미 완성해 두었다.
벨테브레이는 두 지도를 대조하며 수심을 확인했다.
조선의 부두들은 얕은 수심에도 기동할 수 있는 평저선을 표준으로 만들어졌고, 그게 곧 문제였다.
천 톤 내외의 무역선마저 입출항하던 항구를 접해본 벨테브레이에게는 조선의 관용 항구마저 고향땅 해변의 어촌 부두만도 못했다.
벨테브레이의 표정을 읽은 남이공이 물었다.
“문제라도 있나?”
“보이는 대로 전반적으로 수심이 많이 얕습니다. 주어진 시설도 그다지 좋지 않고요. Holland 선박이 조선을 방문했다면 바다 위에서 선하적을 해야 했을 겁니다.”
벨테브레이의 말에 남이공이 턱을 살살 쓰다듬었다.
여느 관리들과는 다르게, 그는 홍모이의 조선 및 항해 능력을 신뢰하고 있었다.
비록 두 눈으로 직접 보지는 못했어도 홍모이의 능력에 대한 평가만은 대국의 일원으로서 기고만장한 북경 주민들조차 확고했기 때문.
“나는 범선의 도입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네.”
“그렇습니까?”
“범선이 태안반도 극복의 절대적인 해답이 아닐지라도, 여러모로 도움은 되겠지.”
북쪽 오랑캐들이 아무리 야만스럽고 잔혹하다 한들 그들의 기마술을 얕보거나 무시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방법이 없겠나?”
남이공이 물었다.
“이런 수심에도 기동할 수 있는 범선 겸 화물선이 있습니다. ……제가 잘 아는 분야이기도 하고요.”
네덜란드는 해양 강국이자 동시에 무역 강국이었고 무수한 선박 수요가 전부 초대형 무역선만은 아니었다.
주어진 조건에 부합하는 함종이 있었다.
플류트Fluijt.
연안 화물선이자 네덜란드의 특산품이기도 한 이 함종은, 대양항해 능력은 떨어지나 태안반도를 우회하지 못할 정도로 하자가 있지는 않았다.
벨테브레이가 본국에서 바타비아(자카르타)까지 오는 데 탔던 배의 함종부터가 대형 플류트였으니까.
함종이 화물선인 만큼 적재능력도 우수했다. 세곡 운송에 알맞다는 뜻.
물론, 얕은 수심에도 기동이 가능했고 플류트와 마찬가지로 네덜란드의 특산품인 스쿠너식 돛을 장착하면 풍속과 풍향이 일정하지 않은 연안에서도 항해가 가능했다.
남이공이 물었다.
“자네가 잘 아는 분야라니 다행이로군. 구현할 수 있겠나?”
벨테브레이는 대답에 앞서 바싹 마른 입술부터 적셨다.
‘올 게 왔군.’
네덜란드인이자 선원 겸 사관으로서 플류트 내부에 대해서는 집구석보다도 더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시야가 닿지 않는 깊숙한 내부와 구성도 대강. 알아야 항해 도중 문제가 생겼을 때 대응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구현은 관리 이상의 영역에 있었다.
그것에 접근하는 건 신세계에 도전하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언제 자신이 모험을 피했던가? 제 발로 지구 반대편을 찾아온 벨테브레이다. 지금은 귀족의 지위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가 비장하게 말했다.
“해보겠습니다.”